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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밤의 끝자락에 또다른 새벽이 있었다.
찬란한 아침을 열기위해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는것일까..이새벽이 고요하기만하다...
차가운 새벽공기가 참으로 신선하다. 여유있게 화곡역에 도착을했다. 산행을 할때면 늘 후미였지만 약속시간만큼은 선두이고싶어 항상 서두르는 편이다. 인적이 없는 역분위기가 쓸쓸하기만하다. 오늘은 올올산악회에서 주관하는 백두대간 16소구간을 종주하는 산행에 참석을 하기로 회장님과 약속을 했었다. 경북 김천의 작점고개에서 시작해 추풍령을 넘어 충북영동의 괴방령으로 하산하는 17키로미터의 긴산행이 될것이라는 말씀을 사전에 듣고있었다. 잠시후 도착한 자연씨와 승강장으로 이동을한다. 십여분후 도착하는 객차안에서 회장님께서 손을 흔들고 계신다. 지난주 이시간에는 얼마나 가슴졸이며 회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던가. 아무 생각없이 이곳에 서있기만해도 항상 웃는얼굴로 나타나시는 이분을 우리는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있었다. 누구하나 불평하는이 없었다. 그저 이분의 안부에대한 걱정의 눈빛들만이 그곳에 있었다. 허겁지겁 버스에 오르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끓고 큰절을 하시는 이분을 얼른 일으켜드리며 가슴 뭉클했었던 시간도 지난주 이때쯤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셨다. '죄송하기는요. 이렇게 와주신것만으로도 옆에 서계신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고 마음푸근한데요.' 얼마나 급했으면 택시안에서 양말을신고 바지지퍼를 올리셨다는 그 길고도 짧았던 혼돈의 시간들이 벌써 어깨너머 저편으로 묻혀져 가고있다. 신림역을 빠져나오자 아직도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안녕하세요.' 인사소리에 뒤돌아보니 김총무의 웃는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알티나의 총무로서 열성적으로 봉사를 하면서도 매주 산행에 참여를하는 그녀를 보면 그저 대견하고 고맙기만하다. 좋은사람들끼리 아름다운만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만 하는것일까.. 작은 불평과 불만을 버리고 아름다운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갈수 있다면 우리를위해 수고를 아끼지않는 그녀에게 작은보답이라도 되지않을까.. 생각이 길어지고있었다. 한명 두명 모이는듯 싶더니 어느새 만차다.
당산에서의 오영삼,주여니씨의 모습에서도 새벽의 차가운 기운을 느낄수가 있었다. 두툼하게 차려입은 모습들을 보니 어느새 겨울의 문턱이다. 이제 지나가 버린 가을바람의 향기를 기억해야만하는 추운 계절의 길목에 우리는 서 있는것이다. 토요일 북한산 종주를하고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는 오영삼씨를 걱정하고 있다. 생소한 얼굴들틈에 끼어있는 우리들 여섯이다.
새벽의 고속도로가 예상보다 활기차다. 거두어 들임이 끝난 차창밖의 풍경이 때로는 허허롭기만하다. 다시 또 씨뿌릴 시간을 기다려야만하는 수확한 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여유로운 모습들이겠는가. 저 허허로운 벌판위에 다시금 파란싹을 피워낼 자연의 위대한 힘과 저분들의 노력앞에 그저 나는 겸손해져야만한다. 그리고 감사해야만한다. 옥산 휴게소의 도착은 8시 50분이다. 회장님께서 준비하신 김밥과 라면등으로 허기를 달랜다. 오늘 생일을 맞은 자연씨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미역국이나 챙겨먹었는지.. 안스럽기만하다. 핫바를 건네주며 핫바아저씨라고 부르겠다는 주여니씨의 말에 모두들 웃어버린다. 힘차게 달리는 버스의 실내가 훈훈하기만하다. 산행안내를 하고있는 노회장의 말솜씨가 여간 달변이 아니다. 오랜산행경험에서인지 오늘의 코스를 꽤뚫어보고있었다. 거미줄 풀어내듯 막힘이 없는 65세의 저분이 오늘의 선발대장이란다. 가히 존경받아 마땅한분이 아니겠는가. 어느덧 구름도 울고넘는다는 추풍령에 도착을했다. 다른 몇분과같이 우리는 여기서부터 산행을 하기로했다. 우리들의 컨디션을 생각한 회장님의 판단에서였다. 추풍령휴게소 지하차도를 빠져나온버스가 황간방면으로 뉴턴을 해서 우리를 내려준곳이 충북 영동군 추풍면 추풍리였다. 김천과 황간을 잇는 국도변이었다. 이곳에서부터 눌의산으로 올라가는 들머리를 찾아야만한다. 우리가 서있는 길건너편에는 경부선철도와 고속국도가 우리를 가로막고있었다. 저 밑을 통과하는 작은 터널을 찾아야만한다. 일행들은 철길위로 올라섰다. 철길을 따라 걷고있다.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 오막살이는 커녕 초가집한채없다. 멀리 Go...Stop... 의 시그널이 서있는것을보니 건널목인듯하다. 다시 왼쪽으로 내려서 시멘트벽을 기어오른다. 처음부터 절벽타기다. 어렵사리 들머리를 찾았다. 여기저기 매어져있는 꼬리표들이 이제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임을 알려주고있었다. 조그만 오솔길을따라 천천이 올라간다. 사방에 포도밭이 널려있다. 전국 제일의 포도생산지라는 말이 맞는것 같기도하다. 무릎에 붕대를 동여맨 오영삼씨가 불편을 느끼는것같아 신경이 쓰인다. 시간은 벌써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왼편의 경사면에 나란히 자리잡고있는 무덤들을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의 시작이다. 거칠게 토해내는 숨소리와 발끝에 밟히고 채이는 낙옆소리만 한참동안 이어지고있다. 작은 암릉구간을 지나고있다. 해발 425미터 10시 56분이다. 대열은 흐트러짐이 없다. 고통을 이겨내기위한 각자의 생각들만 있을뿐이다. 금요일저녁 과음을했던 후유증의 아직도 이어지고 있나보다. 등줄기에 연신땀이 흐르고있다. 그래도 우리 여인네들의 웃음소리는 끈이질 않는다.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소곤소곤대는듯하다가는 금새 웃어버리곤한다. 그 맑은 웃음소리가 고통중에도 산소요 청량제다.
첫번째 헬기장에 도착을했다. 해발 530미터지점이다. 잠시 쉬어가기로했다. 주여니씨가 숲속에 피어있는 한송이 진달래를 발견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고있다. 지금이 어느철인데 진달래가 피다니.. 모두가 기상의 변화를 이야기하고있었다. 그러나 자연의 세계에있어 사소한 삶이란 없을것이다. 유독 혼자만이 꽃망울을 터뜨려버린 저꽃의 소리를 내가 듣지못하고 그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지 못하는한 차라리 입을 다물고 생각을 접어두는게 마음편하지 않겠는가. 정상을 향한 행보를 계속하고있다. 눌의산을 지나 장군봉을 거쳐 가성산을 올라서야만 어느정도 힘든구간이 끝난다는 회장님의 설명이다. 꽤나 땀을 흘렸나보다.
모두들 겉옷을 벗어 젖힌다. 나의 모자도 흥건히 젖어있다. 땀을 흘린만큼 몸은 가벼워지고있다. 정상이 지척이다. 이제 일차목적지에 도착을 한것이다. 눌의산 743미터 11시 40분이다.
베낭을 벗어내린다. 시원한 물을마시며 사방을 둘러본다. 저쪽이 충청도땅, 이쪽이 경상도땅설명을 들으며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있다. 멀리 고속도로옆으로 새로운 다리가 만들어지고있다.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산과들의 모습이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산행경력은 짧지만 그래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 비춰진 저 모습을 바라보는순간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온다.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는것은 잃어버림에 대한 슬프고도 슬픈 기억이 아니겠는가..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고싶은 이들의 분노와 안타까운시간들의 공백을 누가 대신 채워줄수있단 말인가.. 조금은 덜문명스러움이 조금은 더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수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안타깝기만하다. 정상에서 만난 중년의 부부는 다음주에있을 진부령대간 종주의 마지막을위해 미루어왔던 이구간을 종주하러 멀리 부산에서 왔노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고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인사를 잊지않았다. 가지고있던 초콜렛도 손에 쥐어주었다. 663봉을 지나자 장군봉이다. 너무 지체했는지 회장님께서 저만치 앞서가신다. 빨리가자는 무언의 압력이시다. 대단한 속력이시다. 따라가기가 힘이 벅차다. 정신없이 따라간다. 내려가면 오르고 오르면 내려가고 한시간여를 쉬지않고 반복한다. 알티나....정상에서 회장님께서 부르고 계셨다. 총무가 대답을한다. 서로의 메아리소리가 교차하는지점 바로 그곳이 가성산 정상이었다.
회장님 카메라에 추억거리를 담고 내려선 안부에서 간식을 먹기로했다. 떡과 과일 정상주를 돌리며 '고생들 다했어. 푹들 쉬어요.' 하는순간 한 사람이 발을 접질리며 쓰러진다. 침을 찾아 달려가니 금새 발목이 퉁퉁부어오른다. 치료를 해주고 돌아서는순간 '여기두요!' 해서 돌아보니 손이 피투성이다. 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찢어진 것이다. 상처가 꽤나 깊어보인다.
소독을하고 지혈제를 발라주고 한마디했다. '빨리가면 상줍니까? 천천히 내려가세요.' '네'
어린애같이 대답도 잘한다. 내려오는길은 낙엽소리와 편안함으로 지루하지않아서 좋았다. 소나무들이 일가를 이루며 살고있는 저 끝에는 푸른하늘과 은빛억새밭이 있었다. 갈대와 억새를 구분못하는 총무에게 회장님의 자상한 설명이 있었다. 낙엽보다 소나무잎이 더 미끄럽다는 주여니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너무 취해있었을까. 삼거리 안부에서 길을 잘못들어섰다. 한참을 내려와서야 알게되었다. 낙엽이 푹푹빠지는 경사면을 치고올라 다시 능선에 오르니 돌아가기에는 너무멀고 늦은 시간이었다. 충청도 땅으로 내려가야만하는것을 경상도땅으로 내려선것이다. 회장님의 전화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내전화가 바빳었는데..'회장님! 오늘산행 잘라먹은거 다 채웠으니 다행입니다.' 모두다 웃는다.
충북 괴방령이 아닌 경북 신암1리 고두암마을로의 하산이다. 어느새 4시다. 올라갔던 기운이 내려가고있다. 달콤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물을 한병씩 받았다. 고두암마을 입구에 늘어서있는 고목들의 모습이 애처롭기만하다. 뒤틀리고 패어버린 저고목들도 처음에는 작은 씨앗으로 출발했으리라.. 수백년동안 얼마나 많은 풍상을 만나고 떠나보냈을까... 그 모진 풍상의 세월을 견디어온 저 모습으로 길잃은 나그네들을 굽어보고있는듯하다. 시외버스를타고 추풍령휴게소로 되돌아왔다. 휴게소에서 식사를 마친후 저쪽 집행부와 다시 연락을 취해본다. 황간읍까지 오라는 전갈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지 그래. 다시 국도변까지 한참을 걸어야했다. 버스가 도착할시간이 너무 늦겠다는 노인의 말씀이다. 벌써 땅거미가 지고있다. 비상수단을 쓰기로했다. 일렬로 쭉 늘어서서 아무차나 세우기로했다. 모든 차량들이 그냥 지나쳐버린다. 야속하기만하다. 한들 어쩌겠는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지. 얼마가 지났을까. 커다란 트럭이 세워주는것이다. 2.5톤 트럭이다. 모두들 화물칸으로 오른다. 잠시 동안이지만 우리가 화물을 대신하고있다. 세찬 바람을 피해 앞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들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도야지의 모습들과 다를게 무어가 있겠는가. 이런 차는 제대후 처음 타본다는 오영삼씨말에 동감이다. 군에서 장거리 이동때는 트럭의 화물칸이 늘 졸병들의 몫이었다. 어찌됐든 다행이다. 추풍면에서 하차를한 우리는 인심좋은 아저씨에게 몇번이고 허리굽혀 감사함을 대신했다. 한대밖에 없는 택시에 사정을 하고서야 우리 여섯은 황간톨게이트에 도착을 할수있었다. 저들보다 먼저도착을한 우리는 올갱이 해장국을 안주로 간단히 소주를 마시며 길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고있었다. 순간의 방심이 긴 시간을 방황하게 했듯이 우리네 삶의 시간에도 방심은 용서되지 않을것이다. 항상 방심의 끄트머리에는 질곡의 시간들이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을테니말이다. 옳고 그름을 내가 배우고 정말 나의갈길이 어느길인지도 내가 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들 삶속에는 이정표란 없는것이다. 소리없이 흘러가고있는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삶들이 방황을 하고있겠는가. 우리들 가슴속에 잠시의 어색함과 주체못할 부끄러움의 찌거기가 남아있다면 이 낯설은 황간땅의 밤하늘에 날려버려야만한다. 아직도 이별의 시간들은 저멀리에 있다. 늘 등시리게하는 헤어짐의 시간들이 서울 어느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있을지언정 우리는 용기있게 되돌아가야만한다. 처음 시작한곳으로 말이다. 오늘 우리들이 같이했던 시간들과 모습들은 후일 열번이고 백번이고 다시 기억하고픈 추억으로 남을것이다.
좋은 사람들, 소중한만남, 아름다운시간들을 함께 했던 우리는 이 황간땅에 안녕을 고해야만한다.
'회장님 수고많으셨습니다.'
첫댓글 자상한 산행기에 감사 드립니다.
감사님 우리 감사님! 후기 올리시느라 수고 많으셨죠? 감사 드리오며 난감 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일행 모두가 불평 하나 없이 즐거워 하며 정을 나눈다는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