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9년 플랑데르 지방을 두고 시작된 위대한 잉글랜드 제국의 프랑스 정벌의 전쟁의 지속으로 영국과 프랑스 양국 모두 피폐해져 가던 그 때.
영국의 왕 헨리는 큰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후방 배치 해놓은 북방군 2만까지 프랑스 정벌에 동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물론 5000명 정도의 후방 병력을 배치해두고 산맥을 이용해 방어를 하긴 했지만, 사생아 스코틀랜드의 흉폭함을 생각하면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결정이기도 했다. 비록, 영국이 프랑스를 공격하는 틈을 타서 후방을 공격하는 스코틀랜드의 야만인들이 밉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프랑스 정벌이 더 급한건 마찬가지.
또한, 프랑스의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스위스와 사보이를 끌여 들이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아일랜드 지방의 공격을 맞기 위해 아일랜드를 포섭을 시도했다. 우리의 훌륭한 우방 사보이는 흔쾌히 우리의 제안을 받아 들여 프랑스의 후방을 공격해 주었지만, 아일랜드와 스위스는 우리의 관대한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렇게, 프랑스 정벌을 위해 마지막으로 영국의 전력을 다시 쏟아 붓기 시작했는데.
헨리의 현명한 결단은 결국 1431년 프랑스와 프랑스 휘하 속국들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자비로운 헨리는 넓은 아량을 베풀어 각국의 수도는 남겨주는 자비로움과 자신들을 위해 함께 싸운 동맹국 브리타뉴에게 벤디지방과 마이네 지방을 할양해주었다. 하지만, 헨리왕도 인간인지라 자신들이 노리던 플랑드르 지방을 챙겨간 우방 브르고뉴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20만(게임상 20두캇)두캇과 사보이 공국에게는 80만 두캇을 하사해주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브르고뉴는 남은 프랑스 계열 국가의 땅이라도 먹겠다며 독단적으로 전쟁을 강행하게 되고, 그 과정중 불행히도 사보이 왕국을 속국으로 삼아 꼭두각시 처럼 부려먹기에 이른다.
자비로운 헨리왕은 참고 또 참았지만, 자신이 평소에 노리고 있던 일 드 프랑스 마저 브르고뉴가 챙기는 것을 보고는 인내심이 바닥나게 되고. 결국 2차 프랑스 정벌로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대상국은 브르고뉴였다. 다행히 그들의 술수에 놀아나던 중인 사보이 왕국은 우리의 위대하고 고매한 뜻을 높이사며, 브르고뉴의 꼴불견 스러운 행태에 그들을 버리고 자랑스러운 잉글랜드,브리타뉴 동맹에 참전하게 되었다.
또한, 교황청마저도 영국의 훌륭함과 브르고뉴의 잔인함에 질려 브르고뉴 왕에게 파문을 하기에 이르어 전세계의 악의축으로 몰린 브르고뉴가 되었다.
그렇게 8년간의 전쟁 후, 전쟁중 전사한 아버지에 이어 새롭게 제임하게 된 헨리왕은 플랑드르 지역과 일드 프랑스,아리스토와 프랑스 지역의 브르고뉴 땅을 모두 할양받는 선에서 종전을 해주게 되었다. 그와 더불어, 브르고뉴가 주변국에게 공격 받는 모습이 너무 불쌍했기에 측은지심을 베풀어 속국으로 동맹에 끌여오게 되는데.
그렇게 전쟁이 끝난 후 계속되는 헨리왕의 치세에 감복한 브리타뉴와 사보이, 브르고뉴는 결국 영국에 땅을 헌납하고 영국의 가신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미개한 프랑스 인들의 문화를 보고 플랑드르, 일 드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에 각각 미술관을 지어 영국의 훌륭한 문화를 전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영국의 전성기도 잠시, 왕실의 대가 끊겨 버리자. 영국 본토의 귀족들이 두 파를 중심으로 내전을 펼치게 되는데. 후세인들이 이를 보고 장미전쟁이라 칭하기 이르렀다.
그와 더불어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라곤 카스티야 동맹국이 프랑스 지방을 탐내고 영국을 공격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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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ㅇ_ㅇ
저도 다른 분들 AAR 보고 소설삘나게 써봤는데 글 솜씨가 영 떨어지니 ㄷㄷㄷ
뭐 댓글 많이 달리면 후편도 연재? ㄱ-
ps. 그림은 카스티야-아라곤의 침공을 막은 후
첫댓글 아라곤에 있는 프랑스 문화권 땅과 로렌을 집어 삼키면 프랑스 확보 달성 이네요ㅋㅋ
왜 부르고뉴를 ㅠ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