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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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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스포츠 스타들과 봉사단체 운영하는 배구 국가대표 출신
장윤창
“선수 시절 받은 팬들의 사랑, 이젠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배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윤창. 그는 은퇴 후 동료 스포츠 스타들과 봉사단체 ‘함께 하는 사람들’을 결성했다. 탑골공원의 음료봉사와 환경미화, 장애아 돌보기, 소년 소녀 가장 돕기 등 99년 3월부터 지금까지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가 스포츠 스타가 아닌 자원봉사자로서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
“94년에 은퇴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은퇴한 스포츠 스타들이 봉사활동에 발벗고 나서고 있더군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어요. 공부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오면 저도 꼭 그렇게 하겠노라 다짐했죠.”
80년대 한국 남자배구를 대표해온 장윤창(42). 그는 현역시절, 최고의 자리에서 뛰어난 실력과 항상 노력하는 성실함으로 배구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이제 그는 그렇게 받은 사랑을 갚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장재근, 황영조, 현정화를 만났어요. 유학시절 느꼈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받은 사랑을 사회봉사를 통해 갚자고 제안했죠. 모두 흔쾌히 동의하더군요.”
98년 귀국하자마자 그는 이렇게 동료 스포츠인들 규합에 나섰다. 탁구스타 현정화와 마라톤의 황영조, 양궁의 서향순, 농구의 고(故) 김현준, 육상의 장재근 등 7명과 함께 자원봉사단체 ‘함께 하는 사람들(www.saram.or.kr)’을 결성했다. 그해 11월의 일이다. 현재는 탁구의 김택수, 축구의 최순호, 유도의 전기영, 양궁의 김수녕 서향순, 레슬링의 박장순, 쇼트트랙의 전이경, 농구의 허재, 유도의 박경호 등 내로라 하는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또 2백여명의 일반인 회원도 활동하고 있다.
99년부터 장윤창을 비롯한 회원들은 매주 수요일 탑골공원을 찾아가 노인들에게 요구르트를 나눠주고 공원을 청소했으며, 그해 6월에는 춘천시의 강원재활원을 방문해 지체장애인들에게 밥을 먹이고 빨래도 해주었다. 스포츠 스타들이 모인 봉사단체인만큼 함께 운동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몸이 불편한 사람일수록 밖에 나와 활동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운동 경기를 행사에 포함시키죠. 다들 말이 필요 없는 스포츠 스타니 함께 운동하는 아이들도 매우 좋아해요. 그렇게 밝게 웃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다. 지체장애인을 접해보지 않은 일부 회원은 막상 그들을 대하려니 낯설었고 심지어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첫 활동에서 거부감이 좀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내 아이들과 가까워졌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밥 먹고 운동하고 목욕하면서 정이 들어버렸죠. 헤어질 때 가지 말라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계속 봉사 활동을 펼치겠다고 되새겼어요.”
‘함께 하는 사람들’은 한달에 한번, 매번 다른 시설로 봉사활동을 나간다. 이제 3년째다.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시작한 봉사활동이 계속되면서 가슴에는 보람이 쌓였고 한편으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 언론 매체에 모임이 소개되면 당초 취지가 훼손되지 않을까 싶어 알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한다. 남몰래 봉사하기에는 손이 너무 모자라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컸기 때문. 회원들의 호주머니에만 의존하다보니 뜻한 만큼 도움을 주기가 어려웠다.
현역시절 못지않게 바쁘지만 한달에 한번 봉사활동만은 반드시 참여해
“꼭 물질적으로 도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설이 너무 안 좋은 곳을 찾아가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픕니다.”
장씨는 지난해 겨울 서울 내곡동에 위치한 ‘참빛 사랑의 집’을 방문했을 때 “후원금이 넉넉하게 있었다면 시설 전체를 뜯어고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가가 나지 않은 열악한 시설이었어요. 뇌성마비 장애자가 80명 정도 거주하고 있었는데 환기가 제대로 안 돼 피부병에 걸린 애들이 반이 넘었죠. 온몸이 뒤틀리면서도 우리를 반기는데 눈물이 나옵디다. 난방비가 없어 난방을 못하고 목욕을 시키려니 물도 제대로 안 나왔어요. 그래도 피부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디찬 물에 목욕을 시켰죠.”
몇십명 목욕시키면서 떨어지는 눈물을 꾹 눌러 참았다.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먹고 싶은 걸 말하라니까 한결같이 ‘자장면’을 외치더군요. 자장면 몇십 그릇을 배달시켜 아이들과 먹었는데 목이 메어 잘 들어가지 않았어요. 눈물 섞인 자장면이었죠.”
회원들 모두 은퇴 후 방송인으로 혹은 지도자의 길로 제 2의 인생을 사는 스포츠 스타들이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모임이 제대로 운영될까 걱정도 많이 했다고 한다.
“바쁜 걸 알기 때문에 무조건 참여를 권하진 않습니다. 봉사가 의무로 자리잡으면 짐이 됩니다. 저희 모두 마음에서 우러난 봉사를 바라기 때문에 활동에 참여하지 못해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회원들은 생색용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봉사 정신을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하게 활동한 것이 그 증거. 이렇다 할 스폰서 없이 함께 주머니를 털어 활동했던 동료들이 그는 매우 고맙다. 지난 겨울, 만삭일 때 집에서 쉬라고 했는데도 봉사활동에 참여해 김치를 담갔던 현정화, 독감으로 고생하면서도 빠지지 않고 활동에 나선 김수녕, 충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지만 활동 때마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준 박경호·서향순 부부. 그외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다. 장윤창은 그런 동료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장윤창 역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현역 못지않게 바쁘게 지내고 있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한국체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현재 경기대와 서울시립대에서 후학양성에 여념이 없다. 지난해 11월에는 안양 실내체육관에 배구교실도 열었다. 배구교실운영은 그가 예전부터 꿈꿔온 것.
“회원이 30명 정도 돼요. 체육관이 좁아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는 못해요. 조만간 서울에서도 배구교실을 열 계획입니다. 배구교실을 통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배구를 쉽고 재미있게 접했으면 좋겠어요.”
17세 때 처음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된 후 은퇴할 때까지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던 그도 이젠 40이 넘은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원조 오빠부대’가 따라다녔던 총각 시절과는 다르게 한 집안의 가장으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충실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다.
두 아들 대한(16)이와 민국(13)은 아버지를 닮아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 대한이는 농구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고 민국이도 형을 따라 운동을 하겠다고 한다.
“큰애는 중학교 3학년인데 키가 186cm나 돼요. 전 운동이 얼마나 힘든 지 잘 알기에 처음에는 아이들이 운동하는 걸 반대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원하니 어떻게 하겠어요? 이제 운동선수로서의 제 노하우를 물려줘야겠죠(웃음).”
‘대한’ ‘민국’이라는 이름은 외국 원정경기를 자주 다니던 그가 언젠가 아들 둘을 낳으면 지으려고 생각했던 것. 딸이었다면 ‘우리’ ‘나라’로 지으려 했다고 한다. 시합 전 항상 애국가를 듣는데 그때마다 가슴속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그는 요즘 신세기 여자농구팀과 경기대, 현대자동차 배구팀 등의 도움을 받아 불우청소년에게 무료로 운동경기를 관람시키는 ‘사랑의 패스’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자상한 가장, 지도자, 그리고 자원봉사자라는 새로운 도전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 기획·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글·한주엽<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 기사 입력시간 : 2002.2.19
■ 출처 : 여성동아(http://www.donga.com) ■
■ http://www.donga.com/docs/magazine/woman_donga/200202/people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