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작은 아이 진혁이의 혈액형 재검사 결과가 왔습니다,
RH - O형
우리 부부와 아들 아이는 모두 포지티브인데 우리 작은 아들은 네거티브랍니다.
진혁이는 너무 개구쟁이라 무릎이 성할 날이 한시도 없는 아이죠.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등에서 이상이 발견된 아동에게 실시되는 재검사....
우리 학교에 다닐 때 당뇨가 나오거나 기생충검사에서 약을 타는 친구들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때로는 놀렸던 기억처럼 아이는 따로 피를 뽑았고 담임 선생님과 엄마는 심각하게 전화를 했었죠.
그리고 방학동안은 잊었나 봅니다. 네거티브가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맞나봅니다.
눈치빠른 진혁이는 선생님께서 따로 보낸 봉투를 보고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나 보다 걱정을 했는지 놀지도 않고 낮잠을 잤습니다.
모처럼 네 식구가 둘러앉은 저녁식탁에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 넌 귀한 피를 가졌데 ... 귀한신 몸이라네 아빠 엄마 형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흔한 피를 가지고 있지만 넌 귀하신 몸이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고 하네"
" 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니가 도울 수 있게 튼튼한 몸으로 자라야 해. 그러려면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도 많이 먹어야 해. 피는 헌혈해 줄 수도 수혈할 수도 있지만 우선 건강해야 하거든"
" 그래 아빠가 나중에 헌혈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게. 우리집에서 헌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으니.... "
" 그런거 아파요?"
" 그냥 따끔하지. 지금은 헌혈을 할 필요 없어.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할 수도 있다는 거지"
" 엄마, 진혁이만 귀하신 몸이야? 난 아니예요?"
" 아니 진욱이는 우리 왕자니까 귀하신 몸이고 아빠는 우리집 가장이니까 귀하신 몸이지 "
" 그럼 엄마는?"
" 엄마는 밥해주고 살림하니까 귀하신 몸이지"
다들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모처럼 끓인 쇠고기 전골이 맛있다고 국수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귀하신 몸이라고 깔깔거리며 장난을 더 치더니 잊었습니다.
남편이 농민회 회의에 나가고 다음에 있는 Rh- 혈액형 카페에 진혁이 이름으로 회원 가입을 했습니다.
우리가 궁금해 했던 혈액에 대한 정보창을 열고 다시 다 읽었습니다. 왜 포지티브 부모사이에서 네거티브가 나올 수 있는지는 생물시간에 배운 멘델의 유전법칙에서 처럼 Dd*Dd 부모사이에서 DD. Dd Dd dd 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읽고 네거티브인 여성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출산 할 수 있고, 회원간의 연락망으로 필요할 때 도움이가 되어 줄 수 있다는 글도 읽었죠.
네거티브 회원들이 공감하는 미담과 애로사항을 한참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앞줄 몇자를 가입인사로 올렸습니다.
공연히 눈물이 납니다.
아이에게는 튼튼한 몸을 가지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귀하신 몸이라고 했으면서도 어쩌면 있을 지 모를 불안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혈액증을 만들어 주고 아이가 혈액형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해야 겠고 사고 없이 튼튼하게 키워야 겠다는 생각에, 아직은 별것도 아닌 이런 생각에 그냥 우울한 기분만 듭니다.
소수인 사람은 살기 힘든 세상
보호받지 못하고 스스로 갑옷을 챙겨야 하는 사회
그런 세상에 우리 아이가 던져질까요? 아님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튼실한 사람으로 자랄까요?
지금 기분은 영 엉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