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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로션의 병원세균 발육억제 성적표 | |||||
실험법 세균종 |
배양기량 |
물치약양 |
배양온도 |
배양시간 |
성적 |
백색포도상구균 |
한천배양 10cc |
0.1cc 0.5cc |
37℃ |
48시간 |
발육× |
황색포도상구균 |
한천배양 10cc |
0.1cc 0.5cc |
37℃ |
48시간 |
발육× |
폐렴구균 |
한천배양 10cc |
0.1cc 0.5cc |
37℃ |
48시간 |
발육× |
대장균 |
한천배양 10cc |
0.1cc 0.5cc |
37℃ |
48시간 |
발육× |
연쇄상구균 |
한천배양 10cc |
0.1cc 0.5cc |
37℃ |
48시간 |
발육× |
우식간균 |
한천배양 10cc |
0.1cc 0.5cc |
37℃ |
48시간 |
발육× |
대조 |
한천배양 10cc |
0.1cc 0.5cc |
37℃ |
48시간 |
발육× |
1930년 제3회 ‘충치예방의 날’은 전단지 배포, 무료 구강위생 상담, 신문에 기사 및 광고를 하였다. 1930년 8월 30일 쿠라부 치약에서는 치마교련용 학생 칫솔이 3000개를 기증하기도 했다.20) 1933년 제6회 ‘충치예방의 날’은 치아에 대한 인식의 제고에 중점이 주어졌다.21)
1930년 초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 번 더 자기 전에 효과가 뛰어난 라이온 치약으로 양치질하면, 구취를 없애고, 수면을 상쾌하게 하며, 또한 입속으로 들어온 질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했고, 향기와 맛이야 말로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 하였다.22)
1930년 6월 라이온 칫솔의 광고는 일본에서 의치용 브러쉬의 선구로 주요 특색은 3가지였다.
가. 의치 안쪽의 오목한 부분이 깊어도, 쉽게 청소할 수 있다.
나. 앞쪽의 검은 모 부분으로 의치 안쪽에 붙은 음식물 찌꺼기 등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다. 손잡이 끝부분을 주걱모양으로 만들어, 딱딱한 부착물도 제거할 수 있다.23)
1931년 11월 라이온 칫솔의 광고는 완전히 소독된 칫솔을 판매하고 있었다.24) 1932년 1월에는 내구성이 길며, 열탕 소독이 가능하고, 치아를 닦기에 충분한 힘이 들어가도 휘지 않는 칫솔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 문구로 보아 그 때의 칫솔의 단점은 내구성, 소독의 어려움, 변형이 문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칫솔의 종류도 소아용, 초등학생용, 부인용, 일반대인용을 구분되었으며, 유사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25)
1932년 12월 쿠라부(Club)치약과 쿠라부(Club) 칫솔의 광고는 이를 닦는 좋은 습관과 진보하는 좋은 치약은 근대인의 건강생활에 필요한 제1조건이라고 했다. 쿠라부화장품 제조 발매원 나카야마(中山) 타이요도(太陽堂)였다.26) 치약의 값은 10, 20, 30전이었다.
1933년 1월 쿠라부(Club)치약과 쿠라부(Club) 칫솔의 광고는 품질에서 향과 맛, 감촉, 효력이 제일이며,27) 또한 아침에 쿠라부 페이스트 치약의 사용은 오늘도 상쾌하며,28) 자기 전에 칫솔질은 편안한 잠과 내일의 건강에 좋다고 했다.29) 청량감과 상쾌감을 주어 여름을 유쾌하고 기분 좋게 지나게 한다고 하였다.30) 쿠라부 페이스트치약과 칫솔 사용은 건강하고 빛나는 좋은 치아가 되게 한다.31) 세계적 품질과 근대적 향으로 세계에 내놓을 우량 일본제품 중 하나라 했다.32)
1934년 충치예방의 날’행사는 충치를 국민병이라 하며 박멸하자고 했으며,33) 1934년 조선연합치과의사회 총회는 ‘충치예방의 날’ 행사를 할 때 관청의 후원이 증강되기를 희망하는 건의안이 결의되기까지 했다.34) 이러한 행사에 치약과 칫솔 제조사는 후원을 하며 광고도 하게 되었다.
1934년 1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기술이 소비자의 격찬을 받는다고 하였다.35) 1934년 2월 기술은 오랜 역사로 해마다 평판이 좋아진다고 하였다.36) 1934년 3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치과의사에게 자기 전에도 아이들에게도 라이온 치약을 치아건강을 위해, 이 습관의 실행을, 모든 가정에 권하기를 부탁하고 있었다.37)
1934년 4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경품을 걸고 판매하였다. 상품으로 특등으로 금 속목시계 200명, 사진기 100명, 오르간 100명, 자전거 100명, 1등 크롬손목시계 1000개, 기타 5등까지 20만 명이나 되는 경품을 건 판매였다. 이것은 많은 수량의 치약이 팔리는 것을 의미하며, 수익성이 좋은 것을 보이는 것이다. 그 때의 치약 값은 16전이었다.38)
1934년 7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윤제 라이온 치약을 광고하였다. 또한 여름인 계절에 따른 광고로 청량한 효과와 향을 강조하였다. 이 치약은 계속 유지되는 적절한 정도의 윤택을 갖는 윤제 라이온 치약이라 했다.39) 1934년 8월 ‘윤제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가. 원료 분말이 미세하다.
나. 분가루가 절대 날리지 않는다.
다. 광택(윤)이 고르다.
라. 맛과 향이 아주 좋다. 또한 입을 헹군 후 입안에 향이 남는다.
마. 가격이 월등히 저렴하다고 하였다.40)
1934년 10월 ‘윤제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새로운 상품이 ‘팔린다, 팔린다, 윤제가 팔린다. 재미있게 팔린다’고 하였다.41)
1934년 광고에서는 국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1934년 4월 ‘쿠라브(Club)치약은 일본의 자랑이며, 올바른 마음은 국가를 지키고 좋은 치약은 신체를 지킨다.’와 같았다. 1934년 5월 쿠라부 치약으로 치아는 건강의 제1선이므로 우리의 생명선을 지키자고 하였다.42) 1935년 2월 일본의 자랑 다이남코표(大楠公印) 쿠라브 치약을 사용하므로‘나라를 지켜라’,‘치아를 지켜라’라는 것이었다. 치아는 건강의 생명선으로 건강호국의 희망에 불타서 아침저녁으로 양치질하자는 것이었다.43) 쿠라브 치약은 놀라울 정도로 치아를 튼튼하게 해서 충치가 머물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44).
1934년 10월 크라부 치약에서는 구강위생전람회를 죠지야(丁字屋)백화점에서 개최하였다. 행정기관과 치의학계 후원으로 처음 열린 이 전람회는 구강위생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수십 종의 포스터, 실물모형, 사진 등이 활용된 치과 전반을 다룬 큰 규모의 행사였다45)
주최; 크라브 치약 본포 나카야마 타이요도(中山太陽堂)
장소; 정자옥 백화점 4층 홀
기간; 1934년 10월 22일부터 28일까지
후원; 조선총독부 위생과, 경기도 위생과, 조선연합치과의사회, 경성치과의사회,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
구강위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기 위하여 크라브 본포 표어인 ‘닦으면 빛나는 이(齒)와 마음’,‘입의 관문은 좋은 이(齒)로 지켜라’ 라는 표어로 포스터, 실물모형에 , 사진 등을 이용하여 전시회를 하였다. 치아 병중의 난치로 알려진 치조농루도 쉽게 고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이채로운 것은 구강중심감염계통을 나타낸 높이 11척이 넘는 나체미인 모형에 전기응용으로써 구강질환의 각 감염계통에 대하여 전시한 것이었다. 참관자가 많아 정리와 설명에 힘이 들었는데 출품 목록 96가지였다.46)
1935년 ‘충치예방의 날’ 행사는 관계 당국 및 라이온 구강위생부의 후원도 활발하게 되었다.47) 1935년 6월 4일 행사는, 조선연합치과의사회의 가맹 지역 치과의사회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지역적인 활동이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므로 1936년 6월 4일 행사는 선전물을 각 치과의사회에 더 많이 보내어 구강위생사상을 널리 알리게 하였다.
1937년 이후 ‘충치예방의 날’ 행사는 중일전쟁의 영향으로 일제와 치약회사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였다. 표어를 제정하고, 이 표어에 맞게 전 국민에게 치과위생 지식 보급과 실천하도록 하였다. 더불어 국민정신총동원의 취지와 협력하여 행사를 하도록 했다.
이 시기에 특징 있는 행사는 치마교련(齒磨敎鍊)이었다. 1937년 5월 29일 치마교련은 라이온 치마본포 구강위생부에서 계획․실시되었다. 이것은 군대 훈련의 한 방법인 교련을 이닦기에 도입한 것으로 군국적인 요소가 가득 찬 합동체조, 행렬, 합창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48) 1937년 6월 23일 경성치과의학회 경성지부회는 치마교련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했다.49) 특히 1938년 6월 4일 오오사까(大阪)에서 행해진 치마교련은 70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참여한 사진이 오늘에 남아있기도 하다.50)
1937년 6월 4일 ‘충치예방의 날’ 행사는 제10회로 일반인의 구강위생 인식을 새롭게 하자고 하였다.51) 1938년 6월 4일 제11회 ‘충치예방의 날’은 전쟁 중인 일제와 치약회사의 주도로 선전 방법이 다양화되고 강렬해진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바른 치열에 빛나는 건강’이라는 표어로, 국민정신총동원의 강령인 국민체위향상과 일반민중 보건위생의 취지에 맞게 실시되었다.
1939년 1월 일본은 중일전쟁 후 치약의 광고에서 ‘신동아 건설’이라는 말로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들어내고 있었다.‘빛나는 신동아 건설의 신춘을 맞아, 세상의 건강을 빛과 아울러 앞으로 더욱 라이온 치약의 애용을 바랍니다.’52) 1939년 9월 천만인(10,000,000) 협력대운동으로 자기전의 라이온 치약으로 라디오 시보에 맞춰 칫솔질하자고 획일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충치세균은 밤에 자는 동안에 번식하므로, 자기 전에 라이온 치약과 같은 우수한 치약으로 치솔질하여 세균을 섬멸한 후 자는 습관을 오늘밤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1939년 3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충치, 치조농루를 예방하고, 건강을 강화하는 약용 라이온 치약의 아침저녁 애용으로 건강의 한길을 가자고 했다.53) 1939년 5월 라이온 치약은 입자가 미세한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라이온 치약은 입자가 미세하고 균일하여 치아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강한 흡착제거 작용과 상쾌한 사용감으로 항상 치과계의 왕좌에 있다.’54)
1939년 다이남코표(大楠公印) 쿠라브 치약은 약용 쿠라브 치약을 개발했다. 치약에 살균제 크롤 카르바크롤 및 요오드 티몰을 배합하였다. 구강내 세균은 번식하여 충치․구취․치조농루 등 구강질환의 원인이 되며 악성 유행병을 발생시키기도 하였다. 약용 쿠라부 치약에 배합된 살균제 크롤 카르바크롤 및 요오드 티몰은 10,000배의 희석액이라도 티프스균, 결핵균을 완전히 사멸시킬 정도의 우수약제로 충치예방으로 건강증진에 더할 나위없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8대 전매특허
제 101971호 산소를 함유케 하는 치약 제조법
제 102120호 오존을 함유케 하는 치약 제조법
제 103433호 과산화수수를 안정된 상태로 함유케 하는 치약 제조법
제 115263호 과산화수수를 안정된 상태로 함유케 하는 치약 제조법
제 116641호 신살균제 크롤 카르바크롤을 함유시킨 치약
제 121478호 신살균제 요오드 티몰을 함유시킨 치약
제 124219호 크로라민을 함유시킨 치약
제 125700호 은콜로이드를 함유시킨 치약
이러한 쿠라부 페이스트치약은 13전이며, 각종 반 페이스트 18-25전이었다.55)
3. 맺음말
인류는 입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환을 예방하고 가볍게 할 수 있는 도구로서 칫솔과 치약을 사용해왔다. 칫솔 이전에 이쑤시개는 수메르(Sumer)인, 유대인, 로마인이 사용했고, 고대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는 양지(楊枝)라 부르며 사용되었다. 근대적인 칫솔은 1780년 영국인 아디스(Addis)가 뼈에 몇 개의 구멍 동물의 털을 이용하여 철사로 묶어 칫솔 만들었다고 한다.
입안을 청결하기 위하여 물을 사용하던 인간은 청결과 구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치약을 사용하게 되었다. 14-15세기부터 소금이 치약에 추천되었다. 한국에서는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치약 처방이 있다. 1903년 인천 제물포 상점에서 일본인 아라이 도라다로오(新井虎太郞)가 칫솔을 라이온 치약과 함께 팔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1920년대 칫솔과 치약의 사용은 구강위생에 관한 홍보와 함께 사용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함석태 등 한국인 치과의사와 주한 선교사 반복긔 부인의 글에서 알 수 있다.
1927년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품질에 대한 광고를 하고 있었다. 이때의 치약 광고는 인간적인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1928년 이후 충치예방의 날은 치과의사회의 주관과 치약회사의 후원으로 행사를 치루는 것이 보통이었다. 1928년 라이온 물 치약의 광고는 효과로 청량감을 주는 근대적인 맛을 주는 방향 구강청정제라는 것이었다. 1930년 초 세균에 미치는 실험성적이 공개되기도 하였다. 1929년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자기 전에 이 닦자’라는 표어로 자기 전에 칫솔질하는 효과적인 칫솔질을 제시하기도 했다.
1930년 8월 30일 구강위생을 사회와 학교에 대하여 알리기 위한 행사는 쿠라부 치약에서는 치마교련용 학생 칫솔이 3000개를 기증하기도 했다. 1930년과 1931년 내구성, 소독의 어려움, 변형이 없는 칫솔과 의치용 특수 칫솔을 광고하고 있었다. 1932년과 1933년 쿠라부(Club)치약과 쿠라부(Club) 칫솔의 광고는 이를 닦는 좋은 습관과 진보하는 좋은 치약은 근대인의 건강생활에 필요한 제1조건이라고 했다.
1934년 ‘충치예방의 날’행사는 충치를 국민병이라 하며 박멸하자고 했다. 1934년 광고에서는 국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1934년 4월 ‘쿠라브(Club)치약은 일본의 자랑이며, 올바른 마음은 국가를 지키고 좋은 치약은 신체를 지킨다.’와 같았다.
1934년 10월 크라부 치약에서는 구강위생전람회를 죠지야(丁字屋)백화점에서 개최하였다.
1934년 4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경품을 걸고 판매하였다. 1934년 7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원료 분말이 미세한 윤제 라이온 치약을 광고하였다.
1937년 이후 ‘충치예방의 날’ 행사는 중일전쟁의 영향으로 일제와 치약회사의 의도가 강하게 작용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의 취지와 같이 행사를 하도록 했다. 이 시기에 특징 있는 행사는 치마교련(齒磨敎鍊)이었다. 이것은 군대 훈련의 한 방법인 교련을 이닦기에 도입한 것으로 군국적인 요소가 가득 찬 합동체조, 행렬, 합창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38년 6월 ‘충치예방의 날’은 국민정신총동원의 강령인 국민체위향상과 일반민중 보건위생의 취지에 맞게 실시되었다. 1939년 1월 일본은 중일전쟁 후 치약의 광고에서 ‘신동아 건설’이라는 말로 그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들어내고 있었다. 1939년 9월 천만인(10,000,000) 협력대운동으로 자기전의 라이온 치약으로 라디오 시보에 맞춰 칫솔질하자고 획일화를 도모하기도 했다.
1939년 3월 라이온 치약의 광고는 충치, 치조농루를 예방하고, 건강을 강화하는 약용 라이온 치약의 아침저녁 애용으로 건강의 한길을 가자고 했다. 쿠라브 치약은 치약에 살균제 크롤 카르바크롤 및 요오드 티몰을 배합하여 약용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돌이켜 보면 처음의 칫솔과 치약의 광고는 인간적인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구강위생을 사회와 학교에 대하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1934년 광고에서는 ‘쿠라브(Club)치약은 일본의 자랑이며, 올바른 마음은 국가를 지키고 좋은 치약은 신체를 지킨다.’와 같이 국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1937년 이후 ‘충치예방의 날’행사는 국민정신총동원의 취지와 같이 군국적인 요소가 가득 차게 되었다. 1939년 천만인(10,000,000) 협력대운동으로 자기전의 라이온 치약으로 라디오 시보에 맞춰 칫솔질하자고 획일화를 도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