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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9월 입니다. 이제는 가을이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겠지요? 하늬바람(가을바람) 솔솔부는 하늘공원으로 가을을 맞이하러 가 보았습니다.
계단에다가 번호표를 붙여 놓았군요. 계단 숫자를 세어보는 번거로움을 덜어 주었는데 웬지 서운한 감정이 드네요. 하늘공원 올라가는 길은 총 291개의 계단이 놓여 있습니다.
산딸나무 열매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딸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과즙이 달고 감미로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일인데 막상 어른들도 잘 모르는 과일입니다. "이거 먹어도 되는건가요?"하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도 과일의 울퉁불퉁한 생김새에 겁을 먹고 따지를 못합니다. 산딸나무는 기독교에서는 성스러운 나무입니다. 옛날 중동지방에는 재목으로 쓸만한 큰 나무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키도 크고 굵으며 재질이 단단한 재목감은 산딸나무 밖에 없었다는군요.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통치할 때 통상 처형하는 방법이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늘 산딸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특히 예수를 처형할 때는 그 마을에서 제일 크고 제일 무겁고 제일 좋은 산딸나무를 베어다가 제일 큰 십자가를 만들어서 처형을 했다고... "산딸나무야 다시는 십자가를 만들 수 있게 큰 나무로 자라지 말아라. 가늘고 구부정하고 잔가지들이 뒤엉킨 관목으로 자라거라. 꽃잎 끝 부분에는 피묻은 색깔로 못 자국을 표시할 것이며, 꽃 가운데는 가시나무 왕관을 표시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나를 기억하게 하리라"
어른들의 가식적인 포즈나 미소를 아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석양을 머금고 스프링쿨러가 힘차게 물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주변은 온통 가을을 맞이하느라 분주한데 이곳에서는 생명을 심어 놓고 봄을 맞이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계절은 그야말로 찰나. 그러니 봄과 가을은 한 몸입니다. 이곳에서 움트는 생명아! 힘차게 솟아올라라. 비록 짧겠지만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삶의 희열을 마음껏 느끼거라.
억새 병정이 양옆에서 호위하는 가운데 해바라기가 그 아름다움을 한 껏 뽐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해내지 못합니다. 그저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뿐.
억새풀 도종환
당신이 떠나실 때 내 가슴을 덮었던 저녁 하늘 당신이 떠나신 뒤 내 가슴에 쌓이는 흙 한 삽 떠나간 마음들은 이런 저녁 모두 어디에 깃듭니까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 자늑자늑 흔들리는 억새풀
저녁6시에 하늘공원에 올랐더니 금세 해가 지고 있습니다. 폐장 시간이 저녁8시라고 하니 마음이 급해집니다. 갈대숲과 한강과 그리고 계양산 너머로 지는 황홀한 해를 마냥 바라다보지 못하고 자리를 뜹니다.
억새와 해바라기 그리고 석양. 가을을 느끼기에 제법 궁합이 맞아들어 갑니다.
나들이 나온 모녀가 수확의 터널을 뛰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들 모녀의 얼굴에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은 수확의, 풍요로움의 계절이 맞는가 봅니다.
이 곳에서 가을을 맞으러 나온 모녀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는데요. 우리집을 놓고 볼 때 딸들은 아무래도 아빠보다는 엄마와 함께 산책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흔들리는 것들
나희덕
꽃길 옆으로 혹은 억새숲 사이로 걸어가는 연인들.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는 모습.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진 예쁜 모습들입니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와 같이 하실 땐 늘 앞장서서 걷곤 하셨지요. 저는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이 이상해서,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장가가면 색시 손을 꼭 잡고 걸어야지" 하고 생각하곤 했지요.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눈시울이 붉어 집니다. 나들이 나온 중년 부부의 모습에서 아련하고 애틋하게 아버지를 떠올려 봅니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김상희 노래
코스모스 한들 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갑니다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하늘공원에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갈대를 바라본 뒤 하늘공원 산책을 끝냅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습니다. 남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습니다. 가을은 갈대(억새)의 계절이 맞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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