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수) 이사야 51:1-8 찬송 579장
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야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옷 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 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개역 개정)
- 의인에 대한 구원 약속과 위로 -
제 49, 50장에서는 포로 생활의 고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불성실이나 무능함 때문이라고 불평하는
선민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답변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구원하시되
여호와의 종을 통해 구원하실 것임을 언급했었다.
반면 51장에서부터 52:12까지는 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여호와 앞에서 회개하고 의와 정결을 행할 때
구원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위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중 오늘 말씀은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위로와 권면으로서,
먼저 1-3절은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에게 복주신 하나님이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에도 동일한 복을 주신다는 위로를 준 사실을,
4-6절은 선민을 향하여 주의 말씀에 청종하고 공의를 행할 때
세계 만민이 심판받는 최후 심판의 날에 멸망치 않는다는 권면을 준 사실을,
7-8절은 하나님의 법을 좇는 자는
영원히 멸망할 사람을 두려워 말라는 권면을 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이스라엘은
① 의를 따르는 자(1절), ②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자(1절)
③ 의를 아는 자(7절), ④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백성(7절)이다.
그리고 이런 백성은 결코 멸망치 않음을 본문은 말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해야만 구원 얻는다는
즉 인간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구원의 선행 요건으로 회개하고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하려는 마음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등의 말씀이
바로 의를 좇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좇아 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할
자신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가를 심각히 반성해야 한다.
6절)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다 멸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폐하여지지 아니하고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과 거기에 속한 것들이 ‘연기’, ‘옷’, ‘하루살이’에 비유된다.
이것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의 유한성을 잘 보여준다.
단지 유한한 것이란 의미만 아니라
무척이나 덧없고 순식간에 소멸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영원한 것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며 그것도 덧없이 사라질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시각에 그것은 그렇게 덧없어 보이지만은 않는다.
인생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왔다.
학자들은 지구의 생성 연대를 수백만 년에서 수십억 년까지 추정하고 있다.
또 우주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우주와 지구는 우리가 ‘영원’이라 부를 만큼 오래 전부터 존재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세상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이 세상도 언젠가 연기와 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10절에서 하나님은 땅을 해어지는 옷에 비유하셨는데
이 땅은 처음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을 때에 비하여 무척이나 낡아졌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완전히 낡아져서 마침내는 폐기 처분될 것이다.
그러면 그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들도 하루살이와 같이 망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이 그 유효 기간이 다하면
흘연히 사라지게 될 것을 분명하게 거듭하여 말씀하고 있다.(벧후3:10-12)
이처럼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폐하여져서 홀연히 사라지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이 세상을 초월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께서 본래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며
세상이 있기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오셨지만
이 세상에 속한 분은 아니다.
그분은 근본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을 초월하여 영원한 나라에 속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세상의 존폐(存廢) 여부와 상관없이 영원히 계속되며
그 구원을 받은 자들 역시도 영원히 구원의 삶을 살게 된다.
성경이 이처럼 세상이 덧없는 것이며 순식간에 소멸될 것임을 가르치고
우리들의 구원을 영원한 것으로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세상에서의 삶보다 천국에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가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무책임할 수는 없다.
다른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땀 흘리며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이 땅에 집착하며 이 땅의 것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나그네가 떠나온 여행길, 앞으로 걸어야 할 노정에 대해서보다
장차 돌아가 영구히 거할 집에 마음을 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우리 역시도 잠시 있다 사라질 이 세상보다
장차 돌아갈 본향인 천국, 영구히 거할 하나님 나라,
영원히 계속될 구원의 삶에 더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장차 멸망할 이 세상, 소멸될 이 땅이 아닌
영원한 천국에 당당히 들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