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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배우 전미도씨는 화장기 전혀 없는 ‘생얼’로 인터뷰장에 왔다. “무대에 서면 예쁜데, 사진 찍으면 못 나와요”라며 사진 찍는 걸 쑥쓰러워 했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해맑은 표정이 툭툭 튀어 나왔다. [강정현 기자] | |
‘사춘기’에선 여고생·40대 여인 등 1인 5역을 자연스레 소화했다. “맑은 목소리와 탄탄한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배우”란 찬사를 받았다. 현재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공연중인 ‘신의 아그네스’에선 주인공 아그네스역이다. 구원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도저히 신인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처절하고 뜨겁게 표출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공연에선 25년 전 ‘신의 아그네스’로 스타로 부상한 윤석화(리빙스턴 역)씨가 같이 출연중이다. 둘에 대한 비교는 자연스러운 일. “제2의 윤석화”라는 소리도 많다. 덕분에 전씨는 지난해말 ‘대한민국 연극대상’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보수적인 연극계에서 전씨와 같은 20대 배우가 상을 받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모든 게 얼떨떨해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그는 수줍어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한편의 모노 드라마였다. 처음엔 낯을 가렸지만, 일단 말문이 트이자 급격하게 발랄해졌다.“아그네스라는 이미지 때문에 많이 참는거죠, 제가 얼마나 수다스럽고 아줌마스러운데요.”
“노래를 원래 잘했어요?”라고 묻자 “중학생때부터 성가대”였단다. 그는 부산 출신이다. “인문계를 못 갔어요. 공부가 간당간당했거든요.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자’가 제 모토에요.”
노래를 하고 싶어 고교 시절 여성 5인조 록밴드를 만들어 보컬을 했단다. “남학교 축제에 가면 인기 ‘짱’이었어요. 심지어 몰래 나이 속이고 오빠들과 함께 대학생 경연 대회에도 나갔어요. 근데 떨어졌어요. 노래는 잘 했는데….” 그가 입을 쩝쩝 다셨다. “집안에 원래 노래를 잘 하는 분이 있는가 봐요”라고 했더니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어머니가 진짜 잘하세요. 지금도 친구들하고 놀러 가실땐 장구를 들쳐 메세요. 젊으실 땐 노래 한가락 뽑으면 ‘야~. 이미자 내일 모레 와야겠다’란 말까지 들었대요.”
여기까진 구김살 없는 20대 처녀 그대로였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그건 아그네스 때문이었다. 순수와 고통을 동시에 넘나드는, 복잡한 심리를 그는 너무나 완벽히 연기한다. 그래서 “혹시 아픔이 있었냐, 아그네스와 비슷한 고통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가 잠시 멈칫했다.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어머니 혼자 세남매를 키워야 했다. 장사를 하는 탓에 어린 딸을 보살필 여력이 없었다. 오빠들하곤 나이가 열살 차도 넘는다. 유년기에 그는 지독히 외로웠다. 그게 지긋지긋했다. 심지어 중학생땐 가출하듯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연습때는 전혀 이해를 못했어요.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제가 꼭꼭 숨기고 지냈던 어릴 때 기억이 한올한올 살아났죠. 어머니에 대한 아그네스의 애증처럼요. 울음이 복받쳐 올랐어요.” 어느새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극이 제 아픔을 치유하고 있어요.”
전미도씨는 딱히 미인이 아니다. 밋밋할 정도다. “저같은 외모로 연기해도 되나 싶어요”라며 그도 인정했다. 그러나 일단 무대에 서면, 그는 관객을 집어삼킬 듯 폭발적이다. 섬칫하며 소름이 돋는다. 평범한 외모는 오히려 온갖 캐릭터를 다 그릴 수 있는 좋은 그릇이다. 무엇보다 그는 예민하다. 그저 스쳐 보냈을 만한 작은 기억을, 그는 고스란히 끄집어내 단단히 뭉쳐내는 집중력을 갖고 있다.
“어떤 분이 저보고 전도연 선배 닮았다고 했어요. 너무 기분 좋아 바로 성대모사했어요. 호호.”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금의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또다른 ‘월드스타’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듯 싶었다.
최민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