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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cometti, photograph by Yousuf Karsh, 1965

에른스트 샤이데거가 찍은 자코메티의 작업실 광경, 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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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10월 10일 스위스의 보로고노브에서 태어나 1966년 1월 11일 쿠르에서 사망한 이 조각가는 또한 인간의 고독을 강렬하게 드러냄으로써 문학의 실존주의와 비견되기도 하는 작품들을 남겼다. 지금까지도 많은 작가나 시인들이 그의 적품을 사랑하게 된 까닭은 사실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인 아버지 조반니와 야수파 화가이자 그의 대부인 퀴노 아미에트에게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는 스탐파 근처의 마을에서 이런(예술적 환경이란 점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후에도 그는 평생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스탐파를 규칙적으로 들렸다고 한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디에고>는 그의 동생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그의 동생인 디에고는 가구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고, 또 다른 남동생인 브루노는 건축가가 되었다.
쟈코메티는 20세기의 뛰어난 미술가였다. 다른 전위파 예술가들이 실재와 유사한 표현을 추구하기 보다는 비구상적이거나 표현주의적인 내용을 묘사하려고 할 때 그는 자신이 모델로 한 인물이 드로잉이나 회화나 조각에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같은 충격을 겪을 만큼 실제 세계에 필적하고자 하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를 추구했다. 그의 인물상들을 정면에서 보면, 처음에는 부피도 무게도 없는 듯 가늘고 길게 이어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곧이어 닥쳐오는 묘한 충격과 감동에 젖게 된다. 멀리 어느 공간엔가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그의 조각들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쟈코메티는 살아 생전에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몽파르나스의 초라한 작업실에서 살기를 고집할 정도로 소박한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 자코메티가 그의 가늘고 길다란 위태로운 모습의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가지게 된 것은 1919년에서 1921년 사이의 미술 수업과 함께 피렌체와 로마, 파리에서 많은 이집트 미술품들을 감상하면서부터 그 단초를 마련하게 된 것 같다. 그는 그곳에서 정형화된 형태와 경직된 정면상을 보이는 고대 원시종교미술 형식이 실체와 같은 묘한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쟈코메티는 이 시기 파리체류 기간 중 거의 매주 일요일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으며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작품들을 많이 복사하였다. 이러한 조각들 중에는 이집트 구왕국(Old Kingdom) 시대의 조각들을 비롯하여 선사 키클라데스 시기의 대리석 상들이 있었다. 쟈코메티는 그리이스 고전 조각보다는 이집트 조각과 키클라데스상에서 더욱 많은 매력과 힘을 발견했다. 이 시기에 쟈코메티의 조각에서 이런 원시종교미술의 영향이 형식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난 경우는 드물지만 그의 작업이 계속되면서 이런 원시종교미술과의 어떤 내적인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후 그는 제네바의 미술학교와 공예학교에서 수학하고 1922년 파리의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서 선생인 에밀 앙투안 부르델에게 배우며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시기의 그의 작품들은 입체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들로 알렉산더 아르키펭코, 레이몽, 뒤샹, 비용 등의 조각들과 양식상 흡사했다. 그는 또한 <숟가락 여인 The Spoon Woman>(1926)과 같이 원시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의 그것과 같은 형태로 파리의 현대 미술가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는 1925년에서 1929년의 시기를 거치며 더 이상 그의 작품들을 실재 세계와 닮은 것으로 하려는 노력들을 그만두게 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보이지 않는 물체 The Invisible Object>와 같이 에로틱한 주제들을 초현실주의적인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이 무렵의 그는 자신의 진지한 예술 작품들과 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제작한 단순한 장식용 꽃병이나 램프만큼 실체와 무관하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1935년에 이르러 그는 초현실주의 그룹과의 관계를 단호하게 끊고 다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실체에 대해서 그 자신이 느끼는 대로 보이는 대로 형상화한다는 그의 일생일대의 주제를 펼쳐가게 된다. 1940년경 그는 성냥개비만한 조각품을 만들었는데 이 조상과 두상은 정면으로 되어 있으며 멀리에서는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인물상들이었다. 1947년경에는 가는 식물의 줄기, 마치 갈대처럼 가느다란 조각상을 만들어 부피도 없고 무게도 없는 실체의 모습을 뼈대 형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조각뿐만 아니라 회화를 통해 리얼리티에 도전하고 실제로 현실에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을 추구했다. 쟈코메티에게 있어서 작품은 상상의 공간 속에 마술처럼 현실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2>가 있는 미술관의 전경
쟈코메티는“나는 생명체, 그 중 무엇보다도 사람의 머리 앞에 서면 그 생명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기(氣)가 그것을 순간적으로 파고들어서 이 양자가 이미 하나가 되어 버린 듯함을 때때로 느낀다.”라고 말한다. 쟈코메티의 작품은 그 형상이 지니고 있는 비현실성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형상과 그 형상들 사이의 비워진 부분을 모두 포함한 그 전체로 보아야 한다.
쟈코메티의 조각 작품들 속에 정신의 깊이가 느껴진다거나 인간의 고독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무엇보다 쟈코메티 자신이 피그말리온처럼 조각 안에 사람의 영혼을 담으려고 했던 조각가이자 화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각은 사람을 담고, 사람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