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정이 끝나고 이른 오후에 무설재를 찾은 발길도 돌아가고
간만에 한가한 시간을 가지려고 막 컴퓨터를 켜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순간
무설재 뜨락을 울리는 네눈박이 진돗개들의 왕왕 함성...뭔 일인가 싶어 나가보았더니
전기 검침을 하는 분이 아닌 전기 계량기를 교체해주는 분이 두리번 거리며
"전기 계량기가 어디에 있느냐" 고 묻는 것이다.
"무슨 일 이신데요?"
"수동식 계량기를 디지털 계량기로 바꿔야 돼서요..."
"아, 네...여기와 저쪽, 두군데 있는데요. 근데 누가 바꿔주는 것이고 왜 계량기를 바꾸는 거에요?"
"계량기가 수동식이고 2001년도식이라 15년이 넘어서 바꿔야 해요. 한전에서 바꿔주는 거구요.
저쪽도 2002년식이라 계량기 교체시기가 일년 정도 남았지만 온김에 회사에 허락받고 계량기를 마저 교체하려구요"
"그러니까 결국은 한전의 이익을 위해서 교체하는 거에요?"
"아니죠...구형, 말하자면 수동식이다 보니 가끔 전기 잔존으로 미세하게 남겨지는 일이 발생하여 누진 전기료 나올까봐
새로 만들어진 디지털 계량기로 교환해 드리는 거에요. 그럼 남겨지는 전기 없이 전기를 다 사용하고 나서는 순식간에 전기가 차단 되거든요"
"네에...잘 모르겠지만 암튼 소비자에게 좋다는 말인거죠?"
"그런 거죠..."
그렇게 해서 안성으로 거처지를 옮겨와 처음으로 전기 계량기를 교체하게 되었다.
한번도 전기 계량기 같은 것을 교체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고
한 번 집에 부착이 되면 그저 살고지고 하는 동안에는 교체됨 없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에
그런 일들을 일부러 찾아와 해주는 관계자가 오히려 신선해 보이고 신기해 보일 지경이었다.
해서 곁에서 지켜보면서 바라보며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다르다 싶은 생각에 무방비 상태로 넋놓고 있자니
"혹시 계약 전기 용량이나 고유번호를 아세요?"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니요...난 '이딴 거' 잘 모르는데, 어쩌죠?"
"네? 이딴 거요.... 이딴 거 하는 저는 그럼 '이딴 놈'이 되겠네요" 란다.
에고고 실수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는 전기 같은 것은 잘 모르다는 말이에요"
"어쨋거나 이딴 거 용량 좀 알아보세요"
"앗, 나의 실수에요...미안해요. 헌데 그딴 거 하는 사람은 역시 전문가 인것은 아시죠? 이딴 거라고 표현해서 미안하지만
이딴 거든 그딴 거든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라는 말이니까 오해하지 마세요...미안해요"
"에고, 말도 잘하시네요..."
순간적으로 쥔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딴 거" 라는 말은 쥔장이 사실 숫자에 약하다 는 말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혹은 전기 같은 분야는 잘 모른다는 뉘앙스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기는 하겠다.
그래서 나름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계량기 교체하는 전문가의 손길을 보면서
"일하는 모습을 촬영해도 되는 거죠? 미안하니 '이딴 거'에 대한 글 한자락을 써야할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이딴 것에 대한 웃지 못할 실랑이를 하다가
"그럼 차 한잔 주세요"
"당연히 오케이...죠."
그래서 계량기 교체가 끝나고 잠시 차실로 자리를 옮겨 다담을 나누는데 안성으로 근무지를 옮겨온지 일년차라
이런 저런 할 말이 많은 듯 하나 굳이 긴 이야기 하지 않는 그 남자에게 인생 선배 또는 안성에 먼저 옮겨온 사람으로서의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그렇게 잠시 짬을 내어 차 한잔 마시는 시간도 넉넉하게 허락되지 않는 직업인지라
서둘러 총총총 뒷 모습을 보이는 직원에게 기꺼이 명함 한 장을 나눠 주었다.
언제든지 미리 전화 연락만 하고 찾아오시되 반드시 '이딴 거' 라고 한 번 쯤은 말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러면 더 기억이 잘 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 직원과 다담을 나누다 보니 의외로 깊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다.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참으로 열심히 나름대로 노력하에
제 인생의 앞가림을 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다는 말이다.
그가 슬쩍
"제 대명, 그러니까 아이디나 호 같은 것이 인터넷 어디에나 '휘서 輝徐' 인데 어떻게 생각되시는지요?"
"아, 이름이 참 좋네요...긍정적이고 밝음이 가득한 그러나 인생의 여유가 있을 그런 이름이네요. 본인이 지었어요? 참 잘 지었네요"
그가 아주 환하게 웃는다.
"사실은 여자 이름 같기도 하고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해서 망서렸는데 괜찮은 거에요?
한때 호적 이름으로 바꿀까도 했는데...용기가 나지 않아서"
"바꾸셔도 돼요...좋은 이름인데요 뭘"
수줍어 하면서 웃던 그 남자.
명함 한장 받으면서 아주 즐거워 하던 남자.
직업의 귀천이 "이딴 거" 라는 단어 표현에서 숨겨진 성질이 욱 하거 뛰쳐나올까봐 노심초사 하던 남자.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말에 안도하던 남자.
열심히 제 인생을 살아오고 살아가던 그 남자가 "차도 잘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에 고마웠다"며 바쁘게 떠나갔다.
아직 다 못 처리한 나머지 집을 향해 가면서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딴 것, 괜찮은 거에요. 괘념치 마세요...."
쥔장 혼자 되뇌이며 순간의 언어 폭력으로 변질될 뻔 했던 찰나,
등줄기에 땀이 맺.힌.다
첫댓글 "이딴거" 잘 아시는분은 별로 없을 듯.
이딴거(것)=이런거(것) 아닌가요?
음 생각해 보니 오해 살 소지도 없지 않아 있겠어요.
어쨌든 한전의 실수가 있었거나 사전에 연락 받았는데 잊었거나...
계량기는 주기적으로 교체하며 사전에 기간을 설정하여 연락 주는 것으로 압니다.
계약 용량등은 고지서에 표기 되어 있을 겁니다만 대부분 요금에만 관심을 두게 마련이지요.
그것도 자동이체 걸어두면 얼마가 빠져 나갔는지 조차 모르시는 분들도 있고요.
ㅎㅎㅎㅎ 그러게요...이런 것 이라는 표현이 옛 언어로 나온 건데 큰 일 날뻔 했죠...오해가 되니.
한전에서는 연락 못 받았고 다행히 고지서가 폰으로 날아와서 찾긴 찾았어요.
처음에 뭔 말인지 몰랐을 뿐이지 천천히 생각해 보니 수납청구서가 스마트폰으로 날아오던 것이 기억난거죠.
그런데 말씀대로 내어야 할 금액만 쓰윽 보고 자동이체니까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간 것인데
이번에 알려주더라고요...고유번호 보는 법을 말이죠.
02로 시작되길래 서울 지역번호인줄 알았네요...참내.
관심권이 아니면 무식자로 전락하는 것도 순식간
등줄기 땀 나죠~! 그런 상황이었다면...
하지만 쥔장의 속내를 알아주고 차까지 마시고 간 그 청년은 참 좋은 사람이네요~!
맞아요...그나마 그 친구가 괜찮은 사람이었던 거죠.
나름의 방식대로 살긴 하는데 상처도 많이 받은 듯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