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잠 형이라서 아침 늦게 일어나 토스트와 우유에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TV를 즐겨 본다. 작가이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모 방송국의 '아침마당'을 주로 보는데, 오늘은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올리는 것이다.
'이 나이에 참고 살 것인가'라는 주제였다. 설왕설래의 귀착역은 결국
황혼이혼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황혼이혼은 뉴스감이었는데 이제는
이는 옆집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혼은 하루 333쌍, 한 시간에 14쌍이
한다고 한다. 참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이혼이라는 말이 이제 낮설지 않다.
아무리 지금 사회가 남녀평등의 사회라지만 아직까지는 여자에게
불평등한 경우가 많다. 이혼을 하게 되면 제일 피해를 보는 것은 자녀인데,
여성은 모성애라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부당한 지경에 이르렀어도
자식 때문에 이혼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가 모두 결혼하여 슬하에서 떠나 버리면 이런 장애요소에서
자유스러워 진다. 그리고 이제는 여권이 크게 신장되어 여성이
自我에 대한 갈망이 크다.
황혼이혼이라는 말의 발원지는 일본이다. 일본어로 후가락(後家樂)이란
말이 있다. 後家란 과부 또는 미망인을 뜻하는 것으로 혼자되고 나서
가지는 인생의 즐거움을 말한다. 시시콜콜 잔소리하고, 사소한 일에도
쓸데없이 간섭하고, 귀찮게 구는 남편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後家가
되면 아들은 엄마 말 잘 듣는 마마보이로 키웠겠다, 이제는 경제권 등
집안의 실권을 쥐었으니 오늘은 온천, 내일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모레는
친구들과 경치 좋은 교외로 나가서 맛있는 점심 그리고 일 년에 한 두번은
해외여행을 즐긴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초 고령사회로 남편이 좀처럼 저 세상으로 떠나 가지
않으니까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즐기자고 남편이 퇴직금을 받자마자
황혼이혼을 하여 위자료 받아 남은 인생을 즐긴다고 한다. 일본 여자들은
순종형으로 남편의 온갖 횡포에도 꾹 참고 결혼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
한데 이제는 남편이 퇴직하면 그 동안 참고 참았던 세월을 보상
받으려고 하는 것이란다.
이와같이 일본에는 황혼이혼이 다반사가 되였는데 10여 년이 지난
우리나라도 황혼이혼이 유행의 물결을 타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분들은
워낙 유행을 잘 타서 이 물결이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서서이 밀려
올런지 , 아니면 바다의 파도 마냥 세차게 밀려 올런지 예칙할 수 없다.
문제는 황혼이혼의 80%는 할머니가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혼을 하면
결혼기간 중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재산에 대해 최대 40%~50%의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위자료까지 받는다. 이혼을 하는 경우
남자가 위자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 만큼
할아버지가 약자이고 피해자이다.
드라마 '무자식상팔자'를 보면 순종형의 할머니가 사소한 일에 격분하여
황혼이혼을 요구하여 수억의 현금을 챙기는 웃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고 돈 가진 노인에게는 언제 닥쳐
올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이니까 조심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황혼이혼을 생각하는 이유 중 큰 하나는 평생을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먹이고 입히고 시집 장가 보내고 이제는 좀 내 인생을 찾나 했더니 퇴직으로
할 일이 없어진 남편이 집에 들어 앉아 사사건건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시집살이'가 따로 없어 '남편살이'란 말이 생길 정도다.
이래서 '왜 주부은 은퇴가 없느냐?'고 주장하고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은퇴를 하면 하루 종일 '파자마 맨'으로 거실에 '거실 남'
으로, 'TV 맨'으로 하루 종일 TV만 보다가 세끼 밥 다 차려 달라는
'삼식(三食)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부인 입장에서 보면 죽을 맛이다.
어찌 이뿐이랴. 최악은 '젖은 가랑 잎 男'으로 마누라 옆에 찰싹 달라 붙어
하루 종일 어디에 가나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 다니는 밸 없는 족속들이다.
남자가 '노년이 되면 필요한 5가지'는 우수개 소리로 첫째 마누라, 두째
아내, 세째 애들 엄마, 네째 집시람, 다섯째 와이프라고 한다.
정답은 돈, 건강, 친구, 취미생활 그리고 화목한 가족이다. 마누라는 마지막이다.
나이가 들면 여자들은 사회활동이 활발해 진다. 고교, 대학동창은
기본이고 초등학교동창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성당이나 교회모임이 활발
해 진다.
여기에 백화점 문화 센터나 복지관 또는 구청 등에서 주최하는
컴퓨터교실, 문학교실, 수채화나 유화그리기, 요가, 에어로빅, 댄스동아리, 노래
동아리,기타배우기 등등 한이 없다. 아니 빠쁘다. 여자는 잘 뭉친다.
이러니 남편이 거추장스럽고 얼른 폐기처분하고 싶어진다. 싫건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밥 달라는 노친네가 있으니 얼마나 귀찮겠는가.
이쯤해서 여자 쪽 얘기는 접기로 하고 남자 얘기로 넘어가자.
여편네는 잔소리꾼이다. 소크라데스는 크산티페에게 물벼락을 맞기
일수였고, 하이든은 악처 마리아 안나에게 시달림을 받았다.
톨스토이는 부인 소피아의 잔소리를 견디다 못해 가출하여 방황하다가
시골 간이역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톨스토이는 대지주였는데도 말이다.
공자는 노후에 이혼 당했고, 강태공은 나이 오십에 부인이 도망 갔는데
강태공이 출세하자 부인이 찾아와 용서를 빌었는데 '물을 마당에 엎지르고
다시 담으라'라고 하며 매정하게 뿌리쳤다. 이래서 북수불반(覆水不返)
이라는 4자성어가 생겼다.
이와 같이 부인에게 시달리지 말고 재산 반을 뚝 떼어 주고 남은 돈으로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며 自我實現을 해야 한다.
스테판 폴란은 '다 쓰고 죽어라' 라는 책에서 '재산을 모으고 유지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삶의 질보다는 죽음의 질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위한 일에 돈을 쓰지 못하고 자녀들을 위해 돈을 아껴 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라 밴 브레스낙의 '혼자 사느 즐거움'이라는 책을 보면, 모든 인생은 혼자
떠나는 여행으로 혼자 떠날 수 있어야만 외로움과 쓸쓸함을 당당하게 견디어
낼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을 지속하는 한
사람은 지독한 고독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법정스님이 가장 좋아했다는 책,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 혼자 살면서 '시 한 줄을 장식하기 위해 꿈을 꾸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법정스님도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수필을 남겼다.
노년이 되어 혼자 사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언제 혼자 살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 미리 혼자 사는 방법을 익혀 두어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부인이 하는 집안 살림을 도와 주면 된다.
살림보조가 되란 얘기다. 우선 제일 쉬운 것은 청소이고, 세제를 적당히 넣고
세탁기를 돌리는 법을 배우면 된다. 이것들은 배울 것도 없다. 다만 노동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 마인드 컨트롤만 하면 된다.
늙으면 등산, 산책, 헬스,골프 등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집안 일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운동과 노동의 차이점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즐긴다.'에 있다.
노동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운동이 된다.
밥은 전기밥통이 알아서 해 준다. 문제는 반찬 만들기인데 이것은 식당보조로
취직했다 하는 낮은 자세로 부인에게 하나씩 배우면 된다.
부인이 외출하면 인터넷을 보고 따라하면 된다. 너무 쉽다. 아마 마누라가 해준
반찬보다 더 맞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준비해서 귀가한 마누라에게 저녁밥상을
차려주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릴런지도 모른다.
얘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갔는데 이렇게 하면 황혼이혼을 당할 염려가
없을 것이다. 나는 황혼이혼 권장론자가 아니므로, 후편으로 내일
<황혼신혼 예찬론>을 올리겠다.
이는 황혼이혼을 한 다음 다른 이성과 결혼하라는 얘기 아니고,
헤어졌던 前부인과 재결합하면 깨소금이 쏟아 진다는 내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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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뭐 당장 이혼을 하라는 건 아니니 오해가 없으시기를 ~~~ㅎㅎㅎ
ㅋㅋ홀로서기는 나이들어감에 따라 더욱 필요한 덕목임을 느낍니다 ..제 경우는 같은 취미로 만나는 동호인 모임이 바람직한 거 같아 ......금년에 새로이 시간을 쪼개어 그림그리는 모임에 들어갔습니다
인생이 서글퍼 지려고 하네요....
"뭐하게 재미없는 인생" 강홍준 논설위원(《중앙일보》2013/04/05, 32쪽)이 뽑은 칼럼 제목입니다. 거기에 이런 글도 있습디다.
" 인생은 자기가 주인이 될 때 즐겁고 가치가 있다는 걸...알았으면 해요"
인생?은 자기에게 주어진 한세상 살아가는 통째 과정일 겁니다요. 개인의 일기장 속의 그림들(새미 숲//님께서도 실천하실 지는?)처럼, "시종 始終" 을 차곡차곡 접으면서...
『주역』은 인생을 식물 씨앗의 윤회로 비유합디다. 한 씨앗이 싹을 틔우고 始, 온갓 질곡(비바람)을 이겨내면서 꽃을 피우면 變化 , 그 결과물은 도로 한 씨앗 終 으로 돌아간다는 거지요. 이런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순順 과 거꾸로 逆 잣대질을 하면서, 한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올바른 삶의 태도를 학습시켜줍니다. 운세란 미래의 일입니다. 역의 잣대질로 개인의 길흉을 예측하는, 현대과학이 풀수 없는 "창조과학"이지요. '미래창조과학부'?
여기 난이 부족해서...
현대과학은, 원리적으로, 지나간 한 시간(역의 이론으로, 빅 뱅, 137억 연까지)은 잣대질 할 순 있겠지만, 미래에 일어날 수백억 분의 1 초일지라도 예측할 수 없지요. 전혀 '불가능'입니다. 『주역』은 양쪽(과거-미래) 시간들 속으로 들락거립니다. 저의 이해에 바탕하면, 현대과학은 아인슈타인의 시공(기껏해야, 약 1백년 남짓 전에 제안된, 시간과 공간을 동시적으로 보는 원칙)이란 한 '공리'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주역은 2천 연도 훨씬 넘게, 수많은 철학자들이 기존의 '64 운세코드'에다 '시행착오' 의 거듭정리를 통해서 정리된 것이기에 가능합니다. 언젠가는 과학도 미래예측이 가능할 겁니다요.
고대 중국(5,000년전) 주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신이던, 여상呂尙의 벼슬이 '태공망'을, 그의 성이 ‘강’이라서 ‘강태공’으로 불러집니다.
“엎질러진 물은 그릇에 되 담을 수 없다” ‘복수불반분 覆水不返盆’, 또는 ‘복수불수 覆水不水’ (조성진 옮김,『고사성어로 배우는 중국 명장면』, 32쪽)의 한 고사를 인용하신 것 같습니다만?
『주역』을 지은이로 알려진? 주나라 문文왕 서백이 어느 날 사냥을 하고 돌아가던 길에 강태공을 만납니다. 지난 밤 꿈에 본, 주역점괘(“오늘 잡을 것은 곰이 아니라, 패왕을 보좌할 인물이다”)의, 딱히 그분이라 여겨, 그에게 “태공망” 이란 칭호를 내립니다. 사연은 위와 같음.
올린 내용보다 더 의미있고, 깊이있는 덧글로 원문의 내용을 업그레이드시킨 안젤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바람//님! 제 중이염을 걱정해주신 여러분들 중에서, 오직 님만 제 글에다, 님의 댓글로 위로말씀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요, 고맙습니다.
실은 백발머리//님의 인생이 "서글퍼 지려고..." 란?, 자괴지심 自愧之心"을 위로하려고 댓글을 올리고 나서, 궁금증이 도져서, 님이 올리신 그 글을 다시 차근차근 읽었던 겁니다요.
그 글 속의 늬앙스와는 전혀 별개의 『주역』얘기를, 제 나름 생각대로, 댓글로 올린 점에 대한 양해를 구합니다. 오로지 백발머리//님만을 염두에 두고서... 그 책의 얘기였음을 밝힙니다.
올리신 사진들은, 저에겐 정말로, 깊은 감동을 줍니다. 싹을 틔우는 장면에서 만개까지...,천지의 사랑 행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