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73]조정래 작가의 사랑소설 ‘서리꽃’
문호 조정래 선생이 몹쓸 병마(복부대동맥 수술. 인공혈관 삽입)를 이기고, 끝내 독자들(?)이 원했던 사랑 이야기를 두 권의 소설로 펴냈다. 『서리꽃』(해냄 8월 24일 펴냄, 각 298쪽, 각 2만원)이 그것이다. 사실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다(실망할 것이 거의 100퍼일 듯해), 그 정성에 감읍, 곧바로 주문했더니, <조정래 작가노트>를 포함한 케이스 있는 양장본이었다. 새벽 4시부터 읽기 시작해 4시간이 걸렸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내 실망할 것같다는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not bad).
허나, 그 고생을 하시며 왜 그렇게 매달리셨소? 혼잣말을 했다. 그 양반, 1943생이니 우리 나일 82세. 56년 동안 68권의 소설을 쓰셨다고 한다. 10여권을 제외하곤 모두 통독했으니 ‘조정래 찐팬’이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만 해도 32권이 아니던가. 대하소설을 쓸 때에는 방에 갇혀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평균 원고지 35장을 썼다고 한다. 200자 원고지 5만장이 넘는다던가. 육필 원고 세 뭉치를 쌓아놓고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을 기억하시는가. 정말 범인(凡人)은 흉내조차 못할 거창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글감옥’에 갇혀 산 세월을 눈곱만큼 원망하지 않고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죽”기를 소원하는 작가가 대한민국의 문호(文豪)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문호이겠는가. 그것도 순전히 만년필로 원고지에 또박또박 썼다. 컴퓨터 자판도 모르고 독수리타법도 모르는 ‘전통작가’라 해야 할까. 도올 선생도, 작가 최인호도 육필을 고집하고 있다. 무궁무진한 창작(創作)의 도화선이 육필(肉筆)인 것같다.
아무튼, <서리꽃>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구성 면에선 설득력이 있든없든,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시(詩)를 사랑하는 재벌가의 ‘철없는’ 철학도와 화가(畵家)가 되려는 미술학도의 시처럼 순수하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좌절 앞에 우리는 혀를 차는 도리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유장한 불교관과 고흐의 그림을 보는 해설 앞에 탄복을 하게 만든다.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을 일부러 찾은 적이 있는데, 옥상 위에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작가의 어록(語錄)에 고개를 마구 끄덕거린 적이 있다. 지극히, 100% 온당한 말이 아닌가. 문학이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을. 2권 말미의 작가 연보만 해도 9장(18쪽)에 이른다. 1970년 등단, 첫 소설의 표지를 작가 자신이 꾸몄다는데, 배경 그림이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었다고 한다. 아하, 그랬구나. 정말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천하의 글쟁이가 되셨구나. 그래서 2권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고흐 그림이 있다는 미술관들을 섭렵해 제대로 된 고흐 그림의 ‘해설 소설’을 썼구나. 아무튼, 노익장(老益壯)이란 말이 무색하고 또 무색하다.
하지만, 이제 좀 쉬셨으면 한다. 역량있는 젊은 작가들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 등이 많다.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작가의 의무와 권리’를 맡기시라. 그동안 너무 애쓰셨다. 생각해보라. <아리랑>으로 간악한 일본제국주의를 고발했고, <태백산맥>으로 분단된 조국의 비극을 관통했으며, <한강>으로 ‘잘 살아보세’ 경제개발 5개년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지 않았던가. 어디 그뿐인가. <정글만리>로 세계경제를 진단했고, <천년의 질문>으로 정치권력의 실상을 직시했지 않은가. 또한 <풀꽃도 꽃이다>로 뒤틀린 교육의 현장을 분석하며 대한민국 100년의 미래를 제안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작가가 도달한 것이 우리 삶의 영원한 화두인 ‘사랑 이야기’였던가?
작가가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운다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소설의 주제 찾기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고. 작가의 말처럼, 이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소설의 주제를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일 터. 대작가의 건필(健筆)을 기원하지 않고 건안(健安)을 빌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