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상의 여러 민족들은 그들의 오랜 생활사 속에서 각기 특성이 있는 식생활 문화를 형성.
- 식생활 문화에는 식품의 생산, 조리가공, 일상식 및 상차림의 규범, 의례와 음식의 관행 등 여러 요소가 포함됨.
- 먼저 식품 생산의 특성을 보면 그 기저에는 자연환경 요인이 많이 작용. 기후면에서 우리나라는 사계절로 구분이 되고, 그 중 6~8월에 기온이 계속 높고 일조량이 길며, 강우량이 집중되어 있음.
-> 이러한 자연환경으로 벼농사가 1위의 생업임. - 또한 고장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이루고 있으므로 벼농사를 1위로하면서 보리, 조, 기타 잡곡류까지 경작곡물에 다양성을 이루어 곡물 음식을 다양하게 개발하였음
(예: 한국의 농업은 고대로부터 쌀, 보리, 조, 콩, 팥, 녹두, 밀, 귀리, 기장, 피 등 여러 가지 곡물을 산출하였고, 이것으로 죽, 밥, 떡, 술 빚기, 엿 고으기, 식초 내리기 등 다양한 곡물의 조리 가공법을 발달시켰음).
- 우리나라의 식품 조리가공의 특성은
① 곡물의 상용화(常用化) : 일상식 생활은 쌀, 보리, 조 등으로 지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데, 쌀밥, 보리밥, 조밥 등을 짓고 때로는 콩밥, 팥밥을 지어서 열량의 주요 급원으로 상용 -> 우리의 음식문화(飮食文化)에서 가장 품목이 많고 사용빈도와 범위가 넓은 음식은 곡물로 만든 음식. 한편으로는 콩의 상용화, 채소의 상비화를 위한 저장, 가공 기술을 개발하여 쌀과 보리, 조 등에다 콩과 채소를 항상 곁들여 먹는 식생활의 기본형을 이루어 옴.
② 발효성(醱酵性) 식품의 개발. -> 한국 식생활은 가장 보편적인 단백질 급원 상비 식품으로 장류(醬類)를 개발하고, 한편 철분이나 비타민의 급원 상비 식품으로 김치를 개발하여 다른 나라에서 추종할 수 없는 고유한 전통.
(예: 추운 겨울 엄동설한에도 신선한 채소와 같은 영양상 급원 식품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김치 / 무문토기(無紋土器)를 사용하던 무렵에 콩을 소재로한 장류(醬類) 제조)
- 증보산림경제 제장류조(增補山林經濟 諸醬類條)에서
"장은 모든 음식 맛의 으뜸이다. 집안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좋은 채소와 맛있는 고기가 있은들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설혹 촌야의 사람이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어도 여러 가지 좋은 맛의 장이 있을 때에는 반찬에 아무 걱정이 없다. 간장은 우선 장담그기에 유의하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게 함이 좋은 도리이다."
라고 기록하였듯이 장은 음식 맛을 좌우하는 조미용 식품이고, 양질의 단백질 급원으로 효용성이 컸음.
- 우리나라 식생활의 또 다른 특징은 일상식(日常食)이 주부식 분리형(主副食 分離形)이라는 점. 즉 우리는 밥을 주식으로 하고 반찬을 부식으로 하여 차린 주식과 부식 분리의 유형을 일상식의 기본구조로 함.
- 주식은 밥. <- 쌀, 보리, 좁쌀을 재료로 단일로 하거나 혼합하여 지음. 쌀만으로 지은 밥을 최상의 것으로 삼음. -> 밥짓기 솜씨가 발달되어 있으며, 이 밥을 담아서 상용하는 밥그릇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음. <- 한국의 가정에서는 거의 모두가 개인용 밥그릇, 국 대접, 수저를 따로 가지고 있음.
- 이러한 전통이 있기 때문에 성년이 되어 혼례를 올릴 때 혼수의 필수품목의 하나가 신랑 신부의 반기(飯器) 1첩임. 이러한 반상기(飯床器)는 형편에 따라 생략될 때도 있으나, 주발(신부는 바리), 대접, 수저는 생략될 수 없으며, 이것을 신부가 시댁으로 갈 때 가지고 가는데 신랑의 주발에는 흰 찹쌀을 가득 담고 신부의 바리에는 붉은 팥을 가득 담아 각기 대접을 받쳐 붉은 보자기에 쌈. 또 수저는 곱게 수를 놓은 '수저집'에 각각 넣음.
- 시가에서 신부를 새로 맞이하여 폐백례를 치르고, '큰상'을 차려 주고, 그 날 저녁에 신부가 식기에 담아 가지고 온 찹쌀과 붉은 팥으로 찰밥을 지어 저녁상에 놓아줌.
<- 이것은 찰밥처럼 끈기 있고 다정하게 살고, 모든 액을 멀리하여 부귀다남(富貴多男)하라고 축수하는 뜻이 담겨 있음. <- 이것은 모두 밥을 중시하는 관습에서 비롯한 것이며, 밥그릇은 빈 것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바탕으로, 여기에 적색이 갖는 제액(除厄)의 뜻을 부가하여 생긴 풍속으로 해석할 수 있음.
- 또한 한국의 반상차림은 좌식(坐食) 차림이 특징. 밥을 짓는 불의 열기는 온돌의 난방 구실을 겸하였으며, 이 같은 주택 양식을 배경으로 하여 여인의 복식은 앉기 편하도록 모두 폭이 넓은 치마로 되어 있고 식사 양식도 조석반상 모두 좌식을 원칙으로 하였음.
- 조석(朝夕) 상차림: 1인용 외상을 원칙으로 하여 2인용 겸상, 3인용 셋겸상, 4인용 넷겸상까지 차리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 딸로 구성되어 있는 가족일 경우 할아버지께 외상을 차려서 따로 대접. 아버지와 성인인 아들은 겸상으로 차려 함께 식사. 할머니는 외상을 따로 차려 드리지만 때로는 손자와 겸상을 하고 며느리와 딸은 함께 식사.
-> 이 같은 규범 아래에서 살았으므로 조석을 준비하는 주방에서는 주방 옆에 있는 찬방에 다상을 몇 개씩 차려야 하고 가족 개개인의 반기와 대접, 수저를 가려 각기 상에 나누어 놓아야 했음.
- 한국의 의례상(儀禮床) 차림의 특성: 각 의례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 한국의 의례상차림에서 개인을 위한 것은 한 생애를 지나는 동안에 거치는 통과의례(通過儀禮)에 맞추어져 있고, 공동의 것은 농업, 어업 등 생업을 중심으로 한 계절의식(季節儀式)에 맞추어져 있음.
- 한편 절식(節食)으로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조절하였음. 절식은 설날, 입춘, 상원 2월 초하루, 3월 3일, 4월 8일, 5월 단오, 6월 유두, 삼복, 7월 7석, 8월 추석, 9월 9일, 10월의 첫오일(午日), 11월 동지, 12월 납향(臘享), 제석일(除夕日)에 각기 특별한 음식을 마련하여 먹으면서 그 날을 즐겼음. <- 이러한. 각 절일은 태음력에 의한 것이며, 기풍(祈豊), 기복(祈福), 발화(袚禍), 소속감 신장, 건강 조절, 정서 순화와 같은 여러 의미에서 이루어졌음.
2) 밥과 김치
(1) 벼농사의 도입과 밥
① 벼농사의 도입
- 한반도에서 농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현재로서는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주거지(B.C. 3000년대 전반기)에서 발견된 농업용구와 피, 기장으로 판명된 탄화된 낟알, 평안남도 온천군 궁산리 궁산유적(B.C.2000년대 후반~B.C.1000년대 초반)에서 발견된 다량의 농업용구 등으로 확인됨.
- 잡곡재배로 농업을 시작한 이후 2000여 년이 지난 B.C.1000년경에 이미 벼농사와 잡곡 및 콩류까지 오곡이 혼합재배 되고 있음을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음. 이 무렵은 중국으로부터 청동기 문화가 들어오던 때와 시기를 같이함.
- 세계적으로 재배벼의 종은 아프리카의 오리자 글라베리마(Oryza graberrima)와 아시아의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의 2종인데, 아시아 재배벼는 재배지역에 따라서 크게 인디카(Indica), 자포니카(Japonica)로 구분. 중국의 남부일대는 주로 인디카(Indica)를 한반도와 일본은 자포니카(Japonica)를 재배.
- 아시아 재배벼의 기원에 대해서는 중국 기원설, 동남아 기원설, 인디아 기원설, 운남․미얀마․아삼 기원설, 다원 기원설 등이 있음. <그림 12-4>를 보면 아시아 재배벼의 고향은 모두 아시아의 열대와 아열대가 접하는 산악․고원지대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음.
② 밥
-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밥을 먹게 되었는지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는 없으나 벼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고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할 무렵이라 짐작됨.
- 쌀 이전에 유래된 보리나 조, 수수 등은 낟알이 단단하여 쉽게 익지 않았고, 이 때문에 가루를 내어 토기에 물을 붓고 가열함으로써 죽을 만들어먹었음. -> 이후 장시간 열을 가하기에 적합지 못한 토기의 단점을 보완한 시루가 발명되었고 곡물을 찌는 방법을 고안. 이 시기에 밥을 먹은 듯.
- 곡물을 시루에 찌고 있는 모습은 교재에 있는 고수려의 안악3호분의 부엌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음. 즉, 철로 만든 솥이 보급되면서 장시간 곡물을 가열할 수 있게 되었고, 쌀 농사가 보급되어 덜 여문 곡물을 얻게 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밥짓기가 가능. -> 그러니까 우리 민족이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은 1500년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 가능.
-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식생활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음식이 밥이며, 밥은 생활자체를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함(예: '밥 먹었는가?', '진지잡수셨습니까?' 등의 아침인사는 단순히 식사를 했는지의 여부를 묻는데 그치지 않고 밥을 잘먹고 잘 소화시키는 것이 안녕의 근본이라는 사상을 내포).
- 밥은 복록(福祿)의 상징으로 맛있게 먹고, 밥을 풀 때에는 듬뿍 퍼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깊음.
-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정성도 많이 들였음.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수록된 밥짓기를 살펴보면, 밥을 짓는 솥과 쌀의 종류에까지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음.
밥을 짓는 그릇은 곱돌솥이 으뜸이고 오지탕관은 그 다음이요 무쇠솥은 셋째이며 통노구는 하등이다. 쌀은 이천 옥자강이나 통진 밀다리가 제일 좋고, 요사이는 돌과 뉘와 벼와 싸래기를 모두 골라낸 석발미(石拔米)가 좋다. 좋은 쌀은 몸이 마르고 빛이 유리 같고 모양이 잘고 걀죽걀죽하다. 밥을 지을 때는 끓는 물이 넘쳐나지 않게 하고 불은 천천히 때고 물은 적게 붓는다. 솥뚜껑은 꼭 맞게 하여 김이 새지 않게 한다.
- 한편, 대가족제도 하에서 한 솥에 가족 각각의 입맛에 맞는 밥을 동시에 하는 법도 생겨났음(예: 쌀을 안칠 때 한편은 높게, 다른 한편은 얕게 하는 '두층밥하기'가 일반화). 현대에 와서는 전기밥솥, 압력밥솥 등 다양한 조리기구가 발명.
(2) 김치
① 김치문화의 형성과 발달
- 김치는 자연환경과 조상의 슬기로운 음식솜씨에서 생겨난 우리 고유의 채소염장 발효식품으로 삼국시대 중기 이후 정착농업의 안정으로 밥을 주식으로 하게 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추측됨.
- 김치는 배추, 무, 오이, 열무, 파 등과 같은 채소류 등을 식염에 절인 후 여러 가지 부원료를 첨가하여 발효숙성 시킨 것.
- 김치의 가공기술은 일찍부터 숙달되었던 장양기술(藏釀技術)을 활용한 것으로, 김치의 역사는 채소의 재배법 증진을 배경으로 하며 다른 여러 음식의 발달과도 유기적으로 관계가 있음.
<- ① 삼국시대경 까지의 김치는 소금 절임, 장에 절임, 소금과 술 또는 술지게미 절임 등 마치 지금의 동치미, 짠지, 장아찌류(청채)와 같은 것이었음.
② 이후 숭불사조를 배경으로 고기음식이 절제되어 떡, 과정류, 채소, 음식의 조리, 가공기술이 발달되면서 청랭한 맛과 채소의 비타민 C 등을 보유한 나박김치류가 개발되어 김치(沈菜)로 정의할 수 있는 것으로 발달.
③ 이어서 16세기말 고추가 새로이 유입되면서 17, 18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은 김치로 발전.
- 김치의 독특한 맛은 마늘, 고춧가루, 생강 등의 향신료와 젖산 발효에 의해 생성되는 젖산, 초산, 탄산가스 등이 가미되어 형성.
- 오늘날의 김치는 배추 통김치가 가장 주된 것이지만 속을 넣어 담을 만큼 좋은 배추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전부터로 추정.
- 또한 고추가 필수품으로 쓰이게 된 것도 조선시대 중기 이후.
○ 삼국시대
-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고구려조」,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서 고구려 사람들이 채소를 발효식품으로 먹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순무류, 가지, 상추, 박, 토란, 생강, 아욱, 파, 부추, 겨자, 숭(배추종류) 등을 재배하여 장류에 담가 장아찌류를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음.
○ 고려시대
-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의 가포육영(家圃六詠)의 기록을 보면 외, 가지, 순무, 파, 아욱, 박을 장류에 담가 장아찌로 하고 소금에 절여 겨울철에 대비하였음을 알 수 있음. 또, 『고려사』 「예지(禮志)」에 미나리김치, 죽순김치, 무김치, 부추김치 등 3가지 김치류의 기록이 있는데 역시 오늘날의 김치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장이나 소금에 절인 것으로 장아찌나 짠지류에 가까운 형태일 것으로 추정.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의 기록을 통해 삼국시대의 채소가 고려 때에도 계속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음.
○ 조선시대
- 조선시대 김치의 가장 큰 특징은 고추와 젓갈을 활용한 것임. 고추와 젓갈을 활용하였다는 기록을 몇 가지 소개하면,
* 1500년대 초엽의 『수운잡방(需雲雜方)』 : 소금절이 김치의 기록이 있으며 단순히 소금에 절이는 이외에도 천초와 할미꽃 뿌리, 겨자를, 마늘과 후추를 섞어 만든 기록이 있음.
* 1611년 허균의 『도문대작(屠問大 )』 : 죽순해(竹筍 )와 산개저(山芥菹)의 기록이 있는데 죽순장아찌, 산 갓김치인 것으로 해석됨.
*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設, 1613)』, 이익(李翼 : 1681-1763)의 『성호사설』 : 16세기경 고추[苦椒]가 일본에서 들어오고 중국으로부터도 여러 품종이 도입되어 17세기 이후에는 일반에 널리 퍼지고 18세기에는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알 수 있음.
* 홍만선(1643-1715)의 『산림경제(山林經濟)』의 「치선(治膳)」 편 : 김치 만드는데 고춧가루를 사용한 기록이 처음 나옴.
* 1700년 말엽 유득공의 『경도잡지』 「잡저(雜菹)」 편 : 젓갈을 김치에 쓰는 첫 기록이 있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에는 석박지, 나박김치, 동치미, 장김치 등의 기록이 있음. 그리고 김치의 주재료로 무, 배추, 오이, 죽순, 갓, 가지를, 부재료로 미나리, 송이, 창포, 부추, 향신료로 마늘, 고추, 고춧가루, 생강, 파, 천초, 청각 등을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있음.
<- 이것으로 보아 19세기는 조선전기에 비해 고춧가루와 달인 젓국(조기젓, 준치젓, 밴댕이젓 등의 젓국 사용이 활발해져 양질의 담백질과 칼슘을 공급할 수 있는 젓국지의 형태가 시작)을 넣고 담그는 김치로 현저하게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현재의 양념김치로 이어졌음.
- 19세기말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김장용 통배추 재배에 성공하고 고추의 사용량은 크게 증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0월조」에서도 "서울의 풍속에 무․배추․마늘․고추․소금 등으로 독에 김장을 담근다. 여름의 장 담그기와 겨울의 김치 담그기는 인가(人家) 1년의 중요한 계획이다"라고 하여 김장이 장 담그기와 더불어 가정의 2대 중요 행사로 여겨졌음을 알려주고 있음.
- 또한 『태종실록(太宗實錄)』에 침장고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김장문화는 고려시대에 정착.
-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영농기술의 발달과 산업화에 따라 가정에서 만들었던 음식들이 전문가에 의해 공장에서 생산.
- 1950년대 중반에 간장을 시작으로 된장, 고추장 등이 산업화되기 시작.
- 1980년대 후반에는 김치를 공장에서 가공․포장하여 포장김치를 생산하기 시작. <- 김장을 담기보다 구매하여 먹는 경향 증가.
- 1995년에 등장한 김치 냉장고로 인하여 가정에서 김치를 더욱 손쉽게 보관할 수 있게 되는 등 다양한 변화들은 현대의 김치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있음.
- 김치의 어원과 김장
①『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김치․젓갈무리인 '저해(菹醢)'에 대한 기록이 되어 있으며 또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19세기 초의 저서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誌)』에서도 '저'를 찾아볼 수 있음.
② 이후 지(漬), 지염(漬鹽), 침채(沈菜), 침저(沈菹), 침지(沈漬), 엄채(醃菜), 함채(鹹菜) 등이 김치무리로 표기.
③ 김치란 말은 '침채'라는 한자어에서 비롯. 중국에는 없는 글자인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만든 글자인 듯. ‘디히’, ‘지’(남도 지역 특히 전라도에서는 지금도 김치를 '지'라고도 하며 황해도와 함경도, 서울말에도 '오이지', '짠지'등의 '지'), -> 딤 -> 짐츼 -> 짐치 -> 김치의 어음변화가 일어난듯.
④ 상고시대에는 김치를 '저(菹)'라는 한자어로 표기.
⑤ 김장이라는 용어도 김치를 장기간 저장해 두었다가 먹는다는 뜻의 침장(沈藏)에서 온 것으로 보여짐. <- 조선무쌍신식요리법에서 김장을 진장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진장(珍藏)은 긴할 때 먹기 위해 보배로 감춘다는 의미가 담겨있음.
3) 지역별 음식문화
(1) 경기 지역
① 서울
- 서울은 조선 시대 초기부터 오백년 이상 도읍지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 그래서 궁중의 음식문화가 최고로 발전하였으며, 이는 궁 밖의 양반 계급과 중인 계급의 음식 문화에도 많은 영향.
- 서울 음식은 식품을 복합적으로 쓰고 양념도 여러 가지를 써 그 맛 또한 다양.
- 맛은 간이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지나치게 맵게 하지 않아 전국적으로 보면 중간 정도의 맛을 지님.
- 서울의 별미음식으로는 설렁탕, 장국밥, 열구자탕(신선로), 탕평채 등.
② 경기도
- 경기도는 산과 바다를 함께 면하고 있으며 기후는 비교적 좋은 편.
- 서해안의 해물과 산골의 산채에 밭곡식도 여러 가지가 고루 생산되어 음식도 소박하면서 다양. 특히 주식이 되는 쌀은 경기미가 품질이 좋은 것으로 평가됨.
- 경기도에서는 고려의 도읍지인 개성 음식이 다양하고 사치스러운 편인 것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수수한 음식이 많음.
- 음식의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정도이며 양념도 많이 쓰지 않음.
- 별미음식으로는 수원의 쇠갈비구이, 조랭이 떡국․무찜․홍해삼․편수 등과 약과․경단․주악 등의 병과류를 만드는 개성음식이 있음.
(2) 충청․강원지역
① 충청도
- 충청도는 농업이 주가 되는 지역. -> 쌀․보리․고구마․무․배추․목화․모시 등의 생산이 많음.
- 특히, 충청남도의 예당 평야, 백마강 유역에 펼쳐진 지역은 곡물이 풍부. 서쪽 해안 지방은 해산물이 풍부하나 북도와 내륙은 전혀 신선한 생선을 볼 수가 없어 옛날에는 절인 자반 생선이나 말린 것밖에 먹을 수 없었음.
- 충청도에서는 음식의 맛을 낼 때 된장을 즐겨 사용. 사치스럽지 않고 양념도 그리 많이 쓰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리고 있음.
- 별미음식으로 어리굴젓, 올갱이국, 황복과 웅어로 만든 음식, 늙은 청둥호박 속에 꿀을 넣어 중탕하여 만든 호박꿀단지 등.
② 강원도
- 강원도는 한류와 난류가 엇갈리는 깊은 동해와 태백산맥의 깊은 산과 골짜기 사이의 분지에 자리잡음.
- 이 고장의 특산물은 감자, 강냉이, 메밀, 도토리 등으로 이것들을 주식.
- 또한 강원도는 구황식품의 보고(寶庫).
- 강원도의 별미음식으로는 감자를 재료로 하여 국수․수제비․범벅․송편 등을 만드는 음식들과, 떡이나 엿․올챙이묵을 만드는 옥수수를 재료로 한 음식, 메밀막국수, 도토리 묵, 생선음식 등.
(3) 호남․경남지역
① 전라도
- 전라도는 개성만큼이나 음식솜씨가 사치스러움.
- 개성은 고려조의 음식을 전통적으로 지키고 있어 아주 보수적인 데가 있고, 전라도는 조선조의 양반풍을 이어받은 고유한 음식법을 지키고 있음.
- 전라도는 콩나물 기르는 법이 특수하고 좋아서 콩나물 나물이 제일이고 각색 죽들이 보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
- 전남 순창의 고추장이 유명하며, 별미음식으로는 추자도 멸치젓․낙월도 백하젓․함평 병어젓․고흥 진석화젓․여수 전어밤젓․영암 모치젓․강진 꼴뚜기젓․무안 송어젓․옥구의 새우알젓․부안의 고개미젓․뱅어젓․토화젓․참게장․갈치속젓 등의 젓갈류와 부각, 전주비빔밥, 콩나물국밥, 홍탁삼합, 광주애저 등.
② 경상도
- 경상도는 남해와 동해에 좋은 어장이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고, 낙동강 유역의 기름진 농토로 농산물도 넉넉.
- 음식의 맛은 대체로 맵고 간이 센 편인데, 투박하지만 칼칼하고 감칠맛이 있으며 음식에 방아잎과 산초를 넣어 독특한 향기를 즐김.
- 해산물을 회로 먹는 것을 제일로 치며, 바닷고기는 회뿐만 아니라 국이나 찜, 구이도 함.
- 별미음식으로는 진주비빔밥과 마산 미더덕찜, 안동 식혜․헛제사밥과 같은 안동 음식, 동래 파전, 재첩국, 추어탕 등.
③ 제주도
-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남쪽 섬으로 기후가 따뜻하고, 근해에 잡히는 어류도 특이한 것이 많이 있음.
- 제주도 음식에는 어류와 해초가 많이 쓰이며 된장으로 맛을 냄.
- 음식을 많이 장만하지 않고, 양념도 적게 쓰며, 간은 대체로 짜게 하는 편임.
- 음식 중에 죽․범벅, 국이 많은 편.
- 별미음식으로는 달래와 마늘․파를 넣고 간장으로 간하여 담백하게 끓이는 국인 드릇마농(들의 마늘)이 있으며 자리물회, 옥돔 음식, 전복죽, 해물 뚝배기 등.
(3) 이북 지역
① 황해도
- 황해도에는 북쪽 지방의 곡창 지대인 연백 평야와 재령 평야가 있어서 쌀과 잡곡의 생산이 많고 잡곡도 질이 좋음.
- 넉넉한 곡물을 사료로 먹인 가축들의 맛이 유별난데, 특히 집집마다 닭을 많이 기르므로 밀국수나 만두에도 닭고기가 많이 씀.
- 황해도는 인심이 좋고 생활이 윤택한 편이어서 음식을 한번에 많이 만들고, 음식에 기교를 부리지 않고 구수하면서도 소박.
② 평안도
- 평안도 지형은 산세가 험하나 서해에 면하여 해산물도 풍부하고, 넓은 평야로 밭곡식도 풍부.
- 예로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많아 평안도 사람의 성품은 진취적이고 대륙적이어서 음식의 양도 푸짐하게 많이 만듬.
- 음식 중에는 국수를 가장 즐기고 겨울에 냉면, 여름에는 어복쟁반이 유명.
- 간은 대체로 심심하고 맵지도 짜지도 않으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냉면과 만두․녹두빈대떡 등이며 별미음식은 만두, 어복쟁반, 내포중탕, 되비지, 순대, 노티(놋치) 등.
③ 함경도
- 함경도는 백두산과 개마고원이 있는 험악한 산간 지대가 대부분. 동쪽은 해안선이 길고 영흥만 부근에 평야가 조금 있어 논농사는 적고 밭농사를 많이 함.
- 곡류 중에서는 특히 메조․메수수가 맛이 구수하고 좋으며, 고구마, 감자도 품질이 좋아 냉면에 쓰는 냉면 국수의 재료로 씀.
- 함흥냉면은 생선회를 맵게 비벼 먹는 방법이 타 지방과 다르며, 다저기(고추양념)라는 말도 이 지방에서 나온 말.
- 음식의 간은 짜지 않고 담백하나 마늘․고추 등의 양념을 강하게 쓰며, 음식의 모양은 큼직하여 대륙적이고 대담하며 장식이나 기교없이 사치스럽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