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 화단, 병원 화장실, 의류수거함… 겁없는 ‘마약 던지기’
장소 안가리고 일상에서 주고받아
판매-구매자 신원 노출 없이 거래
송금 37분만에 마약 받기도
주거지-아파트서 대마 키우다 적발
창틀-가스배관 덮개-야산에 마약 숨기고, 아파트서 대마 재배 마약 판매자가 광주 도심의 주택가 창틀에 숨겨놓은 필로폰. 광주 도심 주택가 가스 배관 덮개 밑이나 강원도의 한 야산에 필로폰을 숨겨놨다가 적발되기도 했다(위쪽 사진부터).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브리핑실에 경남 김해시 아파트에서 압수된 대마 재배 시설이 놓여 있다(아래쪽 사진). 경남경찰청 제공·뉴스1
2021년 9월 A 씨는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알게 된 판매자와 대마 거래 약속을 했다. 판매자가 거래 장소로 고른 곳은 충남 천안시의 한 초등학교였다. 판매자는 초등학교 화단 풀숲 사이에 대마를 숨긴 뒤 A 씨에게 “찾아가라”며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초등학교 화단에 대마잎이 놓여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을 역이용한 것이다.
A 씨는 이렇게 입수한 대마를 흡입하다 같은 해 12월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같은 해 10월 전북 군산시에서도 유사한 ‘던지기 수법’으로 구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까지 더해져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 초등학교 화단까지 파고든 마약 판매
최근 마약 거래는 특정 장소에 마약을 가져다 놓고 사진 등을 통해 구매자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대면할 필요가 없어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막고 검거 위험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13일 마약류 범죄 판결문 중 던지기 장소가 특정된 50건을 분석한 결과 마약 거래는 초등학교 화단, 병원 화장실, 주택가 의류수거함, 에어컨 실외기 등 일상 곳곳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중고교 인근에서 마약류 거래가 이뤄지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인적이 드문 저녁 시간대 초등학교나 중학교 교문 주변에서 마약을 거래하다 적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감시가 덜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A 씨 역시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뒤 주변 인적이 드문 저녁 시간대를 노려 대마를 거래한 것으로 전해졌다.
호텔 침대 베개 아래 마약을 숨기는 경우도 있었다. 2021년 7월 필로폰 구매자 B 씨는 경기 의정부시의 한 호텔 객실을 빌린 후 침대 베개 밑에 현금 20만 원을 놓고 문을 잠그지 않은 채 나갔다. 이후 구매자가 자연스럽게 들어와 돈을 챙긴 후 마약을 베개 밑에 넣고 나갔다.
관리가 잘 안 되는 건물이 단골 거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마약 판매상인 중국인 C 씨는 2021년 12월 2주 동안 한 건물에서 320차례 필로폰 던지기 거래를 했다. 필로폰을 숨긴 장소는 건물 전기계량기 내부, 지하 유리창틀, 우편함, 전기 배선 아래, 손잡이 뒤편 등으로 다양했다. C 씨가 2주간 거래한 필로폰은 총 661g으로 1만8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지난해 4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하철 무인 보관함 등에서 거래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곳까지 생각했나 싶을 정도로 상상을 뛰어넘는 곳에서 마약이 거래되면서 단속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 37분 만에 거래, 임신부와 살며 대마 재배도
던지기 거래가 일상화되다 보니 음식 배달보다 빠르게 이뤄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20년 3월 D 씨는 텔레그램으로 합성 대마 1봉지(약 0.75g)를 구매하기로 하고 25만 원을 무통장 입금했다. 입금부터 부산의 한 주택가 화분에 숨겨진 대마를 찾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37분에 불과했다.
한편 13일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팀장 신준호 부장검사)은 주거밀집지역에서 대마를 재배하고 직접 피운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4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중 권모 씨(26)와 박모 씨(26)는 서울 중랑구 빌라 지하에 전문 설비를 구비하고 액상대마를 만들었고, 박모 씨(37)의 경우 임신 초기인 배우자와 경남 김해의 아파트에 살면서 대마를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주현우 기자, 김기윤 기자, 박종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