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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의 영화 예술은 그 자신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 적의를 띤 역사적 함정이 존재함을 보여주었고, 절망적 정신이 이를 어떻게 뚫고 나가는지를 보여주었다. 4세대 영화 예술가들은 정치와 일체화된 구조와 주류 예술의 허위적 모델 속에서 개인적 기억을 찾고 예술/생명의 형식을 창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주변부 담론을 중심으로 재배치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5세대 예술가는 역사와 문화가 단절된 지대를 넘어 개인의 창조성이 지닌 ‘놀라운’ 체험을 상징화함으로써 중국의 역사적 생명과 새로이 만나려 했고, 새로운 영화 문법과 미학적 원칙을 완성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절된 계곡을 건너자마자 새로이 놀라운 경험에 직면해야 했고, 그로 인해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예술은 단절된 계곡에 가로 놓인 끊어진 다리가 되었던 것이다. 5세대는 역사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면서 개인의 체험을 통해 역사적 경험을 표현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역사의 ‘무물의 진’과 문화 및 언어의 공백으로 인해 언어 및 표현이 만든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45-46)
80년대 중국 영화 예술과 중국 사회생활의 주된 상관성은 경제/생산·재생산이라는 사살이 아닌,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위가 되어버린 기억과 심리적 매개변수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이것의 역사적 표현이었다. 5세대의 예술에서 ‘문화 대혁명’의 역사는 부재한 등장인물로 표현된다. (46)
그들의 예술은 그들이 ‘문화대혁명’ 정신의 아들이었다는 멍에를 벗어 던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문혁’이 만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단절의 정신을 계승한 자들이었고, 무언의 역사적 잠재 의식을 짊어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역사적 성격을 띠는 아비살해의 행위를 마친 후, 낡은 동방 문명의 무거움과 서구 문명의 충격이 나란히 담겨있는 역사적인 거세의 힘을 마주한 채, 상상적 질서의 주변에서 절망적으로 발버둥쳤지만 상징 질서에는 들어갈 수 었었던 세대였다. 5세대의 예술은 아들 세대의 예술이었고, 5세대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전혀 흔들림없는 부자 질서와 ‘아비’ 없는 문화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발버둥쳐야 했다. 그러므로 80년대 중국 5세대의 예술은 역사와 문화를 가르는 협곡을 건너 연결되었지만, 결국은 다시 떨어져버린, 끊어진 다리였다고 할 수 있다. (47)
‘카니발’의 바깥(47-58)
‘문혁’은 처음에 ‘아비의 이름’으로 부여받은 아비살해 행위에서 시작되었으며, 제어할 힘이 사라진 상황에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부터 비롯되었다. 황당한 점은 ‘문화대혁명’이 중국의 ‘아들살해 문화’를 집중적으로 드러냈고, 결국은 이로부터 ‘아들’의 카니발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그것은 곧 세상을 놀라게 했던 홍위병 운동이었다.(48)
사회, 정치, 문화, 언어에서 명실상부한 역사적 아비살해였던 ‘5·4’시대와 비교하자면, ‘문화대혁명’은 분방함에 중독된 ‘아들’의 카니발이었다. (49)
‘문화대혁명’시대에 이루어진 아비살해는 초경험적인 ‘아비의 이름’으로 미리 용서와 허가를 얻어 자행되었으며, 아울러 이 행위의 주요한 정신적 기조는 비이성적인 격정과 광적인 기쁨이었다. 역사의 황당하고 기이한 풍경이었던 ‘문화대혁명’의 첫 막에서 주된 행위는 아비를 살해한 아들의 광희였다. 그것은 ‘문혁’ 이전의 주류 이데올로기인 혁명전쟁 신화의 역사 서사 모델을 답습한 것이었다.(49)
홍위병 운동의 골간은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 형성 과정에서 그들이 교육 받고 ‘소환’ 받는 과정을 완성하는가 미완성하는가에 있었다. 이 역사 서사 모델에서 반란은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성인식’이었다. ‘문화대혁명’은 그들에게 이러한 기회와 인연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 신화를 답습하기 위해서는 본래 아비 세대에 관한 것이었던 이 신화의 주체를 반드시 도치시켜야 했다. ‘아버지’는 바로 혁명 역사 신화에서 용감하고 위대한 영웅이었다. 홍위병운동이 이 신화를 반복하려면 끊임없이 혁명 모델속에서 영웅/아버지를 다시금 적으로 명명해야만 했다. 그래서 아들 세대는 영웅/아버지의 신화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이상적인 아비가 붕괴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참혹하다기보다 모욕적이었고 환멸적이었다. ‘5·4’운동이 ‘봉황열반’식 사망/신생의 과정이었고, 역사적 문화의 청산을 통해 문화의 본체를 재건하는 과정이었다면, ‘문화대혁명’은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밀어붙인 문화 파괴였다.(49-50)
이러한 아들의 카니발은 아비를 살해한 후 결코 아들의 동맹과 질서를 확립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초경험적 기표—‘아비 이름’의 존재는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은 역사적으로 해체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면에 거세의 힘도 가지고 있었다. 홍위병들이 고되고 무거운 중국의 생존 현실을 경험하면서 정치화된 부자 질서의 삼엄함을 의식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상징질서 밖으로 내쳐진, 문화적, 심리적으로 아비 없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기나긴 정신적 유랑을 해야 할 운면에 처해졌다.(50)
그러나 ‘문화대혁명’을 80년대 중국 사회와 5세대의 중요한 심리적 매개변수 및 콘텍스트로 이해한다면, 5세대 예술가 대부분이 결코 홍위병 운동의 중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5세대 영화 예술가의 주력(대부분 혁명 간부의 가정에서 성장하였다)은 혁명전쟁 신화의 주체가 도치되는 와중에 동심원의 중심에서 쫓겨나 아들 세대 속의 이질적 집단이 되었다. ‘지식청년운동’의 시작은 아들의 카니발의 마지막 일막이었지만, 5세대 예술가의 주력에게 있어 그것은 명실상부한 추방이었다. 그것은 소위 ‘흑오류’인 이질적인 아들들에게는 참담한 만우절 같은 것이었다. 이로 인해 5세대 예술가들은 ‘문혁’ 동안의 경험을 하나로 이어진 놀라운 경험이자 내면의 커다란 상처 그리고 격정에 휩싸인 채 나아갔던 끝없는 굴욕을 향한 추락으로 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50-51)
방관자이며 이질자이자, 사회적 의미에서 영원한 ‘준주체’인 그들은 ‘아비’들에게 동정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그들은 신화 속 영웅적 아비의 형상이 굴욕적으로 붕괴되는 것을 ‘홍위병들’보다 어 분명하고, 더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목도했으며, 아울러 이러한 붕괴의 공포 속에서 한 시대의 몰락을 인식했다. 그들 내면의 정통한 초경험적인 ‘경험’ 세계는 엄혹한 현실이 조성한 놀라운 경험 속에서 산산히 부서졌다. 그리고 이러한 특정한 놀라운 경험으로 인해 5세대는 사유 모델과 정감 모델에 있어 화해할 수 없는 이중성을 갖게 되었다. 즉, 그들은 한편으로는 주류에 굴복하면서 유랑을 끝낼 목적으로 상징질서에 들어가고자 갈망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 카니발의 바깥에 놓인 방관자의 이성적 숙고가 있었다. 그들은 자기 동정과 자기 연민을 거두어들여야 했고, 자신들을 아비 없는 아들로 만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명명을 요구해야 했다.(52-53)
5세대 영화 예술가들의 『하나와 여덟』을 그들의 데뷔작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작품은 고전적 영웅 신화 다시쓰기이자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의 질서 다시 세우기였으며 아비의 집단이 귀환하는 사회 현실의 구조적 현현이자 ‘이질자’인 5세대 예술가를 위한 자기 변명, 자기지적이었다. 이는 복종의 표시였으며, 동시에 (데리다(Jacques Derrida)의 개념을 차용해도 부방하다면) ‘파괴적인 다시쓰기’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스크린의 신화적 세계를 새로운 관념과 형식 미학으로 파괴했다.(54)
이 영화는 5세대 예술의 주지가 복종하면서도 반항하려는 데에, 구원을 구하면서도 스스로를 도려내려는 데에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56)
사실 오해받고 억울하게 쫓겨난 주체가 시험을 통과해서 다시 인정을 받는 다는 이야기는 과도하게 표현된, 서사 경계의 바깥을 떠도는 영상 체계와 함께 5세대 초기 창작의 주요 모델이었다. 충성과 그러한 충성을 표했지만 결국 쫓겨나고 마는 말도둑에 관한 이야기인 『말도둑』은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56)
『하나와 여덟』과『말도둑』에서 주체가 여전히 주된 이야기 진행 인물로서 ‘소통하고’ ‘참여하겠다’는 바람을 실천하고 있다면, 즉 그들의 희망 없는 충성을 드러내고 서술하고 있다면, 게다가 정확하게 텍스트 속의 주체와 영웅이 된다고 한다면,『흑포사건』과『끊어진 소리』의 평민화된 주체는 단지 형체 없고 황당한, 불공평한 운명의 소극적 계승자일 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텍스트 속의 다른 인물과 서로 호혜성을 갖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들은 제물과 제사장(질서·권위)이 되어 그들 사이의 조화로운 상호 보완관계를 조금씩 보여준다. 앞의 두 영화가 서술된 사건으로서의 격정과 충성, 그리고 서술 행위로서의 상징화한 과도한 표현으로 여전히 텍스트의 위험한 장력을 드러내게 했다고 한다면, 뒤의 두 작품은 관용적이고 아이러니한 서사 어조와 연민이 어려 있으면서도 냉담한 수사 격식으로 이러한 장력을 대체했다고 할 수 있다.(57)
그들은 아비의 이야기를 아비들의 세계로 돌려주고 있는 중인데, 다시 돌아온 아비들은 텍스트 속에서 이미 이상적인 아비의 아우라를 상실하고 말았다. (57)
문화는 이미 단절되었고, 역사 감각은 역사적 분위기가 흩어져 사라지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58)
역사와 끊어진 다리(58-68)
아비 없는 아들 세대로서 5세대가 겪었던 역사적 곤경 혹은 양난의 추론은 결코 아비를 찾는 행위와 아비를 심사하는 행위 사이에 있지도 않았고, 귀의와 반항, 감성과 이성 사이에 있지도 않았다. 이는 다만 그들의 심리적 창고 속에 남아있는 기의일 뿐이었다. 개인의 놀라운 체험을 통해 역사적 경험에 대한 표현을 찾았지만, 이 체험은 오히려 역사적 경험에 대한 담론을 파열시키고 해체한 끝에 얻었다는 데에서 그들의 전형적인 역사적 곤경을 찾을 수 있었다. 역사를 초월해야(정확히 말해 역사에 관한 담론을 초월해야)만 그들은 자신의 상처 입은 체험을 조직해서 역사 속의 유기적 경험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하려는 시도로 인해 그들은 표현과 언어의 진공 속으로 빠져버렸다. 역사적 담론을 넘어 역사의 본체를 접하려 했기 때문에 역사—텍스트 속 영원한 타자는 부재하게 되었고, 5세대는 상징질서 바깥으로 격리되었다.(59)
5세대의 예술적 실천과 역사적 곤경 그 자체가 포스트 ‘5·4’중국 지식인의 주체가 결핍되어 있음을 폭로했다. 중국 문화—고전적 역사 담론(혹은 봉건 문화로 일컬어진다)의 포기는 언어/상징 질서의 상실을 불러왔다. 역사적 ‘진실’을 건드리려는 시도는 늘 원언어의 허구속에서 계속 실패했다. 역사적 진실 혹은 역사적 무의식의 서술은 본질적으로 말해 언어로 비언어적 현상을 서술하는 것이었으며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어/상징 질서에 굴복하는 것은 부자상계, 역사순환의 비극에 굴복하는 것이었다.(59)
80년대 중국의 새로운 아들 세대인 5세대는 다시 한번 도래한, 희붐한 ‘소녀 중국’의 여명 속에서 재차 정신적 돌파를 시도하려 노력했다. 그들은 반드시 5천년의 역사에 관한 담론인 죽은 자의 유령으로 가득한 언어공간에서 신세계를 열어젖혀야 했다. 그 신세계에서 아들세대는 생존하고 창조할 수 있었으며 자유로이 그들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59)
천카이거와 장이머우는 각각 『황토지』의 감독 및 촬영감독으로서 영화에 대해 설명했었다. 이 때 그들은 『노자』의 ‘큰 소리는 오히려 소리가 없고, 큰 상은 오히려 형체가 없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뜻을 표했다. 그들은 여전히 표현과(역사 담론의) 반표현 가운데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60)
그러나 천카이거식 패러독스는 그들의 스크린 세계가 두 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중국 영화사상 유래 없는 진실함과 풍부한 질감을 갖고 있는 영상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 ‘진실’한 영상이 유래 없이 사람의 주목을 끄는 프레임 속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 상징과 상징 사이에 영화의 작품적 콘텍스트의 자기 연관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반 언어적 진실은 언어가 거대한 힘으로 임하면서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진실’과 ‘역사’는 오히려 이로 인해 사라졌다.(62)
『아이들의 왕』에서 천카이거는 이 패러독스와 곤경을 직시하였다. 그는 오랜 정신적 유랑을 겪은, 고독한 이상적 숙려자의 자각으로 마침내 그(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도 ‘문혁’은 여전히 부재하는 등장인물이었다. 영화에서 서술되는 사건은 지식 청년이 ‘문혁’ 기간 중 겪은 평범하면서도 흥미로운 경험이 아니라 창작의 역사적 곤경에 대한 5세대의 자기 확인과 자기 진술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지식 청년 라오간이 잠시 몸 담았던 교직 생활은 마음대로 끌어다 쓴 기표일 뿐이었다. 그리고 역사와 언어, 언어와 비언어, 표현 가능한 물과 표현 불가능한 물 등은 기의였다. 이는 진정한 자기 지시적 영화였다.(62-63)
5세대 및 80년대에 중국의 문화적 반사가 붐을 이뤘던 진정한 동기는 아비와 아들이 서로를 잇는 중국의 역사 순환이라는 비극의 심층구조를 밝히는 데 있었으며, 아울러 이 순환을 끝내고, 심층구조를 해체시킬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존재와 연속은 아이들의 왕(천카이거)들이 건드리거나 고칠 수 없는 것이었다. 라오간의 비극은 그들이 역사 그 자체를 건드릴 방법이 없다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이 역사의 담론/아비의 , ‘아비’에 관한 담론을 변화시킬 수조차 없었다는 데 있었다. 순환을 끝내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은 우선 역사 담론의 순환적 표현 위에서 부서졌다.(64-65)
5세대의 가장 빛나는 노력은 새로운 영화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옛 중국의 역사라는 수수께끼를 보여준 것이었고, 아울러 마침내 역사순환의 담론을 해체했다는 것이다.(67)
영화 결말에서 나온 나무 등걸을 통하여, 그들은 끝내 상징절서로부터 배척되었고 끝내 ‘아들’의 지위를 차지할 수 없었다. 그들의 예술은 여전히 ‘아들 세대’의 예술이었고 갈라진 틈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다지 끊어진 다리를 만드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끊어진 다리는 역사적 진실에 영원히 도달할 길 없는 자신을 가리키는 이미지일 뿐이었다.(68)
영웅의 출현과 종결(68-90)
『아이들의 왕』이 반영웅/반 아비/반 역사에 대한 예술적 명문을 통해 영웅/반역자의 이미지를 만들어 5세대의 역사적 곤경 언어적 곤경을 역사의 비극으로 표현했다면, 『붉은 수수밭』은 영웅/아비/역사를 출현시킴으로써 굴복을 표했으며 5세대의 역사적 곤경/언어적 곤경을 익삭극식으로 해소함으로써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던 성인식을 치렀다. 이와 함게 ‘5세대의 영웅시대’는 끝을 맺었다. 『붉은 수수밭』은 5세대의 추락을 상징한다. 그것이 빛나는 추락이었을지라도 말이다.(68-69)
『황토지』와『아이들의 왕』이 구원 중의 추락에 관한 것이었던 반면, 『붉은 수수밭』은 추락 중의 구원에 관한 것이었다. 전자가 벤야민이 말한 ‘우언’, 역사의 소산관 파괴로 ‘대지의 무거운 유언’을 비어있는 미래에 건네주었다면, 후자는 서사/표상으로 허위와 역사의 완성과 이어짐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전자가 영웅/아비 신화를 해체함으로써 거듭해서 자신들이 아들의 신분임을 천명하고 이를 통해 자아를 확인했다면, 후자는 영웅/아비에 대해 서술(다시 말하기가 아니다)함으로써 반역자 이마 위의 ‘하늘이 형벌로 새긴 흔적’을 지워버렸다. 이것은 사회로 회귀하는 역사적 행위였고, ‘상상적 관계’를 빌어 5세대의 사면식과 성인식을 성공적으로 완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단지 개체의 생명사와 의식사의 회귀와 굴복일 뿐 아니라 성공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추모하고 실천한 사회적 상징 행위였다.(69)
『아이들의 왕』에서 천카이거는 고독한 산보자의 자각으로써, 절망적으로 역사에 관한 서술을 구원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려 했고 아비의 담론이 충만한 공간으로부터 아들 세대의 언어 공간을 개척하려 했다. 그래서 그의 표현은 표현에 대한 표현이 되었고 그의 언어는 언어 그 자신에 대한 기대가 되었다. 역사를 마주한, 언어에 대한 기대는 ‘고도를 기다리다’식의 발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붉은 수수밭』에서 장이머우는 “짓궂은 장난 같은 달관적 태도로 무겁기 그지없는 소재를 처리했고”, 역사의 주변 담론의 파편을 나부끼게 함으로써 욕망과 관련된 언어로 언어의 욕망을 대체했다. 그것은 메츠(Christian Metz)가 말한 서사의 ‘역사식’ 표현으로 역사/타자를 끌어들였고 아비의 ‘규율’을 인가했는데 이는 추메이마오의 태도와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왕』과 『붉은 수수밭』은 각각 5세대 역사의 양극이 되었다.(69-70)
사실 넓은 뜻에서 ‘문혁’ 정신의 아들들인 ‘5세대’는 문화/역사 반사 운동의 발기자이자 참여자였다. 그러나 문화적 반사는 무한 확산 무한 해석되는 기표로서( 이 때문에 기의의 창고, 혹은 기표의 사슬까지도 만들어질 수 있다), ‘문혁’이라는 문화적 황무지를 뚫고 나가 아들 세대의 곤란한 무명의 상태를 벗어날 것을 요구하였을 뿐 아니라, ‘5.4’의 문화적 열곡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그 위에 다리를 놓으려고도 하였다. 문화 반사 운동은 애매모호하고 복잡다단하였을 뿐 아니라, 전란·구망 · 사회개혁의 좁은 틈에 존재하는 포스트 ‘5.4’의 여하한 문화 운동처럼 패러독스 혹은 이중의 난관 위에 새워졌다. 그 중 하나는 심근, 즉, 민족문화, 민족전통과 민족정신을 부흥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계몽, 즉 민족문화와 전통을 비판하고, 나아가 부정하면서 ‘열악한 근성’을 찾아내어 ‘침묵하는 국민 영혼’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단다직입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는 열곡 차안에서 어려움 속에서 완만하게 다리를 세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똑 같은 고통과 곡절 속에서 막 쌓아 올린 역사적 건축물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문화 반사 운동 역시 포스트 ‘5.4’ 의 여하한 문화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그 찬란한 창조물을 낮에는 짰다가 밤에는 풀어버리는 , 오디세우스의 처가 짜는 관 덮개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역사적으로 끊어진 다리가 될 운명에 처한 것 같았으며 영원히 미래에 기탁되는 유언과 같았다. 5세대가 처한 난관은 바로 현· 당대 중국 문화사, 문화 운동의 축소판이었다. 중국의 역사/문화적 피안을 다시 찾기는 요원했기에 그들은 늘 여가라는 무물의 진과 역사 담론의 거대함으로 가로막혔고 늘 아들의 이름 없음과 아비의 이름이라는 환무 사이에서 무언과 픽션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라는 문제를 마주했던 것이다. 그들은 천카이거처럼 주름지고 필적이 모호한 양피지로 된 역사서 위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글자 모양을 만들어내거나, 장이머우처럼 역사에 관한 신화를 날조하여 오래되고 갈라진 누런 종이 위에 거짓되지만 선명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71)
『붉은 수수밭』은 역사에 관한 신화를 가지고 5세대—천카이거, 톈좡좡—식의 역사적 현안을 끝내버렸다. 상상적인 아비살해와 굴복으로 5세대 성인식의 무한한 연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바로 역사의 신화였기에 ‘신화를 강술하는 연대’가 가장 중요했다. 바로 아들의 이야기였기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욕망, 반란, 질서, 굴복과 관련이 있었다.(72)
1987년은 ‘신화를 서술하는 연대’이자 『붉은 수수밭』의 사회적 콘텍스트가 되었는데 그 기본적 모순은 동심원 구조의 재배치와 사회생활의 다중심화에 있었다. 이는 서구/이민족 문명의 전면적 유입으로 만들어진 엄청난 놀라움이자 상품이 지닌 이데올로기로서의 거대한 역사적 해체의 힘과 역사적 제거의 힘이었다. 전자는 신시기 10년이 만들어낸 중요한 성취였다. 지속으로 ‘문혁’을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이비 집단을 돌아오게 할 수 있었으며, 초경험적인 아비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었고 신질서를 재건하루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5세대의 정신적 전기인 『아이들의 왕』은 끝없는 정교함과 복잡함으로 아들 세대가 역사와 문화의 멍에 아래 전전하고 있던 시지푸스적인 상황을 펼져보였다. 그것은 반면에 , 5세대가 반드시 ‘아비’의 이미지를 찾아야 하고 비어있는 지평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려야 함을 , 그리고 ‘표현상의 초조함’을 끝내야 하고 이야기를 획득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해야 함을 증명했다.(73)
이와 달리 수자는 거대한 개형ㄱ의 충격파 아래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출현했고 상품경제/이민족 문명이 모든 것을 씻어낼 기세로 옛 중국의 낡고 취약한 공간화한 생존을 뒤흔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5세대뿐만 아니라 전체 중국 문화를 다른 문명이 가진 의기양양한 역사적 거세의 힘 아래 놓이게 함으로써 그것은 한순간에 ‘오직 하나뿐인 태양’이 되었다. 문화 반사 운동은 그 끊어진 다리 위에서 다시 한 번 ‘지진’을 겪었고 다시 한 번 역사와 문화의 단절을 경험했다. 이번의 지진과 단절은 역사/문화적 반사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 같았을 뿐 아니라, 역사 자신이 사라질 것임을 선고한 것 같았다. 민족의 역사는 반드시 구원을 얻어야 하고 민족의 문화는 반드시 부활해야 했다(설령 허구 속에서 부활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중국은 다시 한 번 ‘영웅을 요구하는 국가’가 되었고, 다시 한번 ‘영웅을 요구하는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붉은 수수밭』이 시운을 타고서 탄생했다. 아마 그저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영화는 완벽한 답안처럼 국가와 시대가 ‘요구’하는 모두를 주었다. 영화가 아들에서 아비가 된 민족 영웅을 출현시키고, 거칠 것 없는 아비살해 이야기를 펼침으로써, 5세대는 성인식과 상징 단계로 진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는 거세자/이민족 침입자에 대한 거세의식을 통해 초조함에 휩싸인, 기억을 잃어가는 민족을 위로하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역사가 연속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새로운 역사/문화의 단절 지대를 뛰어넘으려 했으며, ‘문혁’이라는 문화의 황무지를 한 걸음에 건너 뛰려 했다. 또 평지를 밝듯이 ‘5.4’ 문화의 열곡을 건너 5세대, 더 나아가 민족의 성인식을 ‘역사 이전’ 시대, 애매모호한 연대, 원사회 바깥의 황야까지 밀고 가고자 했다.(73-74)
5세대의 예술은 아들 세대의 예술로, 욕망에 대한 서사가 아닌, 금지에 대한 서사였다. 5세대의 고전적 작품에서는 여성의 표상 역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금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하여 『붉은 수수밭』의 첫 시퀀스에서는 여인이 남성 욕망의 시야 속으로 들어온다. (74-75)
영화『붉은 수수밭』에 대한 분석(78-90)
야합: 그것은 음막의 기이한 풍경이었으며 또한 민족문화(적어도 중국 민간 풍속)의 기이한 풍경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장면은 단지 욕망과 욕망의 만족뿐만 아니라 영웅적 위용과 민족적 원시생명력의 용맹함도 서술했다 관객은 이 장면을 통해 훔펴보기의 캐감만이 아니라 ‘위로의 성격을 지닌, 총세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을 얻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78)
종종 모독의 의식: 그는 아비살해를 한 아들일 뿐만 아니라 아비 이름을 점유한 자이자, 아비의 법을 다시 펼치는 자인 것이다. 이것은 선고이자 확인이며 낡은 방식의 위협, 즉 일종의 아비식 거에 위협이다. 그는 성인식을 완성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원사회가 이 성인식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려 했다.(78)
아비: 텍스트 전략의 하나로 서사적 콘텍스트의 ‘아비’인 리다터우를 줄곧 시청각 세계(텍스트)에서 부재자로 설정했다. 아비 살해 행위 그 자체는 서사적 콘텍스트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고, 아직 확인받지도 않은 단어적 존재일 뿐이다.(79)
스바리포의 변화: ‘내 할아버지’의 신분은 텍스트의 서사 기제 속에서, 불법적인 아비살해를 저지른 아들로부터 빈자리를 채우고 강화시킨, 젊고 전도유망한 아비로 탈바꿈했고, 질서의 계승자이자 창조자로 바뀌었다. 바로 그가, 무섭고 사악한 칭사커우에 의해 격리되었고, 이다터우의 악질과 불결로 오염되었던 스바리포를 원사회 속의 생기발랄한 구성성분으로 거듭나게 했던 것이다. 그것은 텍스트를 실연함으로써 이데올로기의 모략과 실천을 완수하였다. 그것은 부자의 질서를 참조하여 잠재적 텍스트의 사면 의식을 통해 늙은 아비의 사망을 인가했으며, 새로운 아비의 즉위도 인가했다.(82)
뤄만의 죽음: 민족 영웅의 충성스러움과 용맹함, 강건한 의기, 민족혼의 고양을 새로운 가치질서로서 서사적 콘텍스트 속에 표현했다. 공산당원으로 명명되는 것으로 인해 그는 원사회의 낡은 질서를 옹호하는 사람에서 새로운 질서를 소유한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아울러 참혹하면서 장렬한 죽음으로 인해 그의 육신은 초경험적인 기표이자 새로운 ‘아비 이름’의 점유자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상징에서의 권위의 형상으로 상승하게 된다.(86)
복종/「주신곡」은 승낙과 혈맹을 표현하는 내용: 그것은 가치 질서에 굴복하는 또 다ㅡㄹ 임눌이자 사회적 의미의 주체인 ‘내 할아버지’로 하여금 상당히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담고 있는 아들 세대의 사회적 성인식을 완성하도록 했다.(88)
주얼의 죽음: 완전한 사회적 성인식을 이루고 첫번째 서사를 봉합하려면, 그는 ‘아비의 여자’를 돌려보내야 했고 여인/여성의 표상을 역사의 제단에 바쳐야 했다. 그리고 이로써 그의 완전한 복종과 봉공을 표해야 했다.(88)
결말: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영화의 기본적 특징이 이데올로기 제전과 상상적 거세 의식임을 충분히 보여준다.(88) 그 장면은 동귀어진 식의 피 튀기는 육박전 장면이라기보다 민족/민족문화와 이족 문명 간의 대결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 마당의 문화 정복 의식인 것이다. 작품은 거세자를 거세하는 장면으로 이족 문명의 또 한번의 충격 앞에서 중국인의 느끼고 겪어야 했던 현실적 초조함과 놀라운 체험을 해체시켜 버렸다. 5세대 창작의 화려한 카덴차인 이 작품은 아주 높은 고음으로 영웅/주체를 돋보이게 한 동시에 5세대의 절망적인 정신의 돌파가 마지막으로 몰락했음을 선고했다. 여전히 ‘아들’의 예술이엇지만 이미 굴복한 아들이었다. 더는 끊어진 다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낡은(주변이라 하더라도) 담론의 무지개를 통해서는 결코 피안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5세대는 역사적인 종결을 마주하고 있었다.(90)
결론—혼란, 구원 그리고 현상(90-93)
1987년에 발표된 5세대의 창작을 공시적으로 늘어놓는다면 이 1년 동안 중요 작품으로 다음과 같은 네편을 꼽을 수 있다. 『커피에 설탕 약간』(쑨저우),『태양우』(장쩌밍),『저녁종』(우쯔뉴),『최후의 실성』(저우샤오원). 우리는 아들의 예술인 이들 작품의 공통된 특징을 끊어진 다리 한쪽에서 놀라움에 가득 찬 채, 고독하게 느릿느릿 걸어가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끊어진 다리 끄트머리에서 나약하게 절망적으로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90-91)
『커피에 설탕 약간』과『태양우』는 5세대 도시 영화의 선구적인 작품이었다. 이들 작품은 대도시의 표상을 세워 고독한 산보자의 놀라운 체험을 전달하면서, 개혁의 큰 파도와 공업화의 진전이 아들 세대를 역사와 전통문화 바깥으로 격리시켰음을 묘사했다. (91)
5세대의 불완전한 정신적 자서전의 한 장으로서 이 작품들은 과도하게 표현되어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담은, 무한히 자아를 확장하는 기표로 다시금 충만해졌다. 하지만 이는 이미 역사순환의 콘텍스트에 대한 반항과 배척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혹은 더 거대하고 심각한 놀라운 경험 속에서 언어라는 경험의 표현을 얻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민족 역사와 민족 공간적 생존 이미지를 손에 넣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낯선 공간 세계와 시간 체험에 의해 겪게 된 혼란이었다.(91)
『저녁종』에서 기본적으로 서술된 행위는 전쟁—이미 끝난 전쟁이 남겨놓은 시체—을 묻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종말을 고한 참혹한 시대를 묻어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영화의 진정한 서술 행위는 오히려 『붉은 수수밭』의 주제를 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즉 상상 속에서 이민족 문명의 위협을 물리치고 옛 문명의 우세함으로 거세자를 거세하는 것이었다.(92)
5세대의 역사적 생존이 처량하지만 소탈하게 이별을 고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아들 세대가 자기를 제물로 삼아야지만 원사회는 평화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고요함 속에서 안정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끊어진 다리는 여전히 5세대 예술의 ‘인간의 힘으로 세울 수 없는 기념비’일 것이다.(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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