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목요일 강론>(2024. 10. 3. 목)(루카 10,1-12)
복음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12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기쁜 소식’이 됩니다.』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루카 10,1-8)”
1) ‘다른 제자’는, 열두 제자가 아닌 다른 제자들입니다.
‘일흔두 명’은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민족들의 수를 ‘일흔둘’로 생각했습니다.>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은, ‘모든 곳’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가 다가오는데, 믿고 회개하면서
준비하는 사람이 적다.” 라는 뜻입니다.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더 많은 사람들이 믿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복음 선포는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은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제자들(신앙인들)은 그 일을
도와드리는 협력자일 뿐입니다.
그러니 복음 선포 활동을 할 때, 즉 선교활동을 할 때,
기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 여기서 ‘일꾼’은 ‘모든 신앙인’을 뜻합니다.
일꾼인 신앙인과 일꾼이 아닌 신앙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전부 다 하느님의 자녀이고,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완성하는 일은
모든 신앙인이 일꾼으로 참여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구경만 하다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집은 자녀의 집이기 때문에
‘남의 집’이 아니라 ‘나의 집’이고 ‘우리 집’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남의 나라’가 아니라 ‘나의 나라’이고
‘우리 모두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건설과 완성을 위한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고 ‘우리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일꾼이고,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하느님의 일꾼들을 모집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소주일 같은 때에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가리켜서
일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하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착한 목자는 착한 양들 속에서
나오는 법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3)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는 말씀은, ‘어린 양’ 같은 제자들이 이리 떼
같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염려를
나타낸 말씀이기도 하고, 이리 떼 같은 사람들을
양들 같은 사람들로 변화시켜야 하는
제자들의 임무를 뜻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라는
말씀은, 목자만 의지하는 양들의 모습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목자의 보호 안에 있는 양들은, 모든 것을 목자가
알아서 다 챙겨 주기 때문에, 따로 무엇인가를 챙기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자체가 그런 생활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세속의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런 관계에 의존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주님의 평화’를 전하는 일인데,
‘주님의 평화’를 남에게 전해 주려면
자기 자신이 먼저 그 평화를 누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돈 걱정’ 같은 것들은 버려야 합니다.
걱정과 참 평화는 반대쪽에 있습니다.
평화를 빌어 주었는데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런 경우에는 평화가 되돌아올 것이라는 말씀은,
복음을 거부해서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전해 준 사람 쪽이 아니라 거부한 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일꾼들을) 당연히 먹이신다.”이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라는
말씀과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라는 말씀은,
“주는 대로 먹어라.” 라는 뜻입니다.
<더 좋은 대접을 받으려고 옮겨 다니지 말라는 뜻입니다.>
4)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라는 말씀은(9절),
복음 선포는 ‘말’로도 이루어지고, ‘자비의 실천’으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병자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치유의 은총’이 곧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경고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에도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복음은,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지만,
믿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에 관한 무서운 소식’이 되어버립니다.
[출처]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