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은 말이 없고 작성자 : 박상호(0325sangho) 2001-11-19 오후 6:04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간밤의 추위에 떨다 아침 햇살이 국화꽃 맞아 반가이 속삭이니 서리맞은 추국의 빛과 향기가 더욱 그윽하여 신방에 다소곳이 아미숙인 색시인양 청초하기 그지없다. 버스를 타고 만줄앞 둔덕들을 지나려니 길옆 텃밭엔 아직 지지 않은 코스모스와 주변 서리맞은 고구마, 고추잎이 소금에 절인 배추인양 무력하게 시들어간다.
집집마다 한 두그루 감나무엔 찬바람에 잎이 모두 떨어지고 빨갛게 익은 홍시가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주인을 기다린다. 무심한 광음은 천년을 어김없이 부지런히 겨울로 가고 있음인가.예전에 초가집에 하이얀 박이 주렁주렁 메달리고 제비는 강남가려 전기줄에 모여앉아 도란도란 지난 이야기 속삭였으련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육중한 포크레인이 만줄앞 야산을 깎고 문전옥답을 휘젓어 놔도 무심한 차량들만 바삐 오고 갈뿐 한숨짓는 나그네 조차 보이지 않으니.......
나그막 다리를 지나 충청 전라를 잇는금강하구뚝으로 가는 길이 번듯하게 뚫려있고 끝없이 이어지는 차량행렬에 시야가 어지럽다. 그 길을 따라 잠시가면 수만년을 한결같이 흐르는 금강이 역사의 아픔을 안고 도도히 흐르고 있다. 일찌기 이 고장출신 문인 채만식이 "탁류"에서 금강의 애환을노래한 공으로 그 문학관이 들어서 있지만 어찌 백년도 못사는 하루살이같은 인간이 무한에 가까운 큰강의 모습을 제아무리 출중한 문장가인들 제대로 그려낼수 있겠는가?
일찌기 금강은 해양문명국이었던 백제가 바다로 널리 중원을 도모하던 교두보였고 당나라의 소정방 20만 대군이 백제를 침략코자 이 강을 건넜고 고려말명장 최무선이 화포로 무장하여 이곳 기벌포(진포)에서 노략질하던 왜선 수백척을 격침시켜 왜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일정때 왜놈들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어 기름진 김제,만경 내포평야의 쌀을 수탈해가던 항구로 이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며, 6.25. 동란시 처절한 전투의 현장이었고, 5공때 호남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금감하구뚝이 건설되어 오늘에 이르니 역사의 온갖영고성쇠를 몸으로 체험하며 그 깊이를 더해갔고, 조선말 실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옥구지방은 토지가 비옥하고 강과 바다가 연해 있어 한발과 홍수 피해가 적고 높은산이 없으되 산세가 뛰어난 오성산;설림산,전방산등의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인심이 후하고 인걸이 많이 나와 가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 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은 금강의 발원지가 장수인데다 그 물줄기가 남에서 북으로 배주한다해서 모악산과 더불어 반역의 기운이 있고 왕재가 태어날만한 곳이라 해서 그의 훈요10조에서 금강이남사람의 등용을 기피했으나 그 내막은 그만큼 지모가 뛰어난 영걸이 많이 배출되는고로 정권유지에 부담이 가는지라 미리 경책하는 의미가 있있었으니 전라를 거쳐 충청도를 휘감고 다시 고군산열도를 지나 대양으로 빠져나가는 금강이야말로 한강과 더불어 고래부터 전략적 요충중의 요충이라 할만하다. 오늘날도 상수도, 농업용수, 공업용수, 관광지로 이 고장사람들의 젖줄이 되어 말없이 은혜를 베풀며 흐르고 있는 기룬님이 금강인것이다.
금강 하구쪽으로 신기 거척 사옥 내흥마을을 합쳐 이제 지명도 군산시 내흥동이 되었으나 원래는 조선조에 임피현 상북리였고 그 뒤에 성산면 내흥리로 되었다가 1970년대 군산시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니 이 고을은 선사시대부터 문명이 비롯되어 가람주변에 내흥동패총이 유명하며 가끔 선사시대 및 고대유물이 출토되기도하고 마을 곳곳마다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니 그 마을 그 들판은 예와 별다름이 없건만 금강하구엔 육중한 철문이 바다로 향하는 흐름을 막고 무성하게 자라던 갈대숲과 갯벌은 콘크리트와 방조제 바위만이 차갑게강물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어린날 우린 그 갈대밭사이 갯벌에서 시간가는줄 모르고 헤엄치며 뛰놀고 갈귀와 농갈귀, 망둥어, 조개, 굴,소라 고둥 등을 잡고 여름이면 게장을 담가놓고 된장국 보리밥에 호박잎과 곁들여 먹으면 왕후장상이 부러울게 없었다.
봄이면 실뱀장어를 잡아 장에다 팔면 큰애기 시집갈 밑천 장만했고 가을에 갈대꽃을 뽑아 아버지께 갖다드리면 멋진 빗자루를 만들기도 했고 가끔 강으로 떠내려오는 바람빠진 축구공을 주워 그속에 집을가득넣고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공을 차면 펠레나 유세비오가 부럽지 않았건만 이제 그곳엔 음식점 놀이동산 주차장등이 흉물스레 자리잡고 오가는 길손들 잠시 머물며 고기 구워 먹으며 도심에 절은 시민들 스트레스푸는 시민 공원이 되었고 그 나마 인공호수덕으로 하구뚝 위쪽으론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기러기 고니 청둥오리, 갈가마귀등이 한겨울을 묵고가는 서식지가 되었으니 불행중 다행일런가? 강상을 바라보니 멀리서 고깃배 두어척 떠가나 놀란 갈매기 청둥오리가 하늘로 날아 오른다. 강건너 충청들을 바라보니 횟집, 유흥주점, 러브호텔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향락에 익숙한 도심객들을 유혹한다. 끝간곳 없는 인간의 욕심에 우린 고향에서조차 고향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니 오가며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도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나만의 기우였으면 좋으련만.......
바닷길이 막힌 강물은 부질없이 육중한 철문을 부딪혀보나 시퍼런 멍만들뿐 끄덕도 하지 않는다. 같이 뛰놀던 벗들도 서울로 도시로 부귀영화를 찾아 모두 떠나버리고 낙오자인양 홀로 돌아서는 나그네의 발길이 무겁기만하여 잠시 옛노랫가락을 읊조려본다 고향초 남쪽 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나르고 뒷 동산의 동백꽃이 곱게 피는데 뽕을 따던 아가씨들 서울로 가고 전해오는 흙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찔레꽃이 한잎 두잎 바람에 날리면 내 고향의 봄은 가고 서리도 찬데 이 바닥의 정든 사람 어디로 가고 전해오던 흙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
첫댓글 금강은 이렇듯 말이 없이 흐르기만 할 뿐이지만 그 깊은 영광과 상처들이 속안에 파묻혀 있었군요.
침묵은 가장 위대한 웅변이라지요.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간 밤의 추위에 떨다 아침햇살이 국화꽃 맞아 반가이 속삭이니.....
우주만유는 사랑없이 한시도 존재할 수 없어요. 생명의 환희를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