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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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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마씸 스크랩 제주도의 무명천 할머니를 알고 계시나요?
미타행자 추천 0 조회 98 09.04.04 12:5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제주 4.3항쟁 당시,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턱을 잃고 턱에 하얀 무명천을 두른채 한많은 삶을 살아왔던 진아영 할머니, 사람들은 할머니를 무명천 할머니라고 부른다.

 

[▲ 지금은 돌아가신 진아영 할머니, 출처: 연합뉴스]

 

할머니는 4.3항쟁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 집앞에서 경찰이 발사한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뒤로 할머니는 턱이 없어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55년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고통의 턱을 감추기 위해 돌아가시는 날까지 턱에 무명천을 두르고살면서 음식을 먹을 때나 물 한잔을 마실때도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생의 절반을 그렇게 지내신 할머니, 가족이라고는 사촌들 밖에 없는 진 할머니는 후유장애와 심장질환, 골다공증 등으로 앓으시다가 90살이 되던 2004년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진통제와 링거액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모질게 살아왔지만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들어서야 후유장애를 인정, 고작 850여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했을뿐이다.

 

 

할머니가 반세기를 넘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61년 전으로 거스러 올라간다.

1948년, 제주는 "빨갱이의 섬" 으로 낚인찍힌 채 자행된 대량 학살이 벌어진다.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만도 제주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3만 여명 이상이었는데, 이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남북 한국인의 비율과 거의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만 가지고도 4.3의 참혹상을 알 수 있다.

 

1948년 제주 4.3항쟁 당시의 배경을 보면, 당시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통해 분단을 고착화시키고자 하였다.

1947년 3월 1일, 제주에서는 미국과 이승만이 추진하던 남한만의 단선단정에 반대하고, 민족의 자주독립, 미군정의 실상을 규탄하는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하게 되고, 6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군정 당국은 좌익계의 선동에 의해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하려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6명의 사망자가 초등 학생, 젖먹이를 안은 아낙네, 장년의 농부 등 대부분 시위를 보던 군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주도민들은 격분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의 과잉 반응으로 인한 발포였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이 제주 4.3항쟁의 시초가 되는 사건이었다.

 

[▲3.1절 발포가 일어났던 관덕정 근처, 사진은 관덕정]

 

이후 제주에서는 미군정에 대한 항의로 민관합동 총파업을 단행하고, 미군정은 제주에 진상조사단을 파견한다. 그리고 이 원인을 빨갱이들에게 있다며, 남로당을 지목하였고, 서북청년단과 같은 우익단체와 검경을 동원해 제주도민들에 대한 대대적 검거 및 진압이 자행되었다.

검속 한 달만에 500여명이 체포되고, 4.3 직전까지 1년간 2,500명이 구금되었으며, 1948년 3월에는 조천지서와 모슬포 지서 등지에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는 등, 사회 분위기는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1시 경 김달삼을 중심으로 한 500여명의 무장대는 11개의 지서와 서북청년단 등의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하며, 무장 봉기를 시작한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는 깃발을 내걸고, '단선 단정 반대' ,' 응원 경찰과 서청(서북청년단)의 추방' 을 주장하며 일어난 것이다. 

 

[▲무장대가 있던 동굴, 이름을 까먹었다..(?), 제주에는 이런 곳에 많다,

한라산은 전체는 4.3항쟁의 유적지라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무장대와 미군정 및 검경, 서청 등과의 충돌은 점차 심해져갔다.

한편, 1948년 5월 10일 남한 200개 선거구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제주의 경우 3개 선거구에서 2개 선거구에서 투표자 과반 미달로, 선거가 무효가 된다. 이로 인해 제주는 남한에서 유일하게 5.10 단독선거 거부지역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로 인해 단독선거를 추진해온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를 눈의 가시로 여기며, 군병력과 응원경찰력을 더욱 강화했다.

 

이런 과정에서 집단학살이 자행되었고 1949년, 무장대의 저항은 거의 소멸되었으나, 한국전쟁이 시작되며, 구금되었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또 다시 집단학살이 벌어진다.

 

 

 

[▲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던 북촌리 마을, 제주 4.3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인 곳]

 

그리고 공권력에 의한 집단 학살의 광기 속에 있던 제주는, 1954년 9월 21일 제주도 경찰국장이 한라산 금족령을 해지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부과했던 마을 성곽 보초 임무를 폐지함으로써 4.3 발생 6년 6개월 만에 외면상 평시 체제로 환원되었다. 과정에서 제주 인구의 1/10인 3만 여명이 미군정과 이승만에 의해 학살되었다.

 

[▲초토화 작전 시기 토벌대가 마을주민들을 굴속에 넣고 질식사 시키고,

굴을 콘크리트로 폐쇄한 곳, 이제는 마을 명패만 쓸쓸히 남아있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는 제주 4.3항쟁..

당시, 제주 4.3 항쟁은 분단을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항쟁이었으며, 미군정에 반대하는 민족자주 항쟁이었다. 이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미완된 해방을 완전한 해방으로 바꾸고자 한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제주 4.3 항쟁은 한동안, 누구도 말해서는 안되는 금기된 사건이었다. 군부독재정권은 4.3을 철저히 왜곡 은폐시켰으며, 제주도민들은 4.3을 입에 담지도 못했다.

유족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기는 커녕 부모가 토벌대에게 총살당했단 이유로, 어려서부터 '폭도 자식' 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연좌제' 의 사슬에 묶여 장래가 막혔다.

 

무명천 할머니도 바로 이런 제주의 피맺힌 역사의 피해자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1999년 12월 26일 국회에서 "제주4ㆍ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고,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면서 그 역사적 진실이 서서히 밝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면서 다시 역사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4.3학살에 책임이 있는 서북청년단, 진압군 당사자들은 4.3특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한나라당은 4.3특별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4.3관련 역사교과서 수정, 4.3위원회 폐지 등 보수우익쪽의 잇따른 4.3에 대한 재평가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진실을 다시 가리려는 것이다.

이는 무명천 할머니를 비롯한 제주 4.3 항쟁 당시 죽임을 당한 3만 여명의 제주민중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다.

 

어찌 보면 제주 4.3 항쟁은 현정부의 혈통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는, 즉 과거 독재 정부들의 업적을 미화시킬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또한 현정부 입장에서는 제주 4.3 항쟁은 레드 컴플렉스를 불러일으켜, 한국사회에 또 다시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소위 좌파(?)라고 불리우는 세력들을 탄압할 수 있는 좋은 사안이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현정부와 한나라당, 보수세력들이 제주 4.3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 아니겠는가?

 

최근 정부에서 국민들을 탄압하는 것을 보면, 제주 4.3과도 많이 닮아 있단 생각이 든다.

극우단체들이 서북청년단과 비슷한 애국기동대를 창설하고, 검찰과 경찰은 정부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잡아들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쩌면 제주에서처럼 항쟁이 예고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제주 4.3 항쟁 61주년, 적어도 두가지 생각을 해본다.

제주 4.3이 보여주듯이 미국은 한국의 우방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현정부가 진실을 가리려는 이유이다. 

 

제주 4.3 항쟁 61주년을 맞아, 무명천 할머니를 비롯한 4.3당시 죽어간 3만여명,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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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4.05 11:42

    첫댓글 나무아미타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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