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문학』 2호, 1934.2)
[어휘풀이]
-한참갈이 : 한참 갈아야 할 정도의 크기
-강냉이 : 옥수수
[작품해설]
자연귀의(自然歸依)라는 자연애와 인생의 정관(靜觀)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동양인의 전통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소위 ‘전원시’라 불리는 작품 중 백미(白眉)로 꼽힌다. 전 3연의 간결한 형식과 밝은 시어, 민요조의 단순하고 소박한 가락을 이용하여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제시하는 것에 그칠뿐, 그렇다고 해서 전원생활에 대한 굳은 신념을 남에게 억지로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남(南)’ㅇ이 주눈 밝고 건강한 이미지와 함께 잘 나타나 있는 이 시는 시인이 개인 취향의 산물로 볼 수도 있지만, 1930년애 식민지 시대에 불가피한 삶의 자세라고도 볼 수 있다.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것은 집 안을 밝게 한다는 단순한 채광(採光)의 의미를 넘어 드넓은 자연을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건강하고 낙천적인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소망을 뜻하며, 한참을 갈 수 있는 농토인 ‘한참갈이’는 무욕(無慾)과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심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구름’은 허망한 속세의 삶이나 어떤 유혹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새 노래’는 자연이 주는 무량무한(無量無限)의 은혜와 축복을 뜻하는 것으로 자연에 있어서의 ‘무상(無償)의 생활’을 의미하며, ‘공으로’는 자연과는 반대로 현실 생활이 유상(有償) 생활임을 역설적으로 암시한다고 하겠다.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가 자연좌 인간과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라면, ‘강냉이가 익걸랑 / 함께 와 자셔도 좋소’는 이에 대응하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여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 노래’가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혜와 축복을 대유하는 것처럼 ‘강냉이’는 자연에 인간의 노동이 가해져 이루어지는 오곡백과의 대유이다. 함께 와 먹어도 좋다는 것은 돈을 내고 사 먹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 없이 공으로, 즉 무상으로 먹어도 좋아는 의미로 화자의 넉넉한 마음씨가 잘 드러나 있다.
마지막 연의 ‘왜 사냐건 / 웃지요’ 라는 심경은 이백(李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의 둘째 구절 ‘소이불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과 상통한다. 이 시는 삶의 허무 의식에서 벗어나 자연과 합일되어 무위의 상태에 다다른 시인의 인생관 내지 삶에 대한 태도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이 시는, 1930년대 중반 유행처럼 번지던 서구적 취향의 모더니즘 시 세계와 상반된, 다분히 한국적이며 동양적 생활 철학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작가소개]
김상용(金尙鎔)
월파(月坡)
1920년 경기도 연천 출생
1917년 경성제일고보 입학
1919년 보성고보 전학
1927년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 졸업
1928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1930년 『동아일보』에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발표하여 등단
시집 : 『망향(望鄕)』(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