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발매된 영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OST 앨범.
'올리 에델' 감독에 '제니퍼 제이슨 리'와 '스테판 렝'이 주연을 맡았던 이 영화는 뉴욕의 가장 큰 우범지대인 브룩크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간사를 차분히 그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음악들이 트렘펫과 잔잔한 드럼, 긴박감 있는 봉고리듬으로 어두운 주제를 상징화 시키고 있다는데, 특히, 들어보지 않고는 말로 할 수 없는 곡이라 할 정도로 'David Nolan'의바이올린 연주가 일품이 이곡은 작곡가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리드미컬한 기타선율로 대변되던 마크노플러의 다른 사운드 트랙 작품들과는 달리 그의 기타사운드는 이 앨범에선 한곡에서,그것도 잠시 들어볼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 A Love Idea "는 감미로운 바이올린 곡으로 전혀 새로운 감흥을 주고 있습니다.
Last Exit to Brooklyn
1952년, 풍요로운(?) 미국 뉴욕의 변두리 브룩클린의 음울한 공장지대... 그리고 그곳에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
열성적으로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조합 선전부장 해리(Herry Black : 스티븐 랭 분)는 처자가 있지만, 우연히 여장남자의 파티에 참여하게 되어 알게된 호모와의 연애로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파업중인 공장에서 물건을 내가기 위한 업주와 경찰, 그리고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치열한 싸움이 있던 날 시위에 늦었다는 이유와 공금횡령으로 노조에서 해고되고 만다.
경제력을 상실하자 차갑게 외면해버리는 호모애인과 이제는 더 이상 애정 없는 가족... 절망에 빠진 해리는 급기야 동네 꼬마를 범하려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다. 어깨위로 울리는 LAST EXIT TO BROOKLYN...
브루클린으로 가는 다리
한편 호모 조젯은 자신의 애인에게 병적인 집착을 하고, 창녀 트랄라는 브룩클린에서 건달들과 짜고 술취한 남자들의 돈을 빼앗으며 살고, 그리고 거리의 불량배들은 어떤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이 절도와 폭력을 저지른다. 어느 날 트랄라는 한 남자를 따라 맨하탄에 갔다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군인을 만나는데... 그가 전장으로 떠나기 전 이틀의 시간을 함께 하며 트랄라는 잠시 행복하나 그가 이별의 편지를 남기고 떠나자 트랄라는 상심에 빠지고... 급기야는 바에서 옷을 벗으며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다 온 거리의 남자들에게 짓밟힌다. 그녀의 흔들리는 의식속에서 또렷히 들려오는 그가 남기고 간 사랑의 약속들...
반쯤 실신한 트랄라를 구해주는 사람은 그녀를 남몰래 연모하고 있던 소년 조르제트(Georgette: 알렉시스 어퀘트 분) 자신의 오토바이에 제일 먼저 트랄라를 태우는 것이 꿈이었던 조르제트는 드디어 누나의 결혼식 날 오토바이를 선물받고 트랄라를 찾아 나선 것이다. 겨우 공터에서 그녀를 찾아내지만... 이미 그녀는 옷은 다 찢어지고 얼굴도 멍든 채 죽은 듯이 누워있다. 오히려 흐느끼는 조르제트를 위로하는 트랄라... 그리고 A LOVE IDEA ...
새벽빛이 밝아오고 노동자들이 하나 둘 파업이 끝난 공장으로 향한다.
Jennifer Jason Leigh Brief Comments
휴버트 셀비 주니어가 1964년 펴낸, 외설논쟁에 휘말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전쟁과 파업으로 혼란한 50년대의 미국사회를 적나라하게 그린 영화이다. 원작자 허버트 셀비는 이 영화에서 차 운전수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으며 특히 창녀 트랄라의 역할을 한 제니퍼 제이슨 리의 연기와 마크 노플러의 음악이 인상적이다.
Dire Straits의 리더싱어 겸 기타리스트인 Mark knopfler가 맡은 이 서정적인 영화음악은 암울한 브룩클린의 환경속에서 단지 생존을 위해 거칠게 살아가는 황폐해진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더욱 아프게 투영하고 있어 영화의 음울한 화면과 함께 오래도록 뇌리에 잊어지지 않는다.
마크 노플러 Mark Knopfler
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멤버인 마크 노플러는 1949년 8월 12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방신문 저널리스트로 활동을 하다가 교사 생활을 하던 그는 취미생활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동생 데이빗 노플러와 동생의 친구인 존 아일슬리, 픽 위더스와 함께 팀을 만들어 음악 활동을 합니다.
그 때 이루어진 팀이 바로 '다이어 스트레이츠'죠. 1978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음반 판매의 성공으로 음반계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죠. 그리고 그룹 활동이 잠시 주춤한 틈을 이용해 마크 노플러는 영화 음악을 작곡하게 되는 기회를 맞게 되는데, 그의 첫 사운드트랙 <Local Hero>가 바로 그것이죠. 영화는 관심을 모으지 못했지만, 이 음반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다이어스트레이츠의 음악활동도 꾸준히 하다가 1985년에 발표한 앨범 "Brothers in Arms"로 정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음반엔 그들을 대표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는 Money for nothing, Walk of life, So far away가 수록되어있죠. 그들의 건제함을 세계에 과시한 그 해 이후로도 꾸준히 음반발표를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크 노플러는 1989년에 제작된 영화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여 영화음악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쌓았습니다.
Mark Knopfler(마크 노플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Glasgow)에서 1949년 8월 12일에 태어났다. 7살 때 잉글랜드 북동쪽에 위치한 Newcastle-Upon-Tyne으로 온 가족이 이주하여, 그 곳에서 삼촌 Kingsley의 하모니카와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성장했다. 틴에이저 시절 학교 밴드의 멤버로 기타 연습을 계속하며, 당시에 Scotty Moore, Jimi Hendrix, Django Reinhardt, James Burton의 기타 연주를 들으면서 큰 영향을 받음과 동시에 연주 실력을 향상 시켜나갔다. 그의 나이 16세 때 학교친구와 듀엣으로 지방 TV에 생애 첫 공개무대에 서게 되었다.
학창시절 그는 영어에 재능을 보여 1967년 Harlow Technical College 에서 1년 동안 저널리즘을 공부하여, 학기를 마치고 Leeds市에 있는 'Yorkshire Evening Post' 라는 신문사의 견습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2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Leeds University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Leeds 에서 그는 블루스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Steve Phillips를 만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전문적인 뮤지션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Steve와 Mark는 음악적인 동질성을 확인하고 듀오 [The Duolian String Pickers]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풀타임 학생으로서 학비와 생계비를 음악활동으로만 벌 수 없는 형편이라 기자생활을 계속하면서, Leeds City Art Gallery와 Newsam House에서 그림과 고가구를 복원하는 일을 병행했다. 그들은 5년간 같이 활동했고 그 뒤 많은 세월이 지난 1996년 Steve의 [Just Pickin'] 앨범 작업에 Mark가 동참함으로써 음악적 동료애를 보이게 된다. Steve는 젊은 시절의 Mark를 "B.B.King과 견줄 수 있는 훌륭한 기타리스트였다"고 회고한다.
이 당시 Steve는 흑인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Lonnie Johnson을 Mark에게 소개해 주었고, 로니로부터 기타 연주에 관한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난해한 Guitar Picking 기법을 익히면서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을 점차 완성해 나갔다. Leeds에 살았던 이 시기에 Mark는 여전히 가난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을 하게 되었다. Steve가 12줄 기타로 같이 참여했던 그 곡은 'Summer's Coming My Way'이다.
1973년 Leeds University 를 졸업한 Mark는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드디어 London으로 진출하게 된다. 몇 군데의 오디션을 거쳐 2달 동안 한시적으로 블루스 밴드인 [Brewer's Droop]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나중에 Dire Straits 의 첫 앨범 작업 때 같은 멤버로 참여하게 되는 Pick Withers를 만나게 된다. Pick은 이미 17살 때부터 전문 연주가로 활동을 해왔던 경험이 풍부한 연주자였다. 이 밴드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Mark는 Essex 소재 Loughton College에서 영어강사로 2년간 보내면서, 가끔 기타 강습도 하면서 교사생활을 했다.
그 시절 이미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하고 있던 Mark의 동생 David Knopfler가 형을 찾아와 몇 주간 같이 지내게 되고, 당시 이들 형제는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David는 런던으로 다시 돌아가고 Mark는 그가 강사로 재직하던 학교의 친구들과 [Cafe Racers]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활동을 지속하게 된다.
런던으로 돌아간 David는 Leicester 출신인 베이스 연주자 John Illsley와 룸메이트로 지내고 있었는데, John은 당시 Mark를 처음 만났을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 어느날 밤새 외출했다가 아침 10시 쯤 귀가해서 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으로 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마루바닥에서 옷과 구두를 신은 채로 자고 있더라구요. 배위에는 기타를 안고 말에요....그게 Mark와의 첫 대면이었죠...."
David는 John에게 기타 연주자인 형에 대해 몇 번 말을 한 적이 있었지만 같이 음악활동을 하게 되리란 생각은 못했었다. 그러나 John과 Mark가 같이 합류할 기회가 금방 온 것이었다. Mark의 밴드 [Cafe Racers]의 베이스 연주자가 어느 날 갑자기 앓아 눞게 되고 John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77년 4월, Mark는 거주지를 David와 John이 같이 사는 아파트로 합류하게 되었다.
John은 Mark가 비범한 뮤지션이란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Mark만의 독특한 연주스타일, 천부적인 작곡 실력에 John은 금방 매료되었고, 77년 여름 이들 셋은 Mark가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면서 리허설을 계속 했다. 그러나 뭔가 하나가 빠진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드러머 였던 것이었다. 이 때 Mark는 [Brewer's Droop] 밴드 시절 드러머였던 Pick Withers를 기억해 냈고, 드디어 Dire Straits의 첫 멤버 구성이 짜여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살고 있던 아파트 소켓에서 전원을 연결하여 아파트 뒷마당에서 4인조 밴드로서 맹렬한 연습을 계속 하였다.
1977년 7월 27일, 드디어 Dire Straits는 총 5곡을 최초로 데모 테잎으로 녹음을 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Wild West End> <Sultans of Swing> <Down To The Waterline> <Sacred Loving> <Water Of Love>가 제작된 것이었다. 그 해 10월 경 <Southbound Again> <In The Gallery> <Six Blade Knife> 등 3곡이 BBC Radio London에서 추가 녹음 되었고. 드디어 11월 9일 데모테잎이 <Setting Me Up> <Eastbound Train> <Real Girl>이 녹음 됨으로 해서 완성되게 되었다.
그 데모테잎은 BBC Radio London에서 DJ로 방송을 하고 있던 Charlie Gillett에게 전해졌고 그들의 곡이 전파를 타게 되었다. 음반 제작사인 Phonogram사의 John Stainze는 우연히 샤워하다 라디오에서 이들의 곡을 듣게 되었고, 그는 NEMS에이전시 소속인 Ed Bicknell을 사무실로 초청하여 이들의 데모테잎을 들려주었다. 둘은 이들의 음악성을 알아보고는 곧 바로 Dire Straits를 만나기 위해 그들이 출연하는 Dingwalls Club으로 가서 직접 연주를 듣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에드는 Dire Straits의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Talking Heads'라는 밴드의 투어에 Support Band로 이들을 합류시키는 기획을 했다. 이 때의 계약조건은 클럽에서 받던 10배인 하루 밤 공연에 50파운드......지금은 이미 아득한 전설적인 이야기 이지만.....
이들의 첫 앨범[Dire Straits]는 Vertigo Records사와 계약을 하고 드디어 1978년에 첫 선을 보이게 된다. 첫 앨범은 굳이 따진다면 J.J. Cale이나 Eric Clapton스타일의 blues한 색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Mark의 그 때까지의 음악활동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칼라이다. 그들을 스타의 반열에 오려놓은 곡, 'Sultans Of Swing'은 런던의 싸구려 대중술집인 Pub에서 연주하던 시절의 자서전적인 곡으로 Mark의 독창적인 기타연주와 낮게 읊조리는 보칼이 일품인 명작으로 손꼽힌다.
이들이 데뷔하던 당시는 미국의 디스코와 유럽의 punk가 열풍처럼 휩쓸던 때여서, 블루스가 가미된 정통 락을 구사하던 이들의 음악이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top10에 들게 되어서 큰 이변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깔끔한 작곡과 독창적인 기타연주로 700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는 대 히트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찢어지게 가난한' Dire Straits가 아닌 것이었다. 허름한 대중 술집 pub에서 음악활동을 하고 낡은 아파트에서 생활을 하던 Dire Straits가 아닌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979년 그들의 두번째 앨범 [Communique']가 발표되었고, Bob Dylan이 깊은 감명을 받아 Mark와 드러머 Withers에게 같이 활동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1집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이미 1집 발표 후 솔로 활동과 연습부족을 이유로 동생 David가 탈퇴를 했고, Hal Lindes가 들어와 3집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다.
1980년의 새번째 앨범 [Making Movies]와 82년의 네번째 앨범 [Lover Over Gold]에서는 그들의 사운드가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키보드 연주자 Alan Clark의 합세로 연주 위주의 실험적인 곡들과 Springsteen류의 서사시 적인 스타일의 대곡들이 주를 이루어 대중성을 얻기에는 실패했다. 즉 그들만의 장중한 실험적인 곡들을 고집하면서 상업적으로는 1,2 집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패한 셈이었다. 지속적인 월드 투어를 마치고 1984년 두 장짜리 라이브 앨범인 [Alchemy]를 발표했다. 'Romeo and Juliet'과 무드와 품격이 엿보이는 'Private Investigations'가 싱글챠트에서 히트를 치게 된다.
이 때까지 이들의 음악활동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자신들만의 음악과 상업성이라는 조화문제, 팀 멤버의 교체 등으로 약간의 침체기를 보내었던 것이 그들의 정식 5번째 앨범의 폭발적인 인기를 위한 진통이었을까. 드디어 1985년 Dire Straits를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거듭나게 한 [Brothers In Arms]가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Mark의 뛰어난 제작감각이 보내지면서 CD와 Music Video로 출반된 이 앨범 중 'Money For Nothing'은 최고의 히트곡과 동시에 화제곡이 되었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작곡 및 연주와 반복적이며 강렬한 기타 리프(guitar riff)로 인해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또한 당시로서는 첨단 기법인 컴퓨터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한 뮤직비디오 역시 대단한 화제를 모으면서, 이들은 매니아 층 뿐 아니라 대중성 까지 얻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Money For Nothing'은 미국 차트에서 9주간이나 1위에 머물렀고, 이어 다음해 까지 'So Far Away' 'Walk Of Life'로 차트에서 계속 강세를 보이며 머물렀다.
[Brothers In Arms] 앨범은 첫해 9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월드 투어를 통해 1년 동안 총 234회의 공연을 하여 250만명 이상의 청중을 끌여 들이면서 투어를 통해 판매고를 1500만장 이상으로 끌어 올리며 대단한 성공과 환호를 받았다. 실례를 들면 뉴질랜드에서는 전 인구의 10% 이상이 이들의 콘써트에 입장했으며, 영국 10가구 중 1가구 이상이 이 앨범을 구입했다. 또한 제28회 그래미상에서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팝 전문잡지 'Rolling Stone'은 그 해 최고의 기타리스트에 Mark를 선정했다.
이 앨범은 상업적인 대성공으로 인해 당시로서는 드물게 노래에 내재된 강한 메시지가 가리워진 측면도 있다. Mark도 이와 관련해서, "강렬한 성격의 록음악이었지만 너무 많이 팔리는 바람에 콘플레이크인 양 가볍게 취급되 버렸다" 라고 불평한 적이 있다. 노래의 테마는 사실 매우 심각하다. Sting의 도움을 받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 'Money For Nothing' (Lyric코너에 번역 및 소개)만 하더라도 저질 록가수들이 외모에만 신경쓰고 노래나 연주 실력은 형편없이 M-TV에 나와서 돈버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한 곡이었다. 80년대 당시 대중음악은 음악성보다 공룡화한 음반제작사들의 기획에 맞춘 음악 외적인 면으로 대중을 현혹한다는 조롱과 비판이 돋보이는 내용이다. 이후 이때의 인연으로 Sting의 앨범 제작에 Mark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또한 타이틀곡 'Brothers In Arms'는 죽어가는 한 군인의 상황을 통해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을 비판했으며, 전범자의 고백을 담은 'The Man's Too Strong' 그리고 'One World'등도 현실세계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담은 곡들이다.
강한 메시지와 편하고 쉬운 음악과 더불어 이 앨범의 성공요인으로 그의 탁월하면서 그 만의 스타일을 지닌 기타연주였다. 그는 피크를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이른바 'fingering'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유연하고 부드러운 연주를 구사하는데 강점을 보이며, 화음과 복선률이 많은 곡들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주법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던 'Why Worry' (Lyric코너에 소개)에서 유연하고 부드러운 아르페지오 선율을 즐길 수 있다. 또한 Mark는 이 앨범 제작시 13개의 상이한 코드를 활용, 다분히 멜로디를 의식한 아름답고도 편안한 음악을 들여준다.
또한 상큼한 비트로 구성된 'So Far Away', 흥겨운 'Walk Of Life', 그리고 게스트 연주자 마이클 브레커의 감수성 짙은 색스폰 연주와 Mark의 기타가 어우러져 퓨전재즈 풍의 품격있는 'Your Latest Trick'등 이 앨범은 수록곡 전부가 매니아 층과 대중들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대 성공이후 이들은 침체기에 빠져든다. 그룹 해산이라는 루머와 함께 Mark 개인적인 영화음악 참여, 그리고 쉴 틈 없는 월드 투어에서 휴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미 80년대 초부터 Mark는 영화 음악 쪽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
1983년 버트 랭카스터 주연의 [Local Hero]에 영화 음악 참여로 첫 사운드 트랙 앨범 [Local Hero]가 총 14곡이 수록되어 발매 되었다. Dire Straits 멤버들이 함께 참여한 이 앨범은 'Going Home' 'Wild Theme' 'Smooching' 등 그들의 또 다른 색깔을 느낄 수 있는 명반이다. 여기서 우리는 Mark의 작곡 세계가 얼마나 깊이가 있는가를 느낄 수 있다. 블루스에 바탕을 둔 Rock에서 Jazz, Country, Progressive Rock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Mark의 음악세계와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Mark의 두 번째 영화음악 앨범은 [CAL]이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의 멤버인 John(Bass), Terry Williams(Drum)를 비롯하여 브리티쉬 포크락의 귀재 볼 브래디(만돌린) 과 Guy Fletcher(Keyboard)등이 협연해 주었다. 'Long Road' 'Irish Boy' 'Potato Picking'등이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1986년엔 폴 뉴먼과 톰 크루즈가 주연한 'The Color of Money',1987년에는 'The Princess Bride'에서 영화 음악을 담당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영화 음악인으로서 Mark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으나, 1990년 'Last Exit To Brooklyn'으로 국내에서도 Mark Knopfler를 영화 음악가로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리드미컬하고 독창적인 기타선율만 연상했던 기존의 사운드트랙 앨범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 주고 있다. 특히 국내에 많이 알려진 'A Love Idea'는 David Nolan의 바이올린 연주가 일품으로 Mark의 작곡능력과 기존 곡들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색다른 선율을 선사해 준다.
1997년 'Metroland'에서 'Sultans of Swing'이 삽입되었고, 'Wag the Dog'에서 영화 음악을 담당했다. 베리 레빈슨 감독,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영화이다.
다시 그들의 앨범으로 돌아가 보자. 1989년 그들의 베스트 앨범을 모은 [Money For Nothing], 1990년 유명한 기타리스트 Chet Atkins와 듀엣으로 기타연주를 들려준 [Neck and Neck>]을 발표한다. 그리고 Leeds의 싸구려 술집을 전전하던 시절의 옛 동료들과 재결합하여 'Notting Hillbillies'라는 별도의 밴드를 구성하게 된다. 89년 베스트 앨범 발매 이후 사실상 Dire Straits 이름으로의 그룹활동은 1991년 까지중단하게 되었고, Sting, Tina Turner, Bob Dylan의 앨범제작에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1991년 발표된 앨범이 [On Every Street]이다. 이전의 색깔과는 많이 달라진 음악을 선보이며 기존의 앨범에 열광하던 매니아 층들은 약간의 실망을 하게 된다. 이 앨범 발표 이후 다시 활동을 재개하여 91년 부터 시작된 대규모 월드 투어는 400만 명 이상을 동원했으며, 이 투어를 마친 Mark는 굉장히 지쳐있었다. 그리하여 Mark는 계속된 투어와 스튜디오 작업에서 벗어나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껴 활동을 다시 잠정적으로 중단 하게 된다.
월드 투어 중에서 하일라이트만 엄선해서 발표된 것이 1993년도 이들의 두번 째 라이브 앨범인 [On The Night]이다. 1996년 Mark Knopfler의 첫 솔로 앨범 [Golden Heart]를 발표하면서 70년대 말부터 90년대 까지 풍미하던 Dire Straits의 음악은 더 이상 발표되지 않는다. 이 그룹의 핵심인 Mark에 의해 좌우되어 밴드의 활동이 지속되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남긴 음악은 음반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현재까지 Dire Straits와 Mark Knopfler는 수백만장의 싱글과 1억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오랜 세월동안 Mark와 함께 음악 활동을 한 아티스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Bob Dylan, Van Morrison, Tina Turner, Eric Clapton, Chet Atkins, Ben E. King, Scott Walker, Steely Dan, Sting, Elton John, Ray Cooper, Phil Palmer, James Taylor, David Rawlings 등 당대의 쟁쟁한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 또는 음반 작업을 했다. 그리고 Mark는 자선기금을 위한 콘써트 활동을 지속했으며, 찰스 황태자와 다이내나 비가 참석한 'Prince's Trust'공연을 3차례나 했다. 1985년에 'Live Aid Concert'와 88년 'Nelson Mandela 70th Birthday Concert'에 참가하기도 했다. 1995년에 유명한 곡 'Knockin' On Heaven's Door'를 싱글로 발표했고, Mark가 재결성한 'Notting Hillbillies' 역시 불우이웃을 위한 자선기금 모금에 콘써트 활동으로 활발하게 동참했다. 이런한 음악 및 사회공헌으로 1993년 Newcastle 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수여받았고, 그도 이를 평생 자랑 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Mark는 왜 자신의 음악이 그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1998넌 음악잡지 [Mojo]는 Mark의 작곡능력과 기타연주, 그리고 매력적인 탁한 목소리(smokey voice)가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Sultans of Swing'에 대한 연작 수필을 집필한 Robert Samdall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당시 록 음악계에 불어닥친 반항적이며 anti-musicianship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펑크(punk)음악을 압도하고 정통 rock을 고수한 비결은 무엇일까....그것은 Dire Straits의 연주자로서의 원숙한 재능뿐 만 아니라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철저히 무시한 결과이다. 다른 뮤지션들이 대중성과 앨범 판매고에 연연해 할 때, 그들은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슬그머니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Dire Straits는 탁월한 communicator들이다.....그들의 음악은 Mark Knopfler의 탁하고 쉰듯한 목소리, 세련되게 윤기나는 펜더기타(Fender Guitar)소리에서 비롯된 가슴에 와닿는 단순명료함(heartfelt simplicity)으로 요약된다. 심장을 울리는 정확성(breathtaking accuracy)과 함께 신선하면서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음악세계가 그들이 남긴 노래에 녹아있다....."
그는 천성적으로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다. 누군가가 그를 "quiet man of rock and roll"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다. 수많은 팬들이 그의 음악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고 자신들의 생활을 변화 시켰다고 Mark에게 말하면, 수줍고 당황해서 제대로 말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다. Mark는 공식적으로 3번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두번 째 부인과 1987넌 쌍둥이 아들(Benji, Joseph)을 낳았다. 그리고 1998년 세번째 부인 Kitty Aldridge 사이에서 Isabella라는 딸을 낳았다.
2000년 9월, 그의 두번 째 솔로 앨범 [Sailing To Philadelphia]를 발표하고 현재 그는 개인적인 활동만 지속하고 있다. 이제 50을 훌쩍 넘긴 그는 Dire Straits시절의 대규모 월드 투어 무대보다는 작은 소규모 콘써트 홀이 더 편안하게 느끼며 그의 음악적 활동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Sailing To Philadelphia Mark Knopfler (with James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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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잔잔한 음악의음율이 가슴에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