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락 받아 http://bauddha.org 에서 옮겨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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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보라 속에 던져진 인생 -
인생을 살아가는 데엔 정답이 없다. 아마도 사람 수 만큼 삶의 양식도 다를 것이다. 60억 인구라면 60억 가지 수 만큼 인생의 모양이나 걷는 것이 천태만상일 것이다. 물론 비슷한 점들도 공유할 것이지만, 서로 온전히 같을 수 없다는 점에선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생의 업엔 공업共業이 있어서, 서로 끼리끼리 모여 사는 까닭에 그 공동체엔 같은 <공유하는 삶의 틀>이 있기 마련이다. 그 크고 작은 공업의 질량에 따라 조직이나 단체 같은 공동체가 나름의 비슷한 삶의 틀을 유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팔자란 그 공유한 업의 틀을 통해, 그 다른 모습의 삶을 이해하려고 한다. 팔자의 경우 수는 518,400 개로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공업이라 할 상수常數를 가지고 각기 다른 삶의 형태를 해설하려고 애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래서 그 상수와 함께 반드시 인연 변수를 참작한다. 가까이는 부모 형제 성명 배필 직업 태생지...등 많다. 그 변수는 사람마다 다르다. 시대라 해도 조선 시대의 일반적 삶 양태와 지금의 그것은 엄청 다르다. 지리 문화 및 정치 경제적 환경이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 의식을 알고 팔자를 대해야 한다. 또 같은 시대라 해도 우리와 북한이 다르고, 중국과 다르며, 미국과도 다르고, 저 아프리카인과 다르며.... 중동인들과도 다르다. 관습이 다르고 의식이 다르며 삶의 양태도 다르다....이런 모든 것들이 인연 변수다.
가령, 우리가 존경하는 임금 세종대왕은 역사적으로 오직 하나 뿐이지만, 세종대왕이 가지고 나온 사주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무수하다. 사람은 고유적으로 하나인데, 그 타고난 사주는 무수한 보통의 상수다. 다시 말하면, 고유한 사람일지라도, 명술에선 보통인으로 풀이한다. a 사주=세종대왕 것이라고 해도, 그 a 사주를 호돌이가 타고 났으면, 똑 같이 세종대왕 인생이 될 수는 없고, 인연 변수에 따라 <세종대왕 인생과는 다른 호돌이 인생>이 될 뿐이다. 같은 팔자라도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은 바로 인연 변수에 의해서 이뤄진다.
그러나 언제나 공업의 상수인 사주를 가지고 우선 짚어간다. 공업적 삶에서 不共業적 삶의 형태로 더듬어가는 절차를 밟는다. 즉 共에서 私로 추적해 들어간다. 공은 공유적인 것이요, 사는 개인적인 영역의 일이다. 이런 과정을 <추명推命>이라 부른다.
오늘은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도 조선 시대처럼 살아가고 있는 한 여인의 치열한 삶을 담은 사주를 소개한다. 사적인 것은 말할 수 없고, 공유적인 것만 대강 쓴다. 사주 이론을 통해 우리는 공을 통해 사를 어느 정도 추리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69여8]
丁癸丙己...辛庚己戊丁
巳亥子酉...巳辰卯寅丑
1) 한겨울의 癸水는 곧 눈이요 북풍설한이다. 그래서 이 인생은 눈보라 속을 헤쳐 걷는다는 암시를 준다.
2) 남의 눈에 설경은 아름다울지라도, 그 혹한과 추위는 모두가 싫어하기 마련이다.
3) 그래서 그 가치를 가지려면, 반드시 鎭山 戊가 있어 藏風해야 한다. 이것이 배산임수하는 첫 요결이다.
4) 또 따뜻한 태양 丙이 떠서 산야와 동물들을 보호해주어야 한다. 만물을 키우는 게 丙이다.
5) 그러야 눈 속의 길 己도 트이고, 추위를 녹이려고 아궁이에 군불 丁도 뗄 수 있다.
6) 군불을 떼야 우리가 따뜻한 방에서 곡물 甲乙을 먹고 긴 겨울을 나지 않겠는가?!
7) 그런데 명조엔 진산과 곡물이 나와 있지 못하다. 巳와 亥 속에 들어 있으나, 沖出로 나오면 곧 戊癸 甲己 합화로 변질시키고 만다. 내게 크게 도움 안된다.
8) 이러면 내가 부지런히 진산 마련하랴 힘들고, 곡물 만들랴 죽을 고생이다.
9) 진산은 인연된 가족을 보호하고 챙겨먹일 보호자요,
0) 곡물은 그 가족들이 쓸 식량거리로서, 내가 벌어다 주어야 한다.
1) 명조에서 癸는 모두 좋아하는 丙을 바로 능멸할 뿐 아니라 문명의 利器 丁 군불까지 조롱한다.
2) 그래서 고생을 사서 하는 바, 고생 덜하려면 저 丙과 己 자리가 바꿔 앉았어야 했었다.
3) 묘하게도 戊는 운에서 올 수밖에 없는데, 오면 그 戊는 바로 합화로 노는 데 날 가는 줄 모른다
4) 결혼하자 멀쩡하던 남편이 그냥 백수로 눌러 앉아 내 벌어다 주는 곡물만 까먹고 있다.
5) 내가 벌어오는 곡물 甲은 저 모퉁이에 있던 己가 합화로 훔쳐가기 때문에 곳간에 쌓일 사이가 없다.
6) 초년 戊寅운로에 진산과 곡물이 들어서니, 내가 일찍부터 친정과 시댁의 보호자, 가장 노릇을 하고 만다. 가장은 진산 노릇을 하고 곡물을 부지런히 벌어다 날라야 한다.
7) 원래 진산과 곡물의 역할은 戊夫가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명조 배열 구조가 戊를 한량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그 몫은 내가 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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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그 전경이 떠오르는 한 폭의 그림 같다. 운명을 하나의 자연 물상에 비추어 추리하는 그림 사주다. 인간은 자연 환경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자연 물상을 이루는 한 요소가 인생이 아닐까....!? 자연의 순환과 영고성쇠처럼 인생도 그러하다고...고인들은 노래했다. 자연물의 순환 사슬처럼 났다가 사라져가는 인생! 봄-여름-가을-겨울의 사시를 걸어서 돌아가는 것이 운명의 평생이다.
사주에서 대운이란 그 사시 사철을 뜻한다. 그래서 대운을 黃道에 비겨 <궤적운>이라 불렀다. 황도상의 계절을 거쳐가는 운로라는 의미다. 그 계절의 기후 기상 따라 사람의 생활 모습이 달라지듯이 운명의 궤적운은 사람마다 달라지기 마련이다.
위 예의 여인은 한겨울에 났어도 처음에 드는 계절 운로에서 다행하게도 추워지는 서-북 계절로 달리지 않고, 활동량이 많고 더워지는 동-남 계절로 흐른다. 이 얼마나 좋은 건가.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온 가족을 먹여 살린다. 능력 있는 여장부다. 만약에 추워지는 서-북 계절로 달렸다면, 추위 속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는 비참한 눈보라 길을 걷는 삶이었을 것이다. 위 팔자는 中 이상의 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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