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도 종환
‘살아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자신의 첫 번째 부인이 암으로 세상을 뜨고 쓴 시집‘접시꽃 당신’에 수록된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의 일부이다.
젊은 시절, 수고하는 남편, 토끼 같은 자식을 키우면서 이 시집을 처음 대하고 위의 싯귀가 종종 떠올라 읊어보곤 한다.
이 시집이 내게 뿐만 아니라 주부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다라고 나무위키, 위키백과에 쓰여 있다. ‘죽음을 앞둔 아내에 대한 순애보를 그린 이 시집은 당시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약 300만부(추산)가까이 팔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성공한 시집으로 꼽힌다.
‘접시꽃 당신’의 일부를 옮겨보면
콩 땜한 장판 같이 바래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삶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도종환은 이 시집을 출판한 지 5년 뒤인 1991년 충남 여성정책개발원장인 민 경자(사회학박사)와 재혼을 했다.
그 후 그는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3선 국회의원이 된다.
최근 발간한 ‘사월바다’에서 문학 평론가 최 원식은 말미에 ‘한국의 정치는 도 종환 시인의 현실이다. 어느새 가망 없는 지경에 몰린 이 나라를 구원할 정치의 귀환이 그의 시적 실험과 간신히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지루한 성공’으로 가는 시인-정치가 도종환의 여정,, (중략) ‘ 라고 부쳤다.
첫째 부인은 ‘영화 접시꽃 당신’에 의하면 야간 미술대를 나오고 카페를 운영했던 것으로 소개되었다. ‘접시꽃 당신’에도 있듯이 그녀는 ‘눈기증’을 유언으로 남겼다.
재혼하고 2013년에는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집을 발간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중략)
최근 발간한 사월바다 시집에는 ‘김근태’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김근태가 참혹한 고문의 날들을 빠져 나왔을 때 살아나와 왼팔로 아내의 어깨를 감싸안을 때 김근태가 한마디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을 때, 나는 내 시의 언어로 그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때 마다 주저하였다. 그의 영가 옆에서 잊었던 혁명가요 몇 소절을 부르다 돌아오는 길 눈발이 몰아쳐 국밥집을 찾아들어갔다. (중략)
두 번의 결혼을 통해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인 도종환 시인은 6번으로서 그들의 핵심 방어기제로서 ‘동일시’가 그의 삶에 묻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여전히 시를 쓰지만 ‘접시꽃 당신만큼’ 인기를 끌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6번 심사가 복잡할 때 대청소를 한다고 한다. 다음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어느 저녁-(사월바다)
끓어오르며 소용돌이치던 것들을. 찬물에 헹구어 채반 위에 얹어 놓고 나니, 마음도 국수 타래처럼 찬찬히 자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애호박을 싸박싸박 채 썰어 밀어 놓는 동안 마음 한쪽이 그렇게 소리를 내며 잘려 나가는 듯한 초저녁(중략)
또한 그들은 웬만한 역경쯤은 이겨 내고 올라가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담쟁이(담쟁이 2012년 발표)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라는 시로 도 종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6번들은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쉬운 것은 담쟁이는 벽이든, 소나무든, 든든한 어떤 것을 타고서만 올라간 다는 것이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혹 타고 오르면 안되는 것, 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참고로 동일시란
사람들 사이의 가까운 관계는 동일시가 일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이것이 서로를 풍요롭게 해주고 서로간의 공감능력을 키워주게 된다.
생애 전반에 걸쳐 이처럼 건강한 방식으로 동일시가 진행이 되게 되면 존경할만한 사람들의 속성을 모아 자기 self를 풍부하게 만들어 가게 된다.
그런데 이 동일 시가 방어 기제의 한 형태로 작용하게 되면 이는 그 사람의 고유한 정체성을 발달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심리적 문제가 되어 버린다.
정신분석 이론가들은 동일시 방어기제가 불안, 슬픔, 수치심 다른 고통스러운 감정을 회피하려는 동기에서, 또는 위협받은 자존감을 복구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많이 볼 수 있는 사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느 한쪽의 부모와 동일시되는 경우이다
부모의 마음에 들고 싶어 부모의 가치관에 동일시되어 있거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부모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의 주체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기 어렵게 되고 죄책감이나 압박감, 또는 부모에 대한 미움, 원망 등의 감정이 생겨나기 쉽다.
부모와 동일시되어 있는 자녀 보다 부모와 거리를 두고 있는 자녀가 더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동일시는 그 대상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다른 방어 기제들과 마찬가지로 동일시 방어 기제도 심리 발달의 정상적 측면이기도 하다.
다만, 그 대상과 나 사이에 구분이 없을 때, 대상과 내가 융합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 개인의 인격의 형성에 문제가 된다.
(정신분석적 진단, Nancy McWilliams, 학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