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의 저자 히가시가와 도쿠야
일본에서 2011년 서점 대상 1위를 차지하고,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로 잘 알려진 히가시가와 도쿠야.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가 출간 즉시 150만 부를 돌파하며, 현재 가장 ‘핫’한 작가로 급부상한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작품이 국내에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본격 추리』, 『신 본격 추리』에 몇몇 단편을 발표하다가 2002년 신인 발굴 프로젝트인 ‘Kappa-One’ 제1탄에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가 선발되어 본격적인 데뷔를 했다.
‘Kappa-One’ 은 일본 출판사 코분사(光文社)에서 진행한 장편작품 공모 신인 발굴 프로젝트로 당선작은 카파노벨스의 ‘Kappa-One’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카파노벨스는 코분사가 1959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소설 브랜드로 이를 통해 발간한 마츠모토 세이초의 『모래 그릇』, 고마츠 사쿄의 『일본 침몰』등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이후 출간된 도서들도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라 카파노벨스는 유수의 소설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카파노벨스의 ‘Kappa-One’ 제1탄에『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가 선발되면서 대형 미스터리 신예 작가의 등장을 알렸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미스터리 소설과는 차별화된, 경쾌하고 유머가 돋보이는 중독성 있는 문체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트릭을 곳곳에 배치해놓은 절묘한 서술 방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는 많은 독자들로부터 데뷔작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완성도 높은 수작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후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이카가와 시를 무대로 한 소설을 연이어 선보이며 ‘유머 본격 미스터리’라는 그만의 독특한 작풍을 완성했다.
의심스러운 도시 이카가와 시에서 발생한 미스터리한 살인사건
‘지바 현 동쪽, 가나가와 현 서쪽’ 정도에 위치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무난하다는 능청스러운 설명과 함께 이카가와 시의 이름의 유래를 밝히며 소설은 시작된다.
예전에는 오징어잡이 항구로 번성했던 동네로, 오징어 떼가 항구 바로 옆까지 몰려와 “이리 와, 이리 와.” 하고 어부들을 불러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내려오는 이카가와 시는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오징어강(江) 시인 이카가와시는 일본어 발음으로는 ‘수상쩍은, 의심스러운, 음탕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기도 하다.
도시명의 유래를 능청스럽고 장황하게 설명한 소설 도입부를 읽고 있으면, 저자가 공들여 지었을 그 도시 이름의 아기자기함에 설핏 웃음이 지어진다.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이후에도 이 매력적이고 ‘의심스러운’ 도시 이카가와 시를 무대로 한 여러 미스터리 장편 소설을 선보이며 ‘이카가와 시 시리즈’를 구축했다.
소설은 도입부 자체로 충분히 미심쩍은 서막을 알리며,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기까지의 사흘 동안의 자취를 따라간다.
한때는 오징어잡이 항구로 번성했던,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번영을 찾기 힘든 퇴색된 여느 지방 도시의 하나인 이카가와 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 류헤이는 하룻밤 사이에 끔찍한 두 건의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류헤이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을 꿈꾸며 이카가와 시립대 영화학과에 입학했으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현실 감각도 함께 높아져 거장의 꿈을 접고 직장 찾기에 여념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뤄놓은 것이 없어 불안하기만 한 3학년 말, 운 좋게 학교 선배(모로 고사쿠)의 도움으로 작은 영화사에 취업이 확정된다. 들뜬 마음에 취업이 됐다며 분주히 떠들고 다니던 중, 돌연 여자친구 곤노 유키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그녀는 이런 ‘오징어 비린내’나 나는 지방도시에서 취직을 하기로 결정하다니 포부도 없냐며 그를 몰아세우고는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겁쟁이, 거짓말쟁이, 약골, 멍청이, 골 빈 놈, 머저리, 색마, 조루!
이로써 류헤이는 취직자리를 손에 넣음과 동시에 애인을 잃어버렸다.
류헤이는 여자친구와의 충격적인 이별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먹이며 죽여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난장을 벌인다. 그렇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류헤이는 모로 선배로부터 기분 전환 겸 같이 영화를 보자는 연락을 받는다.
모로 고사쿠는 대학교 같은 학과 선배로 영화마니아다. 마니아답게 그는 집에 근사한 홈시어터를 만들어놓아서 류헤이는 평소에도 모로 선배 집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
약속한 날 밤 류헤이가 모로와 함께 본 영화는 「살육의 저택」이었다. 지루하다는 주변의 평과는 달리 류헤이가 이 영화를 본 소감은 나쁘지 않았다. 시원시원하게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기분 좋게 영화를 감상하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모로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간다. 류헤이는 홈시어터 안에서 영화 잡지를 보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문득 꽤 오랫동안 모로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는 술에 취한 모로를 걱정하며 욕실로 향하고, 그곳에서 모로의 주검을 발견한다. 끔찍하고 혼란한 현실 앞에 정신을 잃은 류헤이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마음먹는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현관에 보조 잠금 장치인 체인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모로 고사쿠의 집은 완벽한 밀실 상태였던 것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류헤이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전화를 거는데 여기서 또 다른 위기에 맞닥뜨리게 된다. 모로 고사쿠와 영화를 보던 날 밤, 류헤이의 전 여자친구 곤노 유키도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아슬아슬한 엇갈림, 완벽한 밀실 트릭
류헤이의 가장 가까운 주변인물 두 명이 같은 날 밤 살해된다.
류헤이의 전 여자친구인 곤노 유키의 죽음 그리고 유일하게 그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모로 고사쿠의 죽음과 밀실.
살인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받기 충분한 상황에서, 류헤이는 이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해결 방법을 생각해낸다. 바로 그의 누나의 전 남편이기도 한 사립탐정 우카이 모리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우카이 모리오는 탐정이 국산차를 탈 수는 없다며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시시한 사건들엔 눈길도 주지 않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괴짜 탐정이다. 행운수첩을 경찰수첩인 양 버젓이 내보이고, 능청스러운 말솜씨와 그럴싸한 변장으로 경찰 행세를 하면서 사건 당일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이 미스터리한 죽음을 둘러싸고 또 다른 콤비가 등장한다. 현직 경찰인 스나가와 경부와 시키형사다. 우카이가 용의자로 몰린 상태에서 우카이 탐정과 조심스럽게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다니는 동안 스나가와 경부와 시키형사도 비슷한 궤도를 그리며 사건을 파헤친다. 서로 다른 두 콤비는 동일한 사건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가며 조금씩 사건의 중심부로 다가선다.
유머+본격 미스터리 ; 유머와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화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개성만점 캐릭터
미스터리 소설의 가장 사랑받는 소재인 밀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밀실 트릭의 허점을 찾아내는 순간 사건 종결에 대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밀실은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적인 장치인 만큼 수없이 많은 밀실이 만들어지고 그 트릭이 깨어졌다. 그동안 많은 소설에서 등장한 덕분에 웬만한 밀실 트릭으로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게 되었다.
『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는 전형적인 밀실 살인과 본격 미스터리라는 틀 안에서 유연하고 경쾌하게 사건을 풀어나가는 히가시가와의 장기가 제대로 드러나 기존의 밀실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탄탄한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빚어내는 아슬아슬하고 재치 있는 행동과 입담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두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유머러스한 등장인물들 덕분에 경쾌하기까지 하다. 긴 호흡의 장편소설이지만 많은 부분이 인물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어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저마다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며 소설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마치 일본 특유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고, 단 두 건의 사건만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어딘가 모르게 어설픈 인물들 덕분에 독자에게 어쩌면 나도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등장인물들이 펼쳐놓는 살해사건 가상 시나리오를 듣다 보면 소설 속의 인물들을 저마다 한 명씩 의심하며 읽게 되는데, 고작 사건 발생 사흘만에 어리숙하게만 봤던 인물들이 날카로운 관찰력과 뛰어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순간, 무언가 허를 찔린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은 없는지 자꾸만 살피게 되지만 몇 번을 거듭해 읽어도 촘촘하게 짜여진 이야기 전개에는 빈틈이 없다. 완벽에 가까운 이야기 구성으로 본격 미스터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 줄거리
류헤이는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기분 전환 겸 선배의 집에서 비디오를 보기로 한 날, 그의 전 여자친구는 누군가에게 등을 찔린 후 아파트 4층에서 떨어져 죽는다. 게다가 그날 밤 류헤이와 같이 있던 선배까지 칼에 찔려 죽는다. 당시 선배의 집은 완벽한 밀실 상태였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 류헤이는 사립탐정 우카이 모리오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치밀하고 대담한 밀실 트릭, 그 해결의 열쇠는?
첫댓글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 역자 임희선 옮김 / 출판사 지식여행 | 201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