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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산(金猿山1,353m), 기백산(箕白山1,331m)산행기】
1.산행지 : 진양기맥(晉陽氣脈) 2次 金猿山,箕白山
2.산행코스 :* 용추사 주차장 ⇒ 용추자연휴양림 ⇒ 상사평 ⇒ 수망령 (5Km 차량이동)
* 수망령 ⇒ 서봉 ⇒ 금원산(1352.5m) ⇒ 동봉 ⇒ 누룩덤 ⇒ 기백산(1330.8m) ⇒기백평전 ⇒ 안봉 ⇒ 늘밭고개 ⇒ 상비재 ⇒ 3번국도(바래기휴게소)
GPS측정 총산행거리: 약 14.7 km (실거리), 총 산행시간 : 5시간 42분
이동속도: 2.6Km/h (이동시간:4시간 05분) 휴식 및 중식시간: 1시간37분
용추계곡 가는길 :백운아트홀 ⇒ 서진주 ⇒ 안의 TOOL GATE ⇒ 장수사 일주문앞 주차장
3.산행일시 : 2004년 5월 17일 08:45 ~ 15:15
4.산행자 :임천모.이진영.강성호,오수환.정의석.양금채.노학수.강성언.박해운.배한수.김명순,심우섭.조보환,김광원,장세윤,김대성,박종수,임태성,정만시 (이상19명)
5.PROLOGUE : 금원산(金猿山1353m)은 경남 거창군 위천면과 함양군 안의면 사이에 솟아 있는 산이다.
금원산(金猿山)은 같은 능선상(稜線上)에 있는 기백산(箕白山), 남덕유에서 분기(分岐)되어 미리 갈라진 사촌격인 능선상의 거망산과 황석산과 함께 거창 일대의 고봉군(高峯郡)에 속하며 맑은 물과 깊은 계곡, 유장한 능선, 울창한 수림에다 정자(亭子)가 유난히도 많은 지역(地域)의 중심(中心)에 위치하고 있다.
금원산(金猿山)의 모산(母山)은 남덕유산(1,508m)이며, 남덕유산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내린 월봉산
(月峰山1,279m) 능선(稜線)은 두 가닥으로 갈라지는데 오른편의수망령(水望嶺940m)쪽 능선 최고봉이
금원산(金猿山)이다.
금원산(金猿山) 정상에서 남동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타면 기백산(箕白山)과 만난다.
금원산(金猿山)의 이름은 옛날 이 산에 살고 있던 금빛 원숭이를 원암(猿岩)이라는 위에 잡아 가두었다는 전설(傳說)에서 유래(由來)됐다.
산세(山勢)를 보면 남덕유산에서 이어져 내려온 산줄기가 월봉산 (月峰山) 을 거쳐큰목재에 이르러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우측 수망령 (水望嶺) 건너편으로 있는 산이금원산(金猿山)이다.
이들 산은 해발 1000m가 넘는 산으로 산세(山勢)가 자못 웅장(雄壯)한데 해발1352.5m의 금원산(金猿山)은 두개의 밋밋한 봉우리로 이루어져있는데 산 동쪽의 지재미골은 여러개의 폭포가걸려있어 아기자기한 계곡미를지니고 있다.특히 남쪽의 용추계곡은 지우천의 상류로서 그 길이가 10여km나되고 암반위로 흐르는 계류는 곳에 담(潭)과 소(沼)를 이루고있고, 크고 작은 폭포를 이뤄 경관(景觀)이 수려(秀麗)하여 예로부터 심진동이라 불리어 왔다.
해발 1000m가 넘는 황석(黃石)-거망-금원(金猿)-기백산(箕白山)이 용추계곡을 중심으로 둘러쳐져 있는데 전국을 다 뒤져봐도 이만한 산군(山群)은 없지 싶다.
기백산(箕白山 1331m)은 경남 거창군(居昌郡) 위천면(渭川面)과 함양군(咸陽郡) 안의면(安義面) 경계(境界)에 솟아있는 산이다.
백두대간(白頭大簡)인 덕유산(德裕山) 능선이 무룡산, 삿갓봉, 장수덕유산으로 구비쳐오다 남덕유에서 갈라져 남동방향으로 꺾여진 뒤 월봉산(1279m), 금원산(1352m)을 일군 다음 거창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솟은 산이 기백산(箕白山)이다.
기백산(箕白山)의 남동쪽에서 남강(南江)이 발원(發源)하며, 북쪽 사면으로는 황강(黃江) 상류의 위천(渭川)이 흐른다.
북동쪽의 거창과 북서쪽의 위천 지방에는 비교적 넓은 산간분지(山間盆地)가 발달해 있으며 남쪽에 용추사(龍湫寺)가 있다.
기백산(箕白山)의 옛 이름은 지우산(智雨山)이며 마치 술을 빚는 누룩 더미같이 생긴 바위들이 여러 층 탑을 쌓아 올리듯 쌓아진 봉우리를 갖고 있어 누룩덤 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산 이름은 이십팔술 별자리의 하나인 기(箕)와 인연(因緣)을 갖고 있다.
음양(陰陽) 가운데 양(陽)인 남성적인 산으로 보아 흰 것을 상징한 학(鶴)을 불러산 아래 마을 이름으로 고학을 갖고 산은 백(白)자를 써 기백(箕白)이다 반면에같은 줄기 위에 솟은 금원산(金猿山)은 음(陰)인 여성적인 산으로 보아「검다」는 것을 비유한 동물「원숭이」를 산 이름으로써 금원(金猿)이다.
따라서 옛 안의(安義) 삼동(三洞) 중의 하나인 원학동(猿鶴洞)이 금원산의 원(猿)자와 기백산의 백(白)자를 상징한 학(鶴)자를 써 이름한 마을 명(名) 이다.
기백산(箕白山)은 거창의 서벽(西壁)이다.
1983년 11월 18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기백산(箕白山) 남쪽에 원추리와 싸리나무 군락으로 이루는 기백평전(箕白平田)이 펼쳐져 있으며 지우샘이 솟아 맞은편 황석산(黃石山)과 수망령(水望嶺)에서 시작한 물줄기와 합(合)하여 안의 지우천을 이룬다.
지우천(智雨川)이 흐르는 장수동은 옛 안의 삼동 강운데 하나인 심진동으로 지금은 용추사 계곡으로 더 알려져 장수사 조계문, 용추폭포, 용추사들의 명소가 널려있다.
또 기백산 안봉에서 솟기 시작한 물줄기는 고학천 용폭을 이루고 쌀다리와 용원정 명소를 간직하고 있다.
기백산 동쪽으로는 위천 한수리 골짜기가 있는데 임란(壬亂)때 피난처였다.
『龍湫寺의 風水學적 見解』
산이 우람하여 계곡이 깊으면 잠시 머믈며 관상하기는 좋으나 살기에는 답답함을 면할수 없고 들판이 넓으면 그 광활함이 가져다 주는 호쾌함은 그럴 듯 하나 허허롭고 을씨년 스러운 느낌은 어쩔수가 없다.
용추골은 남덕유산 줄기가 동남쪽으로 길을 잡아 은신암(隱身庵) 뒷편 월봉산(月峰山 1288m)을 중심으로 하여 1천미터급의 거봉(巨峯)으로 반원형의 분지(盆地)를 형성한 가운데 지우천(智雨川) 을 주류(主流)로 하는 주변에 마련되어 있다.
월봉산(月峰山)왼쪽으로는 금원산(金猿山 1352.5m),기백산(箕白山1330.8m)을 좌지(左肢)로 하여 좌보(左輔)를 하고 오른쪽으로는 거망산(擧網山 1184m),황석산(黃石山 1190m)을 우지(右肢)로하여 우필(右弼)을 하는 대보필(大輔弼)의 자세(姿勢)를취하고 있다.
이러한 좌보우필(左輔右弼)산(山)들로부터 흘러내리는 곡간수(谷間水)가 빼어남 경승(景勝)을 이루어 용추(龍湫)란 이름을 얻게된것이며 그러한 지세(地勢)의 당연한 결과로 계곡 곳곳에는 구혈(臼穴)과 폭호(瀑壺)가 마련되어 특이한 경관(景觀)을 연출(演出)하고 있다.
구혈(臼穴)이란 기반암(基盤岩)으로 이루어진 개울바닥에 우묵하게 파진곳이 있을떄 이곳에 자갈이나 돌조각이 들어가 소용돌이 치는 물에의해 회전(回轉)운동을 일으키면서 만들어놓은 목욕탕 욕조(浴槽)모양의 담(潭)을 말한다.
폭호(瀑壺)란 폭포밑에 움푹파인 요지(凹地)를 일컷는 말이다.
사찰입지(寺刹立地)로 볼 때 용추사는 두가지의 큰 특징을 갖는다.
하나는 정혈법상(定穴法上) 이곳이 와형혈(窩形穴)에 속한다는 점이다.
와형혈(窩形穴)이란 혈형사대격(穴形四大挌), 그러니까 와(窩),겸(鉗),유(乳),돌(突) 중의 하나로 오므린 손바닥 속처럼(掌心), 닭의 둥지처럼(鷄窩),제비집 처럼(燕巢), 배배꼬인 소라속처럼(旅蜾) 사방이 둘러쌓인 곳에 자리잡은 혈(穴)을 말한다.
이런혈(穴)은 평지(平地)에도 있고 고산(高山)에도 있지만 높은산에 더더욱 많은바고산은 요(凹) 한곳으로 진혈(眞穴)을 삼고 평지(平地)는 돌(突),즉 철(凸)한곳으로 진혈(眞穴)을 삼기 때문이다.
와형혈(窩形穴)에는 두가지의 모양이 있는데 입을 오므린듯한 장구와체(藏口窩體)와 입을 벌린듯한 장구와체(張口窩體)가 그것이다.
입이란 이경우 명당구(明堂口)를 말한다.
《무릇 장구혈(張口穴)은 영광(靈光)이 그 가운데 모이고 나머지 기운은 밖으로 돌아 가웅이 서로 돌아보고 혈맥(血脈)이 서로 통한다.》
용추사는 바로 그런곳이다 만약 입까지 닫아버린 장구혈(臟口穴)이라면 문제는 심각할것이다.
《장구혈(臟口穴)은 양국이 고리를 이룬곳에 활처럼 분명하게 굽은 것이 입(口) 가운데가 둥굴고 깨끗하며 오목한 가운데 융결(隆結)한 것이면 좋으나 떨어진 말 구유같거나 혈장(혈장)이 움푹패이고 경사져 구부러진듯한 것은 좋지 못하다.
특히 한쪽이 텅빈 것 같고 무너져 움푹 파인듯한 것은 가와(假窩),혹은 허와(虛窩)라 하는 것으로 대흉(大凶)이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런 처지는 벗어났다라는 뜻이다.
또 한가지 특징은 이절이 폭포 바로위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폭포는 유수(流水)의 물리적 특성상 두부침식(頭部浸蝕), 즉 폭포 위쪽을 깍아내는 작용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폭포 위는 결코 안정된 지반(地盤)일수가 없다.
일종의 험지(險地)인 셈이다.이런곳에는 절대로 대형건축물이 들어서서는 안된다.
그것은 장구(張口)를 장구(臟口)로 만드는 우둔(愚鈍)한 짓이다.
이미 대웅전 건물 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지경에 빠진것으로 비치던데 여기에 더이상의 구조물이 들어서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크다고해서 좋은 절은 아니지 않는가?
절을 중수(重修)하는것도 터를 보아야 할 일이다.(최창조 風水紀行중에서)
6.산행기
【머릿글】
금원산(金猿山)과 기백산(箕白山) 종주기록(縱走記錄)은 우리 백두산악회 B-Team이 2001년 8월 26일 실시하여 필자(筆者)가 기록(記錄)으로 남긴적이 있으나 이번 산행기록(山行記錄)은 진양기맥(晉陽氣脈)을 종주(縱走)하며 느낀점 등을 기록(記錄)한 것이고 당시의 산행내용(山行內容)과 진양기맥(晉陽氣脈) 산행내용이 일부 비슷한 내용으로 전개(展開)될지라도 커다란 흠으로 남진 않으리라 생각하며 기록한 것이라 밝혀둔 바다.
우리 산악회가 맨처음 백두대간을 종주시 산행 첫날 비가내리더니 이후 속리산 전단까지 비를 맞으며 산행한 기록이 있는데 이번 진양기맥(晉陽氣脈) 산행시 첫번째 구간을 퍼붓는 폭설(暴雪)로인해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사례(事例)가 있었는데 이번 3차 산행도 출발일자가 닥아오니 비가온다는 예보(豫報)가 발행된다.
산행전날까지 전국에 걸쳐 비가 내리다보니 산행참가 예약을 했던 사람들이 한명, 두명 빠져나가더니 17명밖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늦은밤 오수환 총무에게서 연락이온다.
참가 신청을 하였다가 취소한 사람은 개인의 사정으로 그러한다지만 우리 오수환 총무는 대형버스를 예약하여 놓았다가 취소자로 인해 곤혹을 치르는 사례가 빈번하다 보니 총무직책이란 너무 힘이드는 자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허나 총무일이란 아무나 하는게 아니고 부단한 자기희생이 없으면 맡지못할 자리인지라 이런걸 감내(堪耐)하는 능력또한 타고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산행당일 아침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열고 밖을보니 전날 내리던 비는 멈춰있으나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메우고 낮게 깔려있는게 심상치 않다.
서둘러 아침을 해결하고 백운아트홀에 나갔더니 교육관 화단석에 베낭 두게는 보이는데 사람이 없다.
교육관 내부로 들어서니 김대성씨와 강성언주임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談笑)를 나누고 있다 필자(筆者)를보더니 반가워한다.
필자도 커피를 한잔들고 아트홀 마당으로 나오니 그새 산행참가자들이 많이 도착해있다.
이내 오수환 총무가 끌고온 15인승 봉고버스와 강성호 팀장님의 애마에 나누어 타고 백운 아트홀을 출발한다.
옥곡 IC 를 빠져나와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다 대진고속도로를 접어든다음 산청 휴게소에서 1차 휴식후 안의 TOOL GATE로 빠져나오니 국도변에 용추계곡 11.9Km 란 이정표가 있다.
【용추사 주차장 ⇒ 수망령】
- 08:45 :용추사 주차장도착(해발:500m)
안의 TOOL GATE 를 지나 3번 국도를 따라 오르다 안의면 신안리에서 용추계곡으로 접어들어 이동하다보니 용추계곡 입장료를 징수하는 GATE가 나타난다.
어제까지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으나 가던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는 첫 손님이란다.
왜 오늘부터 입장료를 징수하느냐 물어보니 입장료 징수자의 인건비가 나올 때 쯤 입장료를 징수하고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때는 무사 통과를 한단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용추계곡를 따라 한참 더 오르자 이내 용추사 주차장이다.
용추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우리를 수망령까지 태워다줄 떠블캡 봉고트럭이 주차장 정면 일주문
앞에서 우릴 기다리고있다 반갑게 맞이한다.
넓게 조성해놓은 주차장 상단부에 장수사 일주문이 우뚝솟아 있어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신라 소지왕 9년 각연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장수사. 그러나, 장수사의 흔적은 일주문만을 남긴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 전쟁으로 소실(燒失)되고, 아직까지 복원(復原)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오수환총무와 강성호 팀장은 이 떠블캡을 대동하고 우리가 하산해야할 지점인 3번국도의 바래기 휴게소에 차량을 정차하러 가고 나머지 대원들은 용추사 일주문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촬영을 한컷한다음 용추사를 향해 출발한다.
일주문옆의 대형 게시 그림에는 금원산,기백산 일대가 잘 그려져있고 기백산 군립공원 이라 되어 있으며 이정표에는 마하사:1.7Km. 기백산정상:4.3Km 라 되있다.08:57분 출발
- 09:07 :용추사(龍湫寺) 도착
일주문을 지나자 넓다란 공지인 옛 장수사(長水寺)터다.
이곳 일주문 전단에 옛 장수사(長水寺)터란 안내문이 기록되어 있다.
『 옛 장수사(長水寺)터 』
위치: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0번지
유래:장수사(長水寺)는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전인 신라 소지왕(炤智王) 9년(서기 487년)에 각연조사(覺然祖師)에 의해 창건(創建)된 고찰(古刹)로써 지리산과 덕유산에 산재한 많은 사찰(寺刹)들을 말사(末寺)로 거느렸으며 이곳심진동 계곡에만도 열개가 넘은 암자(庵子)를 둔 대찰(大刹)로서 계곡 어디에서나 낭랑한 염불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한다.
장수사 경내에는 대웅정,삼신각,청왕문,명부전,서신당,동신당,사천왕문,일주문등으로 그 규모가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였다고 하며 이곳에 기거하던승려(僧侶)만해도 항상 이백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희 19년(1680년)에 첫번째 화재를 입은후 2번의 화(火)를 더입었으나 그때마다 모두가 합심하여 복원(復原)을 하였다. 아쉽게도 6.25전란때장수사는 물론 계곡마다 즐비했던 암자들은 소실(燒失)되었고 일주문만 현존되고 있으며 용추암을 복원하여 용추사로 불리우고 있다.
넓다랗게 조성된 비포장 넓은 도로를 따라 조금오르니 우측으로 기백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나타나고 이곳을 지나자 좌측으로 그 유명한 용추계곡이 계속해서이어진다.
맑게 흐르는 계곡물이 작은 폭포와 소(沼)와 담(潭)를 이루며 비경을 연출하여 이런것들에 흠뿍 빠져 완만한 계곡길을 가다보니 계곡을 건너는 아치형 철교가 놓여져 있고 이 철교옆에 용추사 입구란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모두들 철교를 건너 용추사 경내로 들어서니 용추사경내는 절을 증개축(增改築)하느라 포크레인등 문명의 이기들이 윙윙거리며 작업을 하고있고 여기저기 건축자재들이 널려있어 무척 산만하다.
하지만 용추사 경내 어디에서고 들리는 우뢰와 같은 용추폭포 낙수(落水)소리에 마음이 한결 시원해지고 차분해진 느낌이 든다.
용추계곡의 깊은 곳에서 모이고 모여서 이룬 면경수(眠鏡水)가 용호(龍湖)로 떨어지니 이곳에 서면 여름더위는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화난 용이 몸부림 치 듯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내어 장관(壯觀)을 이룬다.
『용추사(龍湫寺)』
전통사찰 제86호
소재지: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2번지
이 사찰(寺刹)은 신라 소지왕 9년(487)에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庵子)중에서 현존(現存)하는 유일한 사찰(寺刹)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6.25동란때 소실(燒失)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창대에 별원을 차려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하여 1959년 재건(再建)하였다.
주변 경관(景觀)이 수려(秀麗)한 자연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장수사의 흔적을간직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인 「덕유산 장수사 일주문(一柱門)」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으며 이곳 장수사에서 설파상언대사(雪坡尙彦大使)가 전국의 승려(僧侶)들을 모아놓고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했던 유명한 곳으로전해지고 있다.
『용추폭포(龍湫瀑布)』
이 폭포는 높이가 15m이며, 수심은 십수미터쯤으로 짐작된다.
항상 수량이 풍부해서 인근의 지리산 덕유산계곡중의 그 규모가 가장 큰 편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용추폭포 담(潭)에는 물레방아 굵기의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신령께 빌어 108일 금식기도를 하면 용이되어 승천 할수 있다는 계시를 받게 되었다.
이후 이무기는 온갖고난을 참으며 매일매일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일이면 108일 다 채우는 날이다. 이무기는 용이 된다는 기쁨에 그만 날짜를 잊고 있는힘을 다해 하늘을 치솟았다.
그러자 마자 천둥이 치며 벼락이 이무기를 향해 때렸다. 벼락을 맞은 이무기가 공중에서 요동치다가 인근의 위천면 서대기 못에 떨어졌고, 서대기들은 이 이무기의썩은 물로 3년이나 거듭하여 풍년 농사를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 09:15 :차량 탑승
용추사를 둘러보고 다시 철교를 건너자 바래기재에 차량을 정차해두고온 떠블캡 차량이 수망령을 향해 가느라 우리 일행을 보지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다.
소리를 쳐 부르니 도로변에 정차한다.
다시 아치형 철교를 건너 떠블캡의 적재함에 탑승한다음 수망령을 향해 출발한다.
- 09:20 :사평마을
차량에 오른다음 용추계곡옆을 따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좁은 도로를 구불구불 오르다 보니 좌측의 계곡건너편으로 지장골 입구가 나타나고 이 지장골 입구에 거망산을 오르는곳 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필자도 이곳 지장골에서 거망산을 아직 올라보지 못했는데 기회가 닿는데로 가보기 위해 지장골 입구를 눈여겨 봐둔다.
지장골을 지나 한참을 오르자 도로 양 옆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각종 음식점과 산장(山莊) 그리고 민박집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환난(患難)을 피해 들어선 화전민들의 오두막 보금자리였는데 작금에는 호젖한 계곡을 찿아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 하기위한 현대식 건축물이 계곡 주변을 빼꼼이 채우는 피서지로 둔갑한 모습이 상전벽해(桑田碧海)란 고사 성어가 생각나게 한다.
- 09:29 :상사평
사평마을 지나자 이젠 구간구간 비포장 도로도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우리가 타고 가는 떠블캡이나 레저차량등이 오르기에는 별 문제가 되지않는 도로가 계속해서이어진다.
사평마을 지나 조금오르니 계곡을 막아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 놓고 그옆에 멋들어진 서구형의 대형 콘도가 자태를 드러내놓고 있다.
적재함에 함께 타고가던 양금채 주임께서 이것을보고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용추계곡 상단부에 무작위 개발을 추진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행위는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인지라 누가 봐도 함양군에 손들어줄 이가 없을듯 싶다.
하얀 콘크리트로 계곡을 막고 주변의 도로와 구조물들을 조성한 콘도를 지나 조 금더 오르자 용추자연휴양림이 나타난다.
계곡 주변에 삼각형의 방갈로를 곳곳에 설치해놓고 있으나 피서철이 아니라서인지 손을 보지 않고 방치해놓은 탓으로 흉물스럽게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런지..?
용추자연 휴양림을 지나 한참을 더 오르니 도로변에 염소들이 뛰놀고 있다 차량의 이동소리에 놀란듯 이리 저리 도망치기에 바쁘다.
우리의 차량앞에서 산행을 반기는듯이 도로를 따라 종종걸음을 치며 도망치는 염소를 따라 조금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이들 염소를 기르며 방목하는 농장이 보인다.이곳이 상상평이다.
- 09:34 :수망령 도착(해발:910m 현재온도:10℃)
산속에서 홀로 외롭게 살고있는 상사평 흑염소 농장을 지나 상록수림이 우거진 숲속을 지나니 이내 수망령에 도착한다
모두들 하차후 우리를 태워다준 기사님께 수고하셨다고 인사를하고 산행준비를 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인다.
수망령 정상에 있는 용추계곡 일원의대형 그림을 보며 지난 2차 산행시의산행로 등을 이야기하며 잡담을 나눈다.
이곳 수망령에서 북쪽에 있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월봉산으로 가는 길이고 남쪽 계단을 오르면 금원산을 오르는 방향이다.
이곳 수망령에 있는 이정표에는 금원산:2.5Km. 거망산:7Km 라 되어 있다.
09:38분 수망령 출발.
【수망령 ⇒ 기백산 정상】
- 09:56 :마루금 이정표
지난번 이곳 수망령에서 월봉산을 향해 산행시 처음 된비알구간을 정의석 감사가 앞서가며 된걸음에 오르는 바람에 뒤따르던 일행들이 엄청 힘이들어 고생을하였으나 오후 늦게부터는 정의석 감사가 힘이들어해 우스개 소리로 노학수반장님께서 「초장끝발 개 끝발」이란 말을 하여서인지 정의석 감사보고 선두에 서서산행을 해달라 하였더니 고사를 한다.
하지만 재차 독촉을 하였더니 마지못해 앞서 나무계단을 올라선다.
수망령을 출발하여 금원산 방면의 나무계단을 올라서자 곧바로 된비알이다.
된비알을 한 5분여 오르고 나니 앝트막한 구릉지대로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바람은 몹시 불지만 주변의 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주어 산행하기엔 적합한 날씨라 생각될 정도다.
기분좋게 마루금 구릉지대를 오르내리다보니 이곳에 이정표가 서있다.
이정표에는 금원산:1.0Km. 수망령:1.5Km 라 되어 있다.
- 10:17 :서봉도착
마루금의 이정표를 지나자 다시금 된비알이 시작된다.
계속해서 금원산 서봉을 오르는 된비알이 갈지자(之) 등산로로 이어지져 있어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오르는데 앞서가던 노학수 반장님께서는 등산로 주변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취나물을 췌취하며 오른다.
서봉 근처 나대지 근처에 접근하니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 모자를 쓴체로 산을 오를수가 없을 정도다.
바람에 모자가 날릴 것 같아 모자를 벋어들고 서봉의 북벽을 오르니 이내 서봉 정상이다.
서봉 정상의 이정표에는 금원산:0.6Km. 수망령:1.9Km. 라 되어 있다.
- 10:27 :금원산(1,352.5m) 정상 (현재온도:7℃)
서봉을 출발하여 앞서가던 일행들을 쫓아 완만한 마루금을 바쁜걸음으로 30여미터쯤 이동하니 또다시 된비알이다.
이 된비알을 10여분 바람을 맞으며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보니 금원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정상석이 2개가 각기 다른방향을 바라보며 서있다.
정상에 필자가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우리 일행들이 바람을 맞으며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필자도 이들과 한컷을 한다음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동봉으로 이동하자고 한 다음 정상에서서 주변을 조망해본다.
160°방향에 우리가 가야할 기백산이 우뚝솟아있고 200°방향에는 황석산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손짓을 하고있으며 200°방향에는 거망산이 묵직하게 꽈리를 틀고 자리하고 있고 280°방향에는 월봉산이 손에 닿을듯이 가까이 있다.
하지만 남덕유산과 깃대봉.합천 가야산등은 구름으로 인해 보이질 않아 약간 서운한 마음이지만 그보다는 세찬 바람이 더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앞선 일행들을 따라 동봉으로 잽싸게 출발한다.
금원상 정상에서 카페지기가,,,
- 10:32 :헬기장
금원산을 출발하여 동봉으로 이동하는 안부에 헬기장이 있다.
우리나라 산야 높은곳의 안부에는 어디를 가나 이놈의 헬리포터가 조성되어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예전 60년대 못살던 시절 코흘리개 머리에 기계충 자리와 땜통 자리같이 헤멀것게 보이니 흉측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세계의 나라중 유일무일하게 우리나라만 있는 동족상잔(同族相殘)비극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필자가 산행중 관리부재인 이 헬기장만 보면 괜시리 서글퍼지고 짜증이 나는것도 약소 민족인 우리나라만의 현실에 기인한 것일게다.
- 10:34 :동봉정상
헬리포터을 지나 완만한 오름을 오르니 정상부에 돌탑을 쌓아논 동봉정상이다.
금원산 휴양림에서 올라온 대부분의 산행객들이 이곳 동봉이 금원산의 정상부인줄 알고 이곳까지 왔다가 정작 금원산의 정상부는 가보지 못하고 하산케하는 그런봉이 이곳 동봉이다.
금원산 정상부의 높낮이가 동봉과 비슷해서 처음 오르는 산행객들이 여간해서는 구분하기 어려운 탓일게다.
동봉 정상의 돌탑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촬영을 할려고 하였는데 이곳 정상을 훝고 지나는 세찬 바람 때문에 일행들이 바람을 피하기위해 기백산을 향해 동봉을 뛰어서 내려간다.
단체 사진을 찍고 가라고 소리치니 다시 올라오느라 수고가 많다.
이들이 다시 올라와 세찬 바람을 맞으며 어렵사리 사진촬영을 끝내고 10:38분 기백산을 향해 출발한다.
동봉 정상의 이정표에는 기백산:5Km. 유한청폭포:3.2Km. 지재미:4.4Km. 휴양림:5.9Km. 금원산:0.25Km 라 되어 있다.
- 10:42 :동봉하단 헬기장 도착
동봉을 출발하여 세찬바람을 맞으며 동봉을 내려서니 안부에 이정표가 서있다.
하지만 너무 세찬 바람 때문에 이것을 기록하기를 포기하고 마루금상에 이어지는 작은 봉을 올라서자 헬기장이 나타난다.
- 10:57 :임도 도착
헬기장을 지나자 마루금상에 수목이 우거져 세찬 바람을 막아주어 직접적으로 바람을 맞지않아 산행하기에는 괜찮으나 수목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귀를 윙윙거리도록 시끄럽게 군다.
산행을 하면서도 이 바람소리 때문에 정신이 집중되질 않아 미끄러운 등산로를 걷는게 평소보다 무척 힘이든다.
이렇게 정신없이 마루금을 따라 가고있는데 기백산을 거쳐 금원산으로 이동하는 산꾼 부부가 있다.
앞서가던 김대성씨가 이들은 몇시에 산을 올랐는지 벌써 이곳까지 왔다고 혼자말을 한다.
좋은 산행시간을 가지라고 전한다음 이들 부부가 지나갈수있도록 등산로 가장자리로 비켜선 다음 다시 일행들을 따라 잽싼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이곳 마루금에서 수망령까지 이어지는 임도가 나타난다.
이곳 임도측편에 있는 이정표에는 수망령:1.2Km. 기백산:2.4Km. 금원산:1.6Km.라되어 있다.
- 11:10 :시흥골 삼거리(휴식)
임도를 출발하여 계속해서 잰걸음을 옮기는데 앞서가던 김대성씨 일행들이 바람을 피해 쉬고있다.
조금만 더 내려서면 시흥골 삼거리의 안부가 있으니 그곳에서 쉬었다 가자고 하였더니 다시 베낭을 메고 일어선다.
앞서 기백산 마루금을 손살같이 오르는 일행에게 쉬었다가 가라고 소리를 친다음 조금 내려서니 시흥골 삼거리다.
베낭을 벗놓고 잠시 휴식하며 서로가 먹거리를 꺼내놓고 나누어 먹느라 즐거운 휴식시간을 갖는다.
이곳에 있는 이정표에는 금원산:2.5Km. 기백산:1.5Km. 시흥골입구:2.9Km. 라 되어 있다.
충분한 휴식후 11:20분 기백산을 향해 출발한다.
- 11:42 :누룩덤
시흥골 삼거리를 출발하여 완만하게 오르막으로 형성된 기백산 마루금을 따라 오르니 기백산 측편의 암봉(누룩덤)들이 보인다.
이제 바람도 어느정도 세력이 약해져있어 몸을 가누지 못할정도는 아니다.
기백산 마루금을 한참 따라 오르다보니 어느새 멀게만 느껴졌던 누룩덤이 발끝에 와 있다.
앞선 이들에게 바람이 불고 미끄러워 위험하니 누룩덤으로 오르지 말고 하단으로 우회하여 진행하라고
한다음 이들을 따라 누룩덤 하단길로 진행한다.
예전에 이곳 누룩덤 암릉상으로 진행하다 건너뛰고 바위밑으로 기어가며 위험한 산행을 한적이 있기에 오늘같이 바람이 부는 날에는 되도록 안전한 곳으로 우회하며 진행하는게 안전하다.
【기백산 ⇒ 바래기 휴게소】
- 11:44 :기백산 정상(1,331m 현재온도:8℃)
누룩덤을 지나 소잔등 같은 완만한 능선을 조금 이동하니 돌탑이 쌓여있는 기백산 정상이다.
앞서온 일행들이 기백산 정상을 알리는 철구조물을 배경으로 사진을찍느라 여념이 없고 정상의 주변 안
내 그림을 보고 황석산이 어떤곳인지 서로간에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모두들 불러 모은다음 주변의 산군들을 가르키며 획인시켜준다음 금원산과 기백산의 풍수적 관점에서 살펴본 내용을 알려주고 용추계곡과 용추사의 자리등도 아울러 설명해준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남덕유산이 태조산(太祖山)이 되겠고 남덕유에서뻗어나와 솟구친 월봉산(月峰山)이주산(主山)이 되겠으며 주산(主山)인월봉산(月峰山)의 좌,우측(左,右側)으로 양팔을 벌린 금원산(金猿山)과기백산(箕白山)이 좌청룡(左靑龍),우측(右側)의 거망산과 황석산이 우백호(右白虎)로 용추사가 진혈(眞穴) 에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백산에서 주변을 조망해보면 320°방향에 월봉산이 보이고 340°방향에는 우리가 지나왔던 금원산이 있고 330°방향에는 남덕유산이 보이고 220°에는 황석산이 날카롭게 발톱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있다.
그리고 정상의 이정표에는 금원산:5Km. 금원산휴양림:4.65Km. 유한청폭포:5.7Km라 되어 있다.
기백산 정상의 정상표지물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한다음 기백평전을 향해출발한다.(11:50)
- 11:55 :기백평전(중식)
기백산 정상을 출발하여 기백산정상부에서부터 완만하게 이어지는 기백평전으로 들어서니 이곳에도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고 작은 돌탑들이 몇기 있다.
기백평전의 이정표에는 기백산:0.2Km. 금원산 휴양림:4.65Km. 유한청폭포:5.7Km라고 되어 있고 340°방향에는 현성산(970m)이 지척에 보인다.
예전에 이곳 기백평전에서 금원산 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며 기백평전 하단에 있는 샘에서 물을 보충하고 땀을 식힌적인 있어 함께한 산우들에게 샘 방향을 알려 주려고 샘입구로 내려서보니 샘이라고 세워져있던 이정표는 파손되어 있고 샘으으로 내려서는 등산로도 많이 묵혀있다.
다시 올라서 앞선 이들을 따라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필자의 뒤를 따르던 강성호 팀장이 다급하게 얘기를 한다.
마루금상의 둔덕에 올라서서 산줄기를 확인해보니 기백평전에서 좌측으로 내려선 다음 암릉을 따라 진행해야 하는데 기백평전 마루금으로 계속해서 내려선 것이다.
앞서 내려가던 일행들을 불러세우고 다시 회귀(回歸)하라 하였더니 모두들 다시금 사면을 올라오느라 힘을 쓴다.
기백평전에 다시모인 일행들에게 금원산 휴양림 방향에는 바람이 불지 않으니 이곳에서 중식을 한후 출발하자고 하였더니 모두들 찬성을 한다.
비탈진 사면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중식을 하는데 약병(소주)들은 다들 챙겨왔는 잔들이 이리저리 비탈진 사면을 오르내린다.
가져온 과일과 정의석 감사가 가져온 오징어를 찢어먹는 후식까지 겸비한 후 다시 바래기재를 향해 출발한다.(12:35분)
- 13:00 :안봉(암릉)통과
중식후 기백평전을 출발하여 안봉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급사면이다.
한참을 내려서니 이내 완만한 구릉지대가 이어지고 마루금 등산로 좌,우측에 어린애 손가락 굵기로 통통하게 살이오른 고사리와 취나물등이 널려있다.
양금채 주임을 비롯한 동료들이 어떻게산나물인지를 아는지 바쁜 걸음을 옮기는 도중에도 고사리와 취나물을 췌취하느라 부산을 떤다.
이렇게 한참을 이동하다보니 곳바로 직진하여 오두산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은 많은 이들이 다녀서인지 뚜렷이 나있는데 우측 암봉으로 오르는길은 희미하게 나있다.
진양기맥은 이 암봉을 오르며 진행하도록 되어있는데 앞섰던 조보환 반장님이 이곳 암봉을 오르는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잘못 들어선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암봉을 우회하는 등산로가 없기 때문에 계속 가보라 하였더니 암릉사이사이에 희미한 등산로가 이어져있고 암봉 정상부에는 “덕유산에서 진주까지 진주 산우산악회”의 리본이 소나무 가지끝에 메달려 있다.
- 13:16 :헬기장(해발:920m)
암릉을 지나자 완만한 마루금이 나타나고 이 완만한 마루금에는 어김없이 넓다랗게 조성해놓은 헬리포터가 있다.
헬리포터에 서서 지나온 기백산을 바라보니 300°방향에서 미련을 두지말고 어서가라고 손짓하듯이 보인다.
- 13:27 :마루금 안부 휴식(해발:875m. 현재온도:16℃)
헬기장을 출발하여 조금 이동하자 그나마 보이던 소롯길이 좌측 절터골로 빠져버리고 우리가 가야할 늘밭고개 방향으로는 등산로가 없다.
하지만 진주 산우산악회에서 리본을 게시해놓아 길을 찿는데 한결 도움이 된다.
선두에서 가는 사람과 후미에서 뒤따르는 일행들이 너무 뒤처져 있는 것 같아 이들을 기다릴 겸 마루금상에서 휴식을 갖는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후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보니 나물을 췌취하느라 많이 뒤쳐져 있나보다.
역시나 후미에서 뒤따르는 사람들을 보니 고사리와 취나물을 한아름씩 안고 도착한다.
이분들은 필자와 같이 산행만 하는게 아니고 산행과 나물을 취하는 두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사람들로 집에서 사랑을 받는 사람들일거다.(13:35분 출발)
- 13:48 :819봉 갈림길
마루금에서 휴식을 취하며 가져온 과채류(오이)등을 나누어먹고 다시 출발하여 10여분 이동하니 또 헬리포터가 나온다.
마루금상에 기계충자리 마냥 육신을 들러낸 이 헬리포터를 지나서 2분정도 가다보니 872.2봉이다.
872.2봉을 한걸음에 지나친후 5분여쯤 마루금을 따라 가다보니 수림이 울창한 마루금에 묘 1기가 있고 곧바로 또 헬리포트가 있다.
이 헬리포트 좌측편으로 하산하는 길이 희미하게 나있는데 이길은 아마도 이묘를 관리하는 벌초용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계속해서 싸리나무등이 우거진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다보니 또다시 헬기장이 나타난다.
앞섰던 일행들이 이곳에서 진행방향을 몰라 우왕좌왕 하고있다.
주변을 샅샅이 확인해보니 진주 산우산악회의 리본이 마루금 좌측하단 나뭇가지에 메달려있다.
819봉에서 진양기맥의 마루금은 좌측으로 내려선다음 이어지는 것이다.
(독도주의:이어지는 마루금이 진양기맥처럼 보이나 안의면 하의마을로 이어지는마루금이다)
- 14:17 :바위 도착
819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음 조금 이동하니 또다시 헬리포터가 나타나고 이를 지나 12분쯤 더 진행하자 좌측으로 내리막 길이 있다.
이곳에서도 진양기맥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길을따라 가다보면 다시 회귀해야하는 수고로움을 반복해야 한다.
마루금 주변으로는 잘생긴 커다란 소나무들이 숲을 메우고 있고 이 소나무밭에서 송이버섯을 췌취하기 위해서인지 소나무 하단의 잡목들을 모조리 베어 넘어뜨려 썩어가며 자연의 품으로 돌가는중이다.
갈림길을 지나 5분정도 진행하니 마루금상에 묘1기가 있다.
이 묘를 지나 10분쯤 마루금상에 한옥마큼 커다란 바위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육산과 송림인 이곳에 이렇게 커다랑 바위가 자리를 틀고 있으니 자못 대견스럽고 반갑기까지 한다.
이 바위 측편에 붉은 페인트로 진양기맥 방향으로 화살표를 그려 놓았는데 진양기맥을 표시하려고 한 것 같지는 않고 송이를 췌취하는 사람들의 좌표가 아닌가생각된다.
- 14:30 :상비재(해발:540m. 현재온도:14℃)
마루금의 잘생긴 바위를 지나 10여분 완만한 구릉지대를 지나오니 이내 상비재가 나타난다.
이곳 상비재는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녔는지는 몰라도 현재는 이곳이 상비재이구나 할정도로 묵혀있는 길이다.
- 14:35 :안부 휴식(해발:510m)
상비재에서 기맥을 따라 가려면 상비재 전단의 봉으로 올라야 하는데 우리 일행은이 봉 하단 우측으로 잘나있는 산길을 따라 진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진양기맥 마루금을 벋어나 이 봉의 사면으로 잘못 진행하였음을 알고 안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이곳 상비재를 지날 때 독도를 잘해야 된다는 강성호 팀장님의 주의가 있었으나 이렇게 길을 잘 못드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휴식중 잡담을 나누며 간식을 하고 14:45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 14:53 :550봉 마당바위 도착
휴식후 상비재 전단봉의 가시나무등이 얼켜있는 사면을 타고 한참을 오르니 진양기맥 마루금에 다시 들어선다.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시간과 육체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있음을 피부로 느껴진다.
마루금을 따라 몇걸음 옮기자 마루금상에 넓다란 마당바위가 펼쳐진다.
- 15:00 :마루금 묘1기
마당바위를 지나 완만한 산길을 따라 5분여를 지나가니 마루금에 묘 1기가 있고 사람들이 이 묘를 지나치지 못하도록 한것인지 묘 주변으로 철조망을 둘러 쳐놓았다.
- 15:15 :바래기 휴게소 도착(해발:340m 현재온도:17℃)
철조망 측편으로 묘를 우회하여 내려서자 3번국도가 보이고 달리는 차량들이 보인다.
숲이 우거져 낙엽이 많이 쌓인 미끄러운길을 내려서자 산자락 끝에 개집인지 지져분한 움막이 있고 이내 바래기 휴게소다.
모두들 수고하였다고 서로를 격려하며 진양기맥 2차 산행을 이곳에서 마친다.
【산행후기】
이번 진양기맥(晉陽氣脈) 2구간 산행을 완료(完了)하고 필자(筆者)는 감기몸살로 많은 고생을 하고있다.
용추사 주차장에서 비도 오지 않을 것 같아 윈드자켓을 차량에 빼어놓고 가져가지를 않았는데 금원산(金猿山) 정상부에서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체감온도(體感溫度)가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흘렸던 땀이 바람에 증발(蒸發)하며 체온(體溫)을 떨어뜨려 그러지 않았나 생각된다.
매사(每事) 불여튼튼이라고 집을 나설때는 온갖 대비를 하고 떠나면서도 정작 필요할 때는 꺼내 쓰지를 못한 준비부족이다.
각설하고 이번 2구간 진양기맥(晉陽氣脈)은 처음 산행시작점인 수망령이 900고지가 넘은 큰 재에서 출발하였고 금원산(金猿山)과 기백산(箕白山)이란 유명한 산군(山郡)들을 관통(貫通)하는 곳이라서 평소 산행객들이 빈번한 곳이라 생각보다 빨리 산행을 마칠수 있었다.
기백평전이후 안봉구간 부터는 등산인들이 다니지 않은 구간인지라 두번 기맥(氣脈)을 찿느라 잠시 주춤거린 적은 있으나 강성호 팀장의 GPS와 앞서 진양기맥(晉陽氣脈)을 탐사(探査)한 진주 산악회가 게시해놓은 리본으로 인해 쉽게 마루금을 찿을 수가 있었다.
이 지면을 통해 진주시 산우산악회에 감사드린다.
매번(每番) 하는 이야기지만 금번 산행기(山行記)는 필자(筆者)가 산행을 하며 보고 느낀점을 나름대로 개발 세발 기록(記錄)으로 옮긴것이니 독자제현(讀者諸賢)의 생각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견해(見解)의 차이가 아니겠나 이해(理解) 하시길 바라고 금번 산행기(山行記)에 산행참여자(山行參與者)의 이름이 실명(實名)으로 기록(記錄)된것에 대해 원하지 않았다면 양해(諒解)를 구한다.
혹여 명칭(名稱)이나 지역(地域)등이 잘못 기록된 점이 있다면 아래의 주소로 연락주시면 다시 수정할것을 약속드리며 마친다.
멜주소:chonmo@postown.net 전화번호:061-790-3654. 010-3083-7854
2004년 05월 20일 백두산악회 고문 임 천 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