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소 다로 일본 신임총리 겸 자민당 총재가 오는 11월 총선에서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photo 로이터
“총선에서 승리해 천명(天命)을 완수하겠다.” 일본의 제 92대 총리로 취임한 아소 다로((麻生太郞·68)가 집권 여당인 자민당 총재로 선출(9월 22일)된 후 밝힌 소감이다. 아소 총리가 ‘천명(天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천명이란 하늘의 명령을 의미하지만 선천적인 어떤 운명을 말하기도 한다.
아소가 3전4기 끝에 자민당 총재로 당선된 날은 외조부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878~1967) 전 총리의 탄생일이었다. 아소 총리는 외조부의 덕분으로 자신이 총리가 됐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외조부와 같은 총리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천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탄광 재벌’ 아소 총리, 정치 명문家 출신 3선 부친은 조선인 징용자 착취로 富 쌓아
아소 총리가 조상의 음덕을 강조한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세습정치 가문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소의 가문은 말 그대로 화려하기 짝이 없는 정치 명문가다. 그의 가문은 후쿠오카현에 본거지를 둔 ‘아소그룹’이란 탄탄한 경제적 기반에서 출발했다. 아소그룹의 창립자이자 아소 총리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麻生太吉)는 메이지유신시대에 ‘탄광왕’으로 불리며 귀족원 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아소의 부친인 아소 다카키치(麻生太賀吉)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인 1939년부터 1944년 말까지 1만 5000여명의 조선인을 징용, 자신의 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시켰다.
특히 당시 아소의 부친은 최저임금으로 광부들을 혹사시켰고 막대한 임금을 착취, 참다 못한 조선인 광부들이 집단 파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소탄광에서 강제 노역을 하던 조선인 징용자 중 5000여명이 작업 중 사망하거나 일본인 현장감독의 구타와 굶주림, 중노동 등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조선인 강제 징용으로 탄광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아소의 부친은 전후 중의원 의원으로서 3선을 했다.
13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소그룹은 시멘트·의료·교육 사업에까지 진출, 7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역 기반인 후쿠오카현을 중심으로 주유소와 슈퍼마켓 사업까지 진출했다. 2006년도 그룹 매출액은 1450억엔, 종업원은 5000여명에 이른다.
핵심기업은 후쿠오카현 이이즈카시에 있는 아소시멘트이다. 이 회사의 사장은 아소 총리의 동생인 차남 아소 유타카(麻生泰·61)가 맡고 있다. 가문의 기업은 동생이 맡았지만 정치는 장남인 아소가 대를 이었다. 아소 총리는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26년간 중의원 의원으로 9선을 기록 중이다. 여동생인 아소 노부코(麻生信子)는 현재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친조카이자 왕위 계승 서열 7위인 도모히토(寬仁)의 부인이다.
▲ (왼쪽부터)아소 다로 총리의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 아소 다로 총리의 장인 스즈키 젠코 전 총리 /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 후쿠다 야스오 부친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아소 총리의 외가·처가도 세습정치 가문 극우파인 외조부 요시다 전 총리의 영향 받아
아소 총리의 외가도 명문가다. 어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을 이끈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딸이다. 요시다는 두 번 총리에 올랐으며 ‘일본 정치의 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인물이다. 요시다는 한국전쟁 특수를 발판으로 일본을 재건한 인물이다. 전후 사망한 일본 총리 17명 가운데 유일하게 요시다만 국장(國葬)의 예우를 받았다. 아소 가문은 요시다가문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아소의 외증조부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는 다이쇼(大正) 일왕(현 아키히토 일왕의 조부)이 재위할 당시 외무·문부 대신을 지냈다.
아소 총리의 정치 철학은 요시다에게서 출발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요시다의 무릎 위에서 놀면서 “일본은 대단한 나라다”라는 외조부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 이런 영향으로 아소는 골수 극우파 정치인으로 ‘일본은 아시아의 최고’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아소의 처가도 세습정치 가문이다. 부인 지카코(千賀子)는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의 딸이고, 처남 스즈키 준이치(鈴木准一) 역시 환경장관을 지낸 6선의 중의원이다. 이처럼 아소 가문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재계로 진출하고 또 다른 명문가와의 혼인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구축한 셈이다. 아소 총리는 일본 특유의 세습정치가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소 총리만 세습 정치인은 아니다. 바로 전임 총리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의 가문도 정치 명문가이다. 후쿠다 전 총리의 부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는 1976년부터 2년간 총리를 지냈다. 후쿠다 전 총리는 당시 40세 때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후쿠다의 장남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도 현재 정무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명문 게이오대학을 졸업한 다쓰오는 종합상사에 들어가 13년간 근무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부친이 관방장관으로 있던 2004년부터 비서로 일하며, 군마현에 있는 후쿠다 가문의 지역구를 관리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집안도 손꼽히는 정치인 가문이다. 외조부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친조부 아베 간(安倍寬)은 중의원,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외상과 자민당 간사장을 지냈다. 아베 전 총리는 부친 사후 야마구치현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이번에 아소가 총리가 됨으로써 아베 전 총리부터 3회 연속으로 일본 총리가 모두 총리 가문 출신에서 배출됐다. 이 때문에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자민당은 총리 가문이 아니면 총리가 될 수 없는 정당이냐”고 비꼬기도 했다. 반면 3대 세습 의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라면집도 대대로 하면 더 믿음직하지 않느냐”고 세습정치를 옹호했다.
야당인 민주당 역시 세습정치인 득실 하토야마 간사장은 일본 최고의 명문가 출신
물론 세습정치는 제1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의 가문은 일본에서도 최고 명문가이다. 하토야마의 조부는 1954년부터 2년간 총리를 지낸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이고, 부친 하토야마 이이치로(鳩山威一郞)도 외상을 지냈다. 외조부는 브리지스톤 타이어 창립자인 이시바시 쇼지로(石橋正二郞)다. 동생인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는 자민당 의원이며 법무상을 지냈다.
오는 11월 실시될 총선에서 차기 총리를 노리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도 마찬가지다. 변호사 출신인 부친 오자와 사에키(小澤佐重喜)는 고향 이와테현에서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그의 가문이 다른 정치 가문과 차이가 있다면 부친이 가난한 농촌 출신으로 본인의 노력으로 의회에 입성한 입지전적 인물이란 점이다. 그의 부친은 주경야독하면서 니혼대 법학부 야간부를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도쿄 시의원을 거쳐 49세에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오자와 대표는 27세 때 부친의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 (왼쪽부터)아베 신조 전 총리 /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간사장 / 하토야마 유키오의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
중의원 480명 중 120명이 세습정치인 역대 총리 61명 중 10명이나 의원 아들
일본에선 이런 세습정치인을 ‘정치가(家)’라고 부른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아 ‘가업’으로 대물림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중의원 의원 480명 중 120명이 세습의원이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세습 의원 비율은 30%에 달한다. 민주당 의원들 중 27%도 이처럼 세습정치인들이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서 아소 총리에 이르기까지 역대 총리 61명 중 국회의원의 아들은 모두 10명이다. 일본 정치가 벤치마킹 모델로 삼은 영국의 경우, 로버트 월폴 총리부터 고든 브라운 총리까지 52명의 총리 가운데 29명이 국회의원의 아들이다. 비율로만 보면 일본이 영국보다 대물림 정치 성향이 약하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윈스턴 처칠 이후 11명의 총리 가운데 국회의원의 아들은 단 1명도 없다. 반면 일본은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에서 아베 총리까지 1990년대 이후 취임한 총리 11명 중 8명이‘세습의원’이다.
일본에서 의원 세습 논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3년부터이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가 부친의 선거구를 물려받아 의원으로 당선되면서‘세습’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와는 달리 현재는 오히려 세습에 대해 별다른 문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일본 사회가 세습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인다. 2000년 오부치 당시 총리가 뇌경색으로 사망하자 당시 26세이던 딸 유코(優子)가 출마해 당선된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세습 정치는 단순히 부친의 대를 잇는 경우뿐만 아니라 3대 또는 4대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도중에 대가 끊기면 딸이나 사위가 나서기도 하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양자라도 들여 대물림하기도 한다. 이들 세습정치인은 부친이나 조부로부터 선거구를 이어받아 정치 경력을 쌓는다.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부친의 비서관을 맡아 경험을 쌓는다. 세습 정치는 봉건영주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에선 가문과 가업의 계승을 중시한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도 음식점 같은 가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 (좌)요시다 시게루 전 일본 총리와 외손자인 아소 다로 총리의 어렸을 때 모습(뒷줄 가운데).(우)일제강점기 때 아소 탄광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징용자들의 모습.
“바닥 민심 못 읽고 신인 등용 막는다” 세습정치 폐해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아
그러다 보니 세습정치에 따른 폐해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바로 아베와 후쿠다 전 총리의 미숙한 국정 운영을 들 수 있다. 두 사람은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갑자기 총리와 외상이던 부친의 비서가 돼 정치에 입문했다. 문제는 총리가 되기까지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의원 의원의 경우, 보통 3선이면 정무차관을 지낸 후 중간 당직을 거쳐 5~7선에 중요하지 않은 부처의 장관으로 입각한다.
이후 예산위원장 등의 중의원과 당의 요직 또는 주요 장관을 거쳐 파벌 영수가 된 후 총리직에 도전한다. 실제로 1994년 이후 총리들의 취임 당시 당선된 횟수를 보면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11선, 오부치 게이조 12선, 모리 요시로(森喜朗) 10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10선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주요 각료나 간사장 등 당 3역 경험자였다. 하지만 후쿠다는 총리 취임 당시 6선, 아베는 5선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귀하게 자란 몸이다 보니 평소 민심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다마 마사미(兒玉昌己) 구루메(久留米)대 교수는“어려서부터 주변에서 ‘도련님, 도련님’ 하며 떠받드는 데 익숙해진 2세, 3세 정치인들이 서민생활의 어려움을 알 수 없다”면서 “이는 세습정치인의 최대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세습정치의 또다른 폐해는 정치 신인의 등용을 막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10여년 전부터 정치 신인이 크게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 무관심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세습정치가 만연함에 따라 각종 부정부패가 대물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문과 가문이 결혼 등을 통해 결탁함으로써 정경유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번 총리 교체도 어떻게 보면 일본 정치의 세습화가 심화되면서 귀족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평민은 총리가 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11월 총선은 자민당의 계속 집권이냐, 민주당의 사상 최초 정권 교체이냐를 가름하는 일본 정치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습 의원들의 ‘가문의 영광’은 계속된다는 점이다.
첫댓글일본에는 가업과 가문을 잇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듯 해요...이러한 특성을 가진 측면에서 우리 하나님을 전하는 목사님이 많이 배출되는 일본이라면...종교의 세습이 아니라 신앙의 세습이 이뤄지는 일본이라면...얼마 전 읽은 책에서처럼 일본은 정말 상당한 폭발력을 가진 선교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일본에는 가업과 가문을 잇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듯 해요...이러한 특성을 가진 측면에서 우리 하나님을 전하는 목사님이 많이 배출되는 일본이라면...종교의 세습이 아니라 신앙의 세습이 이뤄지는 일본이라면...얼마 전 읽은 책에서처럼 일본은 정말 상당한 폭발력을 가진 선교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