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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심판에 관한 비유에서 벌받을 사람들에게 "내가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주지 않았다"(마태 25,36)고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반면에 상받을 사람들에게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주었다"(마태 25,43)고 말씀하셨다.
사도들이 복음선포를 돕기 위하여 활동할 때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 10,1). 부활 후에도 비슷한 사명이 제자들에게 주어졌다.
마르코 복음의 앞부분에서는 "그들은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며 수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3)라고 되어 있다. 이것이 병자성사의 도유에 관한 첫 암시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구마적 치유로 이미 존재하던 관습을 인준하시면서, 그 관습에 새로운 의미를 부과하셨다(루가 4,18-19).
견진성사에서와 같이 우선 초대교회에서 행하여진 병자의 도유에 관한 기록을 야고보서에서 볼 수 있다. "여러분 중에 앓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로 병자성사는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만 베푸는 성사가 아니라 병과 노쇠로 위험상태에 있는 이들이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신자가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면 벌써 이 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시기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병자가 죽음의 직전에 있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병자가 이 성사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였다가 다시 병들었을 경우라든가 또는 같은 병세가 계속되다가 중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에는 반복해서 받을 수 있다. 위험한 병 때문에 외과수술을 받아야 할 때마다 병자는 수술 전에 이 성사를 받을 수 있다. 노환으로 말미암아 기력이 많이 쇠진해지는 노인들에게는 병세의 위험성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아도 이 성사를 줄 수 있다. 어린이들에게도 그들이 이 성사로써 힘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나이가 되었으면 역시 병자성사를 줄 수 있다(약 7∼8세 이상).
사제가 병자한테로 불려갔을 때 병자가 이미 죽었을 경우, 사제는 그를 위해서 하느님께 그의 모든 죄를 사해주고, 자비로이 천국으로 받아 주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만, 병자성사는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병자의 죽음이 확실하지 않을 때는 조건부로 이 성사를 줄 수 있다.
대죄가 있는 줄을 알면서도 병자성사를 받으면 크게 잘못하는 것이다. 대죄가 있다면 먼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대죄 중에 있는 병자가 의식을 잃었으나, 신앙과 희망의 행위와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두려움으로 준비하여서 성사의 은총을 받기에 적절한 상태에 있을 때 병자성사는 대죄라도 사한다. 병자성사는 그것을 받는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비에로 인도하는 내적 고해 즉 참회를 하게 한다. 고통이 치유의 방법이 되려면, 우리의 고통을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관시켜야 한다. 성 야고보가 지적하였듯이 그것이 병자성사의 독특한 은총이다.
병자의 도유가 육체의 병을 고치든 고치지 못하든 정신을 위한 치료가 되어, 곤경 중에서도 매사가 희망적이고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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