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룡산 백천사***
남해고속돌 사천 I/C를 나와 남해, 삼천포항 방향으로 20여 Km를 달리다 보면 좌측으로 와룡산 자락이 나타나고 길가에 와룡산 백천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와룡산에는 팔만구암자八萬九菴子가 있었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찰이 이 산속에 들어앉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백천사는 1300년 전 신라 문무대왕 시절 의상 대사의 속세 형제인 의선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진양지晋陽誌 등에 나오는 백천사의 기록에는 “백천사는 와룡산의 서편에 있었다”라고 나와 있는데, “도솔암에서 흘러내리는 동쪽 계곡은 양구택, 조황담, 백련폭이 그중 아름다운 곳이요, 선정암에서 흘러내리는 절의 서쪽 계곡은 세심정, 무금대 등의 좋은 경치가 있고 동서계곡의 상하에 물레방아 16개소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뒤에는 1, 2개만 남았다. 묵계암도 백천사 북쪽 10리에 있었다“하는 것으로 보아 대충 백천사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백천계곡의 경관마저 짐작이 됩니다.
이를 대변하는지 구불구불 시골길을 따라 백천사로 가다보면 사찰 못미처 계곡에 둑을 쌓아 만든 아름다운 작은 저수지가 순례객을 반깁니다. 저수지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넓은 주차장이 몸속법당 부처님을 모시게 된 백천사의 유명세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주차장 끝에 있는 백천사 표지석을 지나면 바로 앞에 사찰이 나타나는데, 길옆과 대웅전 뒤편으로 대규모 불사가 진행 중이라서인지 여느 사찰과 달리 어수선합니다. 대웅전을 참배하고 동양 최대의 약사여래 와불을 모신 약사와불전을 향하다 보면 배꼽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리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포대화상의 너그러운 미소를 만나게 됩니다.
대웅전에서 약사와불전 가는 길의 계단은 맷돌로 만들어 다소 이채롭기만 한데, 계단 옆에 놓여있는 돌탑과 불상들이 백천사를 더욱 더 아름답게 합니다. 약사와불전에는 지름 4미터 길이 15미터나 되는 큰 소나무를 통째로 깎아서 만든 후 금으로 도금한 것으로 동양 최대의 약사여래 와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와불 바로 앞에는 약사 동자가 있는데, 예로부터 약사 동자가 가지고 있는 약병을 한번 만짐으로 해서 만 가지 병고의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어 중생으로서 만지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듯 수염 기른 스님께서 기氣를 넣어 주신다고 죽비로 등을 두드려주면서 생일, 직업, 성명 등을 묻고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주십니다. 이런 가피 속에서 와불의 발바닥 쪽을 파내어 중생들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을 만큼 넓지도 좁지도 않게 조성된 몸속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와불 내부의 몸속 법당에는 유리광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양쪽 벽면에는 동방유리광 정토의 용호신중인 12신장상을 부조로 몸속법당 벽면을 장엄하였습니다. 또 12신장상 부도의 사이 벽면에는 중국의 석굴사원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바위산의 허리를 파서 굴을 만드는 형식으로 12신장 사이에 감실을 만들어 인등을 설치하여 항상 약사여래 부처님의 가피와 신장님의 옹호아래 평안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조성하여 와불의 유명세를 더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약사와불전 오른쪽에는 산영각이 있는데, 산영각 옆에 놓여 있는 산신 할매 돌은 소원을 빈 후 돌을 세 번째 들었을 때 안 들리면 소원이 모두 이뤄진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순례객 주제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전해 내려오는 얘기 중에는 ‘믿거나 말거나’도 많지만 중생 생각에 소원이 꼭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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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드디어 2008. 9. 6일 비 오는 가운데 갔다 왔다 허광이랑. 소가 목탁소리도 내는 것 듣고 왔다..더구나 첨단파들과 우연히 동행해서 더 잼났다 ㅎㅎ
야 느그들 초딩동창 맞냐 야 이넘들아 친구가 사천에 있을때 그것도 우리회사 옆으로 지나갔으련만 그렇게 무심하냐 아마 백천사 다녀간넘들은 다시한번 생각해바야 되겠다 못들릴 사정이면 전화라도 해야지 아무도 모래게 쓸쩍 다녀가는것은 무슨 속셈이고 야 이넘들아 그렇게 살면 안된다 친구 섭하잖아
친구야! 미안타..일행이 있었고 또한 버스 안 분위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