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문인(法眼文益 : 885-958) 스님은 7살에 출가하여 20살에 구족계를 받았다. 희각스님, 장경스님 등을 참례한 후 나중에 지장 계침(地藏桂琛 : 867-928)스님의 법을 이었다. 강남의 숭수원, 보은선원, 청량원 등에서 법을 펼쳤으며, 법회에 참례하는 대중이 항상 천명 이상이나 되었다.
스님의 법은 당말 5대를 거쳐 제자인 천태 덕소(天台德韶 : 891-972), 영명 연수(永明延壽 : 904-975)스님으로 이어져서 법안종이라는 5가의 한 종파를 이루면서 송초의 불교를 열어 주었다. 이들은 선교일치를 주장하였고, 천태학과의 관련이 깊다. 특히 법안종 스님들에 의해 이루어진 [전등록(傳燈錄)]이나 [종경록(宗鏡錄)]등의 선종사서는 교리나 역사에 있어 중국불교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법안종은 송 초기에는 배우 성하였으나, 이후 차츰 쇠미해져서 중송 이후에는 법맥이 끊어졌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로는 고려 초기 광종대에 특히 교류가 성행하여 광종은 연수스님에게 사신을 보내어 예우를 보였고, 혜거(慧炬)스님, 지종(智宗)스님을 비롯한 많은 스님들이 송으로 가서 법안종을 배워왔다.
스님의 어록 속에서 종지에 관한 것이나 제자들과의 감변(勘辨) 이외에도 유의할 만한 점은 계보에 대한 언급이다.
종래 법안종의 계보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청원 행사(靑原行思 : ? - 740)스님 밑에 두는 설이며(송고승전, 정등록 등), 또 하나는 남악 회양(南嶽懷讓 : 677-744)스님 밑에 두는 설이다 (祖庭事苑, 禪林正脈 등), 그밖에 5가 모두를 마조스님 밑에 두는 설도 있다.
이 법통문제는 [전등록]에서 천황 도오스님이 석두스님의 법을 이었다고 하여 운문종과 법안종을 청원스님 밑에 귀속시켰는데, 당말 이후 임제종이 커지면서 스스로를 남악스님의 적손이라 하고, 운문종과 법안종은 청원스님에게서 나왔다고 하여 배격하려 하였다.
이 점에 대해 5가어록에 실려 있는 법안록 원신(圓信)의 서(序)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육조스님 밑에 두 갈래가 생겼으니 남악 회양과 청원 행사이다. 남악스님에게서 위앙종, 임제종, 운문종, 법안종이 나왔고, 청원스님에세서 조동종이 나왔다"고 하여 법안종을 남악스님에게 두고 있다. 또 서(序) 다음에 이은 5종원류도(五宗源流圖)에서는 [전등록]의 기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운문종과 법안종을 남악스님 밑에 두고 있다. 5종원류도의 법계는 다음과 같다.
육조 혜능 - 남악 회양 - 마조 도일 - 백장 회해 - 황벽 희운 - 임제 의현
(六祖慧能) : (南嶽懷讓) (馬祖道一) : (百丈懷海) : (黃壁希運) (姙濟義玄)
: : :
:- 청원 행사 : : - 위산 영우 - 앙산 혜적
(靑原行思) : (위山靈祐) (仰山慧寂)
: :
석두 의천 : ----천황 도오 ........ 설봉 의존 -- 운문 문언
(石頭希遷) (天皇道悟) (雪峯義存) : (雲文文偃)
: :
동산 양개 :_ 현사 사비
(洞山良价) (玄沙師備)
: :
조산 본적 나한 계침
(曹山本寂) (羅漢桂琛)
:
청량 문익
(淸凉文益)
그리고 어록의 본문 가운데에서는 "양자강 밖에서 현사(玄沙)스님의 가르침을 폈다"고 하였는데 5종원류도에 의하면 현사스님은 남악 회양스님의 법손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법안스님은 청원 행사스님의 법손으로 보고 있고 또 성철스님의 법문집 [본지풍광]에서는 "법안종의 개조로서 청원스님의 8세"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