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덕분에 성장한 작은 회사, 대만 '반도체 거인'으로 급부상 / 8/14(수) / 중앙일보 일본어판
아시아 최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인 미디어텍이 TSMC에 이은 대만의 두 번째 반도체 거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설립 초기 DVD용 반도체를 만들던 작은 회사들은 이제 스마트폰을 넘어 인공지능(AI)과 PC 핵심 칩 시장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 IT전문매체 마이드라이버스 등 외신은 13일 미디어텍이 AI PC용 프로세서를 개발해 내년 상반기 출시한다고 보도했다. 새 칩은 TSMC 파운드리(위탁생산)의 최신 3나노미터(나노는 10억분의 1) 프로세스로 만들어진다. 엔비디아가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를 맡는 방식으로 미디어텍과 칩을 공동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반도체 드림팀이 총출동한 셈이다.
올해 AI PC용 프로세서 시장에는 기존 인텔과 AMD뿐 아니라 퀄컴도 뛰어들고 있지만 미디어텍도 야망을 드러냈다. 내년에는 자체 설계한 AI 서버용 칩도 출시할 방침인데 이는 엔비디아, 인텔, AMD 등 최고의 반도체 업체만 가능한 분야다. 삼성전자도 AI 반도체 독자 설계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미디어텍은 대만 파운드리 2위 업체인 UMC의 디자인하우스(설계한 칩을 검증해 파운드리 업체에 전달하는 역할)로 출발해 1997년 분사했다. 그 후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했다. 지난 1분기에는 미국 퀄컴을 제치고 모바일 AP 점유율 세계 1위에 올랐고, 세계 스마트폰 10대 중 4대에 미디어텍 AP가 탑재됐다.
◇ 삼성 덕분에 성장한 미디어텍
미디어텍의 AP는 주로 중저가 스마트폰에 탑재된다. 삼성전자는 보급형 스마트폰에 미디어텍의 AP를 적극 탑재해 일종의 상생 관계를 맺었다. '값싼 칩 메이커'로 불리던 미디어텍은 삼성전자 덕분에 안정적인 양을 공급하며 성장했다. 당시 삼성전자 관계자는 "엑시노스가 고성능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저렴한 칩은 대부분 미디어텍에 맡겼다. 솔직히 경쟁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10년도 채 되지 않아 삼성이 최고급 갤럭시S 시리즈에 독자 개발한 엑시노스를 단념하고 미디어텍의 칩 탑재를 추진할 정도로 상황이 급전하게 됐다.
◇'반도체 거인' 잇따라 키운 대만
미디어텍의 성공 신화 뒤에는 TSMC와 엔비디아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 TSMC는 대만의 소규모 팹리스 칩을 적은 양으로도 제조해 이들 기업이 성장하면서 다시 TSMC에 칩 대량생산을 맡기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엔비디아 역시 자사의 그래픽 처리 기술을 미디어텍이 설계한 차량용 반도체에 제공하는 등 시장을 함께 만들었다. 젠슨 후안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5월 모국인 대만을 방문해 모리스 창 TSMC 설립자와 차이역행 미디어텍 CEO에게 저녁 식사를 하며 존경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원맨쇼' 언제까지
모바일과 AI 열풍을 타고 미디어텍의 시가총액도 575억 달러(약 8조 4393억엔)까지 치솟아 TSMC에 이어 대만 2위 기업이 됐다. 국내에서도 미디어텍보다 시가총액이 큰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해 미디어텍의 칩 설계 능력은 이미 삼성이 따라잡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 AI를 중심으로 기술 흐름이 급변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설계와 생산 등 개별 분야에서 경쟁사에 뒤처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균관대 반도체융합공학과 김영석 교수는 삼성이 아무리 규모가 커도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다. 온디바이스 AI 등 기술 변곡점이 찾아온 지금이 한국에서 미디어텍과 같은 팹리스를 키울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