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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라진 인생 (눅 13:10~17)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고치시고 치유하십니다. 우리는 예배함으로 그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꼬부라진 우리의 인생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주목하여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치유하십니다. 주님은 꼬부라진 우리의 인생에 말씀하십니다.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머리에 안수하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오늘 예배의 시간에 그 치유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모시고 갑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꼬부라진 여인이 만난 주님은 우리가 믿는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동일하게 이곳에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1. 꼬부라진 인생(10,11,16절) 꼬부라진 여인의 실상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 여인은 18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였습니다. 그녀의 외적인 모습은 등이 꼬부라져 얼굴은 땅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현대 의학 용어로 말하면 척추교착염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척추가 고정되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병입니다. 그래서 신체는 자라는데 척추가 자라지 않아서 등이 꼬부라지는 것입니다. 그녀는 꼬부라진 몸으로 인해 제대로 자랄 수없어 외소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와 한 번 팔짱을 끼고 걸어 본적도 없습니다. 데이트 신청이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도 이 여인에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것도, 마음껏 걷거나 여행을 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꿈같은 것이었습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했고, 밤하늘의 별들도 자신에게는 오히려 미운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그녀는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귀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 합니다. 마귀는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한 자신의 손에서 벗어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사단은 말씀으로부터 우리를 떼어 놓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고침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병을 고쳐 주셨을 때, 본문 13절에 그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18년 동안 이 여인이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얼마나 매달렸겠습니까? 그녀는 이 일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인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환경들을 이겨 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이 여인을 놓아 주지를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했지만 주님은 이 여인이 사단에게 18년 동안을 매여 있었다고 16절에 말씀하십니다. 주석가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단이 이 여인을 “묶어 놓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18년 전에 사단은 이 여인의 육신을 그러한 상태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묶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단의 속박이 얼마나 잔인하고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지 볼 수 있습니다. 웬만큼 괴롭혔으면 놓아 주어야지 말입니다. 사단은 인정도 없고, 사정도 안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사단은 여전히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의 삶을 괴롭게는 할 수 있어도 생명을 가져가지는 못합니다.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욥기 2장에 보면 사단이 욥을 공격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생명만큼은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실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를 치유하며,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2. 펴시는 예수님(12,13절)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모인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그냥 관망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이 모였네. 숫자를 세기 위해서 보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을 읽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 중에 예수님에 눈에 한 여인이 보였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앉아서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굽어진 등, 지친 육신과 형편없는 몰골이었습니다. 얼굴조차 들 수 없어서 주님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여인의 영혼을 보셨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고침 받고자 하는 그 영혼의 열망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영혼을 바라보시고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우리의 영혼을 보시는 눈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부르십니다.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아시냐구요? 그녀의 이름뿐 아니라 주님은 지금 여러분의 이름도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고치실 때 먼저 시작하시고 끝내십니다. 네 힘으로 얼마큼 고쳐오면 나머지는 고쳐주마 라고 제안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주님은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십니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고침을 받기 위해서 준비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오늘 아침도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보고 계십니다. 주님께 나갈 때 주님은 어떠한 제안도 하지 않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이 여인에게 선포하십니다.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기에 말씀에 권세가 있습니다. 사단이 묶어 놓은 질병에서도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사단에게 묶여 있던 그녀의 인생은 해방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은 우리에게 선포하십니다.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입니다. 13절에 주님은 이 여인을 안수하십니다. 말씀만 하시지 왜 안수하십니까? 예수님의 따뜻함을 봅니다. 예배의 시간에 이 여인 옆에는 그 누구도 앉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여인을 예수님은 가까이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여인의 머리에 안수하십니다. 유대인의 눈에 그녀는 죄인이요, 부정한 자입니다. 유대인이 부정하다고 취급한 그 여인을 주님은 안수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부정한 자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인의 고통과 아픔을 보시고 끌어 앉으시는 심정으로 안수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그분은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세상이 다 나를 죄인으로, 부정하다고 취급할 지라고 그분은 나를 끌어 않으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그리스도이십니다. 3. 깨우치는 예수님(14,15,16절)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회당장과 예수님과의 서로 다른 관점을 봅니다. 회당장의 생각은 18년 동안이나 매여 있던 그녀가 안식일을 지내고, 나머지 6일이 있으니 그때 고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이가 본 것은 안식일 법입니다. 그는 등 굽은 여인의 아픔과 고통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 아픔은 타인의 아픔이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본 것은 18년 동안 고통당한 등 굽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아픔을 마치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십니다. 18년 동안이나 매여 있었다면 1분도 더 지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16절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 팔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고 하십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사단에게 묶여 고통당하는 자로 보십니다. 우리 주님은 사단에게 묶여 있는 자들을 풀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회당장이는 이 여인이 사단에게 묶여 고통당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의 겉 모습만 보았지, 왜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보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 인생의 영혼의 문제를 보십니다. 이 여인이 18년 동안이나 고통당하는 것은 사단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여인의 병을 이렇게 말합니다. 11절에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이 여인의 병이 사단에 의해서 된 것임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사단의 계략을 들어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단의 세력에서 풀어 주시려고,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믿으십니까? 등 굽은 여인이 18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것처럼 이 땅에 백성들도 참으로 오랫동안 사단에게 묶여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등 굽은 여인의 모습이 바로 이 땅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 이 땅의 백성들이 사단과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얼마나 고통당하고 있는 지를 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셔서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저들을 품게 하소서. |
첫댓글 사랑하는 주님, 회당장 같은 믿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율법적인 신앙인이 되지않게 하소서. 복음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긍휼을 가지고 이웃을 내몸같이 돌아보고 사랑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