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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방문기
농하모니의
필리핀 선교여행 이야기
여행일자: 2004. 11월19(금)-24(수)
장 소: 필리핀 마닐라
여행자명단:박철현권사님 , 이향상권사님
권남회집사님
최인석 전도사님,김소희 집사님 ,한나와예솔이
정길우 형제님, 라미경 자매님.동화와 동민이
김용기와 용남집사와 원일이 원준이
글 :농 하모니 전속 작가 김 용남 집사.
0 2004.11.19.금요일 오후 8시 30분비행기를 타기위해 인천공항에 5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당일까지에도 실감이 나지 않고 짐을 꾸리는 일도 서툴렀다.
출발 전날 여름옷가지며 필요한 물품을 거실 바닥에다 죽 늘어놓았다.
부족한 물건을 사러 월마트로 갔다. 선교지에 보낼 학용품과 커다란 여행 가방도 샀다. 김치와 깻잎고추장은 농협으로 가서 신중하게 엄선하여 샀다.
집으로 돌아와서 인쇄물을 보며 물건을 하나씩 챙기니 실감이 조금 났다.
드디어 여행 당일이다.
아이 들은 많이 들떠 있다.
학업에 시달리다가 해방되는 기분이 이해가 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파하고, 나 역시 피아노 레슨을 끝내놓고 가야 했기 때문에 점점 마음이 조급해 졌다.
남편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빨리 가야하는데 정말 못 말린다고 야단이었다. 변명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아는 남편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해해주기에는 조급한 상황이었다.
우린 공항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남편과 난 상황판단에 능한 것일까? 우린 차를 몰고 가기로 결정하고 신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헐레벌떡 아주 급하고 빠르게 달려서 공항에 도착하니 거의 5시가 되었다. 우리가 만나기로한 장소로 가보니 한사람이 기다리고 계섰다.(이번 여행에 지대한 부분을 담당한 카메라맨 정집사님)다른 일행은 몇 시간 전에 도착했다가 좀 전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고 했다.
일단 우리는 선교지에서공항내의 통관을 고려하기위해 일행의 가방에 준비한 의약품과 학용품을 분산시키기로 했다.
지금에서 얘기지만 권부장님가방에 넣으려고 살짝 열어봤다. 혹시 결례가 되는 것 같아서 시치미를 뗐을 뿐.( 그 일을 저지른 자는 나와 정집사님…….sorry)
왜냐하면 가방은 큰데 헐거워 보이고 열쇠도 잠겨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하자.
결국에는 주인이신 젊은 오빠 투(권집사님의 애칭)가 화통하게 가방을 열어 주었다. 그래서 많은 양을 그것에 넣을 수 있었다. 눈가와 양 볼에 조금 많이 장난기가 보이는 이미지가 우리여행의 즐거움과 유연성을 암시했다. 집안에 누군가가 가방 공장을 한다나, 아니 가방 장사라고 했든가! 물건을 분산 시키다 보니 조금은 스릴감이 있다. 우리의 막중한 임무를 위한 장엄한 서곡과도 같은 느낌말이다.
우리일행은 모두 15명 (어른은 9명 자녀들 6명)이 집합되었다. 우린 비행기 통관을 잘 마치고 짐도 잘 붙이고 세관도 잘 통과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작은 일이 생겼다.
공항인 통관 대에서의 맥가이버 컬사건……. 내면세계의 환상과 모험심을 노출시키시기 시작한 젊은 오빠(박 권사님의 애칭)의 출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리일행들은 젊은 오빠를 기다리며 눈동자를 입구 쪽을 향하였다.
모두들 걱정보다도 의아스런 얼굴빛이 영역했다.
‘버리고 들어오시면 되는데 어디로 가셨지?’누군가 말하였다.
‘아마 짐으로 붙이시려나봐.........’
‘글쎄…….짐을 먼저 붙였는데 찾기엔 너무 늦으셨을 텐데.........’
그때 큰아들 원일이가 하는 말
“엄마 그 칼이 어떤 거예요?”
나는 대략 나의 상상대로 말했다. “맥가이버 칼 말이야. 왜 등산갈 때 ......”
“비싼 거예요?”
“ 비싼 것보다도 이런 것이 걸릴 땐 검역소에서 어떻게 되나 실험하신 것 같구나.”
깔끔한 미모의 왕 언니(박 권사님 사모님 이향상 권사님의 애칭)는 말없이 가방을 만지작거리시며 입구 쪽을 흘끔흘끔 쳐다보셨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서 신경을 안정 시키려했다. 안색이 별로 유쾌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다림 속에 젊은 오빠가 슬쩍 뒤쪽편으로 등장해 앉아 계셨다.
그때의 첫인상이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니까....)
미시시피 강가에서 모험을 즐기는 미래소년 코난의 친구 포비나 톰의 친구 허클베리 핀의 모습이었음을....... 감히 말한다.
시선이 집중된 것을 알아차리신 듯 꾹 다문 입술을 서서히 여시면서 하시는 말씀
‘그 물건을 버리려니 슬픈 생각이 들잖아 ’
‘정든 것이기 때문에 버릴 수 없어서 상점에 맡기고 귀국하는 날 찾아가겠다고 말했지.’
‘이것 봐 명함도 가져왔잖아’
비행기에 오르기 전 각자 자유의 시간을 주고 약속시간에 지정 장소에 모이기로 했다.
식사를 못한 사람은 저녁을 먹거나 쇼핑을 했다.
시간이 되어 모두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매우 들뜨고 흥분 고조 되었다. 비행기 안 좌석을 신중하게 배치했다. 창가 쪽에 아이들의 심정을 고려하여 몇몇 어른들이 양보했다.
젊은 오빠 투(권 부장님)는 솔로로 얌전히 창가쪽 좌석에 앉아서 창밖의 정경을 바라보시고
계셨다. 함께하지 못한 아내와 자녀들을 고국에 놓고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움의 고뇌인 듯 나중에는 머리를 등 뒤의 의자에 부비시며 그깊은 심경을 은근히 노출 시키셨다.(정말?)
정집사님 부부도 서로 속삭이며 여행에 들뜬 기분을 자제하는 듯 했다.
창쪽으로 자리를 잘 잡으신 젊은 오빠 원(내외분)는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그동안 소홀했던 것을 만회할 기회로 잡으셨는지 최대한의 서비스를 베푸는 남편의 매너가 엿보였다. 원일 이와 원준이, 동화와 동준이는 서로형제애를 나누며 오순도순 음식과 음료수 등을 잘 챙겨서 맛있게 먹고 바깥정경도 감상하는 것 같았다.
최전도사님은 가장 품위 있게 아주 여유 있게 있었다. 예쁜 딸과 아내를 위해 묵묵히 기도하며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부부도 설레는 기분을 감출 길 없다. 남편은 열심히 영어로 된 메뉴어리에 볼펜을 긋고는 무슨 일이 바쁜지 연일 부스럭거린다.
아이들은 비행기가 이륙하자 다소 들뜬 목소리로
‘엄마…….저기좀 보세요. 불빛이 너무 멋있어요.’
‘아빠 저기좀보세요. 저기가 어디예요? 서울이 예요?’
‘귀가 멍멍해요…….’
모두 미래에 펼쳐질 환상과 꿈을 기대하며 행복해 했다.
기내의 대형화면에선 우리의 행선지를 알리는 지도가 보였다.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안전교육을 하는 방송도 내보냈다.
음식과 음료도 먹고 음악 감상도 하고 9시 뉴스도 보았다.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스튜어디어스는 말이 통하여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언어가 통한 다는 것은 사람의 정신적 긴장과 육체의 위협을 안정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이여 안녕히.
필리핀이여!
내 너를 기다리고 보고 싶고 너무나도
애타게 그리워하니
너 그곳에서 묵묵히 우리를 환영해 다오
우리 너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러 가노니
너 내 사랑 외면하지 말고 받아주오
나 너무 널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려가니.
내 사랑이 외로운 사랑되지 않도록
날 기쁘게 환영해 주오.
도착하기 전 날씨와 기후조건을 고려해서 여름옷을 속에 입고 외투만 걸쳤다. 공항에 내리자 다시 통관 절차가 시작 되었다.우리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다행히도 통관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체감온도가 올라갔다. 모두 겉옷을 벗고 여름옷을 착용했다.
필리핀의 계절이 가을이라 요즘 평균기온이 평균27-28도를 오간다고 했다.
냄새에 많이 민감하고 지난 추억을 향기로 회상하는 원일 이는 이곳에 냄새가 없다며 냄새를 추적했다.
나도 냄새를 맡으려니 풀냄새도 나지 않고 아무런 향기가 없어서 공기가 정지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네온 샤인 불빛과 어우러진 야자나무와 종려나무는 아주 튼튼하고 싱싱해 보였다.야경을위해 번쩍 번쩍 화려하게 공항을 장식해 놓았다.
공항에는 만나려고 한 김사무엘 목사님이 나와 계셨다. 말쑥한 용모에 친절한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다. 일행과 통성명이 끝나고 약간의 사진 촬영 후 우리는 두 대의 준비된 차에 나누어 탔다.
사랑스러운 필리핀이여!
그대의 향기를 다오.
나 너를 그리워 달려 왔건만
너 날 반기려 놓고 온 향기를 다오.
네가 보여준
늠름하고 자신만만한 종려나무와 야자나무처럼
너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너의 향기 있는 사랑의 말을 다정하게 전해주오
차에 몸을 싣은 우리는 목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갔다.
필리핀의 교통사정은 한국 못지않게 체증 상태였다.
도로에 다니는 차종에는 고급차외제차가 눈에 많이 보였다(일본통치하에 도로를 놔주는 대신 자국의 자동차를 사용하는 조건을 걸었대나).
그속에 한국산도 몇 대 있었다. 프라이드, 카니발등
차들의 밀림을 헤쳐서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화려한 도시는 멀어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 일행의 전조를 알리는 신호임을 우리는( 레이디들 ,자칭 농- 시스터즈) 직감하지 못했다.
차가 후미진 판자촌으로 향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차에서 모두 내렸다. 그때서야 목사님 사택으로 인도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주변을 관찰할 형편은 안 되었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주변이 어둡다는것과 향기가 있다는 것이다. 동물들의 배설물 같은 알 수 없는 향기가 뒤범벅 된 냄새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집안에서 사람이 나와 대문을 열었다.
선교사님 사모님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짐이 내려졌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일층은 사택으로 사용하고 커다란 방 두개와 세면대도 설치해 선교 여행을 온 사람이나 손님들의 방으로 만들었다
또한 문간방에는 한국에서 유학 온 고2학년 여학생이 지내고 있었다. 교회는 2층에 있고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설립하고 현지의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떨결에 그 숙소에서 여정을 풀게 되었다.(왜냐하면 첫날 이틀정도를 호텔에서 보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
옷을 갈아입고 세면을 하고 잠자리를 폈다. 잠자리 배정도 신중하게 했다.
침대 메트가 있었지만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이불을 깔고 기다랗게 누웠다.
양 사이드에는 나와 라이경 자매님 (애칭 언니 자매님)이 자리를 잡고 왕언니와 김소현 집사님은 가운데 자리를 잡으니 한나와 예슬 이가 엄마 발 끝 쪽쯤에 가로질러 얼굴을 대고 자야 했다.
잠자리에 누운 시간은 거의 한 두시 가 된 것 같았다.(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가량 늦었다.) 함께 누워서 서로 오게 된 동기며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이며, 이곳에온 느낌이며 잠이 오지 않자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렇게 첫날밤의 이야기가 무르익어 우리들의 우정이 시작 될 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려 했다.
하지만 잠을 잔다는 것은 큰 시험을 이기는 것과 같았다.
왜냐하면 닭이 쉬지 않고 울어댔기 때문이다.
한마리가 아닌 온 동네 닭이 모두다....
우리는 그닭 때문에 또 한바탕 폭소가 터졌고, 화제가 닭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두들 갖갖으로 잠을 청했다
드디어 첫날 아침 이다.나는 일찍 일어나 집밖으로 나와 봤다.
이곳저곳을 탐색한 결과 마을 은 호수를 옆에 두고 큰길을 사이에 두고 발달해 있었다.
거의 우리나라 60-70년 사이의 모습과도 같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청소를 하는지 문을 열고 가족을 부르고 있고 ,어디선가에서 음악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은 비를 맞고 이리저리 볼일을 보며 다녔다.
교회 옆에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주인은 부지런했다. 엿처럼 생긴 떡을 들고 다니며 우리에게 팔았다. 남편과 김 소현 집사님은 드셨는지?
주변에 있는 늪지위에 나무다리를 하여 집을 만들었다. 양철이나, 판자로 된 허름한 집들이다.
조금 큰 것은 집이고 작은 것은 화장실인데 그 호수 물에 나는 냄새는 그들이 다이렉트로 배뇨를 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사랑의 필리핀이여
그대의 향기를 주오.
나 그대의 향기를 원했건만
내게 왜 이리도 가혹 한가
나 그대의 화려한 사랑 기대하건만
그대의 매력적인 자태 원하건만
그대는 내게 왜 가혹 하리 만큼 슬픈 향기를 보내는가!
나의 사랑 필리핀이여 !
나에게 실연의 아픔을 던지는가?
날 기다리며 흘렸을
그대의 눈물
오, 내 사랑
그대홀로 감내하였을 고통의 세월을
미처 생각지 못한 나의 얕은 사랑.
나 그대 향기만 바라고
허영심에 찬 사랑으로 그대를 바라였음을 …….
날 용서하길
진실한 그대의 인고의 세월을 통해,
깊은 사랑으로 기다려 준 그대를 통해,
나 지금 회심의 눈물 흘리며 인생을 배워야 하리.
서울에서만 살아본 라미경 자매님은 매우 당혹해 하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곱게 자라고 시골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을 것이다.
오! 하나님 …….창가로 스미는 암모니아 냄새와 매탄 가스 냄새
밤새도록 우는 닭소리…….어쩌면 저리도 쉬지 않고 운단 말인가!
사모님께서 아침식사를 모두 차려놓으셨다.
우린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눈치껏 아침식사를 했다. 한국사람 입맛에 맞도록 맛있게 요리하신 사모님은 표정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말씀이 없었다.
어두운 그늘이 얼굴에 가득한 무표정한 얼굴.......‘.우리가 온 것이 반갑지 않으신가?.......’ 설거지를 도와 드리고 싶은데도 , 냉정하게 거부하시는 듯한 행동들이 우리 자매들에게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며칠 같이 지내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오버 센스였음을 .
이국땅에서 선교 한다는 것은 자기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보았다.
비전과 소망이 있을 지라도 위로와 관심과 사랑이 왜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자녀와 남편을 뒷바라지 한다.
오직 주님을 향한 열정을 성취 시키는 대는 한 여인의 희생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 한 것이었다.
그대여! 우리를 거부하는가?
거부가 아니라 .
내면의 사랑을 전달하지 못하는 간절함이라 말해주오.
그대의 사랑 손끝에 있네.
그대의 사랑 온몸으로 하네.
그대의 모습 너무나 지쳐서
영혼의 감사 속에 숨겨진
그대의 육체 피곤해 하네.
그대여 입술을 열어 말해주오
주님께 향한 그대의 열정과 사랑을
당신의 깊은 눈가에 맴도는 사랑과 용서를.............
첫날 아침 교회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며 목사님의 선교 방향과 방문할 선교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들었다.
아직 서먹서먹한 가운데 우린 비를 맞으며 선 교지를 향하는 봉고버스에 올랐다.
비낭고낭 락노스 교회로 향했다.(교회 이름은 정확하지 않음소리나는대로 받아적은 메모를 의지함 )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산천초목이 물기를 머금어서 인지 싱싱해 보였다.
수풀과 나무들이 우거진 들녘은 태초에 하나님이 공평한 은혜를 내려주신 자태를 감사하는듯했다.
나뭇잎사귀가 손짓 하네
나뭇가지가 춤을 추 네
나를 지으신 주님 감사해서 찬양 하네
생명주신 주를 향해 두 손 들고 경배 하네…….
마을을 들어가는 길 입구에 청년이 두 명이 서있었다. 자신의 부락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목사님은 타갈로그로 설명을 하셨다.
차안을 훑어보고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통과를 시켜주었다.
교회는 얕은 산안에 있었고 작은 부락을 이루고 있는 사이에 아담하게 지어져있었다.
젊은 여전도사가 작은 산지 마을에 영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교회의 분위기는 우리나라 육칠십 년대의 개척교회 모습이었다.
현지인인 목사님이 계셨는데 지금 뇌졸중 쓰러져 고생하고 계시다고 한다.
김 선교사님은 직접 원주민과 맨투맨 사역보다
현지인을 길러서 사역하는 효과 적인 전도 방법인 것 같아서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세우셨다.
그 후로 열명정도 구성된 이사들과 배출된 신학생들의 여 나므명 된다고 한다.
김 선교사님의 목회방향은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 하는 것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입구에 들어섰다. 밝고 명랑한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들과 청소년이 많이 보였다.
미래의 가능성들이 방치되지 않고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영적 파워가 있는 교회가 있음에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그들의 눈동자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볼 수 있었다. 궤도에는 주일학생을 위한 자료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고, 구석구석에 준비된 열성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유치원도 운영했다.
그들에게 작은 의약품과 학용품을 전달하고 나오려니 동네에 당구장 시설이 보였다.
젊은 청년들 몇몇이 오락을 즐기고 있었다.
지붕에 창문을 내어 비둘기를 키우는 집이 매우 인상에 남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의 눈망울이 주님을 영접함으로서 , 삶의 참 소망과 인생의 영원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초롱초롱한 희망의 눈망울이 되길.
또한
신록의 푸름 속에서
더욱 싱그럽게 무성해지는 초록처럼
싱그러운 영적인 확장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방주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보았네.
숲 속에 자리 잡은 사랑의 온실을
외로이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살과 피를 전하는
생명의 온실을 보았네.
맑은 눈동자에
희망이 사라졌는가!
방황하는 눈 속에 소망이 사라졌는가!
사랑의 온실로 생명의 온실로 나아오라.
그대 영혼 쉼을 얻고 소망을 얻으리니
절망적인 사랑이 아닌
외롭고 슬프고 아픈 사랑이 아닌
영원히 행복한 사랑.
변질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그대여
달려 와요
따스한 사랑의 온실 속으로.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 위해 우리는 차에 올랐다.
동네아이들과 어른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산과 들의 풀들이 빗물에 축 늘어지고
짙은 신록은 물을 머금고 싱그럽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았던 느티나무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그 나무가 바로 망고나무라 불리었다. 열매모양은 우리가 많이 보는 모과와 같이 생겼고 안에는 기다랗고 넙적한 씨앗이 커다랗게 들어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망고 주스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싱싱함이 살아있었다.
주황색을 띈 노란 색으로 그 싱싱함과 달콤함이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다.
또한 아카시아 나무도 느티나무처럼 자라고 있었다. 우리나라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아름드리나무 들은 거의 망고 나무나, 아카시아 나무로 보였다.
계속되는 빗줄기는 차창에 가늘게 부딪치고
빗물이 흐르는 사이로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했다.
대지는 푸른 정원으로 열대 식물과 화초로 펼쳐져 있었다. 벼농사도 3모작을 할 정도로 농사조건이 좋다.
거리마다 야자나무와 종려나무, 바나나 나무가 흔하게 보인다.
심지어 밭이나 논길에도 심겨져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코코야자 나무가 ‘생명의 나무’라 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빠뜨릴 수 없는 재산이라고 했다.( 코코넛 열매에 단물은 목이 말랐을 때 시원한 청량 음로가 되고 속살은 식용으로 그대로 먹거나 밀크, 기름, 조미료로 사용하고 속살을 말린 코푸라 로 마가린, 비누, 양초의 원료로도 쓴다고 한다. 열매의 껍질은 땔감이나 숯으로 쓴다.
나무의 줄기는 목재로 쓰며 ,수액으로 식초나 술을 만든다. 잎으로는 돗자리를 짜거나 집의 벽에도 쓴다. 잎의 줄기로는 빗자루를 만들거나 연의 뼈대로 도 쓴다. 이처럼 코코야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의 나무’다.)
기후조건은 하늘이 내려주신 또 다른 의미의 축복임을 느끼게 했다.
축축하고 눅눅한 날씨는 우리에게 인내심을 갖게 했지만 말이다. 몇 시간을 지났을까
두 번째 개척지인 마릴릿 교회에 도착했다.
차량을 교회 옆 길가에 대고 내려서 10분정도였다.
이교회는 열정이 넘치는 교회라고 안내해 주었다 .
교회를 건축하기 전 설계도가 나오기도 전에 그들이 급한 마음으로 빨리 성전을 건축하여
원래 지으려고 한 것 보다 작게 건축되었다고 했다.
젊은 청년들이 구성되어 오르겐 과 드럼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을 끊임없이 불렀다.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있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표현 못할 영적인 교제가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졌다.
강대상 뒤 그려진 그림은 온유한 비둘기가 그려진 것 같고 양옆으로는 강이 흘러넘치는 것을 표현한 듯싶고, 양옆으로 커튼 모양을 그려 넣어 마무리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달란트로 그림을 그렸겠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쌩글 쌩글 웃는다.
청년들도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매력적인 검은 피부에 맑은 눈망울 속에 필리핀의 미래를 기대했다.
그들의 가능성과 달란트를 주 영광 위해 드리길 기도드리며 주님이름 때문에 관계가 형성된 것에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그 이름의 능력과 그 이름의 사랑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일행 모두감회의 눈물로 하염없이 감사기도를 드렸다.
준비해온 의약품과 학용품이 너무 빈약하고 부족해 보여 전달하는 과정에 손이 부끄러움을 절감 했다.그러나 서로의 마음에 주님에 대한 은혜와 사랑이 있으면 감사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모든지 해결되리라 믿는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심이 감사하지 않은가!
우리 영혼 부끄러워 흘리는 눈물 있네.
우리 영혼 주를 사랑하여 흘리는 눈물 있네.
우리영혼 주를 떠날 때
우리 속에 숨겨진 사특한 탐심과 정욕
그리고 허영심이 살아나네.
우리영혼 주를 바랄 때
주의 손으로 덮으시네.
부끄러운 허물을
주의 사랑으로 덮으시네. 우리 모든 죄를…….
성령께서 도우셨네.
갈급한 영혼 방황치 않도록
흐느끼는 영혼을 위로 하시네
낙망하는 영혼에게 새 힘주시네.
‘너 일어나 걸어라.’
셋째 행선지그레오르 더갓교회에
차에서 내리자 빗줄기가 거의 실오라기처럼 가늘어 졌고 햇살이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눈부신 풀과 나무들이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초록을 자랑한다.
산길을 뚫은 큰 도로가 있고 그 갓길에 차를 세우고 길 밑으로 난 산기슭 동네로 내려갔다. 작은 오솔길로 된 계단식 길을 내려 가다보니 길 옆쪽으로 가옥이 즐비해 있다. 바로 야자나무 잎으로 역어서 지붕이나 벽을 만든 것 같다.마을 중심인 듯 공동 우물물이 있었다. 우물물의 깊이가 대략 3m정도 되어보였고 어린 소녀가 물을 깃고 있는데 두레박의 줄을 놓칠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동네에 파놓은 깊은 우물물과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더욱 친근감이 갔다.
이곳은 김 목사님이 사시는 동네보다는 냄새가 없어서 좀 쾌적해 보였지만 21C 현대인들이 살아가있는 지구촌에서 과학의 발달과 문명의 발달로 최첨단 물질문명이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을 완전히 거부된 듯한 이곳 상황에 황량함이 들었다. 어떻게 이들을 구원할까?
그러나 그것은 내 믿음의 부족한데서 오는 기우에 불과했다.
여기에 물질문명만 전파 된다면 이들은 얼마나 죄짓는데 눈이 밝아지겠는가!
하지만 그런 무미건조한 것들이 자리 잡기 전에 영혼의 구원을 선포하고 전파하여 영원한 하늘의 소망에 가치를 둔 인생을 살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진정 최대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자신의 젊음과 인간의 육신적인 욕구들을 온전히 성령의 힘으로 주를 위해서 드리는 선교사님들이 존경스럽고 내 인생에 큰 도전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 하늘의 소망으로 산다.
죽으면 모두 놓고 가야하는 땅을 한 평 더 잡겠다고 ,
우리의 숨이 언제 멈출지도 모르고 주문한 신발,
경건한 예배의 흉내만 내는 내기분에 사로잡힌 예배,
그 모든 것 들이 그날에는 들어나리
그날에는 얼굴을 맞댄 것 같이 백일하에 들어나리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는 것
우리는 본향으로 가는 순례자
날마다 날 죽이는 연습을 해야만 하네.
날마다 주는 연습을 해야만 하네.
많은 사랑 혀끝에 있고 진정한 사랑 손끝에 있다네.
십여 분정도 걸었을까? 교회건물이 보였다.
하얗게 색칠된 건물이었다. 교회 주변엔 주민들이 미리 나와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주변에 늘어선 집들에서 팝송 아바의 원티이드가 흘러나왔다.(성가은 아니었지만 중고등학교때 많이 듣던 팝송이라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겉으로 보아서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동네임이 느껴졌다.
교회내부로 들어서려니, 그들이 맨발로 들어갔다.
바닥을 수차례 말갛게 닦아 놓은 듯 했다.우리의 신발은 진흙이 덕지덕지 붙었고 신발을 벗기에는 주변상황이 역부족 이었다.
어쩔 수 없이(정말 미안했지만) 신을 신고 출입을 했다. 내부는 삼사십 명 들어가면 꽉 찰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얀 내벽에 짙은 핑크색으로 커튼을 달아놓았다. 레이스로 예쁘게 장식된 커튼 , 생화가 아닌 조화를 화사하게 이곳저곳에 장식한 정성들이 귀엽고 예쁘게 느껴졌다. 평소에 본대로라면 촌스럽게 느껴질 텐데,
이곳에 장식된 모든 것이 왜 그리도 상큼하게 느껴지던지 아마도 은혜의 눈으로 보니 모든 것이 긍정적이고 좋게만 보였던 것 같다.
모두는 자리에 앉았다. 창문 밖으로 닭장 안에 닭이며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보였다. 짐승들도 친밀감이 간다.
사람이 사는 정서가 따스하게 느껴졌다.
팔십 노인이신 한 할머니는 내 목을 끌어당기며 기뻐하고 눈물을 흘리며 좋아 했다.
힘이 얼마나 세던지 앉은 자리에서 일어 날수도 설수도 없을 정도로 목을 잡아 당기셨다.
무엇이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게 하겠는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주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랑이 감격의 기쁨과 눈물을 흘리게 한 것 같다.
구원 받은 백성의 최상의 환희와 감격이 이곳에 넘쳐흐르는 게 아닌가! 그 어떤 기쁨과 행복이 이보다 더 감격스러울 수 있겠는가!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정성이 깃든 점심을 대접하길 원했다.
순식간에 밥상이 차려지고 식탁위엔 그들의 정성이 깃든 음식들이 나란히 놓여졌다.
바나나 튀김, 코코넛 속을 긁어서 만든 요리, 찹쌀로 만들어 바나나 잎으로 감싼 요리며, 닭고기와 감자를 섞어서 만든 요리 , 우리나라의 기증 같은 떡 맛이 나는 찐빵 같은 떡, 과일 사라다,그 외에도 맛좋은 요리들이 보기 좋게 놓여졌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먹으며 감사하고 기뻐했다. 맛도 있지만 함께 나누며 교제 하는 동안에 오랫동안 사귀어온 형제자매 같이 느껴져 친밀감이 더했다.
이들의 활력과 생기는 남루하고 피곤한 삶에서 생성될 수 없는 구별된 것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공급으로만 얻어진 , 인공적으로 가미할 수 없는 백치의 생기였다.
예쁜 옷과 향수나 화장품이 사람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난 어떻게 살아 왔는가! 사람의 잘생기고 예쁜 얼굴이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 라면서 난 내심 속으로 평가하며 살았다.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 송장과 같은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세상이 주는 기쁨에 사로잡힌 자들과 우리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그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심지어 크리스천임을 부끄러워한다. 아니 위축된 공간에선 부인까지 하려 든다.
마치 가롯 유다 와같이 베드로와 같이 말이다. 우리의 심장 속에 작은 심지나마 꺼지지 않은 성령의 불꽃이 있다면, 우린 무너진 성벽을 다시 재건해야 하리라. 우리의 회복을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라자.
자랑스러운 기독인으로 믿음의 본을 보이고, 정의를 갈망하고 있는 저들에게 진리가 참 정의 임을 전해야 하리라.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면 나 자신 만큼은 변화를 위해 나비의 변태를 경험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내 마음을 지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고 성경은 말한다.
주님의 향기를 발하며 살아가리라고 내심 다짐하며 회개기도를 했다.
정결한 맘 주시 읍소서
오-주님 변치 않는 맘 내 맘에 주소서
그 구원에 기쁨 다시 회복시키시고
날 성령의 힘으로 인도 하소서............
복음성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른 자들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의 방문이 그들에게 커다란 힘이 된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내일을 말하지 말아요.
우리는 하루를 위해 최선을 다 할뿐
다음을 기약하지 말아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세요.
내일을 모르는 우리
일초의 후를 예측 할 수 없는 우리.
내일이란 말, 하지 말아요.
지금하세요.
지금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오늘 ,그리고 바로 지금
지나가면 후회하고 슬퍼져요.
이미 지나가면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오늘의 값진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내일 주일예배를 이곳에 와서 드리기로 약속하고
우린 그 동네를 떠나왔다. 내일 만나요…….
자동차는 박물관으로 향했다.
필리핀을 알수 있는 곳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길이 많이 막혔다. 지프니라는 민간인들이 애용하는 버스는 장식이 멋있고 색깔이나 모양이 다양하다.
창문엔 유리가 없고 비닐 등으로 대충 말아놨다가 비가 오면 내리고 다녀 비를 피한다. 사람들은 뒤로 타게 되어있고 지하철처럼 옆으로 나란히 앉게 되어있다.
맨 뒤에 서서 매달려 타면 공짜란다. 공해의 원흉이지만 지프니 엔 낭만과 인간미가 있다. 그 외에 소수 인원을 태우는 자전거 택시와 오토바이 택시가 거의 도로가득 메운다.
그리고 도로에는 중앙선이 거의 없고 하얀 실선이 그려져 앞뒤양쪽에서 추월하는것같다. 신호등도 보이지 않는데 ,서로 조심한 탓인지 사고가 별로 없단다.
박물관에 거의 오후 5시가 되어 도착했다. 5시 까지가 입장시간이라 서둘러야 했다.
급할 땐 더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지하 주차장에서 뒤따라오던 일행과 엇갈려 약간의 이산가족 상봉을 맛봐야 했다.
박물관은 세련된 건물로 마닐라 수도의 번화가에 지어져 있었다.
사람의 생활환경의 격차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워낙에 빈부 격차가 심한 환경이다 보니
모든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좀 전에 방문했던 곳이 같은 하늘아래 땅덩이에 있는 것
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형태가 이렇듯 상반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듯 화려한 세련된 건물에 무슨 능력이 있으리오.
저들의 어여쁜 세련된 모습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리오. 소유한 자나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나, 하늘나라 모르고 살아가는 저들도 알고 보면 헐벗은 자가 아닌가!
“너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고…….”그 뒤 말씀이 생략된 게 아닐까?
너희가 가져도 소유한 것이 아니요 , 입어도 입은 것이 아니요, 먹어도 먹은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영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피력한 것이리라. 하늘의 보상이 없고 소망이 없다면 죽고 싶도록 억울한 일이지만 우리에겐 주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소망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죽어가는 저들의
영혼을 깨우는 전도자들이여 !
그대들은 세상의 최고의 지혜자이며 ,
최고의 인생 가치를 아는 값진 인생의 순례자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내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박물관 내에 전시된 것들을 견학했다.
필리핀은 7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며, 다섯 시대로 나눌 수 있었다.
에스파냐의 식민지 이전시대, 300년 동안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 , 40년간 미국의 식민지 시대, 3년 반을 일본 침략 시대 ,그 후 1946년 7.4일 필리핀 공화국으로 정식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충격 적인 것은 미국이 에스파냐에게 2000만 달러에 필리핀을 샀다.
거의400년 동안 자신의 주권이 없는 역사를 이루어온 필리핀에 동정이 간다. 세계적 탐험가 마젤란이 필리핀을 발견했다.
에스파냐영향을 많이 받아 스페인 식 이름이 지금도 많다.
종교는 천주교가 많은 것 같고 기독교 이슬람교도 토착 신앙 등 이교도 들이 많이 번성해 있었다.
문제는 천주교가 개신교의 성장에 저해를 주고 마치 적그리스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철저히 형식적이고 인본적인 종교로 하나님의 뜻을 외곡 한다.
필리핀의 아픔에 동정이 가고 사랑이 갔다.
필리핀의 태동이 들리는 듯 했다. 복음 전파로 말미암아 황무한 이 땅이 영적 부흥으로 다시
일어나 설 것을 믿는다.
조국의 아픔을
그대 젊은이들은 아는가!
당신의 조국의 신음소리를 듣는가.
그대들이여! 깨어나라!
너희 가슴에 움직이는 정의는 어디 있는가!
너의 조국을 사랑하라!
비굴한 삶에서
정의가 살아있는 탈출 선으로 향하라
푯대를 향하여 달리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간구하며
조국을 가슴에 끌어안고
황무한 이 땅에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해달라고…….
견학을 마치고 쌀 국수가 유명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차안의 정경은 이러했다.
운전석 옆에는 오빠 투, 운전석 뒷좌석엔 오빠 원과 왕 언니 그 옆
에는 무수리 ,맨 뒷좌석엔김소현 집사님과 한나와 예슬이가 앉고,
그 옆에 라미경 언니자매가 앉아갔다.
우리는 밀리는 여정을 찬송으로 지루함을 달랬다.
찬송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 하며, 쉬지 않고 불렀다.
우리 자신 속에 부질없이 꿈틀대는 불신앙들의 찌꺼기를 지우기나 하듯이
오빠원은 테너 , 오빠 투는 베이스 , 나는 알토, 나머지는 소프라노를 불렀다.
화음을 넣으니 찬양에 힘이 생겼다. 가는 길이 막힐 때 찬송을 부르자고 오빠원은 간간히 부
추겼고 숙소에 도착하기 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열심히 불렀다.
473장 은 김 선교사님이 항상 힘을 얻는 찬양이라고 하셨다.
“아아 내 맘 속에 참된 평화 있네.” 찬양은 우리의 지친영혼에 생기를 불어넣는듯했다.
화음이 매력적으로 불려졌고, 점점 은혜가 되었다.
마침 우리를 부르는 호칭을 짓다가 농 하모니라고 라미경 언니 자매가 이름을 만들었다.
의미는 ‘농민신문사 하모니라고’
농이란? 농민신문의 약자인 것을 잘못들은 사람들은 롱으로 듣고
‘길지도 않은 사람들이 웬 롱’ 이냐며 웃고 야단이었다. 그 깊은 뜻을 누가 알리요.
길이 많이 막힐 때 마다 빠른 찬양을 부르자고 오빠원이 제안 했다. 부르다 지친 농시스터즈
는 곤하게 잠이 들었다. 찬양을 좋아하는 나와 오빠 원, 투는 마치 적진을 향하는 군사처럼
힘차게 불렀다. 그런데 어쩌다가 오빠 원을 보니 정말 안 되어 보이셨다. 비유 맞추시려고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한 불빛아래에서 찬송가를 들고 진땀을 흘리시며 얼굴이 하얗게 상기 되
어계셨다.
(피곤도 하셨겠지만 게다가 인플란트를 하신것이 이제야 생각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오빠 투 역시 졸기만하면 깨워서 찬송가를 불러댔으니 얼굴은 보이지 않아 모르겠지
만 뒤통수가 의자에 닿기가 무섭게 시달렸다. 내게 시달린 사람이 한두 명이 아
닐테다. 그래도 글 쓰는 지금, 그날이 너무 그립고 다시 부르고 싶어진다.
사단의 권세 물리칠 힘
우리 힘으로 안 되네
우리의 정열을 빼앗을 세력
우리 힘만으로 저항 못 하리
전쟁과 평화는 하나님께 속한 것
찬송에 능력 있네.
찬양에 힘이 있네.
우리 가는 길 힘겹고 지칠 때
가엾은 우리영혼의 호소와 간구를
찬양을 받으시고 힘을 주시네.
찬양을 받으시고 승리 주셨네.
숙소에서 여정을 풀고 우리는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피곤한 나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기도를 하고 잠을 청했다.
‘ 주님 피곤함을 잊고 푹 자고 상쾌한 아침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일 아침에는 상쾌한 햇살이 빛났다.
목사님은 어제 순방한 교회를 합하여 총 5군데를 개척하셨는데, 한주마다 순회를 하면서 설
교를 하신다고 하셨다. 그중 어제 마지막 간 교회가 순번이었다.
아침 단장을 하고 우리 일행은 특송을 준비했다.473장을 화음에 맞추어 연습을 했다.
전 9명이 부르는 소리는 여리고성을 함락 하며 마지막 지르는 함성처럼 웅장한 영적인 힘
있었다.
아내맘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아귀하다 이 평안함…….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 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찬송가 473장
교회에 도착 했다.
다시 만난 기쁨과 감회가 새로웠다.
비가 주룩 주룩 내리던 어제와는 달리 하얀 회벽에 흰색 블라인드 창살로 햇살이 들어왔다.
따뜻하지만 점점 뜨거워져 날씨가 더워져서 선풍기를 틀어 놨다.
교회 양옆의 창과 강대상 앞쪽으로 진한 핑크빛 레이스가 사랑스럽게 바람에 흔들렸다.
어제의 느낌과는 또 다른 감동이 왔다.
예배는 시작 되었고 그들이 찬양을 인도했다.
형식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손을 들고, 일어서서 기쁨으로 박수를 치며 힘껏 부르는 찬양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예배임을 실감케 했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감격했고 감사가 넘치며, 아멘이 넘치는 기쁨의 예배로 느껴졌다.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 지만 내 느낌을 표현한다)
주중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간증의 시간인 것 같았다. 타갈로그로 말을 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지만 남자 성도가 앞으로 나가 한참을 이야기하니 성도들은 아멘
을 연발했다. 간증의 나눔이 있으므로 서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으리라.
어린 주일학생도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쑥스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찬양하고 담대하게 말씀을 읽고 특별 찬양과 율동도 잘했다.
김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요한복음 1장 1절-4절 빛의 자녀는 빛을 나타낸다.
말씀을 따라가면 누구나 선교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구를 용서하는 일은 힘들다.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너무 힘들어 우리는 종종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내게 용서할 마음을 달라고, 그러나 그 기도는 너무 수동적이다.
내 마음에 용서할 마음을 달라 기전에 하나님 저에게 많은 사랑을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하나님께 깊은 사랑을 많이 받으면 그것을 퍼주게 되어있다.
내가 갈급한데 누구에게 줄 수 있겠는가!
내게 넘쳐야 누군가에게도 퍼주게 되어있다.
풍성한 주의 은혜와 사랑을 하나님께 구하라.
많이많이 채워, 넘치도록 달라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뇌리로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목사님과 사
모님 양부모님이 모두 목회자였다고 한다. 목사님 아버님은 시골교회를 담임하시며 부흥강사
로 다니시다가 지난 9월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양산교회에서 아버님이 부흥강사로
나가시면 김 목사님이 교회를 돌보며 목회를 하셨다고 했다. 그러자 교회 집사님이 아니 교회
들 아들에게 세습하는 것이냐며 블레이크를 걸어서 , 그 시로 저녁 예배 때 사표를 수리하시
고 필리핀으로 향하셨다고 했다.
당신이 태중에 있을 때부터 선교사로 보내겠다고 서언을 하셨다
아버지 목사님은 그 후로 식사도 못하셨다고 했다. 필리핀에 와서 많은 고생을 했다. 자녀가
4남매이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통하지 않아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목사님의
신조는 어떤 계획이나 목적을 놓고 달려가기보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활의 신
념 이라고 하신다.
매우용기가 없고, 소극적이며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하나님은 그런 당신
을 들어서 사용하신다고 했다. 대부분 선교사들은 자신의 플레 인을 가지고 와서 몇 년 후에
어떻게 할 것이며 ,몇 년 후 어떻게 하겠다고 계획을 세워놓고는
그것이 성취되지 않으면 좌절되고 말아 고국으로 떠나간다고 하셨다.
먼 저온 선교사가 지내던 곳 지금의 빈민가 그 교회를 인수받으셨다고 한다.
그곳에는 수도 마닐라드림을 품고 시골에서 농사를 접고 온 가난한 사람들
이 무허가로 사는 곳이다. 사는 것이 형편없다.
지식도 없고 기술도 없고 그들은 아주 미개한 수준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목사님은 그곳에서 새마을 운동과 같은 일을 하기위해
마을에 포장도로를 내려고 노력했으나 주민들이 오히려 반대를 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땅값이 오르면 땅주인이 자신들을 돌려보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상수도가 개설되기 까지 목사님의 공이 컸다.이나라는 물이 귀함으로 상수도를 오전에
한두 시간 오후에 한두 시간 정도 공급을 한다고 했다.
그물도 상수도원에서 저장하는 사람들이 다른 자들에게 물을 돈 주고 팔아먹어
물 수급 량이 매우 부족하다고 하셨다.
우리가 오기전 목사님은 옥상에 물탱크 하나를 덧달았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물이 단수됨
이 없이 잘나왔다. 몇개월전 3명의 선교 여행자가 다녀갔는데 그들은 지금의 물통을 덧달지
않아서 물을 사용하다가 단수되는 어려움을 고수했댄다.
목사님은 우리의 방문소식을 듣고 고민을 되어 커다란 물통을 한개 더 설치하는
수고를 해야만 하셨다.
물은 지내는 동안 안정적으로 잘나왔다.
후원하는 곳은 달리 정해 진곳이 없고
한달에 아버지 목사님이 받으신 사례비를 보내오시고 양산교회에
서 30만원정도 보내오셨는데 지금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른 방법으로 주님께서 채워 주
산다고 했다.
목사님외에 사모님과 아이들은 위험에 노출 되어 있었고
사모님께서는 자녀의 문제가 제일로 걱정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악의 세력에 노출되는 자녀들을 볼 때 너무나 두려워 기도한다.
그러나 주변의 나쁜 조건들 집 앞만 나가도 버려지는 동물 분뇨와 악취
사방을 보면 답답한 환경의 음침한 집들 사람의 향기라 할 수 없는 악취들. 사람들의 질
떨어진 생활습관들이 선교사님 자녀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모님은 오직 목사님과 아이들만 잘되면 된다.
자신을 희생하시기로 단단히 마음먹으신 것 같다.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고난과 아픔의 세월을 삼키시는 생활이다. 하늘에 소망을 두며
사는 두 분들의 부드러운 외면 속에 내제된 열망과 열정을 보며
하나님께 사로잡힌 목사님 가정에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의 박수를 드린다.
신 사도행전이었다.
절망과 좌절이 엄습할 때
포기하면 갈 수 없는 이길
커다란 망망대해와 같은 시험을 당하나
주 날 건지 시네.
주 날 지키시네.
험한 시험 물결 속에서도
희망의 닿을 놓지 않으리.
주님 함께하시고 내길 예비하시니
나 항상 기뻐하며 주 만 섬기리.
주 예수님만…….
저 천성에서 만나면 얘기 하리
그날에 보았던 주의 영광을 .
말씀에 은혜를 받고 농 하모니의 특송으로 분위기가 고조 되었다.모두들 진지했고 눈이
반짝 반짝 빛났다. 또한 다시 점심을 대접 받는 기쁨이란 이들의 정성을 마음껏 받고 가는
우리는 이들이 주님의 축복과 사랑을 충만하게 누릴 것을 위해 기도했다. 예배가 끝나고 밖
으로 나와 보니 이 동네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와서 웅성웅성 했다. 무슨 일인가
보았더니 , 닭싸움을 시키는 중이 앗다. 어쩐지 집집마다 닭이 한 마리씩 울이에 갇혀 있었
다. 닭의 다리에 칼을달아놓고 시작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닭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승부는 결정되는 것이다. 이긴 사람은 판돈도 받아가고 죽은 닭도 가져간다.
나는 재미로 이 광경을 보았는데, 목사님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젊은이들이 일할생각은 하지 않고 도박이나 하고 있다고, 또한 돈을 가치 있는데
쓰지 않고 이렇듯 판돈 거는데 쓴다고 말이다. 이곳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설상 일자리가 생겼다 하더라도 6개월 이상을 고용하려들지 않는다고 했다.
힘의 세력을 약하게 하고자 특권계층이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일하기전에 꾸어서 먹고 일 한 후 갚아버리는 생활을 반복한다고 했다. 그리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하려면 통장개설비가 저금하는 돈보다 더많이 들어서 저축할 시도도 하기
힘들다고 한다. 닭싸움 광경을 촬영하던 카메라맨집사님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카메라에 다 찍어났으니 나중에 보면 알 거야. 너무 잔인해…….”
닭싸움 한다는 소리에 젊은 오빠 투는 신나게 무리가 있는 곳으로 뛰는 것 같았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저 죽어 가는 내 형제에게(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
저 죽어가는 내형제에게 생명을 주소서
흑암에 권세에 매여 내일을 빼앗긴 저들에게
저 소망 없는 텅 빈 가슴에 생명을 주소서
고통에 메여 신음하고 있는 저들에게
아버지여 이 백성 다시 살게 하소서
묶였던 자 자유케 되는 영광의 날을 주소서
아버지여 이 나라 주의것 되게 하소서.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 다시 섬기게 하소서
메마른 뼈들에 생기를
부어주소서 아버지의 긍휼
주의 군대로 서게 하소서
성령에 바람 이제 불어와…….
아버지여 이 백성 다시 살게 하소서
아버지여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 다시 섬기게 하소서...........아멘CCM.
목사님은 개척한 교회 중에 지금 교회가 가장 소망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목사님 자비를 털어서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못하는 5쌍의 부부를 결혼시켜주었다고 했다.
그중에 2가정이 교회에 출석한다고 하셨다.
그때 나오게 된 남자 성도가 둘이나 되는 힘 있는 교회라고 말씀하셨다.
(이들은 결혼할 때 300만원 정도의 돈이 든다. 또한 출생신고와 사망신고, 결혼신고
등을 성당에서 대행해 주면서 돈을 받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성당과 연결고리가 될 수밖에
없는 질긴 끈으로 묶여져 있다.)
주일이지만 우리는 쇼핑할 시간을 갖게 되었고 바나나를 말린 것, 야자기름, 망고 젤리등
이 나라의 기념품을 돌아보며 선물을 사는 시간을 가졌다.
건물은 5-6층 정도 되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아이 쇼핑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의 가족은 점심 요기를 위해 피자가게로 갔다.
점원들은 무척 친절했고, 매점 밖으로 좌석 배치되어 되었다.
음식이 나오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필리핀은 중산층이 결여된 빈부 격차가 심한 듯하다.
이곳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매우 건강한 신체에 제법 세련된 용모들을 지니고 있었다.
가족과도 유쾌한 시간을 갖는 것도 말이다.
음식이 나올 동안 가족과 대화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스무 살 정도의 여인이 어린 아기를 안고
너 댓살 된 아이는 걸려서 내 앞에 서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거리낌 없이 말이다.
난 그 여인에게 물었다.
‘지저스 러브유?’
‘오 케이 지저스 러브’
그녀의 눈은 지금당장 음식만을 원한다.
주님은 뒷전이다. 그저 내 맘에 들길 원한다.
난 그녀의 눈빛에서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내 마음에 동정심이 울컥 솟아올랐다.
내 자녀와 같은 아이들이 구걸을 한다.
나와 그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진 자와 같지 못한 자의 차이 인가?
아니 그는 하나님을 모른다.
내가 만약 주님을 모르고산다면 바로 저 모습, 저 행동이 아닐지라도
어디선가에서 나 역시 양심을 구걸하면서 하등에 죄책감이나 비굴함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안락함에서 오는 행복감과 포만감과 안정감은
저들을 보살필 하등의 책임이 없단 말인가!
처음엔 아무생각 없이 그녀를 보내고는 곧 뒤따라 그녀의 뒤를 찾아 헤맸다.
싸구려 동정이라도 난 그들을 찾아야 했다.
십여 분을 찾아 헤맸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피자 한판을 다 먹고 나서야 그들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주님은 내게 무엇 하길 원하시는 걸까?
난 그들에게 돈을 주기보다. 빵을 사주었다.
그녀는 그 자녀를 앞세워 연실 머리를 숙였다. 고맙다는 표현을 한 것이리라.
그 곁에 난 서있다.
사치스런 자선이 아닌 진심의 자선이길 바라면서
무슨 생각인가! 나도 모르는 감정이 내영혼의 옷깃을 스쳐지나 갔다.
모두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스 스케이트장내부를 내려 다 보았다.
아이들은 신나게 얼음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간간히 위에서 인조 눈도 뿌린다.
행복이 가득한 저들 모습과 불행한 좀 전의 모습이 교차 되면서 만감이 교차 되었다.
우리일행은 쇼핑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위해 차에 올랐다.
저녁식사는 랍스타…….
시장 내에서 가재와 꽃게의 흥정은 시작되고........
생기 있는 흥정은 생동감이 있었다. 목사님은 적정선에서 흥정하셨다.
푸짐한 가재는 요리만 전문으로 하는 가게에 갖다 주었다.
그러면 그들은 요리 값과 자릿값을 받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가 나오자 조용히 먹는데 집중했다. 가재의 표피가 얼마나 억센지 …….
.어찌 하였든 즐겁고 흐뭇한 시간이었다. 자상한 정집사님이 우리
아이들까지 먹이시는 것 같았다. 지면으로 나마 치하를 드린다.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음식도 잘 먹고 과일도 소량으로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공동체에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호텔로 숙소를 옮기기 위한 의견의 조회가 필요했다.
자매들은 씻고 잠자리에 들려고 준비 중이었다.
세수도 다하고 오리 지날 누두의 얼굴을 가지고 형제들의 방으로 갔다.
모두들 표정이 여러 가지였다.
영원한 젊음 오빠-원은 무척 상기된 얼굴로 땀까지 흘려 가시며 이곳에서 나가면 안 되는
이유를 요목 조목 설명 하셨다.
우리가 가면 목사님사모님이 가장 슬퍼하시고 괴로워 하실 것 이라고.......또한 여기서 평생
사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가 며칠을 견디지 못해서 나간다면 이분들이 실망하실 것을 생각해
보라고.....
다시 말해서 이곳에 계신 분들이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도록 배려하자는 말씀이신 것
같았다.
(나중에 목사님 사모님과 작별 할 때 이 말의 참의미를 알게 되었다. 역시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야 해요)
당신부부만 빼놓고 모두 호텔로 가라고 호통하셨다
그때 왕 언니의 표정은 고개를 돌리시고 얼굴을 푹 숙이고 계셨다.
그 심경은 어떠하셨을까?(?.....)나중에 그 당시 심경을 들어봐야지).
마치 아버지 앞에서 혼줄 나는 자식들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 차장, 최 차장 그러는 게 아니야’ 하시며 힘이 들어간 소리를 하셨다.
아니 이건 무스기 말씀.
모두들 당황했다. 오빠 투는 사태수습에 나섰고.
‘저 그게 유...........’ ‘음 .......어쩌구 저쩌구.’상황을 정리하기에 급급했고
또한 궁지에 몰린 마이 허즈번은 나지막이 침착하게 말했다.
‘모두 제 잘못 이구 먼 유. 준비가 소홀 혀서…….’
최 차장님은 무릎을 폈다 앉았다 하시며
“휴---” “ 주여!” 연실 하늘을 쳐다보시다 땅을 내려다 보셨다.
그 옆에 정집사님은 무척 난감한 표정이었다.
‘무엇 때문에 ,뭣땀시..........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나유.........’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그 상황에서 재치 있는 언니 자매의 말이 일조를 했다.
남편에 대한 존경, 시댁에 대한 감사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물신 배어나오는 말이었다.
(평소에도 남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며, 가장 좋은 그릇에다가 최고로 대접하려
노력 한다.나가서 타인에게 잘하고 가족은 챙기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나는 언니자매의 태도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 남편을 너무 소홀하게 챙기고 부족하게 한 모
든 것들이 반성 되었다.
또한 김 소현 집사님은 “어머나......저머나...했구먼유”
왕 언니는 “ 어이쿠..저이쿠....에구머니”
나는 “ 그러지 마시유... 알았시유.”
어쨌든 사건은 서로의 겸양과 양보로 잘 마무리가 되었다.
서로의 의견이 충분히 전달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실장님의 당부
도 정차장님의 배려도 , 다음날 목사님을 통해 숙소를 알아보기
로 하는 것으로 마루리가 되었다.
속에 흔들리지 않고 초심에 심지를 곧게 하신 실장님을 보면서 농민신문사의 소망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욕구나 공동체의 욕구보다도 하나님 중심에서 공동체를 이끄시려는 그 의지
가 존경스럽고 감사 했다.그리고 모두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슴속에 따스한 사랑이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고 적당한 재치와 사랑으로 넘기신 정차장님이 고마웠다.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 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월요일 아침
팍상한폭포와 미작 연구소 온천 등을 일정으로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거의 9시경에 출발
했다. 창밖으로 자연 환경을 구경하며 갔다. 야자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처처에 있다.
벼농사는 일년에 3모작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곳은 수확해야할 벼가 있고
다른 곳에서는 모를 심기위해 논에 물을 대는 것이 보였다.
작물이 자라기에 적정한 온도와 기후 조건 , 열대성 과일로 풍성한 과일들이 있는 이 나라.
그런대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불쌍하다. 빈익빈 부익부라 했던가.
나라를 잃은 식민지 근성이 이들을 게으르고, 나태하게 했고 좋은 환경을 개척하거나 개간
할 수 있는 제도적 밑받침이 없어서 소자본의 백성은 가난으로 허덕이며 산다.
하나님의 이름을 누구보다도 많이 부르는 이 나라를 누가 책임져야 할까?
종교 지도자? 성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 누구보다도 거룩하게 여기며 섬기며 나타내지 안
있던가! “누구든지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이른다는 말이 있다. “
주에 이름으로 우상을 숭배하게하고 구원받을 백성까지 물질이나 권력의 힘으로 유혹하거나
압제한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는 듯하다.
하나님 중심과 말씀중심이 아닌 ,자기 소견에 옳은 것을 쫓는 일은 위험부담이 있다고 본다.
“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로운 것 보다 나으니.”
우리는 얼마나 환경을 탓하며 자기변명에 능하게 살고 있는가!
공평하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심이 감사하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자들은
그것을 개척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가! 심지어 자기가 되지 않는 것을 남의
나라를 빼앗아 가기까지 노력하지 않는가! 물론방법은 나쁘지만 ,그 외 긍정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노력하지 않는 인생은 폐허와 같이 버려지는 필리핀 들판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가능성이 풍성한데도 불구하고 왜 포기하는가!
생각의 게으름이여 ! 우리에게서 떠나라 멀리멀리 좀더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가야지…….
주님
자기변명에 능한 저희를 굽어 살피소서
주가 내게 주신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게 하소서
주님이 한 생명 한 생명들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목적을 이루게 하소서
주님의 거룩한 뜻 이루게 인도하옵소서.
우리 일행은 폭포로 가는 도중 산등성이 에서
야자열매 노점 상인을 만났다.
야자 열매주인의 얼굴에는 활력이 넘쳐 보였다.
열매에 빨대를 꽂고 한 개를 마시니 배가 불뚝 일어났다. 다 먹은 열매를 반으로 자르면
그 속에 하얀 점액질이 있다. 숟가락 모양을 내어 겉껍질을 잘라 그것을 파먹으니 뒷맛이
고소하게 느껴졌다. 배부르게 마시고 먹고, 기념 촬영을 하고 또다시 출발했다.
고산지대를 넘는 중이라 멀리 펼쳐진 호수와 그 주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다.
호수는 방대하게 길고 도심 전체에 젖줄처럼 펼쳐져 있었다. 들판의 논과 밭 그리고
야자나무 종려나무 바나나 나무 ,아카시아나무, 망고 나무들이 허전한 대지를 장식했다.
도로 밑 부분은 비스듬한 절벽이 내려다보이고 그 밑으로도 갖가지 나무와 풀들이 무성했다
가는 길에 우리나라의 한국 전력에서 양수력 발전소 기지를 볼 수 있었다.
우리민족의 천재적 두뇌와 지혜와 기술개발 능력에 긍지가 느껴져 흐뭇했다.
차안에는 신학 대학교 학장님께서 권 부장님 자리를 대신했다.
그분의 간증이 시작되었다.
12명의 형제 중 장남이며 위로 누님이 2분 계신 댄다. 어려서 어머님은 가톨릭 신자였으며
아버지는 개신교도 이었다.
어머니는 주일 아침이면 깨끗한 옷을 갈아 입혀서 성당에 데려갔다. 그 후에 아버지께서 항상
교회로 데려 가셨단다. 흐르는 세월 속에 위로 두 명의 누나들만 빼고 10명의 형제들은
예수를 영접했다고 하셨다. 나머지 두 명의 누나 중에 한명의 누나가 죽기 전에 주님을
영접했고 이제 한명의 누나만 남았다고 하셨다.
학장님의 모습은 영적 품위가 있고 기품 있는 이미지 이었다.
경박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침착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몇 년 전에 심장 수술을 미국에서 했다.(미국인지는 정확하지 않는것 같기도하고)
생명이 죽음의 압박을 받을 무렵 김사무엘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많은 주셨다고 하셨다. 먼저는 생명을 다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음으로 김 사님께
감사드린다고 하셨다.
학장님의 작은 사위는 신학 대학교 부학장이란다.
모두 기독교 가정으로 필리핀의 영적인 부분을 담당 하실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 메이커이신 권오빠의 귀환 요구고 차안이 좀 시끄러워 졌다.
( 일명 농시스터즈의 데모크레이션 사건) 앞차에 모시러갔건만
(후훗……. 튕기시잖아. 30분 후에 오신다고.)
한참을 가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모두 기운이 없어서 지친모습이 영력했다.
한국에서 사가지고 온 컵라면을 먹기 위해 길옆 원두막 옆에 차를 세웠다.
목사님 사모님이 준비해 주신 부르스타에 가져온 물을 커다란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길가에 서있으려니 딸랑 딸랑 방울소리( 종소리라는 표현이 옳겠다)가 들렸다.
기존 자전거 모양을 하고는 옆구리에 아이스크림 통을 달고 다니는 하드 장수 였다.
하드 장사의 모습이 익살스러웠다.
그곳으로 몰려드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행복한 순간이다.
뚜껑이 열리고 파란색깔을 한 하드가 나왔다.(다른 색깔이 있는지 미확인)
입술을 파랗게 물들이는 불량식품인 것 같지만 이런 곳에서 한 개쯤 먹는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는가!
남편은 한참 계산을 하는 것 같았다. (계산이 안 맞는지, 아저씨가 바가지요금 씌우는지...)
맛있는 라면에 김치가 빠지면 안 된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김치를 꺼냈다.
봉지가 빵빵하게 팽창 되어 있었다. 봉지 속에서 발효 중 이었다.
맛좋은 라면이 몸속으로 들어가 포만감을 주니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아침 출발 전에 커피를 못 마신 문화인들이 (? ) 커피를 요구하자 옆의 구멍가게에 가서
용기 오빠가 커피 믹스를 달라고 했다.
물을 넣고 믹스를 물에 타니 프림 만 나왔다 .(실장님께서 학장님께 대접 좀 하려하니.)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목사님께 여쭈어 보니 이곳에서는 쓰리 믹스라고 해야한다나요.
다시 행선지를 향해 가면서 오래된 고목을 배경으로 간간히 기념촬영을 하며향했다.
앞차의 드라이버인 다니 아저씨는 참으로 명랑해 보였다.
그의 카메라 셔터 전조 싸인 이
우리에게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박력 넘치는 원…….투.쓰리.)
나이 마흔에 이빨이 모두 썩어서 하나도 없다. 쵸코릿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내일은 애인하고데이트를 가야하기 때문에 나올 수 없다 고한다.
머리는 반들반들한 대머리이시다. 막내 김 소현 집사님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친근감이 간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한말이 더 웃긴다.
이곳에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같이 생긴 분이 많다고.(여기저기 대머리에 이빨이 없으신 분이 널렸어요. 히히)
데니와는 대화를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지금도 보고 싶고 생각이 난다.
그분이 꼭 주님을 영접하길 바라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길 기도해본다.
그대여
당신이 보지 못하는 세계가 있어요.
눈을 떠봐요.
당신 곁에서 기도하는 전도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은 우리의 형제인걸요.
드디어 팍상한 폭포입구에 도착했다.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젊은 청년들이 차에 들러붙었다.
목사님은 그들과 한참 흥정을 하셨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하거나 빈틈이 없이, 이것저것
완벽하게 일처리하시는 목사님의 능력이 엿보였다.
설정된 가게에 우리 일행은 모두 내렸다.
그런데 이곳에는 간간히 한글이 써 있었다. 화장실이란 글씨와 팍 상한 폭포가 흰 종이에
정성껏 그려져 있었다. ( 그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의미 일 것이다.)
우리는 긴팔과 긴 바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필수로 챙겨야 했다. 햇볕이 강해서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완전 무장 했다. 카누를 타려니 부슬부슬 비가 뿌려졌다. 살짝 겉옷만 적실 정도의
부드러운 빗줄기 이었다. 우리의 여행을 축복하시는 주님의 싸인 으로 느껴졌다.
카누는 두 명씩 타게 되어있어 두 명씩 짝을 지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원일 이와 나의 차례가 되었다.
우린 함께 대화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다. 우리의 입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밀림 속으로 떠밀려가는 탐험대가 된 느낌마저 들었다.
타잔이 나타 날 것 같았다.
밀림 속에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풍부해 졌다.
강물은 황토색 이었지만 싱그러운 신록이 물속에 비치니 아름다운 비취색으로
날 유혹했다.
정글북의 모글리 와 밀림의 왕자 타잔이 나타 주면 좋겠다.
카누는 강물을 역류하여 올라가는데 뱃사공은 한배에 2명이 탄다. 앞쪽에 한명과 뒤쪽에
한명이 탄다.
손님도 두 명씩 타니 한배에 모두 4명이 타게 된다.
맨 앞에서 리더가 모터로 전체 7대의 카누를 끌고 갔다.
리더는 어느 적정선에서 멈추고 돌아갔다.
그 후부터 뱃사공들은 힘을 주어가며 역류하는 급물살로 온 힘을 다하여 배를 끌고 간다.
우리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며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감지했다.
힘들어하는 안색을 심하게 표출 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좀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나중에 알고 난 일이지만 그들은 일종의 쇼를 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들 카누 일자리를 갖은 사람이 3천명여명 되는데 하루에 오는 관광객이 대략 이 삼백명정
도가 된다는 것 같다.
그래서 뱃사공의 일자리를 서로 로테이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카누의사공일이 없는 날은 낚시, 드라이브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그들에겐 인기 랭킹 1위란다.
인정이 많고 돈도 많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팁이나 잡상인의 물건을 사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건만 우린 또
그들에게 나쁜 습관을 들이고 말았다.(절대로 팁을 주지 말라고 그들이 반드시 요구할 때
다음에 오는 관광객을 위해 주지 말아야 한다) 힘이 들고 허기가 진다는 그들의 말에 마음이
약하여 져서 팁을 지불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든다.)
멋진 녹지대에 잠시 내려서 사진 촬영도하고 산록 비슷한 동물과 기념촬영을 했다.
드디어 팍상한 폭포가 보였다.
산자락에서 낙하하는 폭포의 물줄기는 마치 은빛 비단 실타래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흩뿌려
졌다. 거세지 않은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폭포는 두 곳에서 떨어지고 있었고 서로 30M 가량 떨어진 것 같다.
첫입 새에 것 보다 뒤쪽에 것이 폭포의 양이 많았다.
그들은 사람 보는 눈은 있는듯하다.
짓궂은 장난도 통하는 사람에게 했다.
왕 언니와 오빠투를 폭포 밑으로 모시고 가서는 물벼락을 맞게 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파안대소하고 그 모든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젊은 오빠 원은 (실장님) 이곳에 오시지 않았다.
목사님과 학장님을 접대해야 하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솔로로 오신 영원한 젊은 오빠-투를 위한 배려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구경한 후에 젊은 오빠 원에게 자랑을 하고 약을 올려드렸다(?)
실감나게 ,리얼하게…….상상력이 풍부한 젊은 오빠 머릿속이 복잡했을 듯싶다.
(워낙에 올려다보지 못할 나무를 올려다보는 모험심이 강한 분이라…….이 말의 의미가
통하는 한분은 알아들으시겠죠?)
즐거운 카누 여행을 마치고 다음 코스로 필리핀 대학 분교로
향했다.
우리나라 서울대학 보다 국제 수준이 높은 곳이다. 미작 연구소를 들이기 위해서였다.
우리들의 허즈번드는 이곳에 오더니 갑자기 진지해 지기 시작했다.
흐트러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새삼 멋있게 느껴졌다.
‘저런 엘리트들..........너무 매력이 넘치는 것 아니야..........’
그중에서도 제일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있다....(?...알면서)
연구소에 들어가니 소장이 기독인이 라고 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보낸 것 같다고 마이 허즈번이 말해주었다.
그는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로서 그 집무실에서 손을 잡고 뜨겁게 통성 기도를 했다고
말하며 모두들 도전 받는 듯 했다.
(‘과연 나 같으면 사무실에서 손님으로 온 외국인들과 저렇게 담대하게
기도 할 수 있을까?하는 신선한 충격 같은 것 말이다.)
필리핀대학 캠퍼스는 몇 십 년 된 듯한 굵고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했다.
역사와 전통이 오래되어 보였고 그곳에 몸담은 젊은이들에게서는 이지적인 지성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의 필리핀을 주도해 주길 바라는 내 마음의 간절함 이었다.
엘리트들의 멋진 일정을 마치고 우린 다음 행선지인
온천을 향해 달렸다.
땅거미가 내리고 주변에 어둠이 내릴 무렵 온천에 도착 했다.
온천은 우리의 생각을 빗나갔다.
나의 생각은 노천 온천이라 하여 바닥에서 뽀글뽀글 온천이 올라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은 온천물을 받아 놓은 수영장 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지면에 온도가 떨어지면서 서늘해지니 따스한 물속이 그리웠다.
우리는 따스한 물속에 젖은 옷 그대로 온 몸을 담갔다.
온몸이 따스해지니 잠이 몰려왔다. 물을 보니 강아지들이(아이들)좋아했다.
비단 아이뿐 아니라 남자 큰아이들도(? 호호) 들떠서 수영시합을 하고 야단이었다.
마이 허즈번은 물속에선 맥주병이니 구경을 잘 하는 것 같다.
(나는 수영 못하는 사람이 쩨일 멋있더라…….호호)
우리자칭 무수리(자매)들은 물속에 누가 오래 있나 게임을 했다. 물 수면이 깊어서 목만
빼내고 있어야 했는데 우리는 하라는 대로 얌전한 순한 양같이 물속에 머리를
넣고 오래 오래 있다가 나왔다.
(그때 누가 20페소 준다. 고했는데 …….아무말도없습니더)
놀다보니 옆쪽에도 앝은 물이 있어서 그쪽에 가서도 신나게 물장구를 쳤다.
내힘닿는 만큼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물속에서 나오니 배도 고프고 힘도 빠지고 잠을 잤으면 좋은 컨디션이었다.
마이 허즈번은 약이 좀 오른 것 같았다.
(수영을 못 배워서?아니 수영을 못해서?아니 수영을 하고 싶어서?)
뿐만아니라 오빠 원은 멀직히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 어린애들 노는 것을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다.혹 안전 사고나 나지 않을까? 염려되셨어요?
차안에서 젊은 오빠 원과 나는 열심히 찬송을 불렀다.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서 부드럽게 말이다.
농듀엣으로 데뷔하라는 권유가 맘에 들었다.
농트리오로 데뷔,농시스터즈데뷔 도 고려해 봐야 겠다.
찬송을 하니 두통이 사라지는듯했다.
오는 도중 마지막 날 여정을 풀 호텔을 답사하고 왔다.
필리핀의 마지막 밤을 멋진 호텔에서
쉴 것을 기약하며 피곤을 뒤로했다.
사택으로 돌아온 우리는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서둘러 잠을 잤다. 내일은 바닷가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이 왔다.
시끌시끌 난리다.
빨리 출발해야 하니 서두르라고 ,사모님이 해주시는 마지막 밥을 맛있게 먹고 우린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짐을 챙겨서 출발했다.
새벽 미명이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길바닥에 마을에는 개나 닭들이 지뢰를 쳐 놓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덫에 걸린다.
마지막 단체사진을 교회 앞에서 촬영을 한 후 그곳을 떠나기 위해 차에 올랐다.
마침 목사님 자녀들도 마을 축제기간이라 쉬는 날이라고 했다.
우리는 목사님 온 가족과 우리일행과 합하여 3개의 차량에 타고 하루의 일정을 시작 했다.
이제껏 몸을 실었던 목사님 차에 그분의 가족과 학장님이 타시고 우리일행은 두 대의
렌터카에 올라탔다.
목사님과 함께 할땐 가이드가 되어 주셔서 모든 일정을 파악했는데
우리 끼리 타니 ,
우리가 산지 교회로 향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산지 교회에 도착해서야 우린 알았다.
꼬불꼬불 대단히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간 것 같았다. 워낙에 산골이라
우마차가 (달구지)태우고 들어가는 곳도 있다.
도착해 보니 화사한 교회가 깨끗이 단장되어 산 밑자락에 깔끔하게 세워져 있었다.
화창한 날씨가 이곳을 더욱 화사하게 해 주었다.
산지족의 영혼들을 케어하고 있는 목사님 부부를 뵈었다. 젊고 패기가 넘쳐 보였다.
우리는 예배당 안에서 기도하고 통성명을 끝내고 우리의 전달품을 전하고 교회 정원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전기밥솥 두 곳에 밥이 한 가득이다. 김치 멸치 깻잎반찬에 고추장등은 너무 마시 쪄요.
다음사람 식사를 위해 숟가락과 접시를 씻으러갔을 때
산지목사님이 물을 한 양동이씩이나 퍼 다주셨다.
김 목사님은 마을을 다니시며 물을 구하고 계실 동안 나는 귀한 물을 얻은 기쁨에
열심히 씻었다.
나중에 마이 허즈번의 관심으로 안일이지만 그물은 화장실의
배설물을 잘 내려가게 뿌리기 위해 준비되어있는 물이라나..........(으악)
식사 후 동네를 살펴보니 옹기종기 가옥이 모여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났다.
커다란 나무꼭대기에 올라가있는 소년이 기억에 남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건강하게 보이는 소년을 보니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 같았다.
카메라맨 오라버니는 열심히 찍는 것 같았다.
모글리는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고 멋진 포즈를 취해 주었다.
동네 꼬마들이 모인 곳에 가서 우리에게 있는 사탕을 나누어주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아이들의 동심은 똑같은 것 같다.
먹고 또 먹고 싶어서 욕심 부리는 아이들이 귀엽다.
사랑스런 아이들 부디 모두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백성 되길 기도 한다.
산지목사님부부와 함께 우리는 다시 바다를 향해 출발했다.
차안에서 모두 찬양을 드리며 갔다.
오빠 원, 투. 왕언니 최전도사님, 마이 허즈번 …….돌아가며 찬양을 부르니 지루하지가
않았다.
창밖에서 햇살이 뜨겁게 밀치고 들어왔다.
강열한 태양이 본격적인 맛을 보여주려나?
신나게 달리다가 젊은 오빠 투는 필리핀 노래를 아신다고 한번 불러 보신다고 했다.
제목은 ‘아낙’ 아들이 엄마에게 자유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을 설득시키는 내용이라고, 설명
까지 자세하게 하셨다.
노래는 시작되고 열심히 부르셨다. (필리핀 말을 알아듣는 드라이버에게 찔리셨는지?)
가사 몇 마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 드라이버에게 한번 해보라고 졸라댔다.
드라이버는 한 참을 뜸을 드리다가 O. K-
그는 운전대를 잡고 신나게 아는 것만큼 불렀다.
너무 열심히 불러서 이었을까?
도로 경찰이 우리를 세웠다.
아뿔싸 안전 벨트였다. 앞에 앉은 한나와 예슬이가 너무 미안해했다.
두 명의 경찰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썼는데 한 명은 키가 장성했고 다른 한명은 중간 정도의
등치였다. 그런데 키 큰 경찰은 (정말 나뻐요~) 쏘리쏘리를 외쳤 것만
내리지 말라고 눈을 꿈쩍하는 바람에 우리는 기가 죽어야만 했다.
차안에는 금세 긴장감이 돌았다.
즐겁게 아낙을 부르던 드라이버는 언제 그랬냐 싶게 긴장했고 떨기 까지 하는 것 같았다.
경찰이 무척 위협적이었고, 어린 청년에게 너무 심하게 권위적인 것 같았다.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공항이나 쇼핑센터 박물관과 같은 관공서나 대형건물이
설립된 곳엔 언제나 무장경찰이 있었다. 심지어 장갑차도 대기하는 곳도 있었다.)
목사님 말씀은 이곳사람은 작은 권력을 갖기나 하면 약한 사람에게 한없이 군림 하려하고
윗사람에게는 한 없이 굽실거리기 때문에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귀띔해
주셨다. 그리고 이들은 유니폼을 너무 좋아해서 집으로 돌아가도 벗으려 하지 않는다.
김소현 집사님은 혹여 놀랬을 운전기사 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벌금을 물어주겠다고 하며
안정 시켰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을 무렵 뒤편에 누군 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묵상 기도를 간절히
아주 심오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바로 젊은 오빠 원-( 실장님)이 섰다.
“어머나 간절히 기도하시네요.”
“.........” 말씀이 없으시다.
왕 언니왈 . “ 졸고 있잖아?......졸았지, 기도는 무슨 기도.”
( 왕언니의 재치는 우리의 얼었던 마음을 순식간에 녹였다. )
그런데 한번더 긴장 할일이 생겼다.
앞차에 가던 정 차장님이 무척 상기된 얼굴로 차를 세우고 다가왔다.
카메라가 없어졌다고…….우리역시 긴장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너무 걱정되었다. 그 속에 담겨있는 자료 때문에?(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죠?) 가 아니고
모두 걱정했다.
그러나 잠시 후 문제는 해결되었다. 바로 차 밑쪽에서 발견 되었기 때문...(다행한일이었다.)
끝으로 최차장님의 간증은 시작되고 차안은 은혜의 도가니로 뜨거워졌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것을 다짐하며 우린
그렇게 기다리던 바다에 도착 했다.
백사장은 한낮의 더위로 모래가 하얗게 달구어 져 있었다.
우리 무스리들은 어젯밤에 마르지 않은 빨래를 파라솔에 의자나 지붕에 척척 걸어 널었다.
(어디가나 무스리는 튄다)
서울 태생의 젊은 언니 자매는 자신의 체형과 스타일에 어울리는 예쁘고 섹시한 수영복을
착용했다.
카메라맨오라버니 입가엔 미소가 맴돌고 열심히 모두의 영원한 영상기록을 위해
힘쓰셨다.
강아지들은 언제 들어갔는지 튜브를 빌려서 바닷물들어가 괴성을 지르며잠수도하고
즐겁고 신나게 노는듯했다 .
목사님 자녀들도 우리 아이들 못지 않게 개궂졌다.
성수와 성찬이는 바다에서 조개껍질을 주어서 나에게 열심히 갖다 주었다.
성수와 성찬이가 주어준 조개껍질은 집으로 돌아와 예쁜 유리병에 한가득 담아 놓았다.
볼 때마다 그들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싶은 맘이다.
우리자매들은 한나와 예솔이 함께 튜브를 띄우며 붙잡고 놀았다.
우리의 왕언니는 물가에서 좀처럼 물속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무스리들이 손짓 발짓으로 빨리 들어오시길 원했다.
왕언니는 검은색 티셔츠와 검은 반바지를 입은걸로 기억된다.
하얀 모자를 눌러쓴모습이
환상적으로 잘 어울렸다.
하늘 한번 보더니 수평선을 지긋이 바라보신다. 이곳 저곳에 시선을 주면서 바다를
감상하시는 듯 보였다.
마치 왕비 마마의 재 스쳐 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물속에 잠수한번 안 해보고 한국으로 갈소냐.
용기를 내어 바다로 들어오셨고,
함께 튜브를 잡으며 신나게 놀았다.
어느정도 몸에 물기가 스며들 시간이 되자 느닷없이 젊은 오빠 투가 나타났다.
(나타나야할 젊은 오빠 원은 어디로 갔는고...)
‘싸모님 잠시 저 쪽까지 가시지요’
‘네?............ ’ 외마디 말만 하고 순식간에 저 깊은곳으로 가는가 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담한 등치에 왕어니는 손을 놓아버린 얄궂은 오빠투로 인해 물속에 잠겼던 것이다.
다시 얼굴을 내밀었을땐. 이미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버렸다.
볼륨있었던 우아한 머리카락이 물에젖으니 정말 생쥐처럼 보였다.
우리는 (무스리)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후 그런 행패(후훗) 를 부린 젊은오빠투는 슬며시 사라지고 물에 빠져서 놀란 왕언니는
해변 밖에 서있었다.
그때는 심기가 노하셨는지 마치 여경찰의 모습을하고 해변을 감시하는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또 한 바탕 웃었다.
라미경 언니 자매와 왕언니 모래를 온몸에 덮고 모래 장난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잠이
드셨는지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
김소현 집사님은 두딸들의 비유를 맞추느랴고 열심이다.
아빠 최전도사님은 바다에 오자마자 물속에 들어가셨는데 날카로운 모서리에 찔려서 피가
많이 나왔다.
스타트에 그리되어서 물속에 들어가지도 못하 셨다.
마침 산지 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열심히 바디랭귀지 하시는 것 같았다.
교감이 통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면을 보니, 차안에서 올때 5분
간증이 생각나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며 주님의 뜻에 열망과 열정을 갖은 사람임을
직감했다.
김소현 집사님은 물에서 나와 사워하는가 싶더니, 다시 들어간다.
딸들의 등살에 엄마가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이 애틋했다.
우리의 웃음과 행복한 시간이 무르익을 무렵
우리의 미각을 즐겁게 해줄 꽃게와대하가 출현했다.
말하지 않아도 물속에서 모두 나와서 까먹기 시작했다. 음...(맛좋아 )
모래 무지 언니들은 언제 나왔는지 열심히 먹고있네....
먹기만 하면 달려드는 파리들 ..그래도 맛은 좋다.
남편은 모두 자기 식구들 챙기는데 당신은 먹지도 않고뭐하느냔다. (원래 먹을 것을보면
다른 식구는 잘먹는 것같이보이는법.난 양반 자손이라서 물어뜯고 깨고 부스는데는 영
익숙치 않은걸?......호호)
사실은 먹는일보다 그들이 즐겁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것만 으로도 행복했다.
젊음 오빠원은 깡마른 체구에 통통하고 하얀 품위(배)를 내놓으시고 물속에서 밖으로 연실
들락거리며 간식을 드시는것 같다. 왕언니왈 “바로 실속있는 사람은 이렇게 먹는거야”
모두들 맛있게 먹을 무렵 큰아들 원일이는 속옷을 달라고 땡깡을 놓다 싶이 했다.
차키를 가져가서 차에서 가져와야했다.먹고 갈아입으라고 하니 고집이 어지간 했다.
작은 아들 원준이는 샤워실 옆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지 화장지를 달라고 야단이다.
귀여운 자식도 화가나면 뵈는게 없다.
“ 야!000( 새끼? 자식?아니면뭐라고 말했을 까요?)이런곳에 나오면 스스로 알아서 상황
판단에 맞게 행동하는거야. 어떻게 집에서 처럼 입맛에 맞게 너희 요구를 다들어주냐고“
화가 나서 차문을 꽝닫았다.(후에 차문이 안열린이유가 그때문인것 같아요)
얄미운 놈들은 그후에 옷을 갈아입고도 몇번을 물에 들어갔다왔다 했다.진짜 얄미운 놈들
..............................
한편 말도 없고 잘 드시지 않으시는 목사님 사모님은
한곳에서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시고 계셨다.
바다 경비원 초소옆 의자에 물끄러니 바다를 바라보시는 사모님께 먼저 말을 건넸다.
‘사모님 왜 안드시고 여기 계세요?’
사모님은 살짝 고개를 돌리 시면서 나를 바라 보셨다.
난 준비한 바나나를 두개 건네었다.
빙긋 웃으시면서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 많이 먹었어요. ’
‘ 제가 보기엔 하나도 안드시는 것 같았는데....’
‘ 먹을 만큼은 먹었는데.... 이렇게 앉아 있으니 참 좋네요.’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사모님 모습이 이곳생활에 많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네요?
‘내가 힘들어 하는건 다른 것보다도 자녀교육이예요.
처음에는 동네에도 내보내고 어울리게 했지만 악한 영적 세력에영향으로 아이들이 악영향을
받고 자꾸 부정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볼때 기도 하지 않으면 한시도 가만히 있을수없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선교사의 사모님들과 교제도 나누고했는데 내 신앙에 유익이 없고 영적으로
더 침체되는 것 같아서 이제 는 참석하지 않아요. 문제는 한국에서 선교사를 보내는데
큰 교회서 대대적으로 파송하지만 이단 종파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의 닿 줄을 놓 치 말아야 해요.
나를 가장 압박하는 기도제목이 있다면 자녀교육 문제이고 다음은 목사님 사역입니다.
자녀와 목사님을 위해 난 날 포기 했습니다. 희생하기로 작정했어요.........’
사모님과 대화 속에서 난 신앙에서 영적 깊음을 느낄수 있었다.
현대인 같지 않고 은근하고 끈질긴 인내가 내면에 가득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루 할 수 밖 에 없는 이국 땅에서
아내의 인내와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목사님 사역이 가능했겠는가!
자녀들의 정서 교육 때문에 힘들다는 말씀을 듣고 ,
지금 한국의 자녀교육 실정을 내가
아는 대로 소개해 드렸다. 사모님은 오히려 날 위로하셨다.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라, 손해를 본다할지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을
믿으라고 항상 훈육한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많이 배우고 도전이 되었다.
깊은 내면에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은혜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뿌리가 있었다.
선교사님의 가정에 급선 무는 자녀교육환경 개선인 것 같았다.
방치되어있는 환경 속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그들의 습관과 문화를 닮아가는
것이 왜 두렵고 걱정되지 않겠는가!
사모님의 말씀중 여운이 남는말이 있다
.“ 나는 자녀와 목사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작정했다고..”
주님 나라 확장을 위한 헌신이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 왔다.
아프락 사스는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의 고통의 껍질을 깨지 않으면 열매가 없다
자기 자신이 현실을 개척하지 않으면 열매또한 없는 것이다.-(데미안중)
.
당신은 입을 열어 말을 합니다.
주의 나라 임하리라고.
그의 날이 임할 때
당신은 이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도
가장 고귀한 모습으로 서있을 것입니다.
난 믿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삶이 결코 후회 할 수 없는 고귀한 인생임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란 말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단지 ,당신에게 어울리는 말입니다.
당신을 백합이라 부르고 싶어요.
진한 향기를 닮은 흰백합화 말이예요.
그 순결함의 향기는 너무나 진해서 주변의 악취를 제거하지요.
당신은 바로 그 순결한 백합.
당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불순한 것들이 정화 될 걸 믿어요.
당신의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한량없으신 능력을 덧입어서 말이죠.
잠간이지만 해변을 거닐며 이야기가 고조되었을때쯤 ,
다음 요리 코스인
레총(-통돼지 바비큐)이 도착했기 때문에 대화를 끝내야 했다.
레총은 필리핀 사람이 축제 때나 즐기는 요리로서 겉껍질이 아삭 바삭 한 것을 즐기는
맛있는 요리라 고 했다.
레총은 기다란 종이 관에 넣어 져서 두 명의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 왔다.
돼지 머리는 방긋 웃으며 우리를 반기는듯했다.
꽃게와 대하로 배가 부른지 많이 먹지 못했다. 산목회를 하시는 목사님과 신학대학교
학장님께 머리와 꼬리를 나누어 드리고 김 목사님께 나머니 부분을 싸드리고 조금은
숙소로 돌아가서 먹기 위해 남겨 두었다.
그분들은 오늘이 내 생일이었으면 좋겠다며 많이 좋아하셨다. 마침 목회에 답례도 못했는데
레총을 그리도 반기시니 우리 마음도 흐믓했다.
이고기는 잔칫날도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라고 하셨다. 표피가 바삭 바삭 한 것이
맛은 있었는데 머리통도 보이고 기다란 관에 들려온 것을 보니 느낌이 좀(징그러웠다.)
해변에 어둠이 신속하게 내렸다.
한낮의 뜨거움과 분주함이 사라지고 어둠 속에 바다는 가라앉는 듯 했다.
뒷 편에 물러선 해변과 바다는 그들의 방법으로 휴식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찾아오는 인파들과의 해후를 통해 매일 밤마다 자신들의
언어로 주님을 찬양하리라. 남들을 섬길수 있도록 그 자신들을 창조하신 주님을 .
푸른 물결의 바다.
우리 이제 떠난다.
잠시 너의 품에 몸담고 ,
너의 너른 가슴을 헤집고 지낸 시간을 접으련다.
우리를 위해 거센 물결 잠재우고 ,
거친 바람 잠재웠을 너의 진실한 사랑.
마른 태양을 적시기 위해 젖은 구름을 불러온 너의 사랑.
우린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길 다짐하며
너의 사랑을 충분히 먹고 간다.
너와의 진한 추억의 그림자를
그냥 내려놓고 간다.
슬퍼하지 않길.
오늘 해가 지면 ,
내일의 해가 뜨는데
너 기억해 주렴.
그 무수히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간 자국 보다
우리들의 애틋하고 진한 사랑을 .......
안녕! 내사랑 .지친사람들의 위로가 되고,
넌 언제나 그 자리에 남는 구나.
미안 !내사랑
우리만 기억 되길 바라는 욕심 때문에
너의 사랑을 헛되이 갚지 않으리
나 주님만을 섬길때
넌 이곳에서 찬송을 불러다오.
그래야 우리만남이 퇴색되지 않는
영원한 사랑 되리.
목사님의 차문이 열리지 않아서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속에서 찔렸지만 말씀드릴 만큼 내겐 용기가 있지 않다. 물론 남편이 용기이지만 )
때문에 산지 목사님 내외와 학장님은 다른 차에 옮겨 타셨다.
나는 처음으로 카메라맨 오라버니형제와 함께 할 시간이 생겼다.신앙적인 교제를 나누며
서로 은혜를 받았다. 또한 오라버니의 가족송이 “이 믿음 굳세라”인것도 듣고 알게 되었다.
굳센 믿음의 가정을 결의 하고자하는 굳센 의지가 보이는 찬양 이었다.
대화 도중 느낀 것이지만 참으로 진솔하며 타인을 세워주고 칭찬하는 긍정적인 섬김이
가득한 따뜻한 오라버니였다.
호텔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많이 막혀서 늦어 졌다. 한 두시간 이면 도착 하려나 했더니
네다섯 시간씩 걸렸다. 아마 산지 목사님 동네와 학장님 동네를 돌았기 때문에 늦어진 것
같았다.
가는 도중 카메라맨 오라버니가 음료수와 간식으로 모든사람을 섬겨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음료는 갈증을 해소해 주었고 지루한 행보를 다소 위로해 주었다.
우리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는 성격이 매우 급했다.과속에다, 앞지르기를 하는데 눈은 감고
있었지만 얼마나 마음이 조마 조마 한던지. 조금 많이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고 우린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우린 목사님 가족과 작별을 해야 했다. 사모님께서는 최고의 정성으로 우리를
대접했으리라. 그분은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씀을 하셨다.
‘왜 한 밤 더 주무시고 밥 먹고 내일 아침 떠나지요.’그모습속엔 이별의 섭섭함이 살포시
젖어 있었다. 모두 아쉬운 작별을 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주안에서 언제나승리하세요.
빅토리......
너무 늦은 밤이라 씻고 나니 한 두시가 거반 되었다. 마지막 이벤트를 머릿속에 그려 넣은
것이 물 거품 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무척 아쉽게 여겨졌다.하기야 너무 피곤한건 사실이었다.
모든지 마지막 전야가 클라이 막스가 아니던가! (나 혼자 의 생각????)
방배정은 이랬다.
4개짜리는 최차장님 3개짜리두개는 우리부부와 남자아이들 4명 그 외실장님과 정차장님
권 부장님은 두개 짜리에 갇혀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한밤을 잤다.(여기서 말하는 개수를
말 하는 짜리는 침대갯수를 말한다.)
나는 상상을 했다. 어떤모습으로 잠들고 있을까?.....흐흑
날은 훤히 밝고 남편이 시계를 찾았다. TV를 켜보니 시간이 나왔다.6시가 막 되어갔다.
어젯밤에 로비냉장고에 맞겨놓은 고기를 7시에 찾으러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허즈번은 냉장고라는 영어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상당한 시간을 소요하고 있었다.
용남이가 누구인가. “머쉰- 아이스 머쉰...” 했더니 금새 알아듣는걸.
햇살은 금새 덥게 느껴지고 나는 에어컨을 켰다.
가방과 짐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 밖을 나와 보니
몇몇 오빠들이 진땀을흘리며 왔다갔다 했다.난 영문도 모르고 웃음이 나왔다.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을 꾹다물고 그기백은 마치 중대한 일을 해결하기위한
심오하고 엄중한 자태를 자아냈다.
이유인 즉 언니 자매가 버버리를 사택에 놓고 왔다고 했다.
그 상태에서 왕 언니와 라미경 언니자매의 대화는 이러했다.
‘그냥 놓고 가지뭐.’
‘안돼요. 정든것이래서’
‘아유 얼마짜리야?’
‘4만 5천원’
‘몇년 입었는데?’
‘7년 이요.’
‘아이쿠 그럼 버려....’
‘그럴까요,그래도 정이 들어서...’
그러나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들의 열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드라이버를 다시 보내어 찾아왔다.
파이팅( 무슨일이든 뭉치면 못할것이없는 기백이다)
아침 시장기가 돌았다.
호텔로비에서 먹으려 하니 청결상태가 좋지 못했다.
어제 가져온 레총을 먹으려니 아침이고 차리기에도 도구들이 없어서 먹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최전도사님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무척 드시고 싶어 했는데 좀 안타 까웠다.
목사님은 위생적인 음식점을 소개하기 위해 걸어서 5분 정도의 음식점으로 안내해 주셨다.
오픈상태가 아니고 오픈 준비중에 우리는 진을 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식사를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은 갖추었으나 카운터가 나오지 않아서 팔수 없다고 했다.
여기는 서로 노동분야에 한 부분이라도 준비되지 않으면 진행이 불가능한가보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생활방식이 복잡하고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기전 왕언니가 박장 대소를 하며 날 부르셨다.
무슨일인가 가보았더니 주변에 오토바이 택시기사들이 우리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아주 애타게 손짓 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지매.........’‘아지매.........’(경상도 사람이 한국말 가르쳤나?)
나중에 안일이지만 아지매가 이 사람들이 쓰는 의미의 용어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막간을 이용해 우리가 하도 지프니를 타보고 싶어 하니 목사님이 밖에서 한대를 대절해
오셨다. 우리는 와르르르 달려들어서 탔다. 매연은 들어오지만 낭만은 일색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 실감이 안갈 정도로 너무 실감났다.
가던 자리에 멈춰서 사진도 찍었다. 요금을 내는 방법대로 뒤에서 부터 거두어 내는
흉내를 냈다. 남자 형제들은 뒤에 매달리기도 했다. 모두 동심으로 돌아갔다.
지프니는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젊은 오빠 원 ,투는 보이지 않았다.
항상 무게를 잡으려 해서 맘에 안든다.
돌아와 보니 두분은 품위에 어울리게 커피를 마시려는 참이었다.
심오한 대화가 오간 듯 진지해보였다.( 고국에 있는 농민 신문사의 미래를 위하여?)
음식은 닭고기 스프와 복은밥 등등 나왔다.
맛있게 먹을 때 화장실 얘기가 나와 한 바탕 웃엇다.
필리핀 화장실 뚜껑은 누가 떼어갔냐는 얘기였다. 정말 나도 그 점을 묻고 싶었는데
우리 자매들이 얼마나 불편 했겠는가 상상 해보라!
젊은 오빠 원은 북한 여성이 예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다. 듣다 보니 우리
사람 기분 나뻤다. 왜냐하면 우린 남한여성이니 북한 여성이 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나는 북한 여성이 억세다고 말했다.
그소리를 듣고 왕 언니는 오빠 원을 자제 시켰다.
“억새다고 하잖아....” 우리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식사 후에 서로의 여행 감회와 목사님과의 고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여행도중에 있었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펼쳐지는 순간 이었다.모두 아쉬운 눈물을 감춘다.
바나나 나무여
야자나무여 안녕
너의 싱싱한 생기처럼
이 땅에 젊은이와 미래가 그리하길 바라노라
너의 젊음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아픔을 감내하며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필리핀의 모든 영혼들이 너처럼
주 형상 닮는 열매를 맺기 원한다.
사랑하는 필리핀이여
또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너의 뜨거운 해후를
영원히 잊지 않으리
안녕....
필리핀 공항까지 목사님이 배웅해 주셨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별을 했다. 주안에서의 승리를 위한 간절한 축복을 서로 나누었다.
목사님은 사역에 2백만원정도 가 필요했는데 이번 우리의 방분을 통해 해결되었단다.
이내 도움이 되었다니 기분이 좋았다.혹여 민폐를 끼칠까봐 긴장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사역에 기력이 소진하면 안될 일이니까....
공항에서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
새치기 하는 아줌마에게 자리를 절대 양보하지 않으면서....
공항내에 들어가서 기념품이나 선물을 사기위해 흩어졌다.
망고, 사탕,등등 보따리가 훨씬늘었다. 모두 출근할때 들고 와야 한다나. 창피한줄모르고
들고 다니는 순수함이 맘에 들었다.
비행기 내에서 모두 점잖게 자리을 잡고 앉았다.
조용히 침묵하며 여정을 정리한다.눈을 감고 모두 하얀 미소를 짓는다. 그간 지낸일들을 회상
하기나 하듯이....
한국에 도착했다
짐을 찾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레이저가 고장 나서.......
모든 짐은 다 찾았는데 젊은 오빠 원 투 것만 나오지 않았다.
젊은 오빠 투는 당신 것만 찾아서 빨리 가신다나.
오빠 원은 국제공항이 동네 터미널 쯤 으로 생각하셨는지. 열심히 다른 사람 짐은 다 찾아
놓으시고 당신의 짐을 기다리다 마시고 하시는 말씀
‘내가 빨리 가서 칼을 찾아 올 테니. 어서 짐을 찾고 있으라는’말씀만 남기시고 바람과
함께 사라 지셨다.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여행을 마치며
모든것이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겨졌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함께 보낸 시간들이 못내 아쉬움으로 자리 메김을 했다.
왕 언니가 칼국수 사준다는 기약을 뒤로 한 채 우린 헤어졌다.
실장님은 또 한바탕 웃겼다.
‘칼을 찾아서 들어 오려하니 안 들여 보내주데......’
그뿐 아니다.
‘엇 왜 만원짜리가 지갑에 있지? ’
‘달러로 바꿔서 버스를 타야지........(......)’
사랑하는 당신이여
우리 이별이라 말하지 말자.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있는 한 우린 또다시 만나리.
사랑하는 당신이여 우리 사랑 변치말자.
서로의 희생만이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낳을 수 있는 것
우리의 만남을 예비하신 주님이 우리의 교제를 통해
사랑을 선물로 주셨나니.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퇴색되지 않는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의 우정이니
그대여 우리 다시 만날 때
깊은 우정 나누며 천성 길을 향하자.
길을 잃은 양이 되지 않길 항상 예배와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자.
우리 가는 길에
길 잃은 양을 보면 집을 찾아주고
집나간 탕자가 있으면 아버지 집으로 인도하자.
강도만난 자가 있으면 입혀주고 치료해 주고 나누어주자.
우리 그리스도 사랑으로 살 때
자랑 스런 그리스도인이 되리.
복음을 부끄러워했던 옛 습성을 버리고,
술과 담배로 향락 문화로 찌들었던
우리의 생활을 정비하고 여리고 전투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용사로 서자 다시 만날 때 ,
우리 만남 속에 역사하실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2004년11월 25-30일 탈고
끝
추신:
너무나 많이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끝에 바로 천국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언제 우리를 불러도 두려워 아니할 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매일 우리의 삶에서 주뜻 이뤄지도록 새롭게 되길...............(내뜻을 죽일때 주의 뜻을 봅니다)
아주 많이 보고 싶어 하는 무수리
용남으로 부터.
김사무엘 목사님
소식이 늦었습니다. 성탄절과 송구 영신 예배 잘드리셨나요?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저희들의 여행 에 많은 도전을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려요.
첫댓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아주 미화해 주신것 같아서요*^^* 교회는 말릿릿교회, 하나님의 은혜교회, 따그박교회, 그리고 수빅 바닷가에 있는 이람교회입니다. 통돼지는 리촌이라 부르구요. 이 많은 걸 잘 기억하시고 쓰셨네요. 늘 주님의 풍성하심으로 사소서.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그곳 날씨는 덥겠지요? 사택 주변의 악취도 여전하겠구요. 목사님과 사모님 자녀들에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사랑하심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예 요즘은 밤엔 좀 추운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답니다. 기억하고 기도해주심 감사합니다. 언제나 주님의 포근함 함께하소서.
생일이 없으신 할머님은 건강하신 가요?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평안 하시길 기도합니다.대니 아저씨도 주님을 영접하길 기도합니다.샬롬
예 생일이 없으신 할머니는 늘 그대로입니다, 언제나 반가워하며 손을 꼭 잡으시죠. 그도해주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