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5만7070원 vs 1만1578엔
연료비 상승 반영해온 日 전기료는 韓 2배
그럼에도 절전 생활화로 국민 저항은 작아
최근 짐 정리를 하다가 일본 도쿄 특파원 시절에 냈던 전기료 영수증을 발견했다. 일본은 장기간 물가 하락을 겪었기 때문에 공산품, 음식, 집값 등 어지간한 것들은 한국보다 저렴하지만 전기료는 예외다. 도쿄 시내 아파트에서 5인 가족이 살면서 2021년 2월 낸 전기료는 8131엔(약 8만1000원)이었다. 올해 2월 한국에서 낸 전기료 5만7070원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과 일본의 전기료 구조는 비슷하다. 기본요금에 전력 사용량만큼 요금이 더해지고, 거기에 연료비 가격 등락에 따른 조정요금 등이 반영된다. 양국 모두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곱해지는 단가가 높아지는 누진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일 모두 자원 빈국이어서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를 대부분 수입한다. 지난해 연료 수입 가격 급등, 자국 통화 가치 하락도 함께 경험했다. 그만큼 전기료 인상 요인이 많았지만 한국은 전기료를 억눌렀고, 일본은 꾸준히 올렸다. 한국에서 2월에 사용한 전력량 384kWh를 일본 도쿄전력의 가격 시스템에 기초해 계산했더니 1만1578엔이란 요금이 나왔다. 물가가 저렴한 일본이지만 전기료는 한국의 2배였다.
한국에선 질 좋은 전기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어 좋긴 한데, 너무 싸다는 게 문제다. 현재 전기료는 원가의 약 70%밖에 되지 않는다. 콩을 가공해 두부를 만드는데, 콩값이 두부값보다 비싼 셈이다. 이런 기형적 구조는 자원 낭비와 경제 왜곡으로 이어진다.
한 지인은 최근 주택을 수리하면서 기름보일러를 없애고 전기 패널을 깔았다. 그게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기업도 전기에 점점 더 의존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발표에 따르면 1990∼2020년 기간 한국의 산업용 전력소비는 372% 늘었다. 같은 기간 독일(3%)과 프랑스(1%)는 소폭 증가했고, 일본(-19%)과 미국(-14%)은 오히려 줄었다.
1차 에너지원인 석유나 석탄으로 난방을 하면 에너지 전환 손실률이 10∼20%에 그친다. 전기는 석유나 석탄으로 만든 2차 에너지원이다. 전기로 난방을 하면 손실률이 60%로 커진다. 전기 패널이 늘어날수록, 기업이 전기에 의존할수록 국가 차원의 자원 낭비가 심해지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은 지난 정부의 무책임함을 비판하면서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왔다.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최근 2분기 전기료 인상 결정을 보류했다. 전기료 인상으로 인한 연쇄적인 물가 상승, 직격탄을 맞을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의 반발 등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일본 사례를 보면 전기료 인상이 고스란히 가계 충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떠올려 보면 특파원 생활할 때 다섯 가족 모두 거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전기 패널이 거실에만 깔려 있기에 겨울엔 거실을 떠날 수 없었다. 여름에도 거실에만 에어컨을 켰고, 가족 모두 거실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절전 습관은 한국 귀국 후에도 유지돼 서울 아파트에서 낸 전기료는 전체 평균보다 항상 적었다. 일본인 역시 전기 사용을 줄여 고지서에 찍힌 요금을 계속 낮췄을 것이다. 일본 기업도 저에너지 주택인 ‘스마트 하우스’ 등을 개발하며 절전을 도왔다.
전기료 현실화를 통해 개인의 절전과 기업의 기술 혁신을 유도하는 게 시장원리에 맞다. 취약계층에 대한 핀셋 지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형준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