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지난 이십 여 년 내 젊음과 청춘은 단 한 곳에 다 쏟아 부어졌다. 그것은 '과연 올바른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물음에 붙잡혀 있는 동안, 전혀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며, 어렴풋이 나마 알 것 같다. '삶의 목적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그 어떤 진술도 모두 다 거짓이다.
삶은 그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그냥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낸 것은 벌써 십 년 전이었다. 그런데도 십 년 세월을 박사 학위 하나 때문에 허송해버렸다. 그렇게도 삶을 사랑하겠다던 내가 왜 이런 꼴이 되어버렸을까!
더 이상 '인생'에 대하여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천천히 삶, 그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지금까지 삶에 덮어 씌운 더께를 걷어내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인생을 올바로 끌어준 사람은 크리슈나무르티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크리슈나무르티센터가 설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반가움과 놀라움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 변변찮은 시집의 간행을 수락해 준 한국크리슈나무르티센터 관계자 여러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이 시집을 매개로, 한국에서 크리슈나무르티를 읽어 오는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끝으로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기꺼이 이 시집의 출판 비용을 조달해 준 친구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에서 쉬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신동민, 백승동, 김형준 그리고 특히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던 친구에게도 지면을 통해 고마움만은 전해야 하겠다.
열심히 살겠다.
1997년 4월
지 은 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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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제 1 부 별에서 만나는 연습
별에서 만나는 연습
소쩍새
별똥별
메아리
달맞이꽃
들길 따라서
가을원죄
나목에게
세모
가는 길
제 2 부 홀로 가는 먼 길
독백
소몰이
바다 별곡
나목
가만히 있기
허공길
성자들의 전기
친구에게
일기
별심기
그림자
어머니
산길
제 3 부 민속시편
반보기
기럭아비
배꽃이별
벅수
제 4 부 벅수의 노래
담배 연기
유성
트럼펫
소양댐에서
흙으로
통일호 특실
지하철에서
걸인
술에 기대어
단풍서방
별 없는 밤
성탄전야
누나야
바람에게
까치소리
석가하고 예수하고
영화가 끝나고
제 5 부 반보기
忘年友
망년우
종소리
稱吾把
望仇耶
크리슈나무르티를 생각하며
──── 사랑을 가르쳐 준 그 사람
양심선언문
발문
책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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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별에서 만나는 연습
제 1 부의 시들은 참다운 관계와 침다운 만남을 염두에 두고 엮은 시편들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단 한 사람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다. 여기에 실린 시편들은 단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나의 바램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바램이 깊어진다면 내 언젠가는 진정으로, 아무 선입견 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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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만나는 연습
별빛 포근한 저 쪽
달뜨는 계곡 아래지
그대 둥지 튼 동네는
오늘도 고운 달 하늘을 본다
마주 앉은 모닥불에
별을 굽던 밤도 가고
눈빛으로 눈길을 따라
별까지 갔던 밤도 가고
나 여기 진주 하나 지니고 산다
이승의 애증(愛憎)이 짐 된 지금에도
가슴 깊은 곳에 아롱거리며 있다
이제 설레임도 넘어 섰거니
지금 또 다른 눈길로 달빛 멀리
별에서 만난다 사랑 아닌 것을 지나
별빛 고운 노래 새겨 보며 있다
소쩍새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2
하늘하늘 울리는 너울
먼 절 종소리로
별에 가 닿는다
어두운 하늘 저 너머로
기다림과 슬픔이 날아가고
잠 못 드는 밤이 홀로
뒤척이며 피를 토하느니
별에서 별로 이어지는 소망
소쩍소쩍 밤이 깊어도
한 마음에 뺨 부빌 인연 이승에는
없나 보아
수수년 묵은 인연도
별 아닌 데서 잠시
만나고는 돌아보지 않으니
별똥별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3
이다지도 짧은 생명이더냐
무슨 천형(天刑)으로 임종의 숨마저
하야니 홀로 거두고 있느냐
어느 은하에서는 별이었을 그대
순백(純白)의 침묵이 흘러야 하리
타고 남은 재로 만나서
다시 별이 되기까지는
정녕 별이 죽어 가는 눈빛을
아프도록 바라 본 인연으로
이승이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반겨 만날 것을 믿느냐
새벽을 일러 주고는
그대로 꺼져 가는
허공의 딸이여
질곡(桎梏)의 눈길이여
메아리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4
날아오른 하늘 끝으로
날짐승 하나
한 점으로 다하고
해떠서 더욱 어두운 천지
어둠으로 남는 것을, 어둠의
하늘 저편으로 별빛도 사라지고
별빛을 향한 나래짓 까맣게 숨이 지고
아득한 허공 따라 따라 가보면 여전히
높은 하늘 가르는 비상(飛翔)이련만
텃새는 더 이상 날지 못하네
먼 하늘 고니의 비상을 꿈꾸지 못하네
뜨겁던 심장 그 시절은
어둠에 끌려 어둠 아래 눕고
메아리 되어 남은 노래 산산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노래 되지 못한 가락만 흩날리고 있는데
달맞이꽃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5
평생을 다 해야
피었다 지는 일인데
누구의 시샘으로
귀양살인가
외진 들녘에
천둥 번개
내사 몰라라
하늘하늘
달 바랜 죄밖에
망나니 칼바람
뎅-강
모가지 시려도
곁에 있어라
한 세상 말간
그대 마음 같은 이
들길 따라서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6
마주 오던 슬픔이 손을 내민다
해거름과 어스름 사이로
새 한 마리 날아 가고
사라진 새를 좇아
산기슭 개울가에 내리면
물수제비 몇 마리 다투어 물을 건너고
발길 따라 물소리 닿는 대로
동행이 되어 걷는 그림자
가다 보면 어둠이 쌓이고
풀벌레 소리 머언 별
이슬로 내린다
이슬 속으로 그림자 눕고
그림자 따라 가던 사람
이슬 위에 눕는다
별 하나 따라 눕는다
가을원죄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7
저만치 등을 보이며
가을이 간다
세상에 죄 없는 일
마치고 떠나는 낙엽 따라
내 살아 있음의 의미도 사위여 간다
열매 맺지 못한 계절에야 아쉬움도 없지만
맞이할 봄은 준비 되어 있지 않고
수많은 분노와 슬픔만이 허공에 가득하다
이제 여기 나뭇잎 흩날려서
살아 있음의 죄만 하나 둘 쌓이는데
산모롱이 돌아 가는 가을 어깨 너머로
억새풀 하늘거려 대신해 주는 손짓 아련히
가을은 새털구름 되어 멀어지고
능선 위에는 하늘만, 파랗게 애잔한
하늘만 남아 있겠네
裸木에게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8
일찍이 단풍들어 가을 약속 저버리지 않았고, 서리 기다림에 저린 밤을 지나 빈 하늘 만장으로 나부낀다. 때마침 비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이 내 혼백을 위무하나니, 푸른 시절 나무로부터 받은 목숨 기꺼이 다하였노라.
아련아련 이승의 추억 샛길로 멀어져 가지만, 이것은 다만 나를 있게 한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돌아 가는 것일 뿐. 아직도 하늘거리는 가지에는 푸른 잎새 남아 있거늘, 저들에게 아무런 새암 없어라.
저승길 소복이 태워지거나 온전히 썩어 문드러질지라도 내 아무런 거리낌 없으리라. 어느 오솔길에서 연인들을 축복하거나 무심히 쌓여 지상의 허물 가려 준다 하여도.
햇살과 바람과 더불어 살았으므로. 끝내는 그대를 위한 변신이므로.
바야흐로 가을 어스름 어둑발로 내리고, 계절이 계절을 몰고 오는 소리 울리나니. 이제 남은 것은 싸늘한 대지, 찾는 이 없는 시절 견디는 일이어라. 그러나 모든 가는 것은 올 것이 예비되어 있음이니, 그대 다시 만날 봄을 위하여 내 잠시 자족의 휴식을 가지려 하노라.
새야 나무야 고마운 햇살아 바람아.
그리고 어느 날 나의 속삭임에 부드러운 눈길로 대답하던 사람아.
사람아.
세모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9
날리는 눈발에 섞여서
고개를 넘는 소리가 들린다
청춘이 헐떡이며
흐느적거리며 보전해 온 목숨
서른은 옛날에 넘어버렸고
주어진 길이 아니라 가고자하는 길로
들어선 지도 훌쩍 넘어 열 두 해
다짐 때문에 벌써 꼬부라진 아버님의 허리
못 배운 것 하나가 한(恨)이 되어
하겠다면, 입던 바지라도 팔아 주겠다시던
어머님의 근심에 목멘 음성
도대체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왜 험한 세상 때문이냐시던
세상의 포근함은 생각 속에서만 온전할 뿐
베푼 것도 없이 지쳐버린 육신에
술이 아니면 여전히
지울 길 없는 불혹의 폐허
사나운 꿈자리만 남기고 사라져 간다
학문도 세상의 복된 소리는 아닌지라
사람 구실은 한번도 못한 대망의 한해는
가는 길
------ 별에서 만나는 연습 . 10
하늘빛쯤 될는지 저기
바람 부는 새벽녘
하나의 별빛쯤은 될는지
능선 너머로
가지 않은 길, 청춘이
뒤돌아 보고 있다
무거운 발길 끌고서
어느 강가에 닿았는가
짐 부릴 곳 얼마나 가까웠는가
길 끝으로 밤이 와서
어둠이 너와 나를 갈라 놓을 때
내 마음 별이 될는지
별빛 보아 줄 새 한 마리
지상에
남았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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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홀로 가는 먼 길
여기 제 2부의 시들은 특별히 크리슈나무르티를 생각하며 엮은 시편들이다. 모든 문제의 열쇠는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좀 더 깊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배여 있는 것으로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독백
------ 홀로 가는 먼 길 . 1
지저귐에
목청을 다듬는 새가 있던가!
포효함에
울대를 가다듬는 짐승이 있던가!
지저귐과도 같은
포효와도 같은
인간의 말일 뿐이다.
다만 소리일 따름이다.
혼돈의 이 땅에 벅수는
부대껴도 홀로 있어
기어이 외치고야 만다.
세상은 인간을 닮아간다고!
홀로 있음이
참된 어우러짐이라고!
소몰이
------ 홀로 가는 먼 길 . 2
어느 들판이라
이리도 넓은가
고삐만 움켜 쥐고
반쯤에나 왔는지
사방 천지 사람은 없고
별빛 한 올 머물지 않는
언덕에
굴레도 벗어 놓고
허물도 벗어 놓고
'나'마저 버리고 가는 나그네
차안(此岸)의 풍진(風塵)에야 마음 없으나
가도가도 끝이 없는 피안(彼岸)이라
어둠에 묻힌 길손
바람 맞으며 가나니
바다 별곡
------ 홀로 가는 먼 길 . 3
갈 곳을 몰라서가 아니라
항상 그대 곁에 그랬듯이
좋아서 왔다
바다와 파도와......
한 잔은 파도
한 잔은 물보라
한 잔은 수평선
파도 세찬 바위 위에
사람 하나 앉았다
마음은 갈매기가 물어 가고
빈 몸으로 앉았다
바위 되어 앉았다
나목
------ 홀로 가는 먼 길 . 4
모두 다 떨쳐버려라
하나도 남김 없이
과거는 죽은 채로 묻어 두라
잎 지고 남은 앙상한 몰골을
보이는 그대로 나목(裸木)으로 보라
파릇할 새싹은 미래일 뿐이다
지금은 단지 나목인 것을
잎사귀에 부시던 햇살도
부러진 가지에서 달래던 바람도
지금은 사라진 시간의 그림자
모든 슬픔과 기쁨까지도
시간의 사라진 그림자일 뿐
펼쳐진 실재와 더불어 온전히 살게 두라
비어 있음의 평온과 어울어
홀로 있음의 자유를 누려라
가만히 있기
------ 홀로 가는 먼 길 . 5
들리는 것조차도 듣는 것 없이
말은 물론 없이
여러 생각도 없이
보여도 보는 것 없이
미동도 않고
심장은 뛰는 대로 두어
색이다 공이다도 없고
색과 공이 같은 것이다도 없고
교만의 순간
"아하"를 지나서
지구는 도는 대로 두자꾸나
하늘 땅은 잔뜩 흐려 있는데
바람 한 줄기
허공 스친다
허공길
------ 홀로 가는 먼 길 . 6
적막의 등을 밀며 새벽이 온다
길은 마음 쪽으로 구부러져
어둠의 젖가슴을 헤치고 있는데
한낮은 짝사랑에 지나지 않았고
밤이래야 아득하게
꽃초롱 하나 허공길에 비친다
하루하루는
육교 위의 사람들처럼
오곤 또 가고
밤이 더 긴 인생길
바람 안고 걷노라면
언제나 귓전에 살랑이는 소리
갈 길을 가느냐
갈 길을 가느냐
성자들의 전기(傳記)
------ 홀로 가는 먼 길 . 7
별들
숱하게
죽다
태어나서
살다가
친구에게
------ 홀로 가는 먼 길 . 8
젊음은 꿈 시절이요
어느 샌가 질러 와 꺾어진 나이
직장에다 가정이 주리를 틀고
야합하고 시들어 가고
지난해도 까마득한데
안주도 없는 소주에 부대끼던
삶의 의미는 저기
강가에서 물과 함께 흘러 흘러
다시 오지 않으니
할 말도 별챦다 마는
쫓기는 삶인데
시간이 금인데
어찌 돈 안되는 편지를 쓰랴!
홀로 있음이 사랑이라고
피로 썼던 편지는
친구들에게조차도
의미가 없어
하늘 마냥 푸르러
슬픈 하루의 길목에 앉아
맞은 편에 잔 놓고
술을 딸아 보낸다
일기
------ 홀로 가는 먼 길 . 9
밤은 백지 위에서
비로소 길로 태어난다
미몽의 한낮이 정수리에 고였다가
가슴 가운데 바람으로 불어 가고
어제 죽은 자
무척이나 갈망했을 하루
생의 한 움큼을
나그네 어느 봇짐에 던져 버리랴
내 인생도 자르다 보면
싱싱한 몇 토막 있었겠는데
몇 구비 쫓겨서 감돌다 보니
오솔길 아래 널부러진 비애에 지나지 않는다
별심기
------ 홀로 가는 먼 길 . 10
가슴마다 별을 심고 있네
누군가 그리운 사람
그리워하고 있네 별빛 등대 삼아
고마운 길 가고 있네
등대 곁으로 별무리 모이고
어둠 저 쪽 사람 별무리 느껴워
초롱초롱 눈길로 타고 있네
눈길 따라 별 뜨는 쪽으로
그림자 앞세우고
그림자 밟으며 가는 길
길 어디쯤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하여도
휘어진 등에 바랑이 무거워
걸어온 시간 능선으로 굽어 있네
그림자
------ 홀로 가는 먼 길 . 11
캠퍼스 건물의 불 마저 꺼지고
빛깔 차가운 가로등 아래를 지나서
그림자가 커지며 작아지며
문득 다가서는 그림자에
다시금 매달리는 작은 그림자 있어
부모님 손잡고 가던 외할머니 댁 기억이 되고
{애비가 네 나이 때
너는 학교를 다녔다, 이놈아!}
지금은 자성(自省)의 시간도 가버리고
모르고 먹어 꺾어지고 넘어진 나이
빌어먹을 놈의 나이라고 저주도 해 보건만
오늘은 백방으로 바람이 불어
내 곁에는 아직도 사랑을 아는 이가 없어
셋이서 가로등 아래를 돌다 간다
그림자 바람 나
어머니
------ 홀로 가는 먼 길 . 12
아롱아롱 별이 내린다
열반 드신 언덕에
산허리 굽어 돌아
별빛 젖어 고이는데
먼 데 홀로 계신
그리움이여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슬픔아
동구 밖 장승으로
억겁을 지켜주실 것만 같더니
산길
------ 홀로 가는 먼 길 . 13
길은
이어질 것이다 어디론가
가다보면 별 하나 내리고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다
멀리 낮은 음(音)의 등불이 켜지고
사람 사는 소리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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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부
민속시편
제 3 부 민속시편들은 한때 우리 민속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을 때 지어진 것 들이다. 편수도 작고 내용 또한 빈약하지만 뒤이어지는 시편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빼 버릴 수가 없었다.
반보기*
------ 민속시편 . 1
설레어 걸었으랴
칠백 리 하얀
그리움의 눈길을
벙어리 삼 년
아린 속을
옷고름에 숨겨 두고
오히려
시린 손
쥐어 주던 누이야
이슬 몰래
찬합 보자기 다
젖었으리
새벽에나 닿을
먼 길
* 주로 충청 이남 지역에서 행해지던 풍속의 하나.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던 옛날, 미리 기별하여 친정과 시가의 중간 위치 쯤에서 친정 식구들을 만나던 일.
기럭아비*
------ 민속시편 . 2
늦은 인연에
청사초롱
애간장이 탄다
새워 보내는 동짓밤
길기도 하여
붓 가리고 적어 보노니
손주 녀석 이름자
기럭기럭
멀지도 않은 길
어느 고개
숨이 찬지
* 전통 혼례의 전안 때 신랑보다 앞에 서서 기러기를 들고 가던 사람.
배꽃이별*
------ 민속시편 . 3
달 그늘 배꽃
눈으로 날린다
별빛 멀어
하롱하롱
그리움 스러져도
차마
밟을 수 없어라
뜨락에 쌓인 그 연가
아롱아롱 봄 밤
눈시울 그대
멀어지고 있음에랴
* 밤새 마당에 내려 쌓인 배꽃 잎을 밟을 수 없어서 곳간으로 가지 못하고, 울 넘어 옆집에서 식량을 꾸어오곤 하였다.
벅수*
------ 민속시편 . 4
바위로 살았더니라
생각 끊어 본시
죄 하나 없는데
어찌 이리도 허허로운가
천 년 지킨
동구 밖
어둑발 해거름에
길손 끊기고
애기소 집 잃어
음매----
구름 보고 운다
* 경남 통영시에 있는 장승의 일종으로 마을의 수호신이었으나, 지금은 이 지방에서 '바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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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부
벅수의 노래
제 4 부는 대학 시절의 작품을 포함하여 최근까지 '벅수'같이 살아온 내 삶의 기록들이다. 버려야 할 것들까지 함께 싣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야 내면으로 향하는 먼 길을 언제까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인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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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
------- 벅수의 노래 . 1
저렇게 흘러 가는 것이려니
뿌리까지 흔들려 가는 것이려니
아니 뿌리 뽑힌 그대로
휘말려 가는 것이려니
가다가 사라지는 것이려니
유성 II
------- 벅수의 노래 . 2
청춘이 유성으로 떨어진다
미리 떠날 날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포근한 결별을 위하여 그 얼마를 기다렸던가
은하수 한 곁에서 이루었던 냇물이
흐를 데가 없어 유성으로 떨어진다
보는 이의 비위도 거스르지 않으려
들러본 작은곰자리, 전갈자리
하지만 얻어 쓴 누명에
서천 서역 나라 군사들에 쫓겨서
끝내는 작은 위성
달 곁에서 죽는다
트럼펫
------- 벅수의 노래 . 3
허공에서
스치고 마는 소리가 아니다
바람과 구름 따위
기껏해야 봄날의 꽃이나 나비를
울울창 산중에서도
수평선 너머 큰 바다에서도
도도히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어찌 귀로만 들으랴
소리는 하늘을 가로질러
은하로 퍼지는데
온 천지에 가득한 그 선율을
누구도 함께 듣지 못하는구나
맺힌다면 천만 방울 피로도 맺히는 가락인데
초혼의 음색에 답하는 이가 없구나
소양댐에서
------- 벅수의 노래 . 4
{이런 델 어떻게 혼자서 오시죠?}
잠깐 땀을 식히는 사이
찐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의 말이다
경포대 갯가에서 소주를 팔던 아주머니도
보경사를 오를 때도
영흥도에 건넜을 때도
사람들은 역시 같은 말을 했었다
왜 혼자서 다니냐고
흙으로
------- 벅수의 노래 . 5
고향도 버리고
졸업장도 버리고
매캐한 도시의 소음도 버리고
흙으로 돌아가리
바람과 꽃과 새와 함께
붕어와 미꾸라지와
송사리와 더불어
삶과 죽음이 흙에서 비릇 되듯이
나도 흙으로 돌아가리니
삶이란 한갓 부끄러운 일일 뿐
하나의 따뜻함으로 남아 있을 일
왔다 갔다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일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만 할 일
통일호 특실
------- 벅수의 노래 . 6
통일호 특실을 탄다
고향으로 가는 열차
허리 아픈 다섯 시간이나
이고 진 민망스런 노인네들
그 때문이 아니다
2700원 짜리 알량한 자존심
나도 너희들처럼 특실을 탔다는
아무렴, 특실료쯤은 나도 낼 수 있다는
고 야무진 이천칠백원 짜리 행복을 위하여
고향으로 가는 열차 통일호 특실을 탄다
험한 세상 살면서
따르지 않고는 못 배길 모양 갖추기
어쨌든 자가용 하나쯤은 있어야지
의복이 날개라는 말도 무시하면 안되지
가끔씩은 그럴듯한 집에서 외식도 해야 하고
분명 틀린 말이 아니다
산너머 행복이 있다는 말은
통일호 특실의 행복에 싫증이 나면
저기 어디 돈 만원 짜리 행복을 찾자
하늘 푸르러
욕된 날
고향으로 가는 열차
통일호 특실을 탄다
지하철에서
------- 벅수의 노래 . 7
꼬리 끌며 치솟는 폭죽인 양
소리 환하게 터지는 불꽃인 양
이내 불길을 그으며 쏟으며
기어이 마지막을 다하는 찬란이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우리는
생전 처음으로 닿아 보는 무언의 대화에
신문으로 가린 감촉에 젖는다
결국은 벽이 될 수 밖에 없는
도덕이라는 허구
무턱대고 따르는 우리의 위선
끝내 그 여자는 종각에서 내리고
이제는 꺼져 버린 불꽃이 되어
어스름이 환상 속에 남았는데
내릴 역도 잊어버리고
위선에만 절어 살았던
자신을 꾸짖고 있었는데
걸인
------- 벅수의 노래 . 8
하늘 아래 비렁뱅이올시다.
가진 것 많으신 분네들
한 푼만 적선합쇼!
쇤네 굶지 않게
한 푼 줍쇼!
가진 것 많아서 근심 많은 분네들
햇빛이나 바람을
비렁질해 봅쇼!
비렁질을 하다보면 사랑을 알게 됩죠.
한 푼 줍쇼!
자유처럼
술에 기대어
------- 벅수의 노래 . 9
두어 잔 마신 술에 어이 취하랴
다시 또 서너 잔
취기는 알싸히 나비로 나른다
열두 가지 꽃 속에 묻힌다
천리향 독한 향기 흐드러진다
삭아 문드러진 꽃대 위로 겨울
꽃밭에 내린 무서리가 희다
땀흘리는 수고에는 이제 기쁨도 없거니
어울어져 가자던 가슴 홀로 되어 떠돌고
사람들은 한 겹씩 더
철책을 두르고 간다
철책에 갇힌 가슴
백주에도 취함을 갈구하나니
반생의 반을 지켜온 술병도 쓰러지고
술병 쓰러진 꽃밭에 내린 서리 또 차다
단풍서방
------- 벅수의 노래 . 10
1
늘 푸름에 지쳐
봄
여름
구름 비에
숨어 지샌 밤
몸이 달아
달아도
죄 없다며
손짓
가늘도록 떠는 것을
2
그러나
겨울이 오고
새까맣게
밀물이 지고
세상 모든 것이
눈물겨워 보일 때
노을빛에
숨 죽일
그대여
별 없는 밤
------- 벅수의 노래 . 11
인적 없는 공터
별 없는 밤은 그믐 탓이 아니다
암흑 속에서도 바람은 분다
바람이 비우고 간 자리를 다시 채우는 바람
격정을 넘어 선 사랑은 지지 않는다
피고지고하는 건 사랑이 아니지
여인이 녹아든 술을 깡으로 마실 필요는 없지만
어쩔 것인가!
어둠이여
어리석음이 나태를 간음하여 태어난 자식이여
밤이여
어둠이 창녀에게 뿌린 씨앗에서 독을 먹고 자란 악마여
사랑에 마음 없는 여자는
늘상 제풀에 지쳐서 떠나곤 하지
별도 없는 밤
공터에 서서 토해 내는
긴 긴 신음 소리
성탄전야
------- 벅수의 노래 . 12
보이지 않는다
별빛 휘두른 달빛과
반짝이는 네온 아래서도
축복은 한 생명의 탄생에 있거늘
술렁거린다 길을 잃었다
찬양으로 위장된 쾌락 속에서
지천으로 널린 십자가는
권위의 푯대가 되어 허공에 걸렸다
살진 이들은 배를 채웠고
오늘은 이천 년 전쯤의 그 날이 아닌데
묵시록 위로 흐르는 달빛은 적막하기만 한데
거치른 들판에서 외치던 사랑도
계절을 못 견뎌 식어갔거늘
사람들은 무심하구나 무심하구나!
외길이나마 남아 있을 것인가
다시 이천 년쯤 뒤에
누군가가 태어나고
그가 외친 사랑도
식어갈 때
누나야
------- 벅수의 노래 . 13
딸 많은 이모님 댁의 시집 잘못 간 누님
술주정 남편의 부엌칼에 찔려서
서럽다 절름거리며 장사를 나서면서도
아무렇게나 둔 부엌칼이 죄라던
그 남편마저 폐병이라
고물장수 우리 누님
작은 놈 동인이를 손수레에 담아 싣고
버리는 물건 있는 곳이면 못 갈 데가 없는
남편 없이도 살겠다 했다
하루 일, 됫쌀 벌이는 된다며
애기들을 바라보면서
못 배운 게 죄라서
할 말이 없다면서도
통일이 되면 고물장사도 잘 되는 것이냐며
산처럼 황혼을 지고 가던
누나야!
바람에게
------- 벅수의 노래 . 14
[뭐가 그리 좋아서 왔던가]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으며.
축제 뒤의 캠퍼스처럼 황량하고
철지난 백사장 송정도 허허롭구나.
그리움으로 데운 겨울 바다였건만
이제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으려는가.
의무처럼 인사를 건네고, 항상
깃들이던 둥지마저 허물어져
온천장 초가 문간방에 등을 붙인다.
동행들의 동행이 되어
식어버린 열정이거늘, 괜시리
죽어간 젊음의 은밀한 곳을 만져본다.
손바닥 뜨거울수록 죽은 자식은 차고
왼손에는 한 움큼 바람이 쥐어진다.
굽이굽이 얼큰한 고속도로에서
쫓아 오는 졸음을 뒤돌아보면, 여전히
별빛은 남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까치소리
------- 벅수의 노래 . 15
저만치
언제인지도 모르게
저도 소식 하나 전한다고
까악거리고 있다
오래오래
듣고 싶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센 바람은 불어 오고
구름 끼여 햇살 가리면
나는 나는
가야만 하는데
옛날에도 깊은 잠 깨어난 어느 날
새 한 마리 날아와
둥지 틀고 살다 간 적 있었다
마디마디 울음에
전할 말이 있다고
꺼지지 않는
항상 불씨 같은 마음이라고
나무 위에 까치는
까악거리고 있다
석가하고 예수하고
------- 벅수의 노래 . 16
주님 가시고 말씀은 메아리로 남았는데
여기 저기 교회는 살만 찌우고
유아독존 외쳤다는 그 사람도
수수년을 깨치고야 일렀는데
한갓 돌 조각의 없는 영험이라니
스치다가 만나도
어울어져 사는 것인데
부처님과 사랑은
예수님과 자비는
부처님 밀고
예수님 밀며 더불어
세상 수레 밀고 가셨는데
저마다 잘나서 서러운 인간들은
평생에 한 번도 어울어져 살지 않는구나
수레마저 못 쓰게 부수고 있구나
영화가 끝나고
------- 벅수의 노래 . 17
1
나 이제 돌아 보노니
그것은 분명 애정이었어라
스치고 말 인연이라 한대도
한 오라기 부끄러움도 없구나
두 번을 죽어도
네게는
정녕 한때의 일이기에
이승 어디서 영원을 알 수 있을까!
끊임없는 시간 속에
인간의 생명
그 동안이나마 영원이고 싶었는데
내 너의 거짓마저도 지켜 보았거늘
종영(終映)을 알리는 벨 소리가 들린다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야 하고
은막에는 아쉬운 마지막 장면이 정지되어 비치고 있다
2
솔기름 다하여 초롱은 꺼졌나니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하늘에서도 빛이 되거라
그리하여 내 하늘에까지 비치는
영롱한 빛이 되거라
멀리 있어서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게 하여라
그것이 사랑의 평온이거늘
돌이켜 깨뜨리는 너의 눈짓에
내 가슴이 또 한번 저리다
너에게 한 가닥 매임 없는 자유를 주노니
훗날
자유와 사랑은 등가(等價)임을 알아라
3
애정을 되돌리려는
어리석은 이의 천박도 넘어 섰나니
심은 나무는 심은 대로 두라는 말을 기억하노라
용서해 다오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는 아우성을
승화할 줄 모르는
이 내 자존심을
네게 쏟았던 열정이 식어
굳어진 다음에야
이게 사랑 아님을 알았나니
살펴 살펴
부디 가거라 고마운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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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부
반보기
제 5 부의 시편들은 내가 한때 도올서원에 다니는 동안 지어진 것들이다. 이제는 도올서원에도 못 나가게 되어버렸다. 혼자 가는 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제, 힘을 내세우는 그 어떤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함께 웃고 울고 뒹굴었던 아이들이 보고싶은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간절하다. 어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방학 동안에만 열렸던 서원 생활에서, 젊은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꼭 반보기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에서 반보기 연작시로 쓰여졌던 것을 고침 없이 그대로 싣는다.
이 글의 초고는 199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신문에 실린 것이었다. 그것을 약간 보완하여, 도올서원에서 발행하는 도올고신에 실었던 적도 있다. 이제 다시 손질하여 여기에 싣는다. 이 글은 내가 인생길을 걸어온 자취에 해당한다. 또한 앞으로의 삶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여기에 싣고 싶었다.
사랑을 가르쳐 준 그 사람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오래 전에 만났지만 애써 잊으려 했던 그 사람!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그의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이제는 이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그 사람을 먼 발치에서 바라 본 것은, 대학 시절 연애의 열병을 앓던 때였다. 하도 괴로워서, 참담하도록 고통스러워서 모든 것을 버리자고 다짐했었다. 그리고는 "자유인"의 삶은 괴로움이 없는 삶이라기에, "자유인"이라는 것이 되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그러자 그는 점점 더 내게로 다가 왔다. 그러다 보니까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었다.
그러나 그가 가리키는 길로 들어섰을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여물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내 말은 그들에게 너무도 생소했던 것이다. 허나 사람들은 참된 그 무엇에는 관심이 없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버렸다. 참 가당찮은 세월이었다. 그 뜨겁던 마음은 식어 버렸고, 대학의 껍데기뿐인 권위에 눌려서, 열 두 해를 허비해 버렸다. 한 청춘은 허망하게 시들어 버렸다. "자유인"의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그 사이, 항상 내 인생을 걱정하시던 어머님마저 돌아가셨다. 어머님의 얼굴이 떠 오른다.
각설하고 그 사람 얘기를 하자. 그 사람의 글이 우리 나라 독서계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979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40 여권이 번역되어 서점가에 퍼져 있다. 그의 책들은 한때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수많은 관념에 얽힌 상태의 의식으로써는 그에게 접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의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 식량은 남아도는데 왜 사람들은 굶어서 죽어 가는가? 학문의 효용은 무엇인가? 주워 들은 말이 아닌,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들 있는가? 그는 말한다.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가치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그는 깨끗한 사람이 되라고 권한다. 열쇠는 자신의 안에 있다고 일러준다. 그는 인간의 이성(理性)으로써 갈 수 있는, 그 길을 닦아 놓았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그가 발견한 길 위로 천천히 걸어가 보기만 하면 된다.
크리슈나무르티는 1895년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세기의 교사', '20세기 마지막 스승' 등으로 불린다. 그는 1929년 경 자신이 이끌던 '별의 교단'이라는 단체를 해체하고, 궁극적 "진리"라는 것은 조직적인 종교로써는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말로써 종교적 지도자의 위치를 부정하였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종교적 단체를 구성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혼자서 활동하다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던 해인 1986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운 재단과 학교[Oak Grove School]가 인도, 영국, 미국 등지에 있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과 규범이 한치의 오차나 착오 없이 잘 지켜진다고 한다면, 그때는 과연 인류가 행복할 수 있을까? 분명 그렇지 않다. 문제는 사회의 구성원 각자의 마음 속에 사랑이나 자비라고 할 수 있는 그러한 상태가 충만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법과 규범 따위는, 알다시피 사랑이나 자비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구성원에게 경쟁을 강요하고, 사랑의 마음가짐보다는 공격적으로 되는 것을 장려하며, 경쟁에 나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이것이 우리가 지닌 가치관의 기본 바탕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으며, 높은 문명과 문화 수준을 말할 때도 그것을 누리는 계층은 극히 적은 부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다. 지금도 세상에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평화'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에게 있어 가장 비인간적인 문제인 기아 문제를 보자. 오늘날 전세계의 국가에서 군사비로 쓰고 있는 돈의 5%만으로도 식량 부족으로 죽어 가는 제3세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마음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곳에는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당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정치 쪽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도 없다. 정치가들의 가장 큰 관심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다. 권력, 그것을 위해서라면 수많은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포악한 부류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사랑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학문과 예술 쪽은 또 어떤가? 학문이 사랑이나 자비에 바탕을 두지 않았음은 기정의 사실이며, 예술이라는 것도 그 대부분은 사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학문이 높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던가?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왜 이다지도 많은 갈등을 주는 행위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깊이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혼자서 빙그레 웃고 마는 예술이라면, 학문 따로 행동 따로라면, 학문이나 예술이라는 것이 이 사회와 역사에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여러 부문을 생각해 볼 때, 현재의 세상에서 인정되는, 횡행되는 논리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힘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한 것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사랑이나 자비의 논리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 쪽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 역시 힘의 논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기독교는 수천 년 동안 종교의 이름,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으며,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다. 불교 종단의 폭력 사태는 심심하면 한번씩 일어나는 일이 되었다. 물론 정말로 진지하게 자신의 종교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아마도 크리슈나무르티에게 깊이 공감하리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사회나 환경은 그것 스스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사회나 환경이 변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야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의 변화, 환경의 변화는 그 사회나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인 개개인이 변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점이 바로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셈이다.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충분히, 진지한 자세로 곱씹어 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 전에 우선, 지금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보통의 인간에게 있어서 그 사람됨은 세상을 닮아 있다.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바가 그 사람 자신을 형성한다. 그런데 그 사회가 썩어빠졌다면, 그는 어떤 인간이 되겠는가! 무서운 일이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실상이다. 이것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나(我)'를 형성하고 있는 대부분이 그런 세상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이것은 생각의 주장이 아니라 사실의 지적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제시하는 열쇠는 '자아가 없어지는 순간의 체득'이다. 다시 말하면 '무아(無我)'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며, 불교 식으로는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이 선(禪)사상과 상통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동양적인 선(禪)과는 다르다고 본다. 그에게는 성속(聖俗)의 구분이 아예 없기에 하는 말이다. 또한 무아의 순간을 체득했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민감성과 상관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을 항상 민감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로 의식을 유지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언제나 자아(自我)라는 것이 훼방을 놓는 방해물인 것이다. 자신을 영속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자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그는 명상을 그렇게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말하는 명상을 대부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인간은 사랑에 다가갈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감정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철저히 이성적인 행위다. 청춘 남녀들은 물론이고, 결혼을 해서 애를 몇씩이나 낳아도 우리는 사랑을 모른다.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겉치레뿐인 타산이요. 네가 하나 주었으니까 나도 하나 주겠다는 식의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은 천박한 이성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치기 만만한 교양으로 무슨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하나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알면, 전부를 사랑할 수 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으면, 전 인류를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른 사랑이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염두에 두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그렇게 교육시키고 있는가?
성서에서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오래 참는가? 오히려 참을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상태라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시기하지 않는가? 거칠지 않다고 했는데, 우리는 진정 얼마나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인가?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자신을 무화(無化)시키며 살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한다.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죽음으로써 사랑을 외쳤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사랑을 아는 이가 없다는 말은 과연 틀린 말인가? 자신의 머리 속에 사랑이 있는가를 검토해 보라. 자신의 사고나 행위 중에서 사랑 아닌 것을 하나씩 제거해 보라!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실제로 그렇게 해 보았을 때, 내 머리 속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의 열쇠가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 크리슈나무르티의 지적이다. 지면도 충분하지 않거니와 공부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이상 상세히 논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다만,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길은 끝이 없다고 한, 그의 말 한마디는 꼭 덧붙여야 하겠다. 앞으로 기회를 만들어서 더 열심히 공부해 볼 생각이다. 적어도 그 사람은 홀로 깨닫고 홀로 죽어 간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형편이 좀 풀리면 그가 살던 곳과, 그가 세운 학교에도 가보고 싶다. 그의 기운이 서린 곳들을 더듬어 보고 싶다. 그러나 이것이 그를 추종하겠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삶을 너무도 피상적으로 살다 간다. 삶은 순간순간 배우고 느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가슴으로 느껴야 하고, 풀꽃의 향기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와 세계의 모든 관계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인생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와 더불어 삶을 살아간다는 시인들은 과연 인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가 중요한가, 삶이 중요한가? 아니면 시인이라는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글은 처음에 모 월간 문화지에 실리게 되어 있었다. 내용을 좀더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문대로 원고가 완성되었을 때, 실을 수 없다고 통보해 왔다.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만, 밝히지는 않겠다. 또한 모 언론기관에도 의향을 비추어 보았지만 거절 당했다.
이제 여기 남의 주문 없이 내 마음 그대로 쓰여진 글을 싣는다. 돌아보면 내 젊음은 이 하나의 글과 함께 영원히,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인생,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다.
부디 읽으시는 분들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선 언 문
저는 경남 통영 태생입니다. 통영의 유영초등학교를 거쳐서, 마산의 월영초등학교, 마산동중학교, 마산고등학교,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등을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인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한 지 열 두 해를 보내 버린 이 시점에서, 또한 대학 강사의 신분으로서, 이런 선언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정에 대하여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토록이나 추악한 세태 속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박사 학위 논문 심사는 극심한 부패 속에서 행해집니다. 음성적으로 공식적인 가격이 정해져 있으며, 매번 심사 때마다 결코 적지 않은 돈들이 오고가는 실정입니다. 또한 성대한 향응을 베풀어야 하고, 성적인 쾌락까지 제공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 때문에 논문 심사라는 것이, 많은 대학 교수들 사이에 고액의 과외로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매 학기마다, 논문 심사를 하나라도 더 맡으려고 혈안이 된 교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끼리끼리 추악한 작당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널리 퍼져 있고, 또 물밑에서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는 사실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최소한의 의미마저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이 같은 부패를 용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 추악한 사태들을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을 다 한다면, 이 선언문은 평생이 걸려도 끝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일어날 일이기 때문입니다.
논문 지도와 관련하여, 자신과 유관한 사람의 그림을 강매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지도 받는 학생이 그림 한 폭 값으로, 어렵게 마련한 돈 500,000 원을 가지고 집으로까지 찾아갔습니다. 어렵게 주저하며 내놓는 그 돈을, 적다고 방바닥에다가 패대기를 치는 그 교수는, 보기에 아주 의연하더라고 했습니다.
학위 논문 심사와 관련하여 자동차를 요구하고, 그렇게 하여 생긴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그 교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동료 교수들에게 따돌림받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참다 못한 교수 한 사람이, 대학원 모임에서 공개해 버린 사실이어서, 해당 학과의 구성원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부분 쉬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그 사람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저 역시 구체적인 이름을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어느 교수에게, 이러한 논문 심사의 부도덕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너도 교수되어서 논문 심사 많이 해!"라고, "나중에 본전 뽑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한 오라기의 부끄러움도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작태에, 더 많은 슬픔을 느낍니다. 결코 분노가 아닙니다. 분노가 아니라 슬픔입니다.
일부 대학 일부 학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단 하나의 경우라도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단 한 번일지라도 용인되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러한 추태의 해악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그래도 공부해 보겠다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젊은이들의 인생을 낭비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 뜨거운 마음의 젊음들을 모조리 시들어 버리게 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뜨거운 마음은 존중되어야 하며, 우리 사회를 제대로 이끌어 갈 원동력은, 그러한 젊은이들의 올바른 열정과 실력입니다. 그 젊음을, 그 청춘을 모두 다 허비해 버린 지금,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는, 자신들과 비슷하게 추악한 인간들을 요구하고, 또 다시 꼭 그와 같은 인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교수 임용과 관련된 비리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그 문제의 심각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추악한 인간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학생들이 그들에게서 과연 그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막아야 합니다. 저부터 빠져 나와야 하겠습니다.
저는 석사 학위 논문을 태워 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1989년 겨울, 양평의 두물머리 강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얼어붙은 강물을 바라보며 한권 한권 태워 나갔습니다. 그래도 한 조각 미련이 남아서 전부 다 태워 버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똑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태워 버렸다고 했습니다. 묘하게도 그 장소가 두물머리 강가였습니다. 한권 한권 태우다 보니 눈앞이 흐려지더라고, 안경이 젖어서 앞이 보이지 않더라고, 안경을 벗어버렸더니, 자신의 학위 논문 페이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논문이 타면서 내는 열기는 무척이나 따뜻하더라고 했습니다.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린 자신의 논문이 내는 온기는 훈훈하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다시금 눈물이 글썽한 그를 바라보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결코 누구의 잘못을 세세히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교육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이러한 작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도덕성을 회복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무질서의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 책임은 우리 모두가 함께 져야만 합니다. 우리들 각자가 이 사회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크! 이러다가는 박살나겠다!"고 생각하고는 더 교묘한 방법들을 찾아낼 것이 아니라, 당신네와 같은 교수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분간 좀 공허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네들은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세상 누구보다도 더 깨끗하게 살아가야 할 사람들 아닙니까?
제발 부탁입니다. 당신네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신을 좀 차려보십시오. 그것 하나가 지금 애원하는 바의 전부입니다.
누가 어떤 나쁜 짓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을 들추어내어서 벌을 준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벌을 주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벌을 받는 사람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이 크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교육받아 왔고, 또 그렇게 교육시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사회에서의 상벌은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일생을 통하여, 그러한 모습들을 너무도 많이 보며 살아갑니다. 오히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며 살아 갑니다. 이러한 흐름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 이어져 왔고, 세대에 세대를 거치며 이어져 갈 것입니다. 하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는, 이 세상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해야 할 일은, 개인 각자가 사회의 건강성을 되찾는 데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이 선언도 그러한 관심의 결과를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그 어떤 이익을 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젊은이들과 함께 두런두런 이러한 얘기들을 하고 싶습니다. 그들과 함께 세상의, 인생의 온갖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함께 울고 웃고 뒹굴고 싶습니다. 저의 능력이 미치는 한에 있어서, 삶 자체를 그 자체로 살다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는 크리슈나무르티를 강의할 수 있습니다. 16년 동안 그의 저서들을 읽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 자유의 의미를 알아내려고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제 삶이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이 선언으로 하여 예정되어 있던, 대학의 강의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수 있는 그 즐거움을, 그들이 뺏어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분이 계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론}, {사랑론}, {교육론}, {인생론} 등의 이름으로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박사 학위는 없지만, 깨끗하게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저의 전공은 한국 현대시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만해와 지훈의 시작품들을, 김지하와 박재삼의 작품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연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적절한 상황이 마련되어야 가능합니다.
설령, 이 행위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좋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저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순진한 자신감으로 구차스럽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정히 어려운 일이라면 고향으로 내려가서, 고맙게도 아직 정정하신 아버님을 모시고 살 수도 있습니다. 한편 한편 시를 쓰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의미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지난 학기 강의는 스스로에게 눈물겨웠습니다. 이러한 선언을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대학 강단에서의 마지막 수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부디,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 주십시오!"
"세상을 사랑으로써 살아가십시오!"
"제발, 썩어빠진 세상에 영합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저의 아버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저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그 말씀을 그대로 들려 준 것입니다.
마지막 시간, 기말 고사를 치르고, 답안지를 내고 나가는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었습니다. 눈을 마주 보며, 그들도 굳게 저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 손들은 따뜻했습니다.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의 여러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공대를 졸업하고, 제가 이 길로 들어설 때, 그렇게 만류하시던 분들이십니다. '문학은 취미로 하라고,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지독하게 고독한 인생이 될 것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열 두 해가 지난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려 옵니다.
저는 고독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릇된 일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바람과 풀과 산과 하늘이 모두 제 곁에 있습니다. 저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과 후배들도 있습니다. 고독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하나 되어 홀로 있는 것입니다.
부디, 저의 이 선언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로 되는 것을 막아 주십시오. 하등의 의미도 없는 일로 되어 버리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별스럽게 다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1988 년에 {벅수의 외침}이라는 시집을 비매품으로 간행한 바 있습니다. 그때 시집 뒤에 적었던 말을 비슷하게 옮겨 볼까합니다.
여기에 실린 시편들은 제가 크리슈나무르티를 읽어 오면서 그때 그때의 느낌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순전히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관찰이 바탕이기 때문에 부끄러움은 있을지 언정 두려움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들 보편적인 인간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이 시들은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지켜본 결과일 뿐입니다.
저는 이 사회에서 그 어떤 형태의 성공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냥 외진 오솔길에 핀 풀꽃, 그 한 떨기 풀꽃에서 피어나는 향기 정도나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것마저도 분수에 넘치는 바램인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