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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를 찾아서
夕霞 정용수
오늘(2005.10.15)은 지난봄, 실미도에 이어 철원지역으로 안보견학을 떠나는 날이다
집을 나서며 마주한 하늘은 쪽물을 엎어 놓은 듯이 파랗고 아침이슬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는
고추잠자리의 날개가 아침햇살속에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버스는 지난봄, 실미도 견학에서와 같은 뭉클한 감동을 기대하는 일행을 싣고
강동대교를 넘어 힘차게 달린다
차창으로 보이는 수락산과 무명산들은 한여름의 꿈을 놓아버리기 아쉬운 듯 계절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중부전선에 위치한 제1 기갑여단,
일반인에게는 엄격히 통제하는 구역이었지만 통합방위협의회의 총무와 육사 동기인
참모장(현역 대령)의 배려로 부대를 시찰을 할 수 있었고, 또한 그런 기회를 갖을 수 있었음은
개인적으로 크나 큰 영광이었다
정문까지 나와 우리를 기다리는 참모장의 영접을 받으며 기념관으로 들어선다
1960년대 내 고향 가평에서 창설된 이 부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역대 지휘관들의
지휘봉을 비롯한 사물을 전시하고 괘도 차량의 발전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었는데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기갑부대의 전력은 일행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자랑스러웠다
기념관을 나와 각종 괘도차량이 도열한 연병장에서 제원에 관한 브리핑을 들으면서 k-6 최신예
전차를 비롯한 장갑차량들이 모두가 국산이라는 말에 무궁한 자부심까지 느낄 수 있었다
3명에게 주어진 탑승 기회를 얻어 최첨단의 전자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차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연병장을 한 바퀴 돌고 내릴 땐감격에 겨워 얼굴엔 홍조 마져 일었다
군 부대 전용식당에서 맛난 이동갈비로 점심을 해결하고 백마고지로 향한다
남방한계선 안에 위치하여 직접 밟아볼 수 없는 백마고지!
눈앞에 바로 보이는 저 곳,
어느 미군 병사가 하늘에서 본 모습이 하얀 말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백마고지가 작은 들판 너머
바로 내 앞에 있다
그 뒤로 펼쳐진 검게 보이는 산들이 북녘 땅이다
주차장에서 나즈막한 언덕을 올라 기년관을 오른다
김종오 장군(당시 9사단장)의 지휘로 피로서 지켜낸 이곳엔 그 시절 북한군의 AK(아카보 소총)를
비롯한 국군의 화기와 사진이전시되어 있었다
기념관을 나서 동산 정상에 당시 백마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산화한 육군 제9사단
장병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를 향하는 길 위에 박힌 조약돌 사이로
깨어지는 햇살은 내 눈을 감아 버리게 만든다
10일간의 전투로 24차례나 주인이 바뀌었던 이 곳,
이 작은 고지에 피아가 쏟아 부은 포탄이 30만발이었다니 얼핏 가름조차 되지 않는다
휴전회담 기간에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 피아간의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던 이곳은 금화,
평강과 더불어 철의 삼각지대의 한 축을 이루던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얄궂게도 한 민족끼리 피를 뿌린 눈물겹던 싸움이었으니 끝까지 고지를 사수하여
철원평야를 차지 할 수 있었다는 기쁨에 앞서 결국 그것이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이곳에서 산화한 젊은 영령들의 이름이 새겨진 곳에 멈춰서니 가슴에 작은 바늘이 꽂힌다
비록 내가 겪지 못해 피부로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 시절 상상속의 전투만으로도 나를 끊임없이
아리게 한다
그곳에서 만난 70중반의 노인은 실제 이곳 전투에서 다리를 다치고 구사일생하여 휴전을
맞이 하셨다는데 죽기전에 와 보고 싶었다며 촛점잃은 눈에 이슬이 맺힌다
기념탑에서 지척으로 보이는 백마고지를 바라보는 노병에겐 전우의 시체를 넘어 진격하는 53년 전의
함성소리가 들려 오는 듯고지를 응시하며 촛점을 고정시키지만 스산한 바람 한 줌에
가는 한 숨 소리만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53년 만에 찾아온 노병의 눈과 얼굴에선 그 옛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통일 된 조국을
안겨 주지 못해 면목 없다는 겸손함과 회한이 묻어있었다
노인을 보면서 나를 돌아 본다
나, 아니 전후세대인 우리는 과연 우리의 후손들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평소에 우리들은 모두가 애국자요 반공주의자인양 말 하곤 한다
6자회담이 어떻고 사흘 전 검찰총장의 사퇴까지 몰고 온 강모 교수의 색깔과 이에 동조하는 세력은
어떻다는 등....
하지만 정작 너, 나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나설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통일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을 해 본적이 있었던가.
진짜 죄인은 바로 우리들이다
조국과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피를 흘리신 저 노인장을 뵐 면목이 없는 것은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남과 북이 한 민족임에도 통일은 우리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숙명인 것처럼 생각하는 바보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다리를 절며 쓸쓸이 돌아서는 노인의 뒷 모습을 보며 발가벗겨진 내 모습을 보인 듯 부끄러움에
몸이 떨려온다
노인의 손을 잡고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오’라는 말 한마디 전하고 싶지만 입 속에서만 맴돌 뿐이다
나를 한 없이 부끄럽게 만든 백마고지!
이 곳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만은 아니었다
바로 통일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약돌 사이로 깨어지던 햇살은 이제 더 이상 깨어지지도
나를 눈부시게 하지도 않는다
화창하던 날이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다음 일정을 위해 가을빛에 물들기 시작하는 기념동산을 뒤로하고 노동당사로 향한다
해방 직후의 철원은 38선 이북으로 북한 땅 이었지만 휴전회담 막바지에 젊은 피로 쟁취한 이곳은
남한 땅이 되었다
해방 후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지역의 주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던 노동당사는 지금은 전쟁을
겪으면서 탄흔 무성한 뼈대만 남아 흉물스럽기까지 한 노동당사!
'평화'란 무엇이며 '자유'란 또 무엇인가?
아직까지 나는 휴전선이 가로놓인 이 땅에서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왔다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장열히 숨져간 꽃다운 젊은이들이 그 얼마이던가?
어느 덧 해는 삼라의 평온한 휴식을 가져다 줄 어둠을 위해 서산으로 숨어들기 시작한다
소란스런 차안의 분위기가 오늘따라 낯설기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존재가치도 없다"는 말을 떠 올렸기 때문이리라
200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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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량도
夕 霞 정 용 수
어느 친구의 말처럼 일상을 벗어나 미지의 세상을 찾아 떠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이는 일이다
더구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동하는 곳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 하겠는가 ?
오늘(2005.07.02.토)은 무박 2일 일정으로 남해 다도해 중심지에 자리 잡은 사량도 지리망산
(혹은 지리산)을 종주하기 위해 떠나는 날이다
장마전선이 한반도 남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걱정이긴 하지만,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오래전부터 가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이라는 동료 해룡님의 권유로 떠나는 산행길!
천호역에서 20:00에 만나 저녘 식사를 함께하는 문우와 해룡님을 비롯한 절친한 지우A군,
K군의 얼굴빛은 기대로 상기되어 있었다
23시 정각에 도봉과 강북의 산우들을 태운 버스가 아차산역에 도착!
우리를 실은 버스는 둔탁한 엔진음과 촉촉이 젖은 타이어 마찰음의 절묘한 코러스를 뒤로하며
천호대교를 넘는다
늠비 속에 중부와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통해 삼천포에 도착한 것은 아침 4시 30분경!
여명이 밝아오자 짙 푸르게 다가오는 바다건너 등대불과 출항에 나설 어선들은 겨운 졸음을
쫒고 있었고, 비 내려 을씨년스런 부두광장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 아침식사는 작은 불편도
익숙해 지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나를 철저히 반성할 수 있는 값지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승선절차를 마치고 배가 항구를 떠나자 검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들이 안개를 뚫고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착각속에 빠져든다
연무로 뒤 덮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를 가름 할 수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좁은 통로의 갑판에서 문우와 함께 ‘산타루치아’ ‘희망에 나라로’ ‘배 떠나간다’를 흥얼거리며
안개 낀 남도(南島)정취에 취해 나의 존재가 잊혀져갈 즈음, 배는 어느새 사량도의
작은 어촌인 돈지포구에 접안하고 있었다
돈지마을에서 올려다 보이는 지리산!
한반도에 있는 명산에 견주어 볼 때 높이나 규모는 작을지라도 산행코스나 암릉미에 있어선
최고라는 찬사가 결코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돈내 마을을 뒤로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자동차가 교행하기도 힘든 S자형 시멘트 포장도로(혹은 비포장도로)를 200여m쯤 올랐을까?
깍아 지른 절벽위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시퍼렇게 멍든 가슴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아픔을 보듬고 싶지만 내 작은 가슴으론 바다의 무궁한 사연을 알 수 없어 도로 위 절벽에 서서
속으로 삼키는 파도의 울음소리를 넋없이 바라보다 호르라기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행 중
제일 후미라며 서둘기를 재촉한다
도로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작은 오솔길!
해송과 어우러진 관목숲을 지나니 마치 시루떡을 옆으로 쏟아놓은 듯한 편무암지대로 들어선다
걷는다기 보다는 차라리 기어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능선을 따라 가면서 준령을 넘 듯
우여곡절이 많았던 나의 삶을 생각하며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해 깊은 상념에 젖는다
숨이 턱에 차 오르고 온몸은 비록 땀에 젖었지만 기기묘묘한 바위틈에서 온갖 풍상을 이기내고 암벽에
활착하여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름모를 이끼류와 넝쿨식물(인동초같이 생긴...)을 보며
이 모든 풍요와 아름다움을 선사한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 힘든 줄 모른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쯤 지났을까?
지리산 정상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고 난후 해룡. 문우를 비롯한 A, K군과 함께 바위에 걸터앉아
물과 과일로 갈증을 해소하며 사위를 둘러본다
산새들의 울움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쉬웠지만 가랑비 내리는 궂은 날씨임에도 방그레 웃음짖는
야생화가 농염한 교태로 일행을 사로잡는다
이어지는 산행길!
이젠 서서히 어깨와 무릎이 아파온다
숨도 차고 헐떡여진다.
하지만 오를수록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지리산에서 옥녀봉으로 연하는 아름다운 암릉의 자태를 도대체 어찌 표현 해야만 할까?
벼랑은 작은 날들을 곧추 세우고 그 틈바구니에 자생한 바위채송화와 노란 원추리꽃의 어울림은
동양화속에서 보던 무릉을 영락없이 닮았다
해무 아래로 풀썩 뛰어내리면 동양화속의 신선이 되고 학이 될 것만 같았다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의 철사다리와 밧줄, 수직에 가까운 철제계단은 마치 군 시절 경험했던
유격코스 같아서 가파른 벼랑을 지날 땐 오금이 저려와 그 재미를 더해 주었다
한 가닥 줄에 체중을 실어 한 발 먼저 내려오며 군 시절 배웠던 줄타기 요령을 이야기하니
지천명의 적잖은 나이임에도 체습도가 빠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불모산 부근 수직에 가까운 철제계단을 지나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사위를 살핀다
단애(깍아지른 절벽)사이로 해풍에 시달린 노송의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몹시도 애처럽다
그 아래 기암괴석을 싸고 있는 숲은 이 모든 것들과 형언키 어려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별세계를 연출하고, 고개를 들어 더욱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노라니 기묘한 형상으로 솟구쳐 오르고
또는 웅크리고 앉은 묏 부리와 능선의 위용은 백전노장의 승전장군처럼 당당하기까지 하다
풍광에 도취된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하는 님이 곁에 있다면 진한 러브씬을 해 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사량의 해송은 불쌍하다.
단애에 뿌리 내리고 비스듬이 자란 소나무들은 해무와 빗방울을 자양으로 절벽위에 매달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반쪽 하늘만을 바라보며 처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도 베푼 덕만큼 칭송을 듣듯이 사량의 해송도 암반 틈바구니에 뿌리 내리고 고통속에 줄기를 키워
산행하는 우리들을 경탄하게하고 있는것이다
솔직히 말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사량도!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추천하던 사람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산행 중간 중간 배낭을 벗고 조금은 여유롭게 해무사이로 조망되는 어촌의 정겨움에 심신이
평온해 지고 암봉에 넋을 잃은 나에게 사량도의 바위와 나무, 바람과 이름모를 들꽃까지
나지막히 속삭인다
세상 온갖 번뇌를 모두 던져 버리고 시원한 바람과 풍광만 담아가라고.....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산행경험이 많지 않았던 문우에 대한 걱정이 기우였다는 사실이다
작은 체구임에도 젊은 사람못지 않게 보조를 맞추며 잘도 오른다
이따금 환타스틱한 풍광에 환호성을 지르면서.....
내 뒤에서 철제 계단을 내려올 땐 겁에 질린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내려온 후엔 안도감과
성취감으로 해 맑게 웃는 모습이 마치 철부지 소녀 같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봉에 오르니 점차 지쳐가는 심신을 쉬게 하고 싶은데, 아니 차라리
여기에 눕고 싶은데 타이트한 일정으로 시간이 없다며 서두르란다
하지만 이내 배낭을 풀고 다리를 뻗는다
태평양에서 불어온 바람이 돈내 포구를 지나 불모산의 암벽을 핥으며 힘겹게 기어 올라
비와 땀에 흠뻑 젖은 나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따뜻한 커피로 체온을 달래고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제법 굵어진 빗방울을 저마다 준비한 비옷
혹은 우산으로 피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암릉을 따라 불모산 주위에 펼쳐진 절경을 눈에 담아낸다
아침 6시 20분경에 시작한 산행은 벌써 3시간을 넘어선지 오래다
친구와 눈에 익은 산우들은 시나브로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만면에 가득한 웃음은
아마도 만족감 때문이리라
하산길임이 분명하건만 오르내리길 반복하다보니 뒷다리가 땡기고 점차 힘이 빠져온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미지의 세상을 오른다는 설레임,
정복했다는 환희와 즐거움, 또 다른 꿈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벅차오르는 환희도 잠시!
옥녀봉 부근의 작은 암봉을 우회할 무렵, 노루의 주검을 만났다
(옥녀봉)
상태로 보아 2일 전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듯한 노루는 또 다른 생명을 위한 보시를 준비중이었고....
서글픔에 한 없이 침잠하는 마음을 달래며 얼마나 걸었을까?
마지막 철제계단을 뒷걸음질로 내려오니 멀리서 동력선의 엔진기계음이 들려온다
포구가 가까워졌으니 마지막 힘을 내라는 신호이리라
이윽고 6시간이 소요된 약 9km종주 구간이 힘겨웠지만 감격의 연속이었던 지리산종주도 끝이났다
사량도 지리산!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바라보인다 해서 지리망산이라 불렸다는 곳,
대항포구에 도착해 신비함의 극치였던 지리산을 바라본다
이런 지리산이 있는 사량도는 남성의 섬이다
모든것이 남자의 몸처럼 강직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봉들과 마치 조각 작품같이 삐죽이 솟은 편무암은 잘 발달된 남성의 근육같고
금강산 해금강 주상절리의 축소판 같은 곧추선 바위들은 남근을 닮았다
우중이라 조금 힘들었지만 바위산에서 만끽하던 스릴, 곳곳에 펼쳐진 비경과 함께 산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고 바다와 산을 함께할 수 있어 더 한 감동을 주었다
흐린 날씨탓에 조망에 어려움이 있어 아쉬웠지만 멀지 않은 날에 다시 한번 찾아볼 것을 다짐하면서
배에 오른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가야할 시간이다
다시 삼천포로 돌아오는 뱃머리에서 보는쪽 물을 푼 것 같은 바닷물과 늠비속에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세파에 찌든 가슴을 텅 비워 주고 비에 젖어 무거워진 해수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바다와 산이 있고 그곳에 내가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신 정수원 회장님을 비롯한 산악회 임원들에게 감사드린다
2005 07 05
첫댓글 저도 백마고지를 다녀와봤는데 .그 치열한 싸움에 비하면 전적비는 너무초라하고 보수할곳이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