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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1 스크랩 가족 병리 현상의 통합적 이해
산책 추천 0 조회 488 18.01.11 11: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주요 가족 병리 현상의 통합적 이해

 

 

1. 가족 치료 이론의 생성과 주요가족 병리현상의 etiology(원인)로서의 사회적 배경

 

개인의 인격 발달과 사회적 인간 관계에 대한 학문인 심리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세계관의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개인의 인격이나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 같은 개인의 인간 관계는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즉, 그 사회와 그 시대의 세계관에 의해 좌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 세계관의 변동

세계관의 변동을 봉건주의 시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post-modern)로 크게 삼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봉건주의 시대(premodern)는 경제적으로 노동 집약적인 농경사회로서 하나님의 문화 명령, 즉,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창 1: 28)는 말씀을 수행하기 위해 가족 제도로는 대가족 제도가 필요했다. 자녀를 많이 두기를 원하는 사회였다. 대가족 제도 속의 올바른 인간 관계의 기본적 틀은 권위와 순종이었다.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종이가 귀했을 뿐 아니라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였으므로 책이 많지 않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진리의 키는 노인들의 인생 경험 자체가 그들의 삶의 진리의 보고였고 기준이었다. 예를 들면, 파종 시기에 대해 노인의 경험에 귀기울이지 않는 자는 농사를 망치게 되었고 그것은 곧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사회는 인간관계의 도덕성과 영성, 그리고 사회 공동체를 생명처럼 여겼고 온 마을이 한가족이었고 그에 반발하는 자는 가차없이 추방되었다. 안타깝게도 윗사람의 권위의 남용을 막을 수 없는 부패를 초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봉건주의 시대의 장점은 수직적 인간관계에 있어서 평생을 함께 동고동락함으로써 서로 간에 끈끈한 희생과 헌신의 정신이 당연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식의 절대적 진리성을 믿었다는 것이다. 단점을 든다면, 윗사람의 독선으로 권위가 남용되었을 때에 막을 수 없는 비극이 인간 관계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윗사람이 추방을 명령하는 극단적 상황이 아닌 한, 부부는 어떤 경우에도 이혼할 수 없었다. 이혼시에 여자가 먹고 살 방도가 없었으므로 이혼은 단순히 이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직결되어 있었다.

둘째, 근대(modern) 사회는 봉건주의 인간 관계와 그 제도의 부패로 말미암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기독교 왕국이던 유럽의 제도권 교회들이 극심한 부패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함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진리 안에서의 가치 있는 삶을 박탈하게 되었고 이것은 십자군 운동과 회교권의 침공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로 뼈저리게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고통 중에서도 사람들은 성경의 해석권을 갖고 있던 교회에 감히 도전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성경이 아닌 헬라의 고대 철학에서 인간의 본질과 만물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시도 가운데 문예부흥(Renaissance)과 함께, 나아가서는 진리를 발견하는 도구로서의 이성을 신뢰하게 되었다.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 주관적 세계인 감정과 종교는 그야말로 주관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영역이 되었고 종교는 개인과 가정의 사적인 생활의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객관적 세계인 이성과 과학은 이성의 보편성, 중립성, 절대성으로 말미암아 보편적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도구로 확신되었고, 나아가 대학의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수학, 과학, 정치학, 경제학 등 학문을 생산하며 공적인 세계를 이루며 현대의 이분법적 가치관의 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기독교도 개인 영성으로 치중하게 되었고 공동체(community)의 중요성은 약화되었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화로 개인주의적으로 인간관계가 형성하도록 하였다. 합리적 사고가 인간관계의 원리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인쇄활자가 발명되어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고 많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종교개혁을 가능케 했고, 지식이 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산업화가 되면서 가족제도는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변했다. 일터를 따라 집이 일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생의 인간관계에서 단기적 이익추구의 인간관계로 인간관계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봉건제도의 불합리성에서 탈피하려고 했는데 근대의 합리성 가운데 봉건주의 속에 있는 헌신과 희생의 정신이 없는 것을 보고 당황하게 되었고, 이런 영성과 도덕성의 결여는 제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였다. 합리적인 서구가 가장 합리적으로 유대인 학살의 만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이런 현실 앞에 유럽의 지성은 보편적 진리 발견의 도구였던 이성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고 상대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 관계의 헌신과 희생은 급속히 약화되고 이해관계에 입각한 사고로 말미암아 이혼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셋째, 현대(post-modern)는 이성에 대한 낙관과 절대적 신뢰가 무너지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같이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만 그 인식에 있어서의 상대성을 인정하면서 진리의 복잡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진리는 단면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관측자와 관측물의 관계에 의해 그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똑같은 성경을 읽어도 초신자와 집사와 장로, 목사의 보는 깊이가 각각 다르며, 또 남녀에 따라 성경 적용의 각도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아는 지식은 참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그런 온전한 지식이 아니고 부분적인 지식일 뿐이라는 겸손과,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진리 안에서 점점 변화되어 가는 과정, 곧 성화의 과정에 있다는 인식이다. 우리는 서로 교제함으로 더욱 서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진리의 공동체적 성격을 지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도의 지식과 정보는 근대 가족의 가부장적 요소를 해체하고 개인의 자기 실현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그리하여 개인이 창조적인 고도의 지식만을 가지게 되었고, 올바른 영성과 도덕성은 상실하게 되어 제 1, 2차 세계 대전에는 비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재앙을 초래하는 사회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주관적 감정과 진실을 강조하는 현대에서 그 주관적 감정을 제어할 올바른 영성의 결여는 가공할 공포를 자아낸다. 자기의 내적 쾌락을 위한 연쇄 살인 사건과 같이 말이다. 마치 현대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최첨단 차와 같다. 멋있고 짜릿하고 극히 편리하지만 방향타를 잘못 잡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한국은 지금 복종적인 봉건주의에서 구조조정과 합리적 투명성을 요구하는 근대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겉은 근대적 모양이나 내용적으로는 아직 봉건주의적 사고가 많이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독창성과 자기 감정을 중시하는 현대의 물결이 밀려들어와 세 시대가 동시에 가족 관계나 인간 관계에 혼재해 있으면서 인간 관계의 갈등과 혼란을 빚어내고 있다.

(2) 가족에 대한 인식 강조

주님은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와 나와 이웃의 사랑의 관계를 기독교의 정수로 요약하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곧 그것이다. 올바른 인간 관계는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 올바른 인간 관계형성의 마지막 보루는 아직도 전적 헌신과 희생적 사랑이 남아 있는 가정이라는 영역이다. 이 '가정'이 해체되면 인간은 하나님과 그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는 마지막 주요 영역마저 잃게 되어서 실제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표현할 길을 잃게 된다. 또 주님께서는 부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시고 신비롭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이혼율이 50%에 달하고 있고, 신앙인들이 이혼율이 더 높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슬프지만 한국도 30% 이상의 이혼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성직자의 이혼도 주변에서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가운데 개인의 자아 실현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있는 현시대 속에서 우리의 가정은 살아 있는 복음과 올바른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의 형성을 위한 마지막 영적 전쟁터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주요 가족 병리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겠다.

 

2. 간략한 가족치료 발달과정에서의 가족 병리 현상의 위치

 

가족치료의 발달과정이 그림1(김유숙, p. 76, 뒷면 참조)에 잘 나와 있다. 가족 치료학은 프로이드와 같은 개인 심리학의 서양적이고 선형적이며 결정론적이고 가치중립적이며 축소주의 오류에 빠지는 과학적이며 근대적 세계관으로부터 전진하여 세계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순환논리적이며 관계적 전체적인 인식의 주관성과 자유 선택을 강조하는 현대적 세계관으로부터 나왔다.

Becvar는 그의 책 "가족치료학:체계론적 통합"에서 1940년대를 가족치료학의 모종기(Nobert Wiener, Gregory Bateson), 1950대를 착근기(Bateson, Nathan Ackerman, Murray Bowen, Carl Whitaker, Theodore Lidz, Lyman Wynne, Ivan Boszdrmenyi-Nagy, John Elderkin Bell, & Christian F. Midelfort), 1960년대를 발아기(MRI, Salvador Minuchin)로 보았으며, 1970년대를 번성기라고 하여 6개 정도의 가족 치료유파가 형성된 시기로, 1980년대를 각 유파의 연결과 통합의 시기로, 1990년대를 도전과 혁신의 시기로 보았다.

가족치료의 맥락에 따르면 가족치료는 구조중심치료(Bowen, Minuchin)에서 습관중심치 료(MRI)를 거쳐 의미중심치료(Satir, Milano Group) 그리고 경험중심치료(Whitaker)로 발전했다. 가족치료 접근 방법으로는 초기 Bowen의 과거지향, Minuchin등의 문제 지향치료에서 Satir, Whitaker등의 현재 지향 및 성장지향치료 모델로 변화 발전되었다. (한국상담아카데미, p. 50)(그림 2, 3)

이러한 다양한 가족치료 이론들 중에서 이 글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주요 가족 병리 현상은 다음과 같다.(Goldenberg, p 71-100, 114-121)

1) MRI(Bateson, Jackson, Haley & Weakland)의 이중구속 메세지(Double Bind massage)

2) Laig의 위장(mystification)

3) Watzlawick, Bateson, & Jackson의 대칭적, 보완적 관계(symmetrical or complementary relationships)

4) Minuchin의 속박과 유리(enmeshment & disengagement)

5) Minuchin, Montalvo, Guerney, Rosman & Schumer의 비행조성의 가족

6) Minuchin의 정신·신체적 가족

7) Bell의 속죄양

8) Ferreira의 가족 신화(family myth)

9) Wynne, Ryckoff, Day & Hirsch의 가성상호유통(pseudomutuality)

10) Lidz의 결혼 균열과 결혼 왜곡(marital schism & marital skew)

 

3. 병리 현상의 통합적 이해를 위한 신학적 입장과 3가지 주요 해석틀

 

(1) 가족 문제에 대한 조사(그림 4)

Beck과 Jones의 “Progress on Family Problems(1973)”에 보면, 미국 내 266개 상담소 보고를 바탕으로 부부문제를 조사한 결과 부부 10명중 9명이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불평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결과는 가족문제에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특히 자녀문제보다도 2배나 많음을 보여준다.(Goldenberg, p. 75)

 

(2) 가족 관계 신학 (그림 5)

가족 관계는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모든 사회적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이다. 이 가족간의 관계에 의해 한 개인의 인격형성의 토대가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가족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족 관계는 하나님의 가족의 창조와 그 창조하신 가족의 인간관계에 대한 규정을 언약적 서약의 형태로 주신 그 때로부터 시작한다.

이 언약적 서약은 그 밑바탕에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전제하고 있다.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독교의 핵심은 주님께서 요한복음 15장 12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해 나타나 있으며, 이 말씀은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토대로 한 무조건적 사랑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사랑을 의지로부터 나오는 헌신(commitment)과 서로 간에 아는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친밀함(intimacy), 그리고 서로 간에 뜨거운 감정으로 나오는 열정(passion)의 세 요소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시작부터 하나님의 사랑 곧 구체적 하나님 사랑의 표현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구속사적 신앙으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나의 존재의 기원과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총체적 해답이다.

사랑은 헌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영적, 도덕적 기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 있어 사랑은 상대방을 얼마만큼 어떻게 사랑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서로간의 사랑의 확인과 서약이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의 하나님을 향한 서약이다. 그러므로 부부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문제는 곧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결혼이 하늘과 땅의 엄청난 차이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결혼의 엄중성과 신성함이 그리스도인의 결혼식에 앞서 반드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사랑 또는 올바른 인간관계는 의지적 헌신으로 시작되지만 서로간에 알아 가는 과정, 곧 친밀함(intimacy)을 통해 성숙하게 된다. 서로간의 생각의 차이와 감정의 차이 그리고 가정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의 차이를 어떻게 용서하고 이해하며, 관용 안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실제적으로 알고, 서로를 더욱 깊이 사랑하는 방향으로 창조적인 해결을 하는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이 과정 속에서 개인은 하나님과의 연합, 그리고 서로간의 연합을 통해 자신을 참으로 알게 된다. 칼빈이 말한대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은 서로 병행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의지적 헌신으로 시작되어 이러한 친밀함을 통해 성숙되며 사랑의 열정(passion)을 통해 아름다워진다. 의지와 지식이 사랑의 민감성에 의해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는 것이다. 이 사랑의 세 요소가 다 중요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의 부분인 친밀함이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3) 친밀함의 수준(Levels of Intimacy, 그림 5)

이 친밀함의 수준에 대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기초적 수준의 이야기이지만 때로 우리는 이 이론의 중요성을 간과한다.

<1st step : 진부한 말(cliche)의 단계> 친밀함의 첫 단계는 진부한 말(cliche)의 단계이다, 진부한 말이라는 것은 그냥 습관적인 말의 유동을 뜻한다. 부부간에 "집 잘 봐요", "회사에 잘 다녀오세요"하는 말들이다. 경상도 남자들이 밖에 나갔다 돌아온 후 무뚝뚝하게 말한다는 "밥 묵었나?" "아는?" "자자!"하는 말처럼 실질적 대화 소통이 아닌 그냥 인사에 그치는 말이다.

사실 삶의 변화가 많지 않고 단조로우며 사회자체의 변동이 심하지 않은 봉건 시대나 시골에 있어서는 이런 정도의 대화 유통만으로도 서로간의 생각이나 감정을 알기에 충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간에 많은 교육을 받고 방송매체를 통해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급변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이런 수준의 대화로는 부부간의 서로를 알아가기보다는 서로가 남남이 되기 쉬울 것이다. 몸은 같이 살지만 생각과 감정이 달라지고 삶의 공유의 부족으로 부부로서의 삶의 의미와 행복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부부간에만 아니라 부모 자녀간의 관계와 모든 다른 가족간의 관계 그리고 사회에서의 인간관계에도 해당되는 일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저 하나님께 식사기도와 형식적 대화의 관계를 갖는 정도의 친밀함을 말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문제 해결이나 지식의 새롭게 함이나 하나님과의 교제의 감동은 없는 그런 친밀함이다.

<2nd step : 사실을 서로 보고하는 하는(reporting the facts) 단계> 이 단계는 부부간에 하루의 삶 속에서 서로간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서로에게 얘기하고 나누는 단계이다. 곧 삶의 사건을 공유하며 삶의 문제들을 같이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대화의 수준이다. 사실 이 정도의 친밀도를 갖는 것도 바쁜 도시 생활을 하며 남편이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에 지친 현대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가족인 성도간의 교제에 있어서도 대개 진부한 말 수준에 머무르며, 교회에서의 특별한 일 외에는 서로 간에 삶의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 힘든 것을 본다. 삶의 공유가 서로 기도하고 사랑하며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하기(gossip)로 변질하여 오히려 친밀함에 역행하기도 한다.

이 단계의 친밀함에 들어가려면 서로가 삶을 공유할 때 그것이 용서되고 이해되고 문제 해결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 서로간의 신뢰가 필요하다. 이것은 단기간에 되지 않고 삶의 과정을 통해 서로 간의 긍정적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나는 열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 오려면 부부간에 용서와 이해와 협력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나의 모든 짐을 대신 지시는 분임을 믿고 기억할 때 이 단계의 친밀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삶의 사건을 주관하시는 분인 것을 체험하게 된다.

<3rd step : 서로 생각을 교환하는(exchanging thoughts)단계> 이것은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든지, 또는 사건중이라도 서로 다른 견해를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함께 보다 나은 일치된 대안을 만들어내는 단계이다. 즉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지적 합일과 성장을 가져오는 과정이다. 그것이 돈 쓰는 것일 수도 있고, 자녀에게 매를 대는 것일 수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과정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는 겸손을 통한 자기 생각의 부인 또는 더 나아가 겸허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비우고 자기와는 다른 타인의 의견을 인내로써 끝까지 경청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이런 겸손과 인내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며 포용하는 자세가 없이는 이 단계의 친밀함(intimacy)에 도달할 수 없다.

서구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서구의 토론식 교육제도와 우리의 주입식 교육제도와의 차이로 서로 생각을 교환하는 차원의 부부간의 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서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정당간 정책적 차이를 대화한다든지 경제적으로도 물건을 사고 팔 때 서로 생각을 교환하는 경우가 드문 것을 본다. 사실 많은 부부문제 세미나와 자녀 교육 세미나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심한 갈등이 이 단계의 친밀함을 경험하지 못함에서 생겨난다. 주입식 교육의 흑백 논리적 사고 패턴을 토론식 창조적 사고 패턴으로 바꾸지 못한 것이다.

바로 이 단계의 친밀함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상담자가 필요하고 상담자의 역할은 대부분 이 단계를 훈련받아 전문적으로 인간 관계의 문제 해결을 돕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단계의 대화 훈련과 경험이 풍부해야 국론 통일과 창의성에 바탕을 둔 벤처기업이 가능하고 여러 복잡한 갈등 속에서 우리 나라의 선진국 진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부부간의 성숙이나 서로 당을 지어 싸우는 것 등이 이 단계를 경험해야 해결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려면 일방적 주입식 성경공부가 아니라 어떤 일을 놓고 기도와 말씀의 묵상을 통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고 하나님의 대답을 듣는 인격적 교제로 다른 사람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하여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참으로 성숙한 삶을 살게 된다.

<4th step : 서로 감정을 나누는(sharing emotions) 단계> 이 단계는 지적인 토론이 계속해서 평행선을 이룰 때, 갈등이 심화 될 때 필요하며 나타나지 않은 내적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때 필요하다. 깊은 마음의 상처와 마음속의 편견이 치료받기 위해 필요하다. 감정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변덕스럽고 의지하지 못할 만큼 변화가 심하며, 근거가 없이도 변화하기 쉽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감정은 지성보다 섬세하고 부드럽고 날카로워서 통합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순간적으로 상대의 모순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대화에 언어적 커뮤니케이션보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감정은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나타내주는 램프일 뿐이다. 지적인 토론이 평행선을 그을 때 이 수준의 친밀함을 가진 사람은 그 일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무엇이고, 왜 그 일 또는 그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며, 우리 자신의 내적 상처나 상대방에게서 알지 못했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이 단계는 상대방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솔직하고 담대한 용기 그리고 절대적 사랑을 요구하는 단계이다. 그렇지 않고는 내 감정까지 솔직히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전인격대 전인격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내 자신의 전인격을 상대방의 전인격과 함께 체험하며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5th step : 하나가 되는 느낌(feeling oneness)단계> 이 단계는 상당한 대화의 시간과 조급하지 않는 환경 그리고 초점 있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단계이다.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전인의 만남과 하나됨의 느낌이 가족간에, 다른 사회적 인간관계에, 그리고 교회의 성도의 교제 속에서도 드문 체험임을 본다. 그러나 참다운 성숙은 이런 전인의 만남 속에서 나오는 열매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단계의 친밀함은 하나님과의 집중적이고 오랜 기도가운데 얻어지는 것이다. 이 단계의 친밀함의 가장 큰 적은 탐욕과 경직된 마음, 그리고 근본적 인생 목표의 차이이다. 이것이 있으면 이 단계의 친밀함은 생기지 않는다.

 

(4) 인간 관계 갈등 구조의 해결원리(그림 6)

이러한 참다운 친밀함은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Jung은 인간 관계의 갈등은 불과 같아서 그것이 통제되지 못할 때 서로를 잿더미로 만들지만 단지에 넣어 서서히 태우면 빛과 따뜻함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의견이 다를수록 자신이 보지 못했던 부분을 보게 되어 갈등은 빛의 역할을 하고 그것은 보다 깊은 친밀함과 사랑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관계의 갈등 해결 방법에는 5가지 갈등 해결 방법인 후퇴(withdraw), 양보(yield), 승리(win), 타협(compromise), 해결(resolve)이 있다.

<후퇴 : Withdraw> 후퇴는 그 집단에서 인간 관계에 대해 개선될 희망을 잃고 절망하며 자기 자신의 목표나 필요의 충족 곧 인생 문제의 해결에 대해서도 절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 관계에 서 후퇴하는 사람은 인간 관계에 있어 자신과 남에 대한 판단과 정죄의 쇠사슬과 삶의 문제 해결에 있어 무력감을 느끼는 2중의 감옥에 갇힌 자이다. 심하면 우울과 중독 그리고 폭력으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자나 여자가 대화를 기피하고 후퇴(withdraw)할 경우 그것은 서로 싸우는 것보다 심각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한 사건이 아닌 사람자체에 대한 절망과 그로 인한 대화의 단절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 자녀관계에 있어서 자녀가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 부모를 피해 자기 방에 들어간다면 이것은 부모에게 대드는 것보다 심한 절망의 표현이다. 부모와 얘기해야 문제만 악화되고, 부모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한 교인이 점점 교회에서 멀어질 때 혹은 한 단체에서 한 회원이 멀어질 때 그 멀어지는 개인은 그 집단의 문제점을 다 포함하고 있다. 물론 개인이 문제일수도 있지만 그 집단이 그 문제에 적어도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멀어지는 개인과 얘기하고 그 이유를 아는 것은 교회 성장이나 어떤 집단의 성장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지시판이 될 것이다.

<양보 : Yield> 양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상대방의 의견을 따르는 문제 해결 방식이다. 이 방식은 우선은 인간관계는 파괴되지 않지만 자신의 목적과 필요가 충족되지 않아 문제가 쌓여 언젠가는 폭발하여 인간관계도 파괴되는 형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희생당하는 어린양으로 의롭게 생각하기 쉽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년 및 노년의 부부관계에서 아내에게 강요되던 갈등해결로 인해 중년 및 노년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또는 상하관계에서 밑에 있는 사람이 취해야할 태도로 여겨졌다.

이 갈등 해결의 주요문제는 이런 인간관계는 흑백논리의 인식론에 근거해서 한사람의 생각이 맞으면 상대방의 생각은 틀리고 상대방의 생각이 맞으면 나의 생각은 틀리다는 그 사람의 생각과 그 사람자체를 동일시하므로 한 사람의 생각과 다른 의견이 나오면 곧 그 사람은 자신에게 도전 내지 반대하는 적으로 간주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곧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 or)의 사고로 당을 짓는 것이므로 참된 문제의 해결은 없다. 서로 다른 시각과 견해로부터 보나 나은 대안은 나올 수 없고 힘있는 자의 승리와 힘없는 자의 패배의 권력싸움(power struggle)이 있을 뿐이다.

<승리 : Win> 승리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인간 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인간 관계가 상해도 자기의 목표를 성취하고자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갈등 해결 유형은 상대를 적으로 대하는 태도이다. 상대를 돌볼 필요는 없고 문제 해결만을 하는 유형으로 우선 일은 일사천리로 되나 인간 관계가 파괴되므로 장기적으로 자신이 남의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므로 결국은 자신도 곤경에 빠진다. 이 갈등 해결의 유형은 양보와 마찬가지로 흑백논리에 기초하므로 논의의 진전이 없고 한 사람의 의견이 모두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힘있는 자의 논리의 독주가 된다. 서로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통한 보다 발전적 대안이 필요치 않다.

<타협 : Compromise> 타협은 상호간에 갈등 문제에서 인간관계나 문제 해결에 대해 시간이나 여유가 없을 때 또는 서로 진정한 해결을 원하지 않을 때 정치적인 해결책이다. 서로 자신이 반씩 양보해서 온전한 만족은 아니지만 반은 만족하고 반은 불만족한 상태에서 미봉책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문제는 일단 덮었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어서 갈등의 불씨를 언제든지 갖고 있고 숙제는 끝나지 않은 채 상호 상대방의 힘을 인정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해결 : Resolve> 해결은 대화의 참여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문제를 분리하여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서 서로 문제 해결의 과정으로 본다. 그래서 한 사건을 보다 여러 가지 시각(multiperspective)에서 총체적으로 봄으로써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해결하게 된다. 즉 대화의 상대방을 존중하고 또 나 자신도 존중하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직면하여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역시 개인적 탐욕이 서로 간에 없어야 하며, 공동의 삶의 목적에 대한 동의가 필요하다. 바로 성경의 올바른 삶의 목표와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입각한 해결 방법이다. 곧 진리 안에서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 5가지 갈등 유형을 분석해보면 기본적으로 후퇴, 양보, 승리의 갈등 해결유형은 인간관계와 문제 해결에 대해 자기 자신 또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세계관 곧 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나오고 갈등 해결 유형 중 해결(Resolve)의 방식만이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나 정죄없이 용납하고 이해하며 포용하는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감정적으로는 후퇴, 양보, 승리의 갈등 해결유형은 두려움에서부터 나온다. 후퇴는 인간관계와 문제 해결이 안될 것이라는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에서 나오는 두려움에서 그런 해결 유형이 나오고 양보는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승리는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자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런 자세들이 나온다. 해결(Resolve)유형은 인간관계와 문제 해결에 있어서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에서 해결의 자세가 나온다. 그러므로 대화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대화는 혼자 하지 않고 두 사람 이상이 하기에 대화의 분위기가 내용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을 본다. 부정적 또는 조급한 분위기 속에서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전달조차도 왜곡되며 진정한 인격 대 인격으로 상이한 의견을 통합하고 보다 나은 문제 해결의 창조적 견해를 창출해내지 못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후퇴, 양보, 승리의 대화자세가 서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부정적 감정이 주도하는 가정에 오래 지내면 한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확인되거나 격려되지 못하므로 성인 아이가 가족가운데 길러지며, 객관성과 타당성이 있는 타자중심적 사고방식이 아닌 주관성과 고집적인 자기 중심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어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기대와 인간관계에 적응을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안에서의 믿음, 소망, 사랑의 자세가 인간 관계 성숙과 인생 문제 해결의 근본적 전제임을 알 수 있다.

 

(5) 곡선적 가족 구조의 모델 (그림 7)

곡선적 가족 구조 모델은 부부관계와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 형식에 관한 D. H. Olson, C. S. Russell, & D. H. Sprenkle 의 책 Circumplex Model: Systematic Assessment and Treatment of Families 에 나오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가족 관계 패턴을 분석하는데 두 개의 큰 축을 사용했다. 하나는 가족 관계의 응집력에 대한 것으로 유리된(disengaged), 분리된(separated), 연결된(connected), 속박된(enmeshed) 가족 관계로 분류했고, 다른 하나는 적응력에 관한 것으로 혼돈된(chaotic), 융통성 있는(flexible), 구조적인(structured), 경직된(rigid) 가족 관계로 분류했다

응집력은 한 가족의 가족 내부와 관련된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경계선(boundary)의 양태를 분류한 것이고 적응력은 한 가족의 가족 외부의 스트레스와 관련된 가족 구성원의 경계선(boundary)을 나타낸다.

이 도표의 네 모서리에 있는 네 가지 종류의 혼돈스럽게 유리된(chaotically disengaged), 경직되게 유리된(rigidly disengaged), 혼돈스럽게 속박된(chaotically enmeshed), 그리고 경직되게 속박된(rigidly enmeshed) 가족 관계를 가진 가족들은 그 인간 관계 갈등 해소의 유형이 위에서 말한 인간 갈등해결의 구조 그림에서 주로 후퇴(Withdraw)의 유형을 갖고 있다. 정신 이상자, 정신분열자, 각종 중독자, 성적 학대, 폭행자, 중범죄자, 경제적 무능력자들이 나올 가능성이 많은 가족 체계이다.

네 모서리 다음 원형에 있는 여덟 가지 종류의 혼돈스럽게 연결된(chaotically connected), 융통성있게 속박된(flexibly enmeshed), 구조적으로 속박된(structurally enmeshed), 경직되게 연결된(rigidly connected), 경직되게 분리된(rigidly separated), 구조적으로 유리된(structurally disengaged), 융통성있게 유리된(flexibly disengaged), 혼돈스럽게 분리된(chaotically separated) 가족 관계를 가진 가족들은 그 인간 관계 갈등 해소의 유형이 위에서 말한 인간 갈등해결의 구조 그림에서 주로 승리(Win)와 양보(Yield)의 유형을 갖고 있다.

신경증환자, 부부 불화, 사회부적응 등이 나올 가능성이 많은 가족체계이다.

이 그림 중앙에 있는 네 가지 종류의 융통성있게 연결된(flexibly connected), 구조적으로 연결된(structurally connected), 구조적으로 분리된(structurally separated), 융통성있게 분리된(flexibly separated) 가족 관계를 가진 가족들은 갈등 해결에 있어서 주로 해결(Resolve)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 문제 해결과 인간관계의 성장이 일어나는 가족 체계이다. 이 모델은 가족 병리현상의 지도와 같이 구체적인 가족 병리 현상이 어떤 가족 환경 속에 일어나는지를 보여줌으로 가족 병리현상의 통합적 이해를 가능케 한다. 가족 응집력에 있어서 유리된(disengaged) 인간 관계의 가족 속에 산 사람은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받은 그 마음 내면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상담자는 알아서 치료받도록 해줘야한다. 이런 단절된 가족 관계를 가진 사람은 자아 정체성 또는 자존감의 빈약함으로 가족 타인에게 가족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받으려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잘해주고 상대방이 해준 것만큼 보답이 없을 때 분노하고 인간관계를 단절한다. 피상담자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속박된(enmeshed) 인간관계를 가진 가족 속에서 자란 사람은 외부적으로 심한 위기나 충격에 가족이 같이 견디고 살려고 애쓴 경우에 생기는 가족 관계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나 한 사람이 독재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다른 가족들은 그것에 편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전체가 승인하지 않는 결혼이나 일체의 행동은 생각할 수도 없고 허용도 안된다. 가족 전체는 그 가족의 가장의 생각을 뜻한다. 상담자는 가족이 당했던 외부적 위기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 그것을 개인이 자주적으로 수용하고 생각하도록 돕는다. 피상담자가 어떤 일이나 인간관계에 있어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 가를 훈련하도록 한다.

적응력에 있어서는 먼저 부부체계 안에서 부부간의 친밀함을 증가시키고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분명하지만 융통성 있게 한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권위주의적이거나 방임주의에서 벗어나 분명한 원칙가운데 필요한 삶의 지도(guidance)를 한다.

 

4. 주요 가족 병리 현상 이론들에 대한 통합적 이해(Goldenberg, p 71-100, 114-121)

 

상기한 전제와 이론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족치료 이론의 기초가 된다고 볼 수 있는 주요 가족 병리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MRI(Bateson, Jackson, Haley & Weakland)의 이중구속 메세지(Double Bind massage)

이중 구속(二重 拘束, Double Bind) 메시지는 Bateson등의 이론으로 이중 구속적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여기에는 적어도 2가지 또는 그 이상의 상반된 메시지나 요구를 담고 있다(Goldenberg, p. 74). 이중구속적 상황은 갈등해결에 있어서 후퇴(Withdraw)의 자세를 취할 때 나타나는 대화패턴이다. 이것은 먼저 상황 전반에 대한 부정적 패러다임(paradigm)에서 나온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앞에는 홍해가 놓여있고 뒤에는 애굽 정예군이 좇아오는 것을 보고 절망하고 모세를 향해 부르짖고 원망하는 것을 본다. 사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인간적으로 볼 때 앞으로 가도 죽고 뒤로 가도 죽는 이중 구속의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낸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고 지팡이를 바다위로 손을 내밀어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한다. 이 사건은 이 이중구속(Double Bind)과 치료적 이중구속(Therapeutic Double Bind) 내지 긍정적 재해석(positive reframing)의 예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상징이 된다.

Bateson(1972)은 이 이중구속 가설은 ①두 사람 이상이 있고 그 중의 한사람은 "희생자"로 지정되며, ②두 사람간의 경험이 반복되고, ③희생자에 대한 일차적인 부정적인 명령이 내려지며, ④더욱 추상적인 차원에서 일차적인 부정적 명령과 불일치하는 이차적인 부정적 명령이 내려지는데, 이는 일차적인 것과 같이 처벌 또는 생존을 위협하는 신호로 강요되고, ⑤희생자가 이 상황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삼차적인 부정적 명령이 내려지며, ⑥희생자가 이중구속 유형에 처한 자신의 세계를 지각하도록 배웠을 때 성립하며, 이러한 구성요소들이 갖추어 졌을 때, 이중 구속 과정의 거의 모든 부분은 공포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Becvar, pp. 25,26).

예를 들면 속박된 가족(enmeshed)에서 어머니가 아들에게 "나가 나가지 않으면 때려죽일 거야" 하는 것이나 어머니는 아들이 나가면 홀어머니로 외로운 처지에 아들은 어머니에게 불효하게 되고 나가지 않으면 막아 죽는 진퇴 양난에 빠지게 되어 자기 생각대로 어떤 일을 처리 못하고 무조건 어머니 말을 따라야 한다. 이런 유형이 반복하다 보면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게 된다.

 

(2) Laig의 위장(mystification)

Laig는 가정 내에서의 갈등이나 상반되는 관점을 미혹시키거나 모호하게 하거나 가면을 쓰고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Goldenberg, p.76). 일상적인 생활에서 어떤 일로 말미암아 한사람으로 어떤 생각을 품게 하면서도 말로 표현하면 부인하는 것을 말한다. 속박된(enmeshed) 가족에서 밀착된 어머니와 딸이 아버지에게 어떤 문제에 대해 숨기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둘이 있을 때는 아버지의 무능력과 잘못을 성토하지만 막상 아버지가 오면 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 심각한 것이라 생각하여 안 그런 것처럼 숨기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의 관계가 악화되고 자신의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면 판단이 흐린 멍청이가 된다.

 

(3) Watzlawick, Bateson, & Jackson의 대칭적, 보완적 관계(symmetrical or complementary relationships)

대칭적 관계(對稱的 關係, symmetrical)는 참여자가 서로 상대방의 행동을 반영시킨다. 상호 경쟁적인 관계에서는 각자의 행동이 상대방의 반응에 영향을 주어 상승작용을 하는 위험. (Goldenberg pp. 78-84) 대칭적 관계는 부부 상호간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심하고 자신이 낫다는 생각이 있을 때 서로 어떤 사건과 사람에 대한 해석에 있어 상대방을 신뢰치 못하고 서로 부정적으로 경쟁하는 대화를 말한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자신의 의견만을 내놓는 갈등해결에 있어 승리(Win)의 자세를 둘 다 견지하는 것이다. 유리된(disengaged) 가족구조에서 이런 인간 관계가 나온다.

보완적 관계(補完的 關係, complimentary)는 불평등과 차이의 극대화(Goldenberg, pp. 78-84), 속박된(enmeshed) 가족구조에서 부부사이 또는 가장역할을 하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가족사이에 전통적인 지배와 복종관계를 갖는 것을 말한다. 속박된(enmeshed)혹은 유리된(disengaged) 가족 구조 안에서 바깥 세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 능력의 차이와 가족 안에서의 교육으로 말미암아 이런 상보적 관계가 되는 데 문제는 부부간에 참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다.

 

(4) Minuchin의 속박과 유리(enmeshment & disengagement)

속박(束縛, enmeshment)이란 가족 구성원간의 인간관계 경계가 모호한 경우를 뜻하며, 유리(遊離, disengagement)는 속박과는 상반된 개념으로 가족 구성원간의 인간관계 경계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하위체계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힘든 경우를 말한다(Goldenberg, pp. 84, 85).

 

(5) Minuchin, Montalvo, Guerney, Rosman & Schumer의 비행조성의 가족

비행조성(非行造成)의 가족이란 지나치게 속박되거나 유리된 가정을 말한다. 속박된(enmeshed) 가정의 어머니는 자녀의 행동을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라고 느낀다. 유리된(disengaged) 가정의 어머니는 자녀의 일상생활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묻지 않는다(Goldenberg, p.85-87). 그러므로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도전으로 부모를 괴롭히기 위해 비행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의 지도가 없이 무관심함으로 삶의 스트레스를 올바로 다루지 못하고 비행청소년이 된다.

 

(6) Minuchin의 정신·신체적 가족

정신·신체적(精神·身體的) 가족은 가족 관계가 속박되어 있고, 하위체계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개인적 경계가 약하여 자주성이 없다. 아이가 갈등 제거자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유리된 가정에서 자녀의 병은 부부의 대면을 가능케 한다(Goldenberg, pp. 87,88). 부부간의 갈등과 반목이 아이의 병으로 인해 일단락지어지고 화해의 국면을 연출하게 된다. 또는 떨어져 있던 부모들이 아픈 아이로 인해 서로 만나 대화하게 되어 갈등 해소의 모습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는 계속 병이 들어 있도록 격려 받는다.

 

(7) Bell의 속죄양

부모가 자기들의 갈등을 자녀에게 전가시켜 자녀의 정서적 발달의 희생을 통해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때 이 희생된 자녀를 속죄양(贖罪羊)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L군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좌절된 상태에서 아내에게 분노하고, L군의 어머니는 자기를 불신하고, 남편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남편에게 분노를 가지고 있을 때, 이 상황 속에서의 L군은 속죄양이 되는 것이다(Goldenberg, pp. 88-91). 아이의 불량행동이나 모범적 행동이 부모들의 갈등상태에서 부모각자의 입장을 도와주는 것이 되어 계속 불량행동 또는 모범행동을 하도록 강화한다. 문제는 자기 분화를 못하고 지적 감정적으로 부모를 위한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8) Ferreira의 가족 신화(family myth)

고질적인 가족신화(家族神話, myth)란 현실에 대한 왜곡과 부정뿐 아니라 상호위장(相互僞裝)을 말한다(Goldenberg, pp. 91-96). 가족 내에서 왜곡된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비록 근거가 빈약하고, 자기 기만적이지만, 잘 체계화된 자기 자신 혹은 가족전체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념이다. 자녀 중 누구는 문제아고, 누구는 모범생이고, 어머니는 유능하고, 우리 가족은 다 똑똑하다는 등 이러한 많은 신화가 있다. 이런 신화는 가족의 역기능적 인간관계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9) Wynne, Ryckoff, Day & Hirsch의 가성상호유통(pseudomutuality)

가성상호유통(pseudomutuality, 가짜 친밀성)이란 가족들이 겉으로는 서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를 써서 서로 개방적이고 이해심을 가지고 상호 작용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간에 큰 거리감을 두고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Goldenberg, pp. 96-99). 속박된(enmeshed) 가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서로간에 문제를 솔직히 얘기하고 다루지 못하므로 그동안 쌓인 갈등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로 그대로 쌓여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모르고 상처가 깊어 건드리지도 못할 때 문제를 그대로 덮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삶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결사적인 싸움이 일어난다.

 

(10) Lidz의 결혼 균열과 결혼 왜곡(marital schism & marital skew)

Lidz와 그 동료는 부부 중 한 사람의 지배성과 비합리성에 다른 배우자가 모든 것을 양보하는 부부관계를 결혼 균열(龜裂, marital schism)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대칭적 관계(對稱的 關係, symmetrical) 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배우자 한쪽은 극단적으로 의존적이고 자학적이지만, 다른 쪽 배우자는 아버지와 같이 강하게 보이는 관계를 결혼 왜곡(歪曲, marital skew)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부부관계는 보완적 관계(補完的 關係, complimentary)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

 

5. 언약신학의 입장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을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성경은 아브라함의 언약으로부터 하나님의, 세상을 향하신 철저한 사랑의 책이고 선교의 책이다. 선교는 신약시대에 시작한 것이 아니고 태초로부터 하나님께서 세상에 자신과 자신의 영광을 알리시는 창세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는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 위에 세워질 때에만 올바른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만이 나와 하나님과 나와 이웃과의 유일한 화목제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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