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장군의 일화 이야기]
강감찬 장군은 고려 현종 임금때 명재상이고 또 명장이기도 하신분입니다.
그는 일흔인 그런 나임에도 거란의 대군 10만명을 맞아 선두에 나서 싸우신 장군입니다.
거란군이 흥화진으로 올 것을 사전에 예측하고는 강을 막고 적이 강을 건너오길 기다렸다가 거란군이 건너는 순간 뚝을 무너뜨려 거란 대군을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가게해서 당황해 퇴각하는 거란의 소배압 장군의 군사들을 미리 도주로까지 예측 그 길목에다가 매복 시켜둔 아 군들로 초토화 시킨 지장이기도한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였습니다.
이 싸움의 승리가 그 유명한 귀주 대첩입니다.
이 전사는 우리나라 3대 대첩전사인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그리고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3대으뜸 대첩인 전사이기도한 것입니다.
이런 명장인 그에게는 호랑이와 관련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한양 판관(종품)이 되어 있을 때, 이 지역에 호랑이 피해가 많아 부윤(종2품,관찰사 벼슬 이름)이 걱정을 했습니다.
이때, 강감찬은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고 3, 4일 후면 다 물러가게 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강감찬은 곧 아전을 불러 글 쓴 쪽지를 주면서, “내일 아침 북동에 가면 바위 위에 노승이 앉아 있을 테니 이 쪽지를 보이고 데리고 오라.” 하고 지시했습니다.
이 아전이 아침 일찍 북동에 가니, 남루한 옷을 입고 백포건을 쓴 노승이 서리 내린 바위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노승은 쪽지를 보더니 아전을 따라 와서, 강감찬을 보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했습니다.
이때 강감찬이 “네 비록 짐승이지만 역시 영물(靈物)에 속하는데, 사람을 이렇게 많이 해치니 5일 이내로 무리를 이끌고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이 활로 너의 무리를 다 쏘아서 잡아 죽일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노승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하는 것 입니다.
옆에 있던 부윤이 말하기를, “판관은 많이 잘못되었다. 그게 노승이지 호랑이냐” 하고 웃었습니다.
이때 강감찬이 노승에게 “네 본성을 보여 보라.”고 하니, 갑자기 노승이 큰 호랑이로 변해 온 고을을 울리게 으르렁거렸습니다.
부윤이 놀라 엎어지니 강감찬은 호랑이에게, “이제 그만 해라.” 하고 말했습니다.
호랑이는 곧 다시 노승으로 변해 떠났고, 이튿날 부윤이 사람을 시켜 살피게 하니, 동쪽 교외에서 큰 호랑이가 작은 호랑이 10여 마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가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이후로 한양에는 호랑이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강감찬은 몸이 작고 귀도 또 작았습니다.
그래서 그 핸디캡 때문에 송나라 사신이 왔을 때 몸집이 우람한 다른 사람을 관복을 잘 차려 입혀 앞줄에 세우고, 강감찬은 아무렇게나 입고 그 뒤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랫드니 송나라 사신이 몸집 큰 사람을 보고는 “용모는 우람하게 잘 생겼지만 귀의 윤곽이 없어 가난하게 살겠다.”라고 말하고는 그런 다음 뒤에 서있는 강감찬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공손히 큰 절하면서, “염정성(廉貞星)이 오랫동안 중국에서는 안 보이더니 동방 고려국에 와 계셨군요.” 하고는 강감찬 장군에게 경의을 드려 영접나온 대신들을 놀라게 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강감찬은 전쟁 중에 벼락으로 죽은 많은 병사들을 생각하다가 걸핏하면 요놈의벼락이 내려와서 불칼로 자기의 부하들을 죽이는 고게 넘 괘씸한 기라?
그래서, 그 불벼락 칼을 분질러 없애려고 하루는 일부러 샘물위에 앉아서 똥을 누는 척했다.
그랫드니, 하늘에서는 벼락이 요꼬라지를 보고는
우물에다 똥누는 나뿐놈을 처단할려고 내려와서 강감찬을 내려 치려고 하다 보니, 고놈이 똥을 싸는게 아니라 그냥 쪼거리고 앉아만 있는 기라!
그래서 벼락은 판단을 잘 못했다고 하면서, 되돌아 갈려고 주춤하는 순간 강감찬은 '기회는 요때다'라고 하면서, 얼른 그의 칼로 벼락칼을 내려쳐서 분질러 버렸다는 이야기다.
그랬더니, 그 후부터는 벼락도 겁똥을 먹다 보니 벼락치는 횟수도 적어지고 벼락 칼도 반이 잘려진 터라 고게 넘 챙피해서 얼른 나왔다가 얼른 들어가게 되므로 사람들은 옛날 보다는, 훨씬 덜 벼락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