같은 날, 같은 사건,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7)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하나의 소설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둘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것은 즐거운 작업
이죠. 전세계에 숱한 팬층을 보유한 영국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만 해도 원작 소설과
영화를 비교, 대조하는 많은 의견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영화가 더 좋다’, ‘소설이 훨씬
재미있다,’ 다양한 이유로 주장을 펼치는 감상자분들이 있죠. 오늘, 행복지기는 동명의 영
화로 만들어진 하나의 소설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미지 출처: 알라딘
전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의 문학상, 맨부커 상을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수
상한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Ending, 줄리언 반스 저, 2012)>은 주인공
토니와 그의 옛 친구 에이드리언, 그리고 토니의 전 여자친구 베로니카를 중심으로 40년 사
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새파랗게 젊었던 청년 시절, 토니는 베로니카와
헤어진 이후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베로니카와 데이트해도 괜찮겠느냐는 편지를 받습니다.
토니는 그에 대한 ‘괜찮다’는 답장을 보내고,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는 교제를 하게 되죠.
그 뒤로 그들은 세월 속에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지고, 토니는 다른 사람도 만나 가정도
꾸리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토니에게 유산으로 남겼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며 토니와 베로니카는 40년 만에 재회하게 됩니다.
-40년 전 예정된 그들의 결말
(아래 단락부터는 스포일러가 다소 있습니다.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책을 일
독한 다음에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베로니카와 잘 교제하고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에이드리언은 사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토니와 친구들은 그의 유서로 남겨진 일기장의 일부
내용만을 알고 있었죠. 자신의 삶은 이미 지루하게 흘러가다 맺어지도록 결말이 정해져
있으며 태어난 것이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던 만큼 이 삶의 결말은 자신이 스스로 내릴 수
있다면 좋겠다며 담담히 남긴 유서에는 어떠한 슬픔이나 우울감, 삶을 포기할 정도의 절망
은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토니는 그의 죽음을 일종의 ‘지적이고 우아한 그 다운 선택’이라
고까지 여기게 되죠. 그러나 중년이 된 토니와 베로니카가 다시 여러차례 만나 시간을 보내
고 대화를 하며 에이드리언의 죽음에 담긴 비밀이 밝혀지게 됩니다. 그의 죽음은 그다지 담
담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줄리언 반스의 저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기억이란 그것을 겪은 사람에 의해 다르게
적힌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수 이소라의 명곡 ‘바람이 분다’의 가사처럼, 아무리 사
랑하는 연인이었어도 둘 사이에 있던 추억은 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죠. 이
것은 안타까운 일도, 그렇다고 행복하기만 한 일도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기억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충격적인 비극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베로
니카와 에이드리언의 결말은 토니의 예감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죠. 이 책의 한글 제목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지어진 것도 기억의 오류가 빚어내는 현실을 모순적으로 나타내
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처음 읽었을 때 결말이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주위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 토니의 입장, 1인칭 시점으로 쓰여있기 때문
입니다. 그가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에 대해 예상한 모든 것들은 보기좋게 빗나간다는 것
을 책을 거의 다 읽어갈 때 즈음에야 독자들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예감은 틀리지 않는
다’는 주인공 토니의 오만한 무지를 드러내는 소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비춰보고 반성할 수 있는 못난 거울인 것이죠.
에이드리언에게, 그리고 베로니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행복지기가 12월의 행복
콘텐츠에서 동명의 영화와 원작 소설의 차이점을 전격 비교하며 함께 들려드리도록 하겠
습니다. 이상, 지적인 고민과 사유의 기회를 가져다주는 문화콘텐츠를 소개하는 행복지기
♡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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