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遼)나라의 요해(遼海)
▶ 遼 史 卷 115 列 傳 第 45 <高麗>편을 보면 :〔聖 宗 統 和 三 年 秋 七 月 , 詔 諸 道 各 完 戎 器 , 以 備 東 征 高 麗 〕란 기록을 볼 수 있다.
즉 〔성종 통화 3년 가을 7월, 조서(詔書)를 내리기를, 여러 도의 각각의 전쟁기구(戎器)를 완비하도록 하였는데 이렇게 갖춘 것은 『동쪽의 고려』를 정벌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지형도를 놓고 한 번 따져보자. 요사 병위지(상)를 보면 〔遼 國 左 都 遼 海, 右 邑 涿 鹿, 兵 力 莫 強 焉 〕라고 했기 때문에 요(遼)는 현 “하 북 성을 근거지”로 하여 요양(遼陽)에 ‘동경 요 양 부’를 설치하였다고 했음에 비춰보면 『 동벌(東伐)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압록강을 기준으로 요(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요국의 동(東 곧 左)도읍지는 ‘요해(遼海)’요, 서(西 곧 右)읍은 ‘탁 록’이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요(遼)나라의 동쪽에 “고려”가 있었다고 하면 요해(遼海)의 동쪽 요 녕 성 일부와 길림성과 흑룡강 성과 반도의 모든 땅은“고려(高麗)”의 영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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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본인은 다른 견해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다. 『요해(遼海)니 요하(遼河)』니 하는 하천에 대해서 곧 『성경강역 고 6 (盛 京 疆 域 考 6)』 을 보면 ‘삼 만 위(三 萬 衞)’를 설명하는 글 속에...............
➡〔原注洪武二十四年建韓王府永樂二十二年遷於➡➡➡ ➊陝西平涼西北有金山東有分水東嶺北有分水西嶺西有大清河東有小清河流合焉下流入於遼河又北有土河東北有艾河流合焉謂之➡➡➡ ➋遼 海 即 遼 河 上 源 也〕【按本注遼河上源乃東遼河之源西遼則源於直隸承德府界】
〔 원주 (原 注 : 본시의 주)엔 “홍무(명 태조) 24년 세운 ‘한 왕 부(韓 王 府)’를 영락 22년에 옮겼는데, ➊ 섬서(陝西) 평 량(平凉) 서북(西北)방에 “금산(金山)”이 있는데 (1) 금산의 동쪽에서 물길이 東(동)으로 나누어지며, (2) 嶺 北(령북)에서는 물길이 서쪽으로 나누어지며, (3) 嶺 西(령서)에 대청하가 있고, 그 동쪽으로 소청하가 흘러 합류한다. 하류에서 요하(遼河)에 들어간다. 또 북쪽에 “土 河(토하)”가 동북에서 艾 河(애하)와 합쳐진다. ➋ 이곳이 즉 요해(遼 海)이며, 요하(遼 河)의 상류이다.〕
위의 내용은 “명 홍무 24년”에 설치한 “한 왕 부(韓 王 府)”를 “섬서 평 량 서북”으로 옮겼다(遷)는 말이다. 그 아래 내용은 위의 것과 같다. ‘한 왕 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섬서 평 량【平凉 : 감 숙성 평 량 지역은 당시에 섬서 지방이었다는 증거】서북방 지대는 <신 강성 ‘합 밀’과 외몽골 서쪽의 ‘항 애 산맥’사이로 ‘천산산맥’과 ‘당노 오 량 해 산맥’등이 있는 곳이다>.
대 청하. 소 청하. 요하. 토 하. 애하 등의 하천이름은 우리들 귀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으며, 이는 곧 ‘요 녕 성’에 있는 강 이름이라고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나 위의 기록으로 보면 이러한 하천의 이름은 “섬서 평 량 서북방의 대막과 막북지대”에서 찾아야 한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원전에는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으니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본인은 이러한 것들이 조선의 진실 된 역사 강역(영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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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왕지사 말이 나왔으니 “만주원류고”에 기록된 내용 하나를 짚고 나가 보십시다. 물론 재탕이나 위의 내용과 딱 어울리는 것이라 소개하겠습니다.
<만주원류고>내 이런 말이 있다. <遼 金 所 置 眀 屬 烏 梁 海 其 稱 故 建 州 者> : 遼. 金나라 때 설치한 , 명나라 때에 속해 있던 “오 량 해”는 옛 건주에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오량海는 건주에 살고 있던 백성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건주나 오량해가 동북삼성지역의 길림이나 장백산(현재)주위에 있었을까. 결코 그러한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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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 粱 海>에 대해 가장 최근의 기록인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찾아보자 ; 〔烏 粱 海 亦 作 兀 良 哈, 明 時 居 直 隷 長 城 外. 卽 蒙 古 東 部 地 方, 爲 朶 顔. 福 餘. 泰 寧 三 衛, 後 徙 外 蒙 古 西 北 部, 其 種 爲 突 闕 族, 語 言 風 俗, 則 以 喀 爾 喀 人, 自 稱 東 巴. 居 唐 努 山, 阿 爾 泰 山 之 間. 分 爲 三 部, 一 曰 唐 努 烏 梁 海, 二 曰 阿 爾 泰 烏 梁 海, 三 曰 阿 爾 泰 諾 爾 烏 粱 海. 〕:
〔<오량해>는 곧 <올량합>이라고 하며, 명나라 때 명의 직례省【하북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長城(장성) 밖의 북쪽지방 즉 몽고의 동부지방에 있었다.【몽고의 동부란 현재의 외몽고 동부지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타안. 복여. 태녕>의 삼위【명 태조가 설치했으며, 중원 서북방지역이다. 이미 이곳에 그 위치를 설면한 글이 있다】를 설치한 곳이다. 이들은 후에 외몽고 서북방지대로 옮겨갔다. 이들은 돌궐종족이다. 언어 및 풍속은 모두 돌궐과 같았으며, 한 측으로는 객리객인이라 한다. 이들은 스스로 칭하기를 “동파”라 했고, 이들이 거주하고 있던 곳은 ➡➡➡“당노산과 아이태산지간”이었다. 3부로 나누어졌다. 첫째 이들은 『당 노 오량해』, 둘째 이들은 『아 이 태 오량해』, 셋째 이들은 『아 이 태 락이 오 량 해』등 3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㈠ 唐 努 山(당노 산) : 外 蒙 古 唐 努 烏 梁 海 南 境. 阿 爾 泰 山 之 大 支 幹 也. 唐 書 作 唐 麓(록)嶺. : 외몽고 당노 오량해의 남쪽 지경이다. 아이태산의 큰 지맥이다. 당서에는 ‘당 록 령’이라 하였다. 이곳은 현 러시아와 외몽골과 신 강성의 접경지대다.
㈡ 阿 爾 泰 山(아이태산) : 亦 作 阿 勒 壇. 又 作 阿 爾 但. 蒙 古 爲 金 爲 阿 爾 但. 故 又 稱 金 山. 天 山 北 出 之 脈. (중략), 與 賀 蘭 山 勢 遙(멀 요)連. : 또 ‘아 륵 단’이며, 또 ‘아이 단’이다. 몽고에서는 금(金)을 ‘아이단’이라 한다. 예전에는 또 칭하기를 “금산(金山)”이라 했는데, 천산(天山)의 북쪽에서 나온 지맥이다. 하란 산(영하 성)의 산세는 아주 멀리에 연이어져 있다. 오늘날의 “외몽고와 신 강성을 경계”로 서북방에서 동남방으로 뻗어 내린 “알타이 산맥”을 말하는 것이다.
第 1部인 <당노 오량해>는 외몽고의 서북쪽 경계에 있었다.
第 2部인 <아이태산(금산) 오량해>는 신 강성 阿 山 道(아산도)에 속해 있었다.
第 3部인 <아 이 태 락 이 오량海>는 지금의 俄(러시아)령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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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오량해>가 바로 여진(女眞)종족인 “건주(建州)”인들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건주”가 현 요 녕 성 심양이란 말은 또 무슨 장난인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외몽고의 동부지방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자들이라면 애시 당초 주장한 요 녕 성 심양지방은 외몽고지방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 무슨 말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외몽고 동부지방에 장백산이 있을 리 없으며, 이곳에 압록강은 더더욱 흐를 수 없으며, 요 녕 성의 “건주”가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닐 리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놈들이 장안을 쳐도 아주 고약하게 장난을 친 것이다. 반도 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듯 말이다.
여기서 또 청사(淸史) 지리지(地理志)를 보자. : 志 五 十 三. 地 理 二 十 五. 外 蒙 古 ; 『객 이 객』편을 보면 : 이곳은 훈육, 험윤과 흉노들과 산융들이 있던 곳이며, 연연과 돌궐들이 있던 곳이며, 이 땅은 바로 “한해(瀚海)”였으며, 또한 “유릉(幽陵)과 유주(幽州)였으며, 유도(幽都)였고”, 이곳이 바로 “연연 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위의 설명대로 보면 ; <오 량 해>는 건주(建州)에 살고 있던 옛 건주백성들을 말하는 것인데 <오량海>들이 살고 있었다는 곳은 중원을 중심으로 보면 서북방 신 강성 아산도(신강의 북방으로 아산도의 북쪽은 러시아령이다)로부터 그 동북방지역인 외몽고와 러시아 땅과 신강省 접경지역 및 하란山의 서북방지역에 살고 있던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오 량 해”요, “건주(建州)”인들이었으며, “여진족(女眞族)”이었다. 이러한 이들이 반도 북방에서 흥성하여 청(淸)나라를 건국했다』는 역사해설은 조작과 왜곡으로 조선사를 짜깁기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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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 미루어 보아 요(遼)나라는 반도 북방 삼성(요 녕. 길림. 흑룡강)과는 전혀 관계없는 중원 서북방의 종족이며, 나라였다.
2009년 12월 12일 <글쓴이 : 문 무>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