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Ⅲ-74]아름다운 사람-진주문고 여태훈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최소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씨줄 날줄로 엮여져 일상을 사는 것이 “일종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얘기를 전해 들어 알기도 한다. 또는 시대를 초월하여 ‘예술’로 만나게 되는 사람도 무릇 기하이지 않던가. 예술의 으뜸은 책(문학, 사상)이겠지만 그림이나 음악도 해당될 것이다. 생활글 쓰기가 취미인 나는 늘 끊임없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길 소원한다.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가? 정답은 없어도 대충 그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된사람, 든사람, 난사람>이라고 할 때, 나에게 고르라고 하면 첫째가 된사람, 둘째가 든사람, 마지막이 난사람이다. 물론 3박자를 갖춘 사람도 있을 터이나, 한 가지 덕목을 고른다면 나는 ‘된사람’이 되고 싶다. 두 번째는 당연히 ‘든사람’.
하여간, 2024년 3월 3일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에 힘입어 나름대로 <아름다운 사람>을 선정(?)하여 2000여자의 졸문을 쓰기 시작했다. 넘버링이 큰 의미는 없지만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지난 3월 22일 구비문학을 전공한 최래옥(87) 원로교수를 뵙고 쓴 게 66번째였다. 따라서 지금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얍스런 책 한 권 읽고 10년지기나 된 것같은 경남 진주의 <진주문고> 대표(정확한 직함이나 나이는 모른다. 아마도 61년생인듯) 여태훈(余泰勳)은 67번째 주인공(?)이 된다.
유서깊은 도시 진주에 <진주문고>라는 책방이 있다는 말은 수 년 전부터 들었다. 막역한 전각예술가 친구 공방(진공재갤러리)에서 만난 작은 책 『지역의 섬돌-진주문고 40년, 사람을-책과-잇다』(여태훈 조경국 지음, 유유출판사 9월14일 1쇄, 214쪽, 17000원). 저자의 사인이 이색적이다. <공재大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2026년 9월 2일 여태훈>. 그러니까 시중에 아직 깔리지도 않은 책을 고마운 사람에게 먼저 보낸 것이다. 영화로 말하면 시사회인 셈. 그 이름 석 자를 듣게 된 것은 김주완 기자가 쓴 『어른 김장하』에서였을 것이다.
인구 30만이 조금 넘는 경남의 진주(晉州)하면, 맨먼저 무엇이, 누가 생각나시는가? 예전에야 ‘강낭콩보다 더 붉은’ 논개(論介)가 생각났겠지만, 지금은 무조건 우리 시대의 ‘살아 계시는 성자(聖者)’ 김장하 어르신이다. 그분을 감히 뵐 생각은 못하고, 문 닫은 ‘남성당한약방’에라도 가서 그분의 거룩한 마음 한쪽이라도 엿보고자 성지순례하듯 다녀온 적이 있다. 임란때의 황진 장군과 진주성 백성들의 함성도 듣고 싶었고, 적장을 안고 순국한 의암(義巖)도 보고 싶었다. 호사가는 아니지만, 기쁜 일은 또 있었다. 초면의 김주완 기자와 어르신의 단골 중국집에서 빽알을 함께 한 잔 마신 것이다. 하하.
그는 파사현정(破邪顯正) 대의명분의 언론계에 뛰어들 때, 기자(記者) 초심(初心)을 지금껏 잊어본 적이 없는 ‘천연기념물’ 언론인이다. 승용차를 갖지 않고 골프를 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가 밝혀내 기록한 현대사의 미스터리가 몇 건인지는 잘 모르나 새삼 경의를 표한다. 건강과 건필하기를 빈다. 이 시대 어른 김장하를 세상에 알린 게 꼭 바람직한 일이었는지는 논외로 치자.
글이 갓길로 빠졌다. ‘여태훈’은 누구인가? 나는 왜 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 하는가?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후반인 1986년, 진주의 외진 곳에 인문사회과학서적을 다루는 <개척서림>을 개척했다. 서점도 기독교처럼 개척(開拓)을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을 즈음이다. 곧이어 88년 출판문화정보공간이라는 미명 아래 개명한 서점 이름이 <책마을>. 출판문화정보공간은 얼마나 추상적인가? 쉽게 말하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어 지방 소도시 30여만명의 사람들을 책과 잇게 만든 세월이 40년이었다. 강산이 4번 바뀌는 세월, 그가 쏟아낸 땀과 열정, 지독히 가난한 살림살이가 얼마나 지난했을 것인지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은 끝내 살아남아 ‘진주의 전설(레전드)’이 됐다는 것이다.
이 얘기 속에도 어르신이 등장한다. 문을 닫기 일보직전이나 서점을 늘려 ‘장한 꿈’을 이루려 끙끙댈 때 어르신이 내민 거액의 현금 그리고 수많은 문화애호가들의 후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진주문고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그가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빈말이 아니다. 그는 초등학교때 다친 사고로 몸까지 불편하다고 한다. 그를 만나고 싶어 조만간 진주로 다시 달려가고 싶다. 악수도, 아는 체도 하지 않고 그냥 좋은 책 몇 권 사와도 좋고 괜찮다. 아름다운 사람, 나의 표현으로는 의로운 사람(義人)들을 절대로 번잡스럽게 하면 안된다. 의인의 길은 의인들이 잘 알게 마련이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걷는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그 도시에 의인 한 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주에는 성인도 계시지만 김주완 여태훈 등 의인이 많은 것같다. 나의 고향 임실 오수에도 42년만에 귀향해보니 의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뻤다. 전국 방방곡곡에 ‘오픈 마인드’ 희생적인 의인들이 많아야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이 작은 책에는 40년 동안 그(진주문고)와 직간접의 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가졌던 단골손님 2명을 비롯한 △하동책방의 책방지기 △‘책과 삶’ 편집장 △진주문고 MBC점장 △펄북스 편집장 △공정여행 놀루와 대표 등 8명의 회고글과 인터뷰 글이 실려 있다. 하나하나 뭉클뭉클 감동(感動) 그 자체이다. 세상에 이런 게 감동이 아니면 무엇이 감동일까? 나에게 오버한다고 말하지 마라. 읽다보면 숙연해지는 대목이 수두룩박박이다. 의인은 첫째 공의(公義)로워야 한다. 영어를 싫어하지만,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e)가 앞서야 한다는 말이다. 여태훈은 의인이자 공의에 아주 충실한 사람이다. 정치인 이해찬이 그러했듯. 모두 다 망해가는 출판사와 서점만 생각해도 가슴이 아픈데, 시골 변방의 일개 책방에서 정기적으로 소식지(책과 삶)를 펴낸 데다 출판사(펄북스. PEARL BOOKS. 9년간 27권 출간 후 폐업. 역시 晉州는 眞珠다)까지 아예 차리고 나섰다. 비록 좌절됐지만 얼마나 의미있는 작업이었던가. 2000년 1월호부터 펴낸 광주의 <전라도닷컴> 월간잡지가 그러하듯이.
무모하게도 지역의 작가, 역사, 문화를 책으로 묶어내고도 망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과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책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이며, 지역을 변화시키는 문화의 씨앗이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책방에서 정기적으로 책을 사주는 회원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소식지를 통해 구독 모델을 시행하고 △작가와 독자가 어울리는 사랑방을 운영하고, 마침내 △강연과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여행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해 오늘이 있다는 것은, 출판평론가 장은수의 말처럼 “좋은 과거란 언제나 밝은 미래와 같은 뜻”이라는 것을 상기해 본다. 최근들어 ‘플랫폼’이라는 외래어를 흔하게 쓰는데, 그는 진주라는 지역에서 그 문화의 종착점 플랫폼 역할을 너끈히 충분히 그리고 훌륭하게 해낸 것이다.
진주의 시민들은 그(진주문고)가 있어 다행하고 행복한 일이 아닌가. 복받은 시민들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었지만, 책이 또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은 진리이다. 신영복 선생도 ‘변방이 중심이다’는 말씀을 남겼다. 이제 그가 꿈꾸며 추진하고 있는 하동지역과 연계한 ‘북케이션’(Bookcation)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되기를 빈다. 잠재유산은 <토지>의 박경리와 <지리산>의 이병주 등 얼마든지 있으니 활용하기 나름일 터. 대한민국에 입으로입으로 소문이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섬돌’은 대문 앞에 놓여 있는 돌이어서, 노둣돌과는 또 다르다. 섬돌을 밟고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아름답고 의로운 사람 여태훈, 고고싱! 화이팅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