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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사랑] 11
# 1 제주도, 해변도로 (낮)
달려오는 민수의 차. 울리는 전화벨.
S# 2 달리는 차안 (낮)
핸드폰을 받는 민수.
민 수 여보세요.
기 태 (E) 일은 잘 되냐?
민 수 잘돼. 안될 게 뭐 있냐?
기 태 (E) 거기 희정이 왔다 갔다며?
민 수 (당황하는) 어, 올라갔다. 방금.
기 태 (E) 왜 왔었니?
민 수 (거짓말) 친구들하고 같이 내려왔다가 잠깐 들른 거야.
S# 3 기태사무실 (낮)
기 태 지배인 말로는 혼자 왔다 그러던데?
민 수 (E) 나한텐 혼자 왔어.
기 태 근데 왜 친구들하고 같이 온 것처럼 말하냐? 혹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지?
민 수 (E) 일은 무슨 일이 있니?
기 태 어제 같이 호텔에서 묵었다며?
S# 4 차안 (낮)
민 수 온 김에 다른 데서 재우기도 뭐하고 그래서...
기 태 (E) 둘이 같은 방 쓴 건 아니고?
민 수 그럼. 당연하지.
기 태 (E) 그래. 알았다. (철컥 끊기는 전화.)
찝찝하게 전화를 끊는 민수.
S# 5 기태집 거실 (낮)
희정 들어오면, 기다리고 있던 기태모, 보자마자 다그친다.
기태모 너 어디 갔다오니? 어제 어디서 잤어?
희 정 왜 이래? 전화했잖아.
기태모 어디서 잤냐니까?
희 정 친구 집.
기태모 친구 누구?
희 정 누구라 그러면 엄마가 알아?
기태모 알든 모르든 누구야? 어서 대봐.
희 정 미정이라고 있어. (2층으로 가려는데)
기태모 (잡아채며) 어디 전화번호 대봐. 확인해보게.
희 정 챙피하게 왜 이래? 내가 철없이 아무 대서나 자고 다니고 그럴 것 같애? 딸을 좀 믿어!
기태모 (그 말에 찔끔해서) 진짜지? 혹시 어디 딴 데 가서 쓸데없는 짓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희 정 딴 데 어디?
기태모 아니다.
희정 2층으로 돌아서며 뜨끔하는 표정.
기태모 여전히 의혹과 걱정으로 쳐다보는 눈길.
S# 6 골프연습장 (낮)
기태 들어오면, 골프를 치고 있는 기태부. 기태와 기태부는 좀 껄끄럽다.
기태부 (힐끔 보고는) 무슨 일이냐?
기 태 상의 드릴 게 있어서요. 희정이 문제에요, 아버지.
기태부 그런 애긴 집에서 하지 않구.
기태부 골프채를 비서에게 주고, 휴게실로 향한다. 따라가는 기태.
S# 7 동 휴게실 (낮)
기태부 드링크제를 마시고 있고, 기태는 그냥 마주 앉아있다.
기 태 희정이가 거기까지 내려간 걸 보면, 둘 사이가 심각한 거 같아요.
기태부 둘이 오누이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건 안다만, 민수가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했겠니?
기 태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희정이가 민수 좋아하는 거요. 다 큰 여자애가 거기서 자고 왔다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 둘이 어떻게 하고 다녔으면 지배인이 저한테 전화까지 했겠어요. 솔직히 아버지도 민수를 사위
삼고 싶으신 건 아니지요?
기태부 알았다. 내 저녁때 불러서 물어봐야겠다.
기태부의 표정이 굳어진다. 기태는 변하는 기태부의 표정을 본다.
S# 8 단란주점 골목 (밤)
동식과 연주, 유흥가 간판들을 살피며 어딘가를 찾아간다.
동 식 (라이터를 보면서) 아니 정애가 왜 이런 델 다니니? 일하기 싫어서 그럴 애는 아닌데... 무슨 일이 있구나?
연 주 (차마 말못하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저기 오빠... 다른 사람들한테는 정애 이런 거 절대루 말하면 안돼요?
동 식 그럼. 그건 걱정 마.
연주, 다시 온길 죽 돌아보면서,
연 주 이상하네... 전화했을 때 분명히 여기 어디라 그랬는데...
(문득 자세히 보며) 저기 아니에요? 저기?
동 식 맞는 거 같다. 가자.
연 주 (가려다 긴장이 되는 듯 잡으며) 오빠, 가서 있으면 꼭 데리고 나와야 되요. 무슨 수를 써서라두요. 알았죠?
동 식 그래, 그래야지.
한 단란주점을 향해 바삐 가는 연주와 동식.
S# 9 단란주점 내 (밤)
기웃거리며 들어오는 연주와 동식.
룸과 룸을 왔다갔다하는 여자들이 보이고, 안주를 나르는 웨이터가 보인다.
여 자1 어서 오세요! (그러면서 동식 뒤의 연주를 보고는) 어떻게 오셨어요?
동 식 사람 찾으러 왔는데요. 여기 임정애씨라고 있습니까?
여 자1 누구요?
연 주 임정애요.
여 자1 (다른 일 하며) 그렇게는 못 찾아요. 이런 덴 다 가명 써서. 어떻게 되시는데요?
연 주 가족이에요. 저기 중키에 헤어스타일은 좀 짧구요, 얼굴이 흰편이고... 여기 온지 며칠 안 될 거예요...
여 자1 (관심 없이) 선영이 얘기하나...? 누군지 모르겠네... 왜 찾는데요?
연주 대답하려고 머뭇거리는데,
이때 손님들이 오자, 여자1 손님들을 맞아 들어가 버린다.
어머, 어서오세요. 오랜만이야. 등등...
연주와 동식 기웃거리며 안쪽으로 들어가 룸 사이 통로를 살펴본다.
룸과 룸을 왔다갔다하는 여자들이 보이고,
연주와 동식 뻘쭘히 서로를 본다.
연 주 밖에 나가서 기다려 볼까요?
동 식 그럴까...?
연주와 동식 나가려는데,
이때 각기 다른 룸에서 나오는 정애와 여자1.
정 애 언니, 몇 번 방이라 그랬죠?
연주와 동식 가려다 말고 돌아본다.
여 자1 눈치껏 좀 빨리 나오라니까 넌 왜 그러니?
정 애 죄송합니다.
여 자1 가봐. 7번 방이야.
정애 다시 룸 쪽으로 가려는데,
연 주 정애야!
정애 놀라 돌아본다. 순간 마주보는 세 사람.
여 자1 너 였니? (누가 부르자) 알아서 조용히 해. 문제 일으키지 말고. (급히 사라진다.)
정 애 여긴 뭐 하러 왔니?
연 주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와서 팔장 끼며) 가자.
정 애 지금 바뻐. 일하잖아. 집에 가있어. 일찍 들어갈게. (그리고는 7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연주 어떻게 할까하다 이내 정애를 따라가면, 동식도 간다.
S# 10 단란주점, 룸 안 (밤)
막 자리에 앉은 정애, 자기소개를 하면서 술을 따르는데,
정 애 최선영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연주와 동식이 들어온다.
연 주 가자, 정애야. 나와.
정 애 얘가 왜 이래? (손님들에게) 죄송합니다.
연 주 얼른 못나오니? 술상 확 들어 엎어버릴까? 빨리 나와! 오빤 뭐하고 있어?!
동 식 (얼른 와서 정애 손 끌어내는) 가자, 정애야. 여긴 니가 있을 데가 아니야.
여 자1 (어느 새 쫓아와) 어머, 이게 무슨 일이니? 손님들 계신데?
정 애 죄송합니다. (할 수 없다는 듯, 동식 손 뿌리치고 나간다.)
얼떨떨해 있던 남자들 어이없어 웃고... 나가는 세 사람.
S# 11 단란주점 앞 (밤)
정 애 (나오면서) 정말 왜들 이러는 거야? 왜 동식오빠까지 끌고 와서 이래!
연 주 너야말로 왜 이러니? 겨우 이런 거였니? 이런 일해서 나 도와준다는 거였어?
정 애 그럼 나보고 너 그렇게 되는 거 가만 보고만 있으라는 거야?
연 주 (동식을 의식하고) 그만 하자. 나 니가 하래는 대로 할테니까, 대신 너도 여기 관둬. 그럼 됐지?
정 애 ....
연 주 일단 집으로 가자.
동 식 연주 너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니? 너희들 왜 그래?
연 주 아니예요. 별일 아니에요. 오빤 택시나 좀 잡아 줘.
동 식 그래... (거리로 나선다.)
연주와 정애, 뚱하니 말없이 서있다.
동 식 (택시를 잡으며) 연주야!
연주 정애를 끌고 간다.
순순히 택시로 들어가는 정애. 연주 나란히 뒷좌석으로 들어간다.
연 주 (동식에게는) 저기, 오빠 미안한데, 우리끼리 먼저 타고 갈게.
동 식 그래, 난 괜찮아.
연 주 내일 봐요. 오늘 고마웠어요.
동 식 조심해서 가라.
동식을 혼자 남겨 놓고 출발하는 택시. 의아한 동식의 표정.
S# 12 택시안 (밤)
연주와 정애, 한동안 각자 다른 곳 보며 앉아있다.
연 주 미친년.
정 애 너나 가만있어. 지금 잘 되간단 말이야. 다 되가는 데 왜 이러니? 넌 아무 생각 말고 얌전히 입원이나 하면 돼.
연 주 왜 그렇게 생각이 없니? 니가 이러면 내가 얼씨구나 좋아할 줄 알았어?
정 애 그깟 알량한 자존심 지켜서 뭐 할려구. 사람이 죽어 가는데 자존심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어?
연 주 내가 죽지 니가 죽니? 버려도 내가 버려야지, 자존심을 왜 니가 버려? 넌 계속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나 죽으면 같이 확 따라서 죽어버릴 거야? 왜 앞날은 생각을 안 해!
정 애 너 왜 죽을 생각부터 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 궁리를 해야지, 왜 죽을 생각부터 해! 니 몸이라고 다 니껀 줄 알아...?
그 말에 찡해서 가만히 있는 연주.
연 주 그래... 너를 위해서도 살려고 해야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네... 너한테도 난 중요한 사람인데... 고맙다 정애야. 대신 너도 나를 위해서 제발 이러지 말아줘.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이런 식으로 허비해서는 안되잖니. 같이 더 재미나게, 즐겁게 지내자...
정 애 너 입원할 생각 없구나?
연 주 아니야, 할게. 내일 하자, 입원. 그러니까 너도 거기 다시는 나가지 마. 딴 걸 해서 날 도와주든지... 이렇게 번 돈은 싫어.
너도 꼭 약속하는 거다?
정 애 알았어.
연 주 고맙다. 고마워...
착잡하게 나란히 앉아 정애의 손을 잡는 연주.
S# 13 호텔방 (밤)
창가에서 서성거리며 고민을 하는 민수.
늘어뜨린 손끝에는 맥주가 들려있다.
돌아서서 전화기로 가는 민수.
맥주를 놓고 수화기를 든다. 전화를 거는 민수.
S# 14 옥탑방 (밤)
울리는 전화벨. 깜깜한 빈방에 전화벨 불빛만 점등된다.
S# 15 호텔방 (밤)
수화기를 그냥 내려놓는 민수. 맥주를 마신다.
S# 16 기태집 전경 (밤)
S# 17 거실 (밤)
기태부, 기태모와 희정이 앉아있다.
희 정 아무 일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는데 왜들 이러세요?
정말 무슨 일이 있었기를 바라기라도 하시는 거예요?
기태모 얘가 어디서? (참고, 궁금한 것부터) 너, 민수가 오라 그러디? 그래서 갔니?
희 정 아니, 내 발로 갔어. 아버지, 저 솔직히 민수오빠 좋아해요.
이번 겨울에 유학 갈 건데, 민수오빠한테 같이 가자고 했어요.
기태모 뭐? 유학? 그것도 민수랑 같이? 안된다.
기태부 (이어 튀어나오는) 안돼. 그거는 안돼. 니가 민수 좋아하는 거 알고 나도 민수 좋아하지만, 그건 안된다.
희 정 왜요? 아버지도 민수오빠처럼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어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한길만 보고 열심히 왔다고 하셨잖아요. 엄마도 그런 아버지 멋있어서 만났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왜 안돼요?
기태모 얘가 지금 어디다 비교를 해?
기태부 (뜨끔하지만) 안된다면 안돼는 줄 알아. 난 민수 아들처럼은 생각했어도 사위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희 정 그게 무슨 차이가 있죠? 전 가겠어요. 민수 오빠 누구보다 괜찮아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뒷받침만 좀 해주면, 잘 될
사람이에요. 저 갑자기 이러는 거 아니고, 이미 마음 결정했어요.
기태모 그래서 그놈도 같이 가기로 약조가 다 돼있다 이거니?
희 정 아니요. 아직 그런 건 아닌데, 그렇게 될 거예요. 허락 안 하셔도 갑 겁니다. 안 도와주시면, 힘들게라도 하겠어.
(일어나서 2층으로 향한다.)
기태부 굳은 표정, 생각하느라 말이 없고,
기태모 당신 뭐예요? 그냥 저렇게 놔둘 참이에요? 그 녀석 데려온 사람도 당신이니까, 당신이 책임져야 할 거 아니에요!
S# 18 기태방 (밤)
들어오는 희정. 기태 경제신문 보다가 내려놓는다.
희 정 오빤 날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민수오빠가 겁나서 이러는 거야?
기 태 너 나중에 나한테 고마워할 거다. 그때 말려줘서 천만다행이었다고. (신문 보는데)
희 정 웃겨. 내가 성공 못할 줄 알고? 두고 봐. 성공할 거야. 지금 나한테 잘 보여두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할 걸?
기 태 그래 잘해봐. 근데 왜 나한테 와서 다짐을 하니? 왜, 미끼를 통째로 갖다줬는데도 그 놈이 덮썩 물질 않디?
희정 기태를 노려보더니 거칠게 방문 닫고 나가버린다.
S# 19 희정방 (밤)
들어와 씩씩거리다가 차분하게 생각하는 희정. 전화를 건다.
희 정 나 희정이야. 오빠가 좀 곤란하게 됐어. 미안해.
S# 20 호텔방 (밤)
민 수 (핸드폰 받는) 집에서 여기 왔다간 거 다 아시는구나...?
희 정 (E) 그것도 그렇고, 나 집에 다 말씀 드렸어.
민 수 뭐?
S# 21 희정방 (밤)
희 정 얘기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상황이 그렇게 됐어. 본의 아니게 오빠가 힘들게 됐는데, 이해해 줘. 아버진 곧 설득할
거야. 그건 나한테 맡겨두고....
S# 22 호텔방 (밤)
희 정 (E. 계속) 그러니까 오빠도 가능하면 빨리 결정 내려야 돼.
질질 끌면 더 어려워져. 나한테도 힘이 필요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고민이 되는 민수의 표정.
S# 23 옥탑방 (밤)
어둠 속에 나란히 누워있는 연주와 정애. 차분해진 두 사람.
연 주 다시는 엉뚱한 생각하지 마. 알았지?
정 애 그래. 약속했잖아...
연 주 나 몰래 이상한 짓도 하지 말고. (고개 돌려서 보며) 정애야,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잖니.
정 애 ....
연 주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불행해지는 거 원치 않아. (잠시 후)
그래서 민수씨도 보낸 거야.
정애, 연주를 본다.
연 주 나 그 사람 너무너무 사랑해. 미치도록 보고싶고, 같이 있고 싶고, 만지고 싶어.... 나 말고 다른 여자한테 뺏기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그 사람 붙잡지 않았어. 붙잡고 싶었는데...
연주, 갑자기 왈칵 감정이 솟아오르며, 정애의 품을 파고들어 흐느낀다.
연 주 그냥, 나 아퍼. 가지 마. 그렇게 말하면 됐을 텐데...
정 애 바보야... 말하지 그랬어. 그 사람도 알아야 하잖아.
연 주 (얼른 진정하며) 아니야, 아니야... 이게 최선이야. (웃으며)
난 항상 최선을 좋아하잖니. 그래서 너하고도 살고 있고.
우리 먼저 시집가는 사람한테 예쁜 침대 사주기로 했는데...
생각나니?
정 애 응...
연 주 나 실은 민수씨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속으로 내가 먼저
시집가서 침대 받아야지 그 생각도 했는데... 아무래도 니가 될 것 같다. (미소 지으며) 니 팔 푹신해서 좋아. 가슴도
푹신하고. 어떤 남잔지 행복할 거야...
연주, 정애의 품으로 더 파고든다. 연주를 씁쓸하게 안아주는 정애. (F.O)
S# 24 옥탑방 외경 (F.I)
S# 25 옥탑방 (아침)
연주는 없고, 혼자 일어나는 정애.
연주를 부르다 둘러보면 책상 위에 놓인 편지봉투가 보인다.
정애 급히 옷장문부터 열어보면, 달랑 걸려있는 겨울코트 하나 뿐.
정애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꺼내 읽는다. 그 위로 깔리는 연주의 목소리.
연 주 (E) 정애야, 그 동안 우리 참 좋았지? 세상에 태어나서 넌 유일한 내편이었어. 내겐 니가 엄마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야.
니가 나 때문에 애쓰는 거 보면서, 나도 순간 순간 마음이 변하고 약해져. 이건 싫건 좋건 내가 안고 가야할 문제지, 니 문제가 아니잖니.
편지 구겨버리고 뛰어나가는 정애.
S# 26 대학교 건물입구 (낮)
달려오는 정애의 얼굴.
연 주 (E) 고마웠어. 다른 곳에 가서도 네가 보고 싶을 거야. 우리 같이 배고 잤던 베개 냄새, 네 머리 냄새 그리울 거야. 우리
맨날 티격태격하면서 어슬렁거렸던 공장 뒷길도...
정애, 건물을 급히 살피다가 뛰어 들어간다
S# 27 대학교, 건물 복도 (낮)
복도에서 소영을 붙잡고 얘기하는 정애.
정 애 혹시 강릉 엄마집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소 영 집에다 알아봐서 연락해줄게요.
허둥대며 다시 달려나가는 정애.
S# 28 경찰서 (낮)
뛰어들어가는 정애.
S# 29 경찰서 안 (낮)
가출신고를 하고 있는 정애. 불안한 표정.
경 찰 (E) 이름은요?
정 애 서연주요.
경 찰 (E) 나이는?
정 애 스물네살이요...
연 주 (E) 내가 나답게 버틸려면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구나.
정애야, 제발 쓸데없는 데 미련 버리고, 나를 찾지 말아 줘.
부탁이야.
S# 30 (인파가 있는) 거리 (낮)
막막한 심정으로 인파 속을 걸어가는 정애.
연 주 (E) 그리고 혹시 나중에 민수씨한테서 연락이 오더라도, 내 얘긴 절대 하지 말아줘. 그냥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갔다고
해줘. 그게 제일 적당할 거야.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그 사람 힘들어 할 테니까...
S# 31 기태사무실 (낮)
기태와 윤변호사가 마주 앉아있다.
윤 이건 장실장 앞으로 디스코텍 명의이전 할 서류고요, 이건 이, 미용실 컨세션 (CONCESSION) 계약섭니다.
기 태 잠깐만, 잠깐만요. (디스코텍 이전서류를 말없이 넘겨보더니)
이건 잠깐 보류하죠.
윤 회장님께서 장실장 문제는 빨리 처리하라고 하셨는데요...
기 태 (민수 서류만 한쪽에 빼놓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잠깐 유보하자는 것 뿐이니까...
이때 핸드폰으로 전화 오면,
기 태 (가보라는 손짓하며) 됐어요. 나중에 더 얘기하죠.
윤변호사 다른 서류들 챙겨 일어나고, 핸드폰을 받는 기태.
기 태 여보세요.
정 애 (E) 저 정앤데요...
기 태 누구라고?
S# 32 거리 (낮)
정 애 정애라구요. 임정애.
기 태 (E) 임정애...? 아... 너 내 전화번호 아직도 갖고 있었냐.
정 애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S# 33 기태사무실 (낮)
기 태 다시는 연락하지 말랬지? 나 너랑 할 얘기 없다. (그냥 끊어버린다.)
S# 34 거리 (낮)
전화를 끊는 정애. 화난 얼굴로 간다.
S# 35 기태회사 로비 (낮)
들어서는 정애. 화가 나있다.
S# 36 관리 사무실 (낮)
들어서는 정애.
정 애 최기태씨 만나러 왔는데요.
미스오 누구 신데요?
정 애 임정애라고 하는데요.
미스오 잠깐만 기다리세요. (기태방을 향한다.)
S# 37 기태 사무실 (낮)
문이 열리고 나타나는 미스오.
미스오 임정애씨라는 분이 찾아왔는데요.
기 태 없다 그래.
이때 미스오를 밀치고 들어서는 정애.
기태와 정애 마주본다. 미스오에게 눈치 빠르게 얼른 문을 닫고 나간다. .
기 태 여긴 왜 왔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와?
정 애 (만감이 교차하지만) 민수씨 핸드폰 연락처 좀 알고 싶어서 왔어요.
기 태 민수는 만나서 뭐하게? 니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겁낼 줄 아니?
정 애 난 지금 다 끝난 감정 같은 거 따지러 온 게 아니에요. 빨리 민수씨 연락처 좀 가르쳐 줘요.
기 태 민수 연락처는 니가 왜?
정 애 더 이상 얼굴 마주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빨리 가르쳐 달란 말이에요!
기 태 차라리 나한테 위자료를 달라 그래라. 괜히 민수랑 뒤에서 딴 짓 하지 말고.
정 애 좋아요. 위자료도 주고 연락처도 줘요. 줄 수 있는 거 다 줘봐요. 난 지금 돈도 필요하고, 민수씨 연락처도 필요해요.
기 태 어, 너 이제야 본색을 들어내는구나?
정 애 이 썩을 놈아! 다 들어 엎기 전에 빨리 전화번호나 내놔!
기태 뭐라고 하려다 말고 메모지에 번호 써서 준다.
정애 받아들고 차갑게 돌아선다.
S# 38 관리 사무실 (낮)
기태 방문을 열고 나오는 정애.
이때 기태방으로 들어서려던 윤경과 마주친다. 그 뒤엔 화분을 들고 온 기사가 보인다.
기태 순간 놀라서 당황하는데,
정애, 윤경을 향해 묘한 웃음 지어 보이고는 그대로 싸늘하게 나간다.
윤경, 가는 정애를 돌아보고는 기태를 본다.
윤 경 누구예요?
기 태 어, 나도 잘 모르는 여자야.
윤 경 방금 이방에서 나왔잖아요.
기 태 민수한테 볼일이 있어서... 그래서 온 거야. 민수... 연락처 물어보러.
윤 경 근데 왜 날 그런 눈으로 보고 가요?
기 태 눈빛이 왜? 뭐가 이상했어?
윤 경 (기태를 심상치 않게 보다가, 기사에게) 그 화분 다시 차에 실으세요. (가려는데)
기 태 (붙잡으며) 윤경씨 그건 오해야. 민수하고 관련된 여자라는데 왜 그래?
윤 경 내 직감은 못 속여요.
윤경 그대로 나가버리고,
기태 짜증나는 표정으로 거칠게 방문 닫고 들어간다.
S# 39 제주도 디스코텍 (낮)
인테리어업자와 민수 내부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민 수 바닥도 다 걷어내고 다시 깔아야 되니까, 테이블하고 의자 색깔 아시죠. 사이버 분위기로 통일해서 갈 거거든요. 바닥도
거기에 맞춰서 셈플을 뽑아보세요.
이때 핸드폰 울리면, 민수 양해를 구하고 받는다.
민 수 여보세요?
정 애 (E. 다급한 톤) 민수씨, 저 정애예요.
민수 문득 심각해지며 한쪽으로 간다.
민 수 무슨 일이에요?
정 애 (E) 혹시 연주 거기 안 갔어요?
민 수 아니요. 왜, 연주가 안 들어왔어요?
정 애 (E) 그게 아니라, 집을 나갔어요.
민 수 그런데 왜 나한테 전활 해요?
정 애 (E) 저기, 혹시라도 그쪽으로 가거나 연락이 오면요...
민 수 이제 걔 나한테 안 올 거예요. 와도 우리 더 할 얘기 없어요.
정 애 (E) 민수씬 걔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나 해요?
민 수 어떤 상황이든 이제 나하고는 상관없어요.
정 애 (E) 걔 지금 어디 가서 죽을려고 그러는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운다.)
착잡해지는 민수의 표정.
S# 40 제주공항 (낮)
엘리베이터로 올라오는 민수의 얼굴.
탑승구로 달려가는 민수.
민수 얼굴 사이사이 떠오르는 연주의 얼굴의 모습들 인써트.
그 위로 정애의 목소리가 임팩트로 깔린다.
정 애 (E) 연주가 혈액암이래요. 그대로 놔두면 얼마 못 산대요. 그동안 돈이 없어서 치료도 안 받고 숨겨왔대요. 연주가 아마
민수씨한테 모질게 했을 거예요. 그건 민수씨 돌아서게 하느라고 그런 걸 거예요.
S# 41 비행기 기내 (낮)
앉아있는 민수의 무표정한 얼굴.
정 애 (E) 민수씨한테는 끝까지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그건 옳지 않은 것 같아서요. 저도 연주가 민수씰 그렇게 많이
좋아하고 있는 줄 몰랐어요.
민수 얼굴 사이사이 떠오르는 연주의 얼굴의 모습들 인써트.
S# 42 서울. 택시 안 (낮)
다급하게 휙휙 스쳐가는 추억들을 떠올리는 민수의 얼굴.
생각하는 민수 얼굴 사이사이, 떠오르는 연주의 모습들이 인써트로 지나간다.
정 애 (E) 연주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민수씨가 필요해요.
나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민수씨를 원하고 있을 거예요...
S# 43 카페 (낮)
카페로 들어서는 민수.
기다리고 있던 정애가 민수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본다.
가서 앉는 민수.
정 애 제가 연락을 한 게 잘한 일이지 모르겠네요.
민 수 언제부터 숨겨온 거예요? 나 만나고 있는 동안 내내 감추고 있었던 건가요?
정 애 (끄덕인다.)
민 수 지금 상태는 어때요?
정 애 별로 좋지 않을 거예요.
민 수 왜 이제야 말해주는 거예요?
정 애 지금은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에요. 연줄 빨리 찾아서
병원에 데리고 가야 되요.
민 수 갈만한 데는 다 찾아봤어요?
정 애 찾아봤는데 없어요. 연주가 갈만한 테가 몇 군데 없더라구요.
혹시 민수씨랑 둘이 갔던 곳이나, 짚이는 데는 없어요?
민 수 아니요... 어머님한테는 연락해봤어요?
정 애 누가 연락처를 알아다 가르쳐주기로 했어요. 연락 오면 가볼려구요.
민 수 어머님은 어디 사세요?
정 애 강릉이요. 그러고 보니까, 아버지 묘도 어릴 때 살던 동네 어디라고 했던 거 같은데...?
민 수 그럼 강릉 밖에 없네요. 일단 출발합시다. 연락은 가면서
받으면 돼죠?
정 애 네....
일어서는 민수와 정애.
S# 44 강릉 연주모집 앞 (낮)
바다가 보이는 어촌마을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는 연주.
이때 귀가하는 남자 고등학생 한 명이 연주 옆을 지나 앞질러 간다.
남학생 한 집으로 들어간다.
연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남학생이 들어간 집을 유심히 본다.
열린 대문으로 마당과 누추한 집안이 보인다.
남학생 (쳐다보지도 않고 말만) 다녀왔습니다. (마루로 올라서는데)
연주모 (부엌에서 내다보며) 오태현! 너 도시락 꺼내놓고 들어가. 또 아침에 내놓지 말고!
남학생 알았어요. (말 뿐 그대로 마루로 올라서는데)
연주모 (와서 등을 때리며) 말 좀 들어. 건성으로 그러지 말고. 아휴, 발 냄새. 발도 좀 씻고 들어가.
남학생 귀찮다는 듯이 도시락을 내놓고, 양말을 벗으며 나온다.
연주모 (도시락 챙겨 부엌으로 사라지며) 아버진 뭐하시디?
남학생 몰라. 그 쪽으로 안 왔어.
연주 부엌 쪽을 기웃거리지만, 연주모의 모습 보이지 않고,
마당에서 발을 씻는 남학생의 모습 뿐.
연주 그 광경을 보다가 돌아선다.
쓸쓸히 걸어 내려간다.
S# 45 기차 안 (낮)
나란히 앉아있는 정애와 민수.
정 애 민수씨한테는 절대 모르게 해달라고 그랬는데.... 전 사랑하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 수 나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나요?
정 애 민수씨를 무척이나 붙잡고 싶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못했대요. 민수씨가 자기 땜에 불행해질까봐 그럴 수
없었대요.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한테서도 떠나버린 거예요. 짐이 되지 않을려고... 어떻게 해서든 찾아서 데려와야 되요. 지금 그 애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민수씨 뿐이에요.
말없이 듣고 있던 민수, 잠시 후 일어서서 나간다.
S# 46 기차 연결 칸 입구 (낮)
기차에서 나와 연결칸 통로에 서는 민수.
담배를 피워 문다. 길게 연기를 뿜으며 서있는 민수.
S# 47 기태집전경(밤)
S# 48 거실 (밤)
기태 들어오면, 기태모 전화를 받고 있다.
기태모 아니, 약혼을 미루자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혹시
저희 쪽에서 무슨 결례라도... 그러면 무슨 일이신지... 네...
네...
기태 긴장해서 보고, 기태모 잠깐 앉아보라는 손짓한다. 기태 앉는다.
기태모 그럼 그쪽 사정이 되는대로 연락을 주세요. 네, 다시 통화합시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전화 끊고는 기태를 보는 기태모.
기태모 너 윤경이랑 요즘 문제 있니? 왜 그쪽 집에서 약혼을 잠깐 미루재?
기 태 (뜨끔하지만) 별 문제 없는데? 왜 그러지?
기태모 무슨 문제야? 숨길 생각하지 말고, 얘기해봐. 여자는 내가 잘 안다.
기 태 별일 없어요. 며칠 전에도 윤경가 사무실에 화분 사들고 왔다갔는데요, 뭐.
기태모 그래...? (걱정스런) 그럼 무슨 일일까...
기 태 무슨 사정이 있겠죠. 미루자면 잠깐 그렇게 하세요.
(일어서려는데)
기태모 너 이 혼사 허투루 생각하면 안돼. 그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잘 알지?
기 태 네.
기태모 니 아버지 돈만 많지 뭐 볼게 있니? 우리 그 집하고 꼭 혼인해야한다. 알았지?
기 태 걱정 마세요. 잘 될 거예요.
돌아서서 2층으로 향하는 기태의 표정이 굳어진다.
기태모 안 그래도 희정 때문에 골이 아픈데, 혼사문제까지 왜 이러니?
S# 49 기태방 (밤)
들어오는 기태. 골치 아픈 표정으로 자켓 놓는다.
기태 이것저것 의아하기도 하고, 생각이 복잡하다.
S# 50 연주모 집 마당 (밤)
마당으로 들어서는 민수와 정애.
정 애 안녕하세요. 제가 정애예요.
연주모 어머, 그래요. 그런데 이 시각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하면서 민수를 보면)
민 수 전 장민수라고 합니다. 연주 남자친굽니다.
연주모 (민수를 보며) 그러세요. (정애에게) 좀 올라가요.
방문을 열고 힐끔 내다보는 중년사내와 마루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남학생이 보인다.
정 애 아니에요. 그냥 여기 앉죠, 뭐.
연주모 그래도 어떻게... 안으로 잠깐 들어가요.
민 수 아닙니다. 저도 여기가 좋습니다.
평상에 앉는 정애와 민수.
연주모 (마주 앉으며) 그런데, 무슨 일이예요? 걔한테 무슨 일 있어요?
정 애 실은 연주가 집을 나갔어요. 그래서 혹시 여기 내려오지 않았나해서요.
연주모 (놀라며) 여긴 안 왔는데...? 연주가 왜 집을 나가요?
정 애 저기, 어머니... 사실은요...
연주모 네...?
정 애 연주가...
민 수 (얼른) 저랑 결혼을 하기로 돼있었습니다.
정 애 (민수를 본다.)
민 수 (계속) 그런데 저희 집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그래서 연주가 절 안 만나겠다고 어디로 가버린 거예요. 다른 일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주모 그래요... (민수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민 수 전 어떻게든 연주를 찾아서 꼭 결혼할 생각입니다. 안 그래도 한번 정식으로 인사를 드릴 참이었는데, 이렇게 뵙게
됐네요. 나중에 정식으로 인사는 다시 드리겠습니다.
정 애 (급하게 메모지에 연락처 써주며) 저기, 연주가 어머님께 한번은 들릴 거예요. 오면 붙잡아 두시고, 몰래 저희 쪽으로
연락을 넣어주세요.
연주모 그래요...
민 수 혹시 내려온 김에 저희가 더 가볼 만한 데가 없을까요? 걔가 다니던 학교나, 강릉에 살고있는 동창생들이나...
정 애 옛날에 살던 동네는 어딘가요? 아버지 묘가 거기 있다고 하던 대요...
정애와 민수를 번갈아 보는 연주모.
S# 51 연주모집 근처 골목 (밤)
정애와 민수 골목길을 내려온다.
민 수 묶을 때도 마땅치 않고 하니까, 일단 정애씨는 올라가서 서울에서 찾아봐요. 여긴 내가 돌아다녀볼 테니까.
정 애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메모한 종이를 넘겨준다.) 근데, 아까 그 말 진짜예요? 연주랑 결혼하겠다고 한 거...?
민 수 네. 연주만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계속 생각나고, 염려되고, 뭔가 해주고 싶고, 그런 거 연주한테 느껴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연주랑 떨어져 있을 수는 없어요. 그것 한가지는 분명해진 거 같네요.
정애 아무 말도 없이 민수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돌린다.
민 수 정애씬 걱정 말아요. 내가 반드시 찾아서 병 고쳐놓을테니까.
정애 다시 한번 민수를 보고는, 그대로 두 사람 내려간다.
S# 52 강릉 아침 Insert
항구의 모습이며, 어판장의 모습 등 객관적인 시점의 강릉 풍경들.
S# 53 바닷가 횟집 거리 (아침)
이어 연주의 시선으로 보는 횟집 앞거리의 풍경들.
휘청휘청 흔들리다가 순식간에 쓰어지고, 하늘 뿐.
평화롭게 갈메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쓰러진 연주의 가늘게 뜬 눈. 손끝을 바라보려 애쓴다.
손끝에는 아련하게 보도 블록 사이에 돋아난 풀 한 포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꿈틀거리던 손가락이 멈춘다.
횟집 앞길에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던 사내가 연주를 발견하고,뭐야? 하면서 호스를 놓고 달려간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든다.
왜 그래? 무슨 일이래요? 누가 쓰러졌잖아? 여잔데? 여기 사람이 아닌가봐?
왜 혼자 왔을까... 누가 빨리 119에 신고 좀 해봐요! 백 좀 뒤져봐. 연락할 데 있는지. 등등.
사람들 빙 둘러서 있고, 연주는 그 속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S# 54 옥탑방 (낮)
거울 앞. 투덕투덕 로션을 바르다가,
물끄러미 연주의 사진액자를 보고있는 정애.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급히 받는다.
정 애 여보세요!
간호사 거기 서... 연주씨 댁인가요?
정 애 그런데요...?
순간 긴장되는 정애의 얼굴.
S# 55 연주 아버지 무덤가 (낮)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초라한 무덤 하나.
민수 그 무덤을 내려다보다가 곁에 앉는다.
그 위로 연주의 목소리 들려온다.
연 주 (E) 난 아래쪽은 엄마 닮고 위쪽은 아빠 닮았대... 가끔 나랑 공기놀이도 해줬는데... 동네 뒤에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서 공기놀이 하다가 재미없어지면, 신동엽 이런 사람들이 쓴 어려운 시도 막 읽어줬어. 그러면서 다 읽고는
참 좋지... 이렇게 항상 물어보셨는데... 울 아버지는 거기 누워있어. 나랑 같이 놀던 데, 거기...
민수 마치 아는 사람의 묘라도 되는 듯 초라한 묘를 돌아본다.
이때 핸드폰이 울리자, 급히 받는 민수.
민 수 여보세요?
정 애 (E) 강릉 재생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연주가 또 쓰러졌나봐요. 거기로 가보세요. 빨리요!
민수 벌써 전화기를 든 채 달려가고 있다.
S# 56 강릉 어느 병원 전경
S# 57 동 병실 (낮)
의식을 차리며 깨어나는 연주.
링겔 방울을 조절하는 간호사가 보인다.
간호사 정신이 좀 들어요?
연 주 (둘러보며) 병원인가요?
간호사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간호사 나가면, 연주 일어나려 한다. 손목에 링겔 주사바늘이 꽂혀있다.
잠시 후 의사를 데려오는 간호사.
의 사 몸이 많이 안 좋아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연 주 아니요.
의 사 정밀검사를 한번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서울 집에 연락을 해놨으니까 오늘 중으로 가족들이 내려올 거예요. 좀
더 숴요.
연 주 감사합니다.
의사와 간호사 나가고 나면, 연주 일어나 앉는다.
링겔 바늘을 고정시킨 반창고를 떼는 연주.
S# 58 병원 복도 or 계단 (낮)
몰래 병원을 빠져나가는 연주.
S# 59 병원 정문 앞 (낮)
병원 문을 열고 나오는 연주. 어느 쪽으로 갈까 둘러보며 나서는데,
이때 병원을 향해 달려오던 민수와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민수, 연주를 보면서 다가오는데,
연주 짧은 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시선 돌리며 표정 굳어진다.
연 주 (스치듯 빠져나가며) 우리 못 본 걸로 해.
민 수 (잡으며) 그게 정말 니가 원하는 거니?
연 주 우리 모르는 사람들이야.
민 수 왜 숨기고 피하고, 거짓말만 하니? 나 보고싶었잖아. 내가 필요하잖아.
연 주 나를 떠날 수 있을 때 가. 갈 수 있을 때 가는 게 좋아.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어서 가. (간다)
민 수 (다시 잡으며) 너 왜 나를 이렇게 만드니? 너 말 안하고 감추고 있는 동안,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대체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니? 술밖에 더 사줬어!
연 주 어차피 난 죽을 사람이고, 우리 같이 못할 텐데... 그냥 모른 척하자. 니가 나 모른 척 해도 욕하거나 미워하지 않을게.
지금 여기서, 이걸로 만족해. 더 이상 나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려! 제발 부탁이야, 그렇게 해줘.
민 수 그게 날 위한 거라고 생각하니? 내가 널 잊고 잘 살 수 있을 거 같애! 어떻게든 살아서 나랑 함께 할 생각을 해야지,
이게 날 사랑하는 거니?
연 주 꺼져! 보기도 싫어! 난 민수씨 사랑하지 않아! 사랑 같은 건 생각 안해. 넌 오히려 방해만 돼. 난 자유롭고 싶은데,
넌 날 죽는 그날까지 구속할 게 뻔해!
민 수 (따귀를 때리며) 지독한 년!
연주와 민수 둘 다 고요해진다.
민수, 이내 연주를 와락 부둥켜안는다.
민 수 난 널 만나서 희망도 생겼고, 미래도 생겼어. 내 미래 니가 채워줘야지, 난 어떡하라고 이러니?
너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내 아이 안 낳을 거니? 아침마다 밥 먹으라고 나 안 깨울 거야?
난 니가 차려주는 밥 먹고 싶고, 너랑 나란히 앉아서 가족사진 찍고싶어. 오랫동안.
너 나를 이대로 버려둘 참이니?
민수 팔을 풀고 연주를 보면,
말없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연주.
민 수 난 니가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래. 그것이 단 몇 개월이 될지, 몇십 년이 될지 모르지만, 넌 내 곁에 있어야 돼. 넌 이제
혼자가 아니야. 남아있는 시간이 다 니께 아니란 말이야.우리가 함께 해도 될 시간을 왜 이런 식으로 망치니. 우리
둘이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하지 않니? 그리고 내가 널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애? 무슨 걱정을 하니? 넌 나만
믿어. 가자. 가서, 나를 위해 치료를 받아. 나를 위해서.
그것도 안되겠니?
연주 말없이 민수를 바라본다.
민 수 넌 살아야 돼. 가자.
이윽고 손을 잡고 함께 걸어나가는 두 사람.
S# 60 기태집 전경 (낮)
S# 61 희정방 (낮)
희정 있는데, 기태 들어온다.
기 태 민수 서울 왔다던데 만났냐?
희 정 민수오빠가 서울에 있어?...
기 태 급한 일로 올라갔다는데 너 만나러 온 거 아니야? 혹시 같이 출국서류라도 꾸미고 다니는 거냐?
희 정 공표까지 한 마당에, 난 그런 거 몰래 안해. 그리고
출국서류를 꾸미든 혼인신고서류를 꾸미든 상관하지 말아줘.
기 태 정신 차려라. 그 자식이 너랑 그러는 건 나랑 잘 안되니까 니 쪽을 한번 찔러 보겠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너 혼자 이용당하는 거야.
기태 나가고, 의아한 표정이 되는 희정.
S# 62 호텔 커피숍 (낮)
기태와 윤경 마주 앉아있다.
윤 경 그 얘길 지금 나보고 믿으라구요?
기 태 도대체 왜 못 믿겠다는 거야? 그럼 내가 그 여자를 수소문해서 데려다가 직접 대면이라도 시켜 줘? 아니,
하라면 할게. 그걸 원해?
윤 경 아니에요. 됐어요.
기 태 진짜야, 난 그 여자 얼굴도 본 적 없고, 그날 처음 본 거라니까. 민수가 도대체 어떻게 하고 제주도로
발라버렸길래 내 사무실까지 찾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민수하고 관련된 여자를 내가 무슨 수로 어떤 여잔지 뭐
하는 여잔지 알겠어? 그게 정 궁금하면 나중에 민수 만나서 직접 물어 보라구.
윤 경 여자의 직감은 못 속여요.
기 태 자꾸 직감 얘길 하면 나도 할말은 없어.
윤 경 분명히 그 여자도 나한테 뭔가 이상한 느낌을 동시에 느낀 거예요.
기 태 정말 이상하네? 그 여자가 우리 사이에 무슨 상관이지?
윤경이가 나한테 믿음을 갖고 있다면 여자가 열 아니라 스물이 나타나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내가 윤경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몰라서 이래? 남자는 믿음을 못 주면 비참한 거라구. 왜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난 오히려 며칠 동안 별별 생각을 다했어. 윤경이가 혹시 딴 마음이
생겼는데, 괜히 나한테 트집 잡는 건 아닌가 하고. 윤경인 정말 날 좋아하기는 하는 거야?
윤 경 갑자기 왜 나는 가지고 이래요?
기 태 아니, 얘기해 줘. 들어야겠어. 날 좋아하는 마음이 있긴 있는 거냐구.
윤 경 그거야... 당연히 있으니까 이러죠?
기 태 그럼 됐어.
윤 경 그럼 됐다니요? 정말 그 여자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거죠?
기 태 그렇다니까. 날 믿어.
윤 경 알았어요. (하지만 의흑의 기분은 풀지 않는다.)
안도하며 물을 마시는 기태의 표정.
S# 63 병원 외경 (낮)
S# 64 병실 (낮)
민수와 정애, 황박사, 간호사가 연주를 중심으로 있다. 연주는 환자복을 입고 있다.
황박사 그 동안 왜 그렇게 속을 썩였어요?
연 주 죄송합니다.
황박사 한번 시작하면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해야 되요?
연 주 네.
황박사 고통도 따르고 과정이 쉽지 않을 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자꾸 살겠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스스로 하는 게 좋아요.
정 애 잘할 거예요, 선생님. 얘가 어떤 앤데요.
황박사 그래요. 한번 해봅시다.
황박사와 간호사 나가면,
민 수 (연주에게) 나 밖에 볼일 좀 보고 올게. 정애씨 좀 부탁해요.
정 애 네, 그러세요.
민수 급히 황박사를 따라 나간다.
S# 65 복도 (낮)
황박사를 따라나오며 부르는 민수. 간호사는 그냥 가고,
민 수 선생님. 상태가 어떤가요? 그 사이에 더 나빠진 건 아니죠?
황박사 자세한 건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아요. 항암제를 투약하기
시작하면 환자가 많이 힘들어 할 겁니다. 옆에서 힘이 돼줄 사람이 있다니 잘됐네요.
민 수 선생님, 연주 꼭 살려주셔야 되요. 이제까지 너무 힘들게
살아왔어요. 앞으로 행복해져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 여기서
나가서 결혼도 하고 같이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 미래는
선생님이 갖고 계신 겁니다.
황박사 그래요. 최선을 다해봅시다.
민 수 선생님만 믿겠어요.
황박사 가고, 민수도 복도를 걸어나온다.
S# 66 병실 (낮)
정 애 너 다시 또 편지 같은 거 남기고 그러면, 가만 안 둔다?
연 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연주와 정애 서로를 잠시 쳐다본다.
연 주 저 사람한테는 뭐 하러 알렸니? 솔직히 이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 사람이 왜 나를 위해서 애써야 하는지... 그
사람 혼자 사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인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어. 언젠가 후회할 짓을 다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야...
정 애 무슨 그런 생각을 하니? 진작에 이랬어야지. 그 사람
생각보다 너 굉장히 좋아하더라. 강릉 어머님 댁에 갔을 때,
니네 엄마한테 결혼할 남자라고 소개하더라. 나도 깜짝
놀랬어. 너 아프다 그러면 걱정만 하실 거 같애서 그냥
거짓말로 둘러대나 보다 했는데, 아니래. 정말이래.
자기한테는 너 밖에 없다고 하더라. 너도 잘해.
연 주 솔직히 나 살 수 있다는 희망보다, 저 사람 때문에 여기 왔어.
정 애 어쨌든 너 민수씨 헛고생 안시킬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이겨내야 돼. 알았지?
끄덕이는 연주.
S# 67 병원 앞 (저녁)
병원에서 나오는 민수. 핸드폰이 울리자 받는다.
민 수 여보세요.
기 태 (E) 너 지금 어디니?
민 수 서울에 있다.
기 태 (E) 올라온 지 며칠 됐다며? 그 동안 어디서 뭐한 거냐?
민 수 급히 이곳저곳 좀 돌아다녔다.
기 태 (E) 그래도 왔으면 연락을 해야지, 왜 나한테 아무 소식이 없니? 무슨 일로 올라온 거야?
S# 68 기태사무실 (저녁)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기태.
민 수 (E) 아버님 좀 뵈러 왔다.
기 태 아버지는 왜?
민 수 (E) 드릴 말씀이 있어서.
기 태 그 전에 나하고 먼저 보자.
민 수 (E) 지금 회사로 들어가는 중이야. 사무실로 갈게.
기 태 아니야, 밖에서 보자. 밖이 좋겠다. 하바나로 와라.
S# 69 하바나 술집 (밤)
기태와 민수 앉아있다.
기 태 너 왜 서울에 와있냐?
민 수 말했잖아. 급한 일이 있었다고.
기 태 아버진 무슨 일로 볼려고 그러니?
민 수 너한테 미리 얘기할 사안은 아니고, 나중에 알게 되겠지.
기 태 너 이제 막가는구나? 그래서, 아버지 다음은 희정이냐?
민 수 그러지 마라. 희정인 그냥 놀러온 거야. 내가 잘 돌려보냈으니까 걱정하지도 말고.
기 태 내가 모를 거 같니? 너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딴 생각하고 있잖아! 희정이는 안된다. 절대로 안돼! 내 동생
함부로 건드리면 나 가만히 있지 않아.
민 수 그건 걱정 말라고 했지.
기 태 나 오늘 너한테 궁금한 게 아주 많다. 정애는 왜 나한테 와서 니 연락처를 굳이 알려고 한 거냐? 정애 때문에
윤경씨랑 오해만 생기고, 내가 지금 얼마나 곤란하게 된 줄아냐?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할려고 해도, 너 꼭 나한테 일부러
이러는 거 같다?
민 수 정애씨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한테 연주문제로 급히 연락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다. 그런 것까지 내가 사과를 해야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너한테
피해를 줬다면 미안하게 됐다.
기 태 뭐라구? 그러고 보니까 너 연주랑 뭐 일 있는 거냐? 걔 계속 만났냐?
민 수 음. 나 연주 만나. 그러니까 앞으로 내 앞에서 연주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호칭부터 말이야.
기 태 어, 그래. 잘됐구나. 그래서 걔, 연주씨랑 결혼이라도 할거냐?
민 수 그럴 생각이다.
기 태 이 자식이. 그럼 결혼한다면서 내 동생 가지고 장난했냐? 왜 희정이 문제는 확실히 안해! 걔가 너 뻔히 좋아하는 거
알면서, 사귀는 여자 있다는 얘기 왜 안 했어? 걔가 내 어떤 동생인데, 니가 함부로 해!
민 수 함부로 한 건 없고. (쓴웃음) 내가 너한테 빌붙었으면 됐지,희정이한테까지 그러겠냐. 언제 희정이한테도 따끔하게 얘길 하마. 그만 일어나야겠다. 내려가기 전에 꼭 들려야 될 데가 있어서.
민수 먼저 일어서서 나가면, 흥분을 삭히지 못해 술을 들이키는 기태.
S# 70 병원, 검사실
골수검사를 받는 연주.
방사선 치료를 받는 연주 등.
기타의 여러 검사를 받는 연주의 몽타주.
민 수 (E) 급히 돈이 좀 필요합니다.
S# 71 기태부사무실 (밤)
기태부와 민수 마주 앉아있다.
민 수 빌려주시면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기태부 니가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한 건 처음이다만, 적은 액수가 아닌데, 어디다 쓸거니?
민 수 (머뭇거리다) 결혼할 사람이 있는데, 몸이 많이 안 좋습니다.
일단 살려놓고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태부 그래... 내 일시불로 주마.
민 수 (문득 보고는 자기도 놀라) 갑사합니다.
기태부 한 일주일쯤 기다려도 되겠지?
민 수 예. 아버님. 이 은혜 잊지 않고 꼭 보답하겠습니다.
기태부 그리고 니가 여기 있으면 지금 제주도 일은 어떻게 하고 있냐?
민 수 곧 내려가야지요. 걱정 마세요. 오픈 날까지 맞춰서 제가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기태부 그래...
민수 일어나려는데,
기태부 그럼 희정이하고는 별일 없는 거니?
민 수 예. 제가 확실하게 얘기하려고 합니다.
기태부 (끄덕이며) 됐다.
S# 72 기태부사무실 앞 (밤)
사무실에서 나오는 민수. 희망이 떠오르는 표정.
S# 73 병실 (밤)
연주 누워있고, 정애가 갈 준비를 하고 있다.
방금 들어온 민수는 자켓을 놓고, 마주 앉는다.
민 수 오늘 검사 잘 받았어?
연 주 응. 씩씩하게 잘 했어.
민 수 힘들진 않았구?
연 주 의사선생님이 나보고 뭐라 그랬는 줄 알아?
민 수 뭐라 그랬는데?
연 주 암세포가 다 놀라서 도망갈 거래.
민수와 정애 웃는다.
연 주 근데 이방은 너무 좋은 것 같아.
민 수 치료비 걱정은 하지 마. 모든 게 순조롭게 잘 되고 있어.
나만 믿어.
정 애 나 그만 가볼게. 둘이서 얘기해요.
연 주 민수씨, 요 밑에까지 만이라도 좀 데려다 주고 와.
민 수 (얼른 일어나며) 그래요. 같이 가요.
정 애 아니야, 됐어. 그냥 있어요. 방금 일하고 온 사람한테 어딜 나오라 그래. 나오지 말아요. 괜찮아요.
민 수 (방문까지 나가며) 오늘 수고했어요.
정 애 뭘요. 갈게.
정애 가고, 민수 다시 침대 맡에 와서 앉는다.
연 주 완전히 내 보호자처럼 말하네?
민 수 니 보호자잖아.
연 주 미안해. 왜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고개를 젓는 민수.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연주를 보고 있다.
연 주 왜?
민 수 (손을 잡으며) 좋아서. 좋아서...
연 주 내가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돼서 좋은가보다?
민 수 우리, 모든 게 잘될 거야.
민 수 (잡은 손 만지작거리며) 연주야,
연 주 응.
민 수 연주야...
연 주 왜에...
민 수 이제 너만 잘하면 돼. 너만. 난 이제까지 인생이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꼬이고 또 꼬이고 되게 어렵게만 풀려왔거든. 그런데 이제 다 끝난 모양이다. 이제 너만
남았어. 너만 나 실망시키지 않으면 돼... 난 말이야, 요 며칠 정말 많은 걸 경험한 거 같애. 널 찾으러 다니면서, 니 손을
꼭 잡고 널 여기 데려다 놓으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도 정확히 알게 된 거 같다. 난 정말 많이 바라지도
않아. 니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여기서 건강하게 나가는 날, 강릉에 또 한번 내려가자. 가서 어머님 찾아 뵙고,
정식으로 인사하자. 나 괜찮은 놈입니다. 당신 따님 나한테 주쇼. 이렇게 말할 거야. 그러니까 니가 나 실망시키면
안된다. 알았지?
끄덕이는 연주.
민 수 내가 너, 나 잘 선택했다 그랬지? 열심히 치료받아. 너 병 고치고, 니가 꿈꾼 대로 그렇게 사는 거다, 우리. 우리 잘 살
거야. 정말 잘.
연주의 손을 꼭 잡는 민수, 미소를 짓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웃는 연주.
- 1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