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 없는 한국교회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1-24)
구약엔 이스라엘 하면 예루살렘이고 예루살렘하면 성전이고 성전하면 지성소이고 지성소하면 두그룹이 덮고 있는 법궤다. 그리고 법궤하면 법궤안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두 돌판 십계명이다.
그리고 성경하면 예수님이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을 전하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전한다.
그리고 예수님하면 십자가다.
즉, 신구약 66권은 예수님을 가르키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 인류의 구원을 성취하신 구세주가 되셨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 기독교의 마크요, 표식이요, 심볼이요, 또 생명이다.
십자가 없는 예수님을 생각 할 수 있는가?
십자가 없는 교회를 생각 할 수 있는가?
십자가 없는 신자을 생각 할 수 있는가?
십자가 없는 예수님은 가짜 메시야다.
십자가 없는 교회는 가짜 교회다.
십자가 없는 신자는 가짜 신자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에 십자가가 있는가?
아니 당신 교회에 십자가가 있는가?
좀더 구체적으로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들에게 십자가가 있는가?
그리고 교인들에게 십자가가 있는가?
교회 종탑에 십자가를 말고, 목사가 설교로 전하는 십자가 말고, 교인들 귀에, 목에 달고 다니는 십자가 말고 삶속에 십자가 말이다.
생활 속에 예수님 십자가 말이다.
만약에 당신들 교회에 그런 십자가가 없으면 그 교회는 가짜 교회다.
그리고 목사가 아무리 설교 잘하고 목회 잘하여 큰 교회당을 짓고. 교인들을 수십만명을 불러 모았다 해도 그 목사의 삶에 십자가 없으면 가짜 목사다.
그리고 교인들 중에 예수믿어 재벌회장이 되고 유명한 스타가 되고, 또 고관대작을 하고 설령 대통령이 되었다 해도 그 교인의 삶속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으면 가짜 교인이다.
이런 십자가 없는 목사, 교인들이 모여 수 조를 들여 아무리 화려하고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궁전과 같은 예배당을 잘 짓고 그 안에 모인 교인들이 천 만명이 된다 해도 그 교회당은 가짜 교회당이고 그 목사는 가짜 목사요 그 교인들은 모두 다 지옥 갈 가짜 교인들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주제넘지만 한국교회는 지금 불행 하게도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다.
즉, 아무리 목사가 박사학위를 두 세 개 가지고, 초대형 교회를 이루고 수십만명을 교인들이 매주일 마다 그 교회에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이 모이고 헌금은 돈벼락 맞은 듯이 수천억씩 쏟아져도 그 교회에 예수님 십자가가 없으면 가짜 교회다.
그리고 교회가 작다고 해서 안심 할 일도 아니다. 개척교회를 하든 농어촌 몇 명을 모아 놓고 목회를 하든 그 목사나 교인들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으면 모두 다 가짜다.
그 교회 목사 목회는 하나의 밥벌이에 불과하고 그 교인들 다 예수믿는 것은 다 하나의 미신이요. 자기들 복받고 천당가기 위한 기복이요 우상에 불과하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인가?
곧 죽음이다.
그것도 당시 가장 저주받은 자만이 달려 죽는 십자가 죽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이다.
즉 하나님이신 그 분이 우리의 죄악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원수가 되고 그리고 그 분의 진노와 형벌로 영원히 멸망받을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신 죽음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 분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가 받을 저주를 그 분이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가 죽어야 할 영원한 죽음을 그 분이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 그 분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가 죄악으로 멸시받고 조롱받고 멸시받아야 능욕을 수치를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달려 우리가 받아야 할 그 고통, 고난을 우리 대신 받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우리가 받아야 할 가장 낮은 자리, 십자가의 죄수의 자리까지 낮아지셨다.
자! 이만 하면 우리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떤 죽음인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고 상상히 가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위해 이런 죽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리고 또 그 분의 부활의 생명으로 천국에서 그 분과 영원히 살겠하신다.
이 얼마나 하해와 같고 망극한 은혜인가?
그래서 이런 주님의 은혜에 감읍하여 어떤이는 목사가 되어 주를 위해 일생을 바치면 살려고 주의 종의 길에 나서기도 하고, 또 어떤이들은 예수믿고 구원받아 천국 갈려고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한다.
그런데 그들이 목사가 되어 목회하고, 교인들이 교회 신앙생활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다 보니 모두 예수님 믿고 예수님이 따라 오라고 하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갈려고 하는 이는 별로 없고, 모두 하나같이 예수님 믿고 이 땅에서 복받아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 되고, 이름 내고, 명예 얻고, 세상 안일과 평안과 자기 영광과 천국의 영생만 누리며 살려고 죽을똥 살똥 기를 쓰며 살려고 한다.
예수님이 당신들 그렇게 살려고 십자가에 죽어셨는가?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너무 너무 그 분에겐 외람되지만 개죽음이다.
그렇게 우리가 살면은 예수님이 구태여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시고 죽으실 아무런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런 삶은 예수님 아니더라도 불교에도 있고. 이슬람교에도 있고, 우리나라 토속 미신 우상 종교에도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뜻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이 땅에 가장 낮은 비천한 자리에 오셔고 그리고 이땅에 생애 가운데 가난와 온갖 고난을 받으시면 마침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분의 그런 망극한 은혜를 통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우리는 그 분의 뜻대로 살기 위해 도대체 어떻게 이 땅에 살아가야 하겠는가?
그 분을 위해 나같은 죄인은 천번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겠는가?
그 분을 위해 내 가족과 이 세상 재물을 다 버려도 한치도 미련도 없이 따르겠는가?
그 분을 위해 평생 가난과 그 어떤 고난도 달게 받을 수 있겠는가?
그 분을 위해 어떤 자리도 다 내놓고 가장 낮은 자리, 설령 그 자리가 거지라 해도 무기수 죄수의 자리에 해도 내려 갈 수 있겠는가?
그분을 위해 그 어떤 억울한 일도, 화를 당하고도 참고 욥과 같이 인내 할 수 있겠는가?
그 분을 위해 설령 내 자식을 죽인 원수라 할지라도 용서하고 사랑 할 수 있겠는가?
위와 같이 당신이 살 수 있다면 당신의 삶속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목사요, 참된 신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저 위의 나는 한 가지도 따르지 못 하겠다든지, 아예 엄두도 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가짜목사요, 가짜신자임에는 틀림없다.
전지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분은 당신을 위해 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죽으시고 당신을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신 구주이심을 정녕 믿는다면, 그 분앞에 당신같은 하찮은 티끌보다 못하고 먼지보다 못한 당신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분을 위해 십자가에 못 죽고, 그 분을 위해 그 어떤 고난도 못 받고, 그 분을 위해 이 땅에 썩어질 그 따위 세상 것을 못 버리고, 그 분을 위해 그 어떤 천한 자리, 낮은 자리를 못내려 간다 말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보다 더 귀한가?
하나님 보다 더 높은가?
예수님 보다 더 영광스러운가?
예수님보다 더 대단한가?
나의 주인은 그렇게 날 위해 십자가에
죽어셨는데, 그의 종인 나는
나의 주인을 위해 못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게 못 살겠거든 오늘부터 밥을 먹지 말라!
금식하며 기도하라!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밤 낮 기도하여 위로부터 성령의 권능을 받아라!
주를 위해 순교 할 자신도 없는 목사들이 무슨 생명의 도를 전하고 양들을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목자가 된다 말인가?
이런 목사들은 예수님 말씀처럼 다 도둑이요, 강도들이다.
그리고 목사들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교인들도 주를 위해 세상 것 다 버리고 그 분을 따를 수 없으면 부자 청년이 재물을 못 버려 영생을 놓치고 근심하며 주를 떠난 것과 같이 당신들도 예수님보다 세상 재물을 더 사랑하는 가짜 교인이요, 그리고 롯의 처와 같이 그 날에 멸망을 받을 것을 명심하라!
사도바울은 갈 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랬다.
저 위의 바울의 말을 들어보라!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지 아니하면 그속에 예수님이 사신 것이 아니다.
누가 살아 있는냐?
예수믿어도 여전히 예수님 믿기 전 옛 사람 내가 살아있다.
이런 사람이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가겠는가?
이런 사람이 목사가 되고 초대형 교회를 이루었다고 천국 가겠는가?
이런 사람이 재벌회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천국가겠는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천만의 만만의 콩깍지다.
바울은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오직 내안에 예수님이 사신다 했다.
오직 이 말을 천번이고 만번이고 기억하라.
오직이란 말은 그 길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거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이거 외에 딴 말하면 다 간첩이요, 이단이요 삼단이다 말이다.
오직 뭔가?
내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예수님이 내안에 사신다는 것이다.
그러데 오늘날 너나 할 것 없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안 죽었는데도 목사노릇 하고 교인노릇 하고 그러면서 모두 자기들 속에 예수님 살아 계신 줄 착각하고, 자기는 구원받아 천국 갈 줄 알고 목회 하고 신앙생활 자기들 대로 잘하는 줄 아는 자들은 모두 다 거짓의 아비 마귀한테 속아 교회안에 까불면 거짓목사, 거짓교인 노릇하기에 정신이 없는 자들이다.
언감생심 자기속에 예수님이 안 계시는데
그게 하나님의 자녀인가? 마귀 자녀인가?
고전 13:5절 말씀을 보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너희안에 안 계시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 하였다.
그러니 내 속에 예수님이 살아 안 계신자들은 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마귀자식이 틀림없다.
이것으로 뭔가 부족하고 찜찜한가?
그러면 더 확실한 증거로 예수님의 말씀을 보여 주겠다.
요한복음 15:5-6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저가 내 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사람은 과실을 많이 맻지만 주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밖에 버리워 말라지고 불에 던져 사른다 하였다.
여기에 예수님은 저가 내안에 있는 자는 저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다는 것이다.
즉 우리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신 자는 결국 버리워 지고 지옥불에 던져저 불 사른바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 날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도바울처럼 자기 옛 사람,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못박혀 죽지 않고도 그 속에 예수님이 살아 계신 줄 착각하고 그리고 시퍼렇게 소금에 절이지 않는 김장 배추같이 살아 자기 마음대로, 뜻대로 살면서 꿈도 야무지게 모두 천당간다고 호들갑을 떨고 병신 육갑들 오지기 하고 있다. 정말 속아도 보통 속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속에 예수님이 없는 가짜 목사들은 이런 교인들 교회 오면 늘 그들 가려운데를 듣기 좋은 소리로 알아서 시원하게 귀청소나 잘해주고, 그리고 천당 만당까지 가도록 복이나 빌어주니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먹고 알먹고, 짜가들 끼리 늘 부러지게 교회가 세상 그 어느 놀이판보다 재미난데가 없다.
옛말에 사람이 죽을려고 환장하면은 무슨 짓을 못해 하듯이, 오늘날 십자가 없는 목사, 교인들이 지옥 갈려고 모두 환장을 했는지, 예수님 십자가 없이 예배 드리고, 설교하고, 성경공부하고 찬양하고 헌금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전도하고 예배당 크게 짓고 또 세상에서 돈 벌고 좋은 집에서 고급 승용차 굴리고 잘 먹고 잘 살고,등등 할짓 안 할짓 다 하면서 살지만 내가 볼 때 그거 다 하나도 쓸 잘데 없고 지옥갈 예행 연습이나 잘하고 일장춘몽같은 인생 산다고 보면 가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내가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이제 내 속에 내가 살지 않고, 내 속에 예수님이 사시는데, 이제 자기는 그 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 고 하였다.
보라! 바울이 예수님 믿는 믿음이 뭔가?
오늘날 목사, 교인들처럼 주여, 주여 하고 또 예수님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그 믿음인가?
아니면 오늘날 정신 나간 목사들처럼 어쭙찮은 구원의 도리 성경 몇 구절 주셔 섬기고 그것을 따라하고 믿으면 당신은 구원받았다, 천국간다, 라고 거짓된 구원관을 심어 주고 그 교인들을 평생 거짓된 믿음에 속아 지옥 보내는 그런 짝뚱 믿음인가?
NO!!!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다.
바울이 말하는 진짜 믿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신앙고백적인 믿음만 아니라, 그 믿음은 갓잡아 올린 생선같이 시퍼렇게 살아 펄쩍이며 살아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믿음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랬다.
믿음 안에서 어떻게 한다고 하나, 믿습니다. 믿습니다.입만 나불 된다고 하나?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그 믿음 안은 어떤 믿음 인가?
이제는 자신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죽고 그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사신 부활의 신앙, 영생의 신앙으로 이 세상보다는 천국을, 물질보다는 믿음을 , 자신 보다는 주님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삶을 말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교회 대부분 목사들이 늘 교회에서 하는 설교가 그 넘의 에스겔 골짜기에 말라 비틀어진 해골 바가지. 뼈다귀 같은 구원의 교리, 신앙고백적 구원만 가르치고 믿음으로 사는 삶, 즉, 행위는 잘 전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행위 없는 신앙, 삶이 없는 신앙, 열매가 없는 생활, 즉 세상 죄악에 짝하고 속화되고 타락한 악취만 풍기는 죽은 송장 같은 교인들만 양산하여 이제 불신자들 까지도 목사, 교인들 개판치며 사는 꼬라지를 보니, 우리 안믿는 자들 보다 더 못하고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고 하며 교회 금방에도 안 올 려고 한다.
십자가가 없는 없는 기독교,
삶이 실종된 기독교, 하나의 미신이요 우상종교에 불과하다.
예수님은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는데 그 믿음이 과연 어떤 믿음이겠는가?
예수님처럼 십자가을 통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부활의 신앙이다. 죽음도 이기는 신앙이다.
즉, 우리도 날마다 나 자신이 사도바울처럼 예수님 십자가에 죽고 이제 내 속에 부활의 주님이 사셔서 그 분의 능력으로, 권능으로 그 어떤 세상의 유혹도 환란도 죄와 사단의 권세도, 죽음도 이기는 믿음의 삶이다. 의인의 삶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이제 주님이 다시 곧 오신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죄인을 부르려 오시는 주님이 아니시라 의인을 부르려 오시는 주님이시다.
당신은 의인이냐?
오늘날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 믿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지 않고, 그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은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당신들은 생각 하는가? 제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그만하고. 냉수 마시고 정신들 차리기 바란다. 다들 지옥 가기 싫거든, 헛된 꿈, 망상에서 깨워 나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다고 아무리 좋아하고 앙천대소하는 자라도 그 신앙생활 속에 십자가가 없는 삶을 사는 자는 다 가짜다, 짝뚱이다.
이들은 결국 다 거짓 선지자요, 광명한 천사요, 거짓의 아비요, 바알이요, 가라지요, 염소요, 뱀들이다.
위의 삽화는 시흥동 행복한 교회에서 가져 왔습니다.
스크랩을 하실 분은 꼭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cafe.daum.net/jmsoo. (한국교회 회복과 개혁) 작성자: 광야의 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