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진폐증’이 발견된 이래 현재까지, 진폐증은 산업보건에 관한 법과 행정, 건강진단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 압축적인 산업 성장을 이루었던 시기에 대규모로 광산 노동자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한 광산 노동자 중 3만5천명이 진폐증에 걸렸다. 이후 석탄합리화 조치로 광업소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약 5000명이 넘는 진폐증 환자들이 죽어갔으며 아직도 3만여 명의 환자들이 생존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진폐증 환자는 탄분진에 노출이 멈춘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진폐증이 진행하여 새로이 발견되는 속성상,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노동부는 최근 산재보험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일련의 연구용역을 발주한 바 있으며, 이 중에는 「진폐환자 요양관리 실태조사 및 진폐 합병증 범위에 관한 연구」(이하 진폐연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노동부의 시도에 깊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전체 진폐환자 3만여 명 중 실제 요양서비스를 받고 있는 환자는 10%인 3천여 명밖에 되지 않으며, 그나마 요양 중인 환자도 요양의 내용에 많은 문제점이 있고, 사회적 관리 및 재활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번 연구의 결과가 진폐환자의 인간다운 삶을 증진시키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노동부는 진폐연구과정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하였다. 노동부가 발주하고, 심의하고, 계약하여 진행 중인 진폐 연구를 아무런 근거와 사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것이다. 이번 진폐 연구 결과가 노동부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한다면 노동부는 연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이번 경우와 같이 특별한 사유도 없이 연구자의 전문성과 자율성, 그리고 연구의지를 꺾는 연구중단 결정을 내린 것은 연구 계약서에도 없는 엄연한 계약 위반 행위이다.
우리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은 노동부의 연구중단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 이해관계자집단의 항의에 직면해 그저 말썽이 없는 것이 좋다는 식의 무사안일주의 속성, 연구자의 연구는 무시해도 된다는 식의 관료주의 속성 이외에도, 진폐환자, 아니 우리나라 산재환자의 권익을 보호해야할 노동부의 근본적인 철학 부재가 바로 이번 사태의 원인이다.
노동부는 과연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노동부는 어떠한 의도에서 연구용역을 시작하였는가? 진폐환자들의 실상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 노동부는 어떠한 역할을 계획하고 있는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은 이번 진폐연구 중단에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으며, 무책임하며 무원칙하고 졸속적인 노동부의 행보에 분노하며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노동부장관은 노동부의 일방적 연구중단에 대해 공개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하나, 금번 연구중단 사태를 일으킨 노동보험심의관과 산재보험 혁신팀장을 징계하라.
하나, 중단되었던 연구용역을 조속한 시일 내에 재개하라.
하나, 산재노동자의 진정한 권익 보호를 위해 노동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