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정교회로 사람들이 모여드는가?
(Why Home Churches are Filling Up)
부제: 어떤 복음주의자들은 대형교회를 떠나, 가정집 거실에서 모이는 미니교회를 추구하고 있다.
리타 힐리(Rita Healy) 씀
출처: 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1167737-1,00.html 2006년 3월 1일자 미국 타임지
일요일 저녁, 잉글우드의 덴버(Englewood, Denver) 외곽에 있는 말끔한 잿빛 개방형 단층집(ranch house)에 ‘팀’과 ‘지닌’ 부부가 네 명의 다른 기독교인들과 교제, 식사, 그리고 신앙을 위해 모였다. ‘지닌’이 요리한 매콤한 리가토니 파스타(rigatoni)가 나왔고, 이어서 ‘앤’이 만든 요거트전병 과자가 나왔다. 상에 올라오는 음식들은 한결같이 다이어트 건강식 기준에 부합되는 음식들로 하기로 약속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정해진 당번이 맡았으며, 참석자들은 다가오는 선교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식스펜스 넌 더 리처’(Sixpence None the Richer)라는 CCM그룹의 CD를 틀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중 한 곡의 가사는 예수님의 음성이라 여겨지는데 다음과 같았다. “나는 너의 숨결보다 더 가까이 있다. 나는 죽음마저 이겼노라”. 이 가사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 친구의 자살에 대한 진중한 토론으로 이어졌으며, 각자가 개인적 문제들과 신앙에 관한 의문들을 토해냈다. 그리고 대화와 기도가 이어졌다. 그들은 신약성서의 히브리서의 일부분을 읽었고 잠시 깊은 묵상에 잠겼으며 찬송을 함께 불렀다.
이 모임은 미국에 있는 일반적인 대부분의 교회의 모임과 비슷한 모양세이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붉은 포도주가 도자기그릇에 담긴 채 테이블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성찬을 위한 것이다. 이 식사모임은 단순한 성경공부 모임도, 단주(端酒)모임도, 덴버의 대형교회 주일예배 예비모임 같은 것 또한 아니다. 이 모임은 엄연한 예배이다. 목사도 성가대도 설교도 없다. 고작 여섯 명의 신자와 그들 가운데 함께하시는 예수께서 계신다. 그들의 숨결보다 더 가까이 그분이 계신다. 적어도 ‘지닌’은 그렇게 믿고있다. 그녀는 2년 전 대형교회를 떠나, 복음주의진영에서 번성하고있는 소위 “가정교회”, “집교회” 또는 “단순한교회”라 불리는 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다니던 교회를 떠난 후 일주일을 매일같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정집 예배모임은 번성하기 시작했다. 인수가 40명으로 늘게 되어고, 다섯 개의 작은 모임으로 나뉘었다. 그 모임의 참석자 중에는 은퇴 목사 ‘존 화이트’씨도 있다. 그는 기성교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그는 가정교회를 시작하고 개척하는 방법에 대해서 강의를 한다. “교회란 단순한 모임 그 이상의 것입니다(Church is not just about a meeting)”라고 그는 말한다. ‘지닌’은 열정이 넘치는 신자이다. “저는 기성교회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모이는 것이 너무 좋아요” 라고 그녀는 말한다.
1990년대 이후 미국 보수 신앙의 떠오르는 조류로 대형교회(megachurch)가 등장했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족처럼 친화적인 분위기에서의 편안한 예배는 흥미로운 요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밤에 모이는 수백 개의 작은 “셀그룹”과 구도자 중심의(humanly scaled) 성경공부, 영적상담, 그리고 감성적 접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지닌’의 가정교회와 같은 모임들이 콜로라도, 남 캘리포니아, 텍사스 그리고 여타 지역으로 퍼져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셀그룹들이 자신들이 속해 있는 모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복음주의계열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아마도 가장 열정적인 여론조사 전문가인 ‘조지 바나(George Barna)’는 2005년도에 출간된 그의 책 ‘혁명(Revolution)’에서 전통적인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수백만의 신자들을 흡수할 몇 가지 소규모 운동들 중의 하나로 ‘단순한 교회(simple church)’를 들었다. 20년 후에는 기성교회의 신자수가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모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통계 수치에 따르면 가정교회로 모이는 사람들의 수는 고작 5만 명 남짓이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그의 분석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테네시주, 차타누가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맥클래란(Maclellan) 재단은 기독교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는 대규모 단체이다. 현재 이 재단은 콜로라도 지역의 가정교회들을 탐문하는 3년 기간의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다. 남침례교 연합회는 그 어느 교단보다도 많은 전통적교회 평신도 신자(pew sitters)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합회는 자체 여론조사를 시행한 후, 수 백개의 가정교회들을 개척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골든게이트 침례신학교 록키마운틴 캠퍼스의 교수인 ‘알란 카(Allan Karr)’는 이 여론조사에 참여했는데, 오늘날 세워지는 교회들의 10중 3이 “단순한(simple) 교회”라고 그는 추정하며, 이 교회들이 살아남는 확률이 여타 7의 교회들보다 더 높다고 말한다. 가정교회들은 일반적으로 교단에 충성적이지 않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점이 ‘카’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우리 교단이 더 번창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제겐 그보다 더 큰 아젠다(agenda)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편적인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가정교회들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의 사후(역주: “예수의 승천 후”로 바꿔야할 듯 하다) 그의 사도들은 성전에서 모이지 않았고 “다락방”에서 모였다. 의지할 만한 것(resources)이 많지 않을 때나 공식적인 박해를 받을 때면 가정교회는 항상 번창했다. 예전에 미국에서 가정교회들이 꽃을 피웠던 때는 1970년대로,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자유분방한 정신(bohemian ethos)의 예수사람운동(Jesus People Movement)에 그 뿌리를 둔다. 당시 많은 모임들은 대형교회에 결국 흡수되었다. 흡수되지 않고 남은 자들은 강경노선을 취하기도 한다. 20년 동안 플로리다에서 가정교회 사역을 담당하였으며 “가죽부대를 재고하라”(Rethinking the Wineskin; 국내에는 “1세기 관계적 교회”라는 제하로 출간) 등의 가정교회 관련서적의 저자이기도 한 프랭크 바이올라(Frank Viola)는 목사와 설교 그리고 교회당 시설들을 이론적으로(doctrinairely) 포기하는 영적 순례자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한다. “현대 제도권 교회는 초대교회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 대다수가 의자에 앉아 한 사람의 45분 설교를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는 상황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과연 표현될 수 있다고 믿습니까?”
최근에 가정교회들은 보다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 같다. 팀과 수지 부부(Tim and Susie Grade)는 1년 전 덴버로 이사왔다. 그들은 예전에 대형교회에 속한 셀모임에 참석했었는데, 같은 동네에 사는 팀과 미쉘 부부(Tim and Michelle Fox)가 해외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가정교회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이들 부부는 다른 일곱명의 2,30대 사람들과 함께 모여 다소 형식을 갖춘 성찬식과 더불어, 비형식적인 안수기도, 자기고백적인 듯한 “교제”, 그리고 기타 반주에 맞춘 찬양을 배합한 모임을 갖고 있다. 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 교회에서 오신 분들도 몇 계십니다. 그들은 약간 쫓겨나다시피 되신 분들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들과 함께하는 이유는 사귐(friendship) 때문입니다. 그들은 힘들어하고 있고, 뭔가를 찾고 있습니다. 내 또래 또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보려했지만 찾지 못했던 그 영적인 것 말입니다.”
비평가들은 소규모의 목사가 없는 모임들이 교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교회성장론에 관한 책을 다수 쓴 남침례회 소속의 톰 라이너(Thom Rainer)는 말한다. “교회가 모이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문제 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몇몇 가정교회들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려 성경적 신뢰(biblical accountability)로부터 벗어난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경우, 어떤 가정교회들은 흡인력은 있으나 비정통적인(magnetic but unorthodox) 지도자들에 의해 차츰차츰 사교(cult)가 되어 갈 수 있다.
그런데, '단순한 교회'는 유연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직업을 여럿 가진 사람들의 필요를 수용할 수 있고, 병상에 있는 지체들이 있으면 찾아가 예배모임을 갖을 수 도 있으며,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 북서부지역에 있는 한 가정모임은 자신들이 사회봉사 사업을 하기를 고대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모임의 회원 모두가 각자 진 신용카드 빚이 과도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그들은 근검절약 운동을 별였고, 그리하여 남게 된 돈으로 실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실로 가정교회를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유익한 하나의 방편이다. 골든게이트 신학교의 '카'의 추산에 따르면, 기성교회 예산의 75%가 건물과 직원봉급에 쓰이고, 나머지를 겨우 이웃을 돕는데 사용한다. 가정교회들은 헌금의 90%까지도 좋은 일들에 쓰는 경우가 있다. '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통적 교회도 괜찮습니다. 건물을 좋아한다면 말이죠. 그런데, 갈수록 가정교회들에 사람들이 모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교회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더 의미있는 일들에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주의자들은 도처에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있다. '조지 바나'는, 가정교회와 홈스쿨, 그리고 직장사역과 같은 일들을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 3차 영적대각성이라고도 할만한 어떤 근본적인 변화"의 일부로 보고있다. 덴버에 있는 자유주의적인 제도권 신학교인 리프(lliff)신학교의 학사 부총장인 '제프리 매이헌(Jeffrey Mahan)'은 그정도까지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조류가 의미심장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역사적으로 기성교회에 대한 미국인들의 참여가 오르락 내리락 했었죠. 제 2차 대전 이후 기성교회 출석율이 줄곧 늘어났었죠. 이제는 대형교회 중심의 기독교가 다시금 힘을 잃고 사람들이 비격식적인 모임들을 선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설령 그렇다해도, "교단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단들이 기독교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지는 않거든요. 당면한 도전은, 과연 무엇이 충만하고 합당한 신앙생활을 이루는 요소인가, 교파적 개념이 아닌 보다 넓은 개념에서 과연 어떻게 (가정교회들과) 함께 교회가 될 것인가를 신자들과 이야기 나눠야 하죠."라고 그는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그 가운데 내가 있느니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