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림은 인간 내면을 담고 있다
몽우 조셉킴,
세계속에 한국 심는 '천재화가'로 부각
"한국 미술의 고래, 서정적 피카소"....해외에 더 큰 호평
최근 천재 화가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몽우 조셉킴(30․동서양 추상화 화가)을 만나고 남은 가장 큰 진폭의 여진은 이러했다. ‘어느 대학, 누구의 제자, 어떤 상, 어디 출신… 다양한 사회적 잣대들이 인간의 잠재능력을 짓누른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를 칭송하고 풍파에 나약해진 인간의 그 어깨를 가눌 수 있게 해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 -몽우, 정말 몽우(夢友)다 한국사회에서 과거의 학벌과 현재의 방향은 서로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벌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 사람의 현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일류대학 나온 학벌 대단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현재의 인간 모습을 비루하게 치부되고 급기야 보류처분 된 삶으로 치닫게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대할 때면 안타까움이 마음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몹시 불쾌한 기운이 불쑥 고개를 들이댄다. 이번 몽우 조셉킴과의 인터뷰는 사실 사전에 다른 매체를통해 이미 그의 이야기를 접하고 다양한 정보를 알고 갔던 터라 이러한 감정이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있길 바랬으나 끝내 모습을 드러냈고 엉뚱한 질문공세로 이어졌다.
성공가도를 걷다 빚보증을 잘못 서게 돼 인생의 밑둥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됐고, 때문에 지금은 2001 아울렛 5평 남짓한 공방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찾아가고 있다는 몽우 조셉킴을 만나 “지금이라도 학교 다시 가고 싶은 생각 없으세요?”라고 물었다. 그에게서 되돌아온 대답은 걸작이다. “학교 나오는 것과 그림 그리는 감정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제 학벌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몽우 조셉킴은 사실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 이기 때문에 학벌위주 화단의 아웃사이더로 불려지기도 했고, 사실 그(?) 이유로 한국이라는 곳에서 날개를 펴지 못했던 화가다. 그렇지만 해외에서는 그의 진가를 높이 사 칭송 받고 있는 화가. 그가 한 마디로 몽우 조셉킴이다. 아버지가 화가였던 유전자를 이어 받은 것인가. 2살 때부터 장판 등 보이는 곳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그와 그림과의 인연은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어느 날은 사흘 치 식사를 한꺼번에 하고 밤 낮 잠을 자지 않고서도 그림만 그리기도 했단다. 또 어느 때는 밥을 먹다가도 반찬을 이용해 식탁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에게 그림은 과거이고 현실이며 미래이자 인생의 가장 귀중한 보배이며, 현실을 떠난 즐거운 상태(?) ‘몽우’가 된다.
-한국 사회적 잣대 너머 해외서 호평 몽우 조셉킴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유태계 화가로부터 그림지도를 받게 됐던 것이 자신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은 1999년 겨울의 입구다. 뉴욕 브르클린 파티장, 규모는 작지만 한국 미술과 고미술을 사랑하는 컬렉터들의 작은 모임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곳에서 거래되는 작품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그 당시 이중섭, 박수근, 중광의 작품도 몇 점이 있었으나, 미국의 유명한 아트 포스터 제작자가 이를 지나치고 귀퉁이에 전시된 몽우 조셉킴의 작품 300점을 그 자리에서 몽땅 사버리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 한 유명한 컬렉터는 몽우 조셉킴에 대해 “한국 작가 중 조셉킴 이란 작가의 작품을 보았는데 그는 마르크 샤갈의 꿈과 호안미로의 시상과 피카소의 낭만을 한국정서로 꽃 피운 화가이다”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당시의 그림은 14살때부터 그린 그림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몽우 조셉킴은 자신을 감추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다행히 지금은 거의 완치가 됐지만 20세 젊은 나이에는 임파선 암 진단을 받았고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00년에는 빚보증을 서게 돼 채무에 시달리는 악재가 그의 인생 역경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몇 해전 인사동에서 우연히 몽우 조셉킴의 작품을 접하고는 한 눈에 반해버린 토마스 마틴이라는 독일의 화가이자 수집가가 이 소식을 접하곤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서 오는 2012년까지 그를 지원하겠다고 계약 한 상태다. 하지만 이 마저도 계약 기간동안 우수한 작품을 그려내 그에 걸맞는 보답을 해야 하는 입장이란다. 그렇지만 최근 다시 그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한 영화사는 몽우 조셉킴의 삶을 다룬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 할 뜻도 밝혀왔다. -몽우, 그가 살고 있는 요정마을은 진정으로 황홀했다
외국인들로부터 뛰어난 색감과 창조적인 고전미를 높이 평가받고 있는 몽우 조셉킴은 본인만의 작품색을 확실히 가지고 있는 화가이다. 그의 작품은 언뜻 보면 너무 평범해 보이지만 그 평범함 속에는 시상이 담겨져 있고,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절묘한 묘방을 제시하는 희망의 힘이 보여진다. 몽우 조셉킴의 뇌에서 전파되는 작품 세계는 마치 요정 같은 힘이 있다. 보기에는 연약할 것 같이 작은 몸이지만 보는 이들에게 놀라운 마력으로 다가오는.
다시금 과거․현재․미래를 담아 채색하기 시작한 그의 요정마을은 진정으로 황홀하다. 단순히 보여지는 테크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작품을 통해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언가를 제시해 줘서 좋다는 것이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진다. 아무리 짙은 암흑이 다가와도 그 어둠이 지나면 반드시 밝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어둠을 경험한 사람이 그 시대의 감정을 알고 제대로 표현 할 줄 안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릴 것이라는 의미이다.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도 기꺼이 승화시켜….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요정마을의 세계가 어디까지일지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막연한 미래의 어느 날 몽우 조셉킴의 색깔을 다시금 보았을 때, 이번엔 확연한 단식이 아닌 무지개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위의 글은 안산이 자랑하는 최고의 잡지 "안산 라이브 21" 10월호에 실린 최지현 기자님의 글입니다. 안산 라이브의 최기자님은 몽우 선생의 그림을 몇점 보지도 못하고 이런 훌륭한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이는 뛰어난 기자의 안목과 혜안이 아닐까요. 다른 몽우님의 신문 기사나 혹은 다른 잡지 기사에서도 대부분 몽우님의 뛰어난 유화를 보지 못하고 종이에 그린 그림 일기만 보고서 감탄을 하여 기사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몽우님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도 전에 단편적인 일기만 보여주고도 상대방을 압도합니다.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이 쓰는 일기속에 탁월한 그림 솜씨를 보인 몽우 선생님의 그림일기는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드러내는 핵심같은 유화의 방향성을 나타내주는 걸작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몽우님의 전각은 고려시대의 명품으로 유명합니다. 배용준씨가 도장을 새긴 것을 비롯하여 김보성씨는 국내의 유명 연예인들이 이미 몽우님이 직접 새긴 도장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몽우님은 한때 조각에 미쳤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왜 조각에 몰입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몽우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림만 그리면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도 조각을 하게되면 미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조각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몽우님의 이 말은 왜 뛰어난 화가들이 조각에 손을 대는 가를 알려주는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림만 그리다가 미쳐버렸고 이중섭도 그림만 그리다가 미쳤습니다. 이런 미침 증세를 완화하기 위해서 몽우님은 조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뛰어난 화가들이 조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조각은 그만큼 그림보다는 어렵고 남들이 이해를 해주지 못하는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천재적인 화가들이 자신들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몽우님은 이를 명쾌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몽우님이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이 아닌가요. 조각에 빠지면 패가망신하던지 아니면 미술가로서의 명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화가들이 조각에 대해서 애증의 관계를 보이는 것임을 몽우님의 말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몽우님은 한때 조각에 전각에 빠져 인생이 망가지고 또한 한편으로는 그림을 버리고 조각이나 전각을 하면서 생활을 영위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각을 멀리하고 전각도 정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는 몽우님은 만인들이 바라는 바로 그 유명한 미치고 싶은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특히 "안산 라이브 21"의 기사가 작성이 되고 나서 몽우님의 본격적이고도 놀라운 유화 작품이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50호짜리 대작이 줄줄이 완성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 유화 작품을 보고는 매장에 있는 분들이나 일부러 작품을 감상하러 온 사람들은 작품에 압도되어 할말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국내 화가 중에서 아무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작품을 그려내는 화가는 지금까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전설 속에 솔거가 그림을 그려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몽우님의 그림을 그런 상황을 방불케 합니다. 이런 놀라운 현상을 조금이라는 눈치를 채는 사람이라면 몽우 선생님이 세계 최고의 천재화가라는 칭호에 대해서 모두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 파악한 최기자님도 위의 글처럼 좋은 평가를 해 준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안산 라이브 21"의 기사는 천재화가 몽우님에 대한 평가를 미리 암시하는 좋은 글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기자들 끼리 통하는 이심전심이라고나 할까요. 또한 많은 컬렉터나 채권자들 그리고 매장에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몽우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안산 라이브 21"은 잡지에 수록된 몽우님과 그에 관련된 사진만으로도 쉽게 보아서 알수 있듯이 최고의 퀄리티를 가진 잡지로 전국 지역 월간지 뿐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지역 월간지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베스트 오프 베스트"라는 명성을 가진 최고의 월간지임을 밝혀드립니다.
"안산 라이브 21"에 실린 것은 또 다른 최고의 잡지인 삼성 VIP 플라자 메가진 "라이프 뉴"에 실린 이후 두번째의 성과입니다. 다시한번 "안산 라이브21"에 감사를 드립니다.> |
출처: 천재화가몽우 원문보기 글쓴이: 오산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