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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7월 8일, 새벽 별세 하셨다.
수학문화사 1 원시에서 고대까지
안재구, 일월서각, 2000, P. 350
- 안재구(安在求 1933-2020년 7월 8일) 수학자, 경북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
수학문화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노트가 없다. 아마도 다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인류학 년표}에 이 책의 인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디엔가 노트가 있을 것이나, 지금으로서는 찾을 수 없다. / 인류의 역사에서 수가 먼저이고 그리고 기하학이 발생했다는 견해였다. 그리고 천문학이 태동했다는 것이다. 철학사에서도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이다. 천문학에 와서야 동일성과 영속성, 그리고 영원성과 불멸성이라는 철학적 공상이 첨가되리라. 이 책을 종로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보니 내가 보았던 적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제1장 수학의 시초, 제2장 초기 노예제 사회와 수학의 전개, 제3장 고대 그리스 수학까지는 읽은 것 같은데, 제4장 헬레니즘과 수학의 발달, 제5장은 로마 제국의 수학은 읽지 않은 것 같다.
끝나지 않은 길(2013, 두권)을 읽고서, 안선생님을 모시고 서울 마포에 있는 바보주막에서 간단한 모임이 있었다. 그날 선생님은 모임보다 한 시간정도 일찍 오셔서,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선생님은 고대 수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시고,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작업을 많이 참조했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학에 대한 흥미는 어린 시절에 있었다고 했다. 끝나지 않은 길 1 (2013)에서, 1947년 열네 살 때 인데 “나는 내 가방에서 지금 막 보기 시작한 구면삼각 책을 내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수학공부는 언제나 종이와 연필이 필수적이다. (499)” 또한 이 책에서 사범대학 수학과에서 공부했지만, 문리대 수학과에 인연이 깊다고 하였다. 당시 말씀으로는 직업으로서 수학교사가 되겠지만, 학문적으로 수학 연구에 더 많이 관심을 가졌다고 하셨다. 수학문화사에서 고대 수학에 대한 자료들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일반적으로 읽은 수학사에서는 없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어떤 자료를 참조했습니까라고 했을 때,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자료를 참조하셨다고 하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던 중에 감옥에 있을 때, 수학에 관한 자료들을 아무 검열 없이 들여 보내주어서 수학문화사에 대해서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하셨다. (53RKH)
목차
* 책머리에
1. 수학의 시초
2. 초기 노예제 사회와 수학의 전개
3. 고대 그리스의 수학
4. 헬레니즘과 수학의 발달
5. 로마 제국의 수학
* 참고문헌 336 * 찾아보기 339
# 내용 소개는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 내용 소개는 따로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정리해본 선생님의 연표를 올릴 것이다.
# 수학문화사 1: 원시에서 고대까지
* 책머리에 3-5
방대한 자료에서 추려 우선 고대 사회인 원시 공동체 사회와 노예제 사회의 경제적 토대 위에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서 수학의 발달 과정을 담아 그 첫 권을 내놓는다. 그 중에서 인도의 수학과 중국의 수학을 담지 못했는데 다음 권에서 쓰려고 한다. (5)
* 차례 6-9
1. 수학의 시초 11-
수 개념의 발생, 13 / 수사의 발생 16 / 수사의 발달 19 / 숫자의 맹아 28 / 셈법의 발생 31 / 기하학 개념의 발생 34 / 천문학의 태동 37
[§1] 수 개념의 발생, 13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지구 역사의 제4기 초기(약 200만년 전)에 노동 수단(도구)을 사용하여 생활자료를 얻음으로써 지구상에 나타났고, 이 때부터 수, 크기, 모양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했다. (13)
김종택(金宗澤)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어의 ‘하나’는 ‘ᄒᆞᆫᄋᆞᆯ’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태양’, ‘하루’, ‘하늘’과 같은 어원인 것 같다고 한다. 이 말은 또 ‘호롤’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ᄒᆞᇀ’, ‘홑’, ‘홀’이라는 말이 되었고, 만주어의 ‘호돈’이라는 말과 같은 뿌리라고 한다. 또 한국어의 ‘둘’이라는 말은 만주어 ‘두블’이라는 말로 갈라져 나갔다고 한다. (17)
이처럼 나타나는 집합수의 구체적인 성격은 아이들의 최초의 심리과정에서도 인증된다. 아이들의 심리적인 발달 과정은 심리의 역사적 발달과정과 마찬가지로 적은 것에서 많은 것으로 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21) [배태학에서 개체발달은 종발달을 반복한다고 하듯이, 개인의 발달은 사회의 발전과정을 반복하고 난뒤에 자아 발달을 수행한다고 할까? (53RKI)]
현재 쓰고 있는 말 가운데 손ㆍ발의 이름에서 나온 것과 손가락ㆍ발가락의 동작에서 수사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러이사의 ‘피아치’는 ‘5’와 ‘주먹’을 함께 나타내고, 말레이어의 ‘리마’는 ‘손’과 ‘5’를 함께 나타낸다. 한국어의 ‘다섯’은 소가락을 펴가면서 손가락이 ‘다 섰다’는 동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22-23)
이제 양을 헤아리는 데 최초의 한계가 되었던 수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러한 수는 그 자체의 이름이 없었거나 이름이 있었다고 해도 ‘먼지’, ‘별’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뿐이었다. 인도 항하사(恒河沙; 금강경에 나온 말)는 갠지스강의 모래를 의미하는 말이다. 이것은 아주 많을 양을 가리키는 말로 ‘많다’라는 개념과 같은 의미이다. 한국어의 ‘온’이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는데, 나중에 100을 나타내는 말로 되었다. ‘온’이 100을 나타내게 되자 1000을 나타내는 말로 ‘즈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24) [<금강경>을 넘어서 인도에서는, 1068 무량대수(無量大數), 1064 불가사의(不可思議), 1060 나유타(那由他), 1056 아승기(阿僧祇), 1052 항하사(恒河沙), 1048 극(極), 1044 재(載), ... 수의 단위들이 있다고 한다. 무한에서 극(極)이 끝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항하사’, 그리고 더 나아가 ‘불가사의’, ‘무량대수’에까지 많은 것들에 대한 차원을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차원을 구별한 것은 대수학과 지수의 발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53RKI)]
그런데 10진법은 5진법이나 20진법보다 편리하기는 해도 12진법에는 미칠 수 없다. 순수하게 수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12진법은 더 우수하다. 그 이유는 기수 12는 3으로도 4[2]로도 나누어떨어진다. 이 사실은 원주(圓周)나 시간의 문제에서 나오는 나눗셈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진법은 중앙아메리카의 몇몇 종족에 남아 있다. (27) [12진법은 천문의 수이며, 10진법은 땅[가축]의 수이라 할 수 있다. - 666을 짐승의 수라 부른 것은 10진법이 갖는 열등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53RKI)]
12진법에 따라 헤아리는 영국인의 구습은 ‘다스(dozen, doz.)’에 의한 셈법이다. ‘다스의 다스’는 ‘그로스(gross)’이고, ‘그로스의 의 다스’는 곧 ‘매스(mass)’이다. 이러한 관습은 아직도 의복, 식기, 문방구를 헤아릴 때 나타나고 있다. (27) [많음의 뜻으로 mass가 물리학에서 질량으로 쓰인 것은 뉴턴 시대인가?]
러시아에서는 고대 수사 1, 2의 발생이 다음과 같이 밝혀진다. 성별에 의한 변화가 없는 다른 수사와 달리 유독 1과 2에는 남성 여성 중성이 있다(라틴어에서는 수사 3도 그렇다). 즉 형용사로 생각되고 있다. 또 러시아어의 속담에 “일곱 사람은 한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고대 슬라브인은 7이라는 수를 6진법이라고 생각되는 수체계의 한계 다음에 오는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나타낸다. (27)
원시 문화 발전의 비교적 초기 단계에서 이미 언어를 가지고 있었던 인간은 단순한 몸짓과 함께 하는 말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말만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독특한 ‘신호 언어’도 존재하고 있었다. (28) [언어의 기호학이라고 할 때, 혀와 몸짓으로서 언어를 뜻하기보다, 신호 또는 상징으로서 말씀과 말투를 대체하는 방식에서 기호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사의 여러 가지 체계가 분포된 모양을 연구해 보면 하나의 법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 지배적인 사회 기구와 경제기구에 주목한다면, 5진법은 모계제 시대에 발생했고, 더욱 복잡한 10진법은이나 12진법은 부계제 시대에 발생했다는 것이 확실한 듯하다. 그러나 충분히 납득할 만큼 고고학, 민속학, 언어학의 자료에 의한 근거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다양한 체계가, 각각의 풍토와 생태에 맞게, 여러 곳에서 다른 수 체계들이 존속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10진법과 60진법의 두 체계로 각각의 유용성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19세기에 와서야 두 체계를 상호호환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또 주역(周易)의 「계사전(繫辭傳)」에 “상고에 새끼에 매듭을 맺어서 다스렸고, 후세의 성인은 서계(書契)로서 바꾸었다”라는 말이 있다. (30)
그래서 로마 숫자의 발생 방식은 세가지 인데, 즉 부표에서 상형문자로, 또 상형문자에서 변화된 보통의 라틴 문자로부터 발생했다. (31)
[§6] 기하학 개념의 발생 34
기하학의 개념은 질그릇 생산과 방적(紡績), 건설기술, 공예ᅟᅮᆷ의 발생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발달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식기, 바구니, 통발, 그물, 옷감 등의 유물을 보면 이 시대의 원시인은 이미 아주 충실한 기하학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4)
고대 그리스인은 이집트의 기하학자를 ‘하로페니나프트’, 즉 ‘줄 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이름은 아시리아어와 아라비아어에도 있다. 직선에 관한 관념은 방직 기술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36) [이보다 직선의 개념은 피라미드의 건설에 있을 것이다. 태양의 빛에의해 피라밑의 토대가 모두 평행하고 있다. 그런데 정북 방향이 아닌 것은 위도 때문일 것이다. (53RKI)]
[§6] 천문학의 태동 37
예컨대 유목민의 초기 시대에 이미 태음력(太陰曆)은 생겨났지만 태양력은 농경시대에 들어와서도 오랜 세월을 거쳐야 했다. (37) [유목민들이 상상으로 그려 본 하늘의 별자리는 태음력이 아니라 태양력이며, 달의 운행과 태양의 운행을 맞추는 것은 지성이 더 발달해야 했을 것이다. - 태양력은 농경이 시작하면서부터 12달(12진법)의 유용함을 알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곡식과 과일은 태양력을 주기로 자라기 때문이다. 24절기가 주나라의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24(12 분할의 배가)절기의 분류는 12를 매달을 둘로 나눌 필요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53RKI)]
2. 초기 노예제 사회와 수학의 전개 39
3. 고대 그리스의 수학
4. 헬레니즘과 수학의 발달
5. 로마 제국의 수학
* 참고문헌 336 * 찾아보기 339 무한의 극은
* 인명
1939 김종택(金宗澤, 1939-) 경북대 국어교육과 교수, 국어사 전공, <국어 표현구조에 관한 연구, 1977, 경북대>
# 우선 정리해본 선생님의 연표를 올릴 것이다.
# 안재구(1933-2020) 연표
어린 시절 연표 끝나지 않은 길 1, 2에서 :
[1925년 조선공산당 창립. 할아버지, 우정(于正) 안병희(安秉禧 1890-1953) 청년교양 사업으로 활동]
[1927 신간회(新幹會)1927년 2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서울에서 창립한 민족협동전선. 국내 민족유일당운동의 구체적인 좌우합작 모임이다. ]
[1929 원산 총파업(元山總罷業) 1929년 1월부터 4월 6일까지 4개월간에 걸쳐 원산의 전노동자가 파업을 단행한 사건. / 할아버지는 이 시기 형평사(衡平社)운동을 지원했다. ]
[1930 황상규(黃尙奎, 1890-1930) 안재구 할배가 장례위원장, 10인파.
1932 아버지 장가들다.
1933년 10월 24일 아버지 안의환(安義煥), 어머니 김태숙(金兌淑)의 장남으로 달성군 구지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항일혁명가인 우정 안병희(安秉禧) 슬하에서 성장했다.
1935(세살) 디프테리아를 앓다. 함용암선생이 포항 오셔서 저녁식사를 하다 기침소리를 듣고 병을 진단하였다. .
1936? 막내 작은 할아버지에 끌려서, 그는 포항에서 할아버지 집 밀양으로 오다
큰고모 결혼 : 진주 새아재.
1937? 3월 초 큰 할아버지 돌아가시다.
- 1937년 7월 7일 북경 교외 노구교에서 중국군을 기습하여 전면적인 중일 전쟁.
(다섯) .. 옆집 오봉이와 싸우다. - 이 해 말, 재진이 사망 후 포항에서 밀양으로 오다.
1938
- 1939년 9월 1일 제2차 세계대전(Second World War, 第二次世界大戰)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대독 선전포고.
1939(일곱) 아버지 사진관을 팽개치고 밀양을 떠나다.
1940(여덟) 그는 밀양에서 봄 심상(尋常)소학교 입학. / 아버지 경주에 자리 잡다.
4월 할아버지 경찰에 잡혀갔다... 창씨문제 였다.
1941 1월 나는 경주로, 겨울방학 후 1월부터 3월까지(제3학기)를 경주로 가서 경주계림공립심상소학교..
4월 2학년이 되다.
여름 경주에는 장티브스가 유행했다. 7월에 방학이 되자 나는 장티브스에 걸리고 말았다. ..
- 1941 태평양전쟁(Pacific War) 1941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1942(열) 11월 셋째 아우, 용웅(龍雄)가 태어났다. .
1943년 4학년이다. 배급제도 잘 시행되지 않는 시기가 되었다.
[1943년 2월 9일 과달카날 전투(the Battle of Guadalcanal): 1942년 8월 7일부터 1943년 2월 9일까지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선에서 일어났던 전투이다. 이 회전은 육해공 모두에서 일본군과 연합군이 싸웠으며 태평양 전쟁의 결정적인 회전이었다. 전투는 남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섬 근처에서 벌어졌으며 일본 제국에 대한 연합군의 첫 번째 공세였다. /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1884-1943)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이다. 4월 18일 솔로몬 제도의 부건빌 섬 시찰 중 미국의 공격으로 사망한다. ]
1943년 [5월 29일 알류산 열도] 아쯔 섬에서 일본군 수비대가 약 3.000명이 미국의 공격으로 전멸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269)
- 1943 카이로선언(Cairo Declaration)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3년 11월 27일 연합국측의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蔣介石]가 카이로회담의 결과로 채택한 대일전(對日戰)의 기본목적에 대한 공동 코뮤니케(발표 12월 1일)
1944년 2월부터 전면적으로 강제징요이 실시되었다. 징병 적령기를 넘어선 40세까지의 남자는 신체장애자를 제외하고 총동원을 했다.
1944(열둘) 3월 5학년이 되자 새담임 선생은 호시노였다. 별명이 도사껭으로 늘 ‘시나이’[죽도]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마구 팼다.
1944년 8월부터 조선 처녀들에게 전면적으로 정신대 동원을 실시한다고 공포했다.
1945(열셋) 4월, 6학년이 되었다.
1945 5월 밀양읍에서 성만동네로 이사하여(할배의 검속을 피하기 위해) 초동국민학교로 전학했다. ‘
1945 7월 26일 포츠담선언(Potsdam Declaration)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1945년 7월 26일 독일의 포츠담에서 열린 미국, 영국, 중국 3개국 수뇌회담의 결과로 발표된 공동선언.
1945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 8월 8일에는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 9일에 나가사끼 원폭투하 10일에는 무조건 항복 통보하고 8월 15일 항복선언.
1945(열셋) 08 15 해방과 그 다음날부터 미군정 포고...
9월 개학에는 다시 밀양읍 제이국민학교에 다녔다.
- 1945 9월 9일 맥아더 포고령 제1호는 미군이 한반도에 입성했을 때 발표한 통치에 대한 포고문이다. 이 포고문을 통해 미군이 직접 한반도를 통치하는 미군정을 선포하였다. (47NMC)
1948년 15세 때, 남한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참가하였다.
1976년 2월. 경북대에서 ‘국가관 미확립’이라는 이유와 학생운동에 동정적이라는 구실로 재임용 탈락.
1976년 2월 무장혁명을 목표로 한 지하 조직이었던 남민전 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가 1979년 10월에 체포돼 1980년 사형이 선고됐지만, 같은해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했던 수학자 수백명이 한국 정부에 보내는 구명 서한에 연대 서명한 덕분에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988년 가석방됐다.
1977년 3월 -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 교수로 재임명
1979년 9월 - 숙명여자대학교 이과대학 수학과 교수로 전임.
1979년 10월.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으로 체포.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세계 수학자들의 항의 덕분에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았다.
1988년 12월. 가석방.
1989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1989)(광야)
1990 철학의 세계 과학의 세계(1990)(죽산)
1991년. 경희대학교 교양학부 강사로 재직하면서 ‘현대사회와 과학’ 강의
1992 쉽고 재미있는 수학세계(1992),
1994년, 6월 14일. 이른바 구국전위(救國前衛) 사건으로 아들 안영민과 함께 구속, 무기징역 선고. 그는 6년, 안영민은 3년을 복역했다. (서울지방법원94고합1351 서울고등법원95노52 대법원95도1121)
1997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1997)(2권, 돌베개)
1999년 8월 15일. 형 집행정지로 석방
2000 수학문화사: 원시에서 고대까지(2000)(일월서각)[재판일 것이다] <초판은『수학문화사(일월서각, 1990)』이 맞을 것이다.>
2003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아름다운 사람들, 2003)(안재구 안영민, 한겨레)
2013 끝나지 않은 길 1, 2. (2013)(2권, 내일을 여는 책)
2013년에 국내 진보단체 등의 동향을 작성하여 대북 보고문 형태로 소지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징역3년 자격정지3년 집행유예4년을 선고받았다.(서울중앙지법2012고합1828)
2019 87세 생신을 축하하는 모임: 10월 19일 12시 천도교 수운회관 수운회관 -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 이규재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이사장, 권낙기,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 김한성 615 학술본부 대표 등등.
2020 7월 8일 별세. / 통일원로 안재구 선생이 8일 새벽 4시 30분 군포 소재 새소망요양원에서 별세했다. /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3층 1호, 장지: 밀양 선영(先塋).
(3:15, 53RKH) (3:23, 53RLC)
첫댓글 선배님은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라 한다.
여기 {"마실에서 천사흘 밤"}에서
검색란에 <안재구>, 또는 <끝나지 않은 길>
"안재구(1933-): 끝나지 않은 길(2013, 두권)"의 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