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가 서문에서 서술하고 있듯이 우리나라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칼 로저스의 철학과 인간- 중심이론의 중심개념들을 접하게 된다. 인간 중심이론은 복잡한 이론들이 소개되어 있지 않고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것 같아서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게 된다. 그저 내담자의 말을 잘 듣고 공감해 주면 되고 적용도 어려워 보이지 않으며 그다지 위력 있는 상담 기술 같지도 않아서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접근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위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어려서(중학 시절 즈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거리를 들어주는 걸 즐겨 했고 그 고민거리에 어떤 해답이나 대안을 제시해주지도 못하고 말로 털어놓은 것을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고민이 해결된 듯 편해 하기도 하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하던 여러 번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후에도 지인들이 마음에 각자의 고민이나 힘든 부분은 이해(공감)해주는 대상 앞에서 언어화하여 표출되는 순간에 그 강도가 감소되어가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고 나 또한 마음에 맞는(공감해주는) 친구나 언니에게 어려운 문제를 이야기하곤 하면서 마음에 작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심리상담 분야에 주의를 모으게 되었다. 대학원에 와서 본격적인 상담공부를 하면서 여러 상담이론에 관한 강의를 듣는 중 위와 같은 맥락의 치료적 변화를 위한 필요 충분조건으로서 상담자의 자세를 중요시하는 인간-중심치료 이론을 접하게 되었고 박사과정에 들어와서는 인간중심적인 이론에 관한 좀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었었다. 마침 과제이기도 하여 몇 년 전에 벌써 구입하여 읽은 적이 있던 ‘칼 로저스’를 다시 읽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 중심치료의 창시자인 로저스의 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또한 이 로저스의 중심이론이 상담 실제에서 자신의 내담자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핵심적인 자료만을 뽑아서 분석적으로 명쾌하게 제시해 주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다. 이 책에는 로저스의 출생에서부터 아동기와 청소년기, 학생시절, 결혼, 주요 이론적 공헌을 하며 거쳤던 여러 대학의 교수시절 등 전반적인 생애와 주요 임상적 공헌, 로저스 이론의 비평과 전반적인 영향, 주요 연구 업적 목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로저스는 1902년 시카고 근교의 오크 파크에서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고 예민하여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여 오로지 집에서 혼자 책을 통하여 위안을 찾는 외로운 아이였다. 그는 어떤 종류의 사교적인 생활도 허용되지 않고 빈틈없이 짜인 가정생활과 항상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조되는 애정과 통제가 수반되는 양육태도를 가지신 부모님이 계신 가족 문화에도 불구하고 친밀함을 열망하는 양심적이고 훈련된 학자로서 성장하여, 부모의 종교적 사고에서 벗어나 영적, 지적, 정서적인 독립을 성취하기에 이른다. 로저스의 생애에서 영향을 주었던 부모님과 종교, 결혼, 직업 등에 대하여 요약 기술된 내용을 읽어 보면서 로저스의 이론은 그의 생활 경험에서 도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로저스가 과거 이론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경험이 타당하다고 믿게 된 일련의 결정에는 개인이 현실을 지각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개인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 개인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대하여 어떤 주관적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만약 존경과 신뢰의 풍토가 조성된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려는 경향성을 지닌다는데 대한 믿음은, 개인의 보다 큰 독립성과 통합성을 추구하는 인간-중심 상담의 최상의 목표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로저스는 일치성, 수용, 공감 등 치료과정에서 치료자와 내담자 모두가 주관적 경험과 지각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 치료관계에서 두 사람이 발견 한 것이 자연 질서의 다른 영역에서 관찰 가능 한 것처럼 인간 유기체에서도 실현 경향성을 공유한다는 가정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1987년 사망할 당시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까지 지목되었던 그는 위대한 학자였지만 경험의 신비 앞에서는 겸손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최적의 치료적 관계가 가능해 질 수 있는 방식으로 주관적 경험의 가치가 평가되고 소중히 여겨지는 내담자- 중심, 인간- 중심의 심리치료의 이론을 확립하여 인간관계의 본질이 중심을 이루는 수많은 전문 활동 영역에서 상담을 공부하거나 심리치료를 하고 있는 치료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나또한 경청과 반응양식, 공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그의 이론을 따르고자 하며 이번 학기의 인간-중심 치료 시간에 충실할 생각이다. 몇 년 전에 로저스의 상담 장면이 담긴 비디오를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온전하게 부드럽고 친절하면서도 평안한 얼굴로 반응하던 로저스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또한 그의 상담사례를 기록한 축어록을 주의 깊게 읽으면서 나의 상담과정을 새로운 입장에서 다시 재조명해 보기도 하였었다. 이 책을 덮으며 나 또한 나와 다른 것들과의 경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충분히 기능' 하는 모습의 인간이 되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