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 의원’ 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을 폭로하여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의 틀을 마련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서 한국정치사는 물론 우리사회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흔히들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일면에 지나지 않은 한 사건일 뿐이며 또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님도 알게 된다.
1972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시절 소위 전국학생연맹사건을 주동하여 긴급조치9호위반(내란음모사건등)으로 투옥되고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의 험로의 과정은 우리의 정치사가 말해주듯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자체이며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사건 하나하나를 다 열거할 수는 없고 택시 업에 오래 종사해온 한사람으로써 그가 택시 업에 한때나마 종사했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하고 또 사회의 구성으로써 현 의원의 신분임에도 동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의원선거에 낙선 한 뒤 사회의 밑바닥부터 직접 체험하고 소시민들의 생활상과 그들이 원하는 바를 직접 정치에 반영하기위한 학습 이였으며 재기의 도약을 위한 자기발전의 값진 기회로 오늘의 박계동 의원을 있게 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본인과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뜻있고 결코 잊지 못할 일일 것이다.
흔히들 택시를 일컬어 달리는 ‘제삼의 언론’이며 ‘경제의 바로미터’ 혹은 ‘그 사회 문화의 척도’ 라 고도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겨진 어떤 직업과도 비교 할 수 없는 공해와 교통지옥 각종제도와 법규 등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열등한 사회적 처우 등에 맞서 싸우고 시달리는 종사자들의 애로와 애환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 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박계동 의원’ 그는 국회의원이며 택시기사이다. 그가 일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와 함께 근무 교대했던 동료를 저버리지 않고 함께하며 장소를 여의도 의원회관으로 옮겨 그때의 그 사람과 그 정신으로 이제 일선에서 체험하고 체득한 경험을 관련행정당국마저 전무한 택시정책에 택시사업경영 애로 해소및 택시근로자 경제적 여건 개선위해 택시종사자들을 대리하여 ‘엘피지 특별소비세 면세 법’으로 제출하고 또 개정한 조세특례제한법으로 재 제출하며 이론화 하여 여론화 하고 또 입법화하여 실질적 반영을 하기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리고 천군만마를 얻은듯하여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감사한다.
나는 솔직히 한때 그가 ‘박정히 유신독재’에 항거하고 ‘노태우 불법비자금사건’을 폭로 하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민주화운동의 과정에 주인으로써의 면모와 달리 한때 타도했던 정권의 유산을 이어 받았다할 ‘한나라당’에 합류함으로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란 모름지기 어디에 있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했는가!? 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정치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박계동 의원’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게 한 스승이며 든든한 동지이며 다정한 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