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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마당: 생활 속의 고소설
(1) 속담이 된 고소설
허황된 이야기를 할 때, 지금도 우리는 “소설을 쓰고 있네.”라고 비꼰다.
소설의 허구성을 들어 상대방의 말이 현실적이지 못함을 꼬집는 관용적 표현이다. 물론 이 말을 모르는 이가 없으니 그만큼 소설의 허구성에 대한 이해를 대중적으로 획득한 셈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우리 고소설에는 이러한 관용적 표현이 어느 정도나 될까?
그것은 속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속담이란, 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 등 삶에 깨달음을 주는 짧은 글이다. 물론 상대방도 이 입말을 알아들어야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니, 그만큼 대중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우리 고소설에서 이런 속담이 생긴 것이 적잖다. 당시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얼마나 광범위하게 읽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예라 하겠다.
<온달전>
반달 같은 딸 있으면 온달 같은 사위 삼겠다: 아름답게 생긴 딸이라야 잘난 사위를 삼겠다는 말.
바보온달 [--溫達]: 출세하기 전의 ‘온달’을 이르던 말.
위 두 속담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온달(溫達, ? ~ 590년)은 고구려의 장군이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의 인물인 그는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저렇게 살아있다.
이 외에도 온달이야기가 『삼국사기』라는 역사서 속의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산재한다.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천연 동굴로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61호인 온달동굴이 그렇고, 사적 제264호로 지정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 역시 사적 제234호인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과 구의동에 걸쳐 있는 아차산성 또한 이 온달과 관련 있다.
<삼국지>
<삼국지연의>를 읽지 않은 사람조차도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량, 조자룡은 안다. 물론 진수의 <삼국지>라는 역사서가 널리 퍼져 이렇게 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요, 순전히 나관중(羅貫中, 1330? ~ 1400)의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에 연유한다. 나관중의 이름은 본(本)이며 관중은 자이다. ‘연의’란 역사적인 사실을 부연하였다는 뜻이다. <삼국지연의> 인기는 대단하였는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네 속담의 소재로까지 쓰였다. 그런데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인 관우는 속담에 아예 보이지 않고, 의외로 험상궂은 장비가 많다. 그런데 장비에 관한 속담은 썩 좋지는 않으니, 그저 덤벙대고 큰소리나 치고 싸움이나 하는 경우에 비유적으로 쓰인다. 진수에 <삼국지>에서 ‘관우는 호걸로서 자부심이 강했고 장비는 난폭한 것이 흠이었다.’고 하였다. 장비는 그래 부하인 범강과 장달이에게 잠자다가 목이 잘려 어이없이 죽고 만다. 어쨌든 속담에 많이 등장한다고 좋은 것도 아닌가보다.
유비부터 차례로 살펴보자.
유비가 한중(漢中) 믿듯: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는다는 말. 유비가 한중(지금의 중국 합시성 서남쪽 한수 상류에 있는 땅 이름) 왕이 되어 자신의 나라를 굳게 믿었다는 나온 말이다.
유비냐 울기도 잘한다: 잘 우는 사람을 이르는 말. <삼국지> 속에서 유비는 잘 운다.
장비군령(張飛軍令)이라: 성미 급한 장비의 군령이라는 뜻으로, 별안간 일을 당함을 이르는 말. 혹은 몹시 급하게 서두르는 일을 이르는 말.
장비 포청에 잡힌 것 같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처지를 이르는 말.
장비 호통이라: 큰 소리로 몹시 야단스럽게 꾸짖음을 이르는 말.
장비가 싸움을 마대: 자기가 즐기는 것을 남이 권하였을 때 흔쾌히 받아들이며 하는 말.
장비는 만나면 싸움: 만나기만 하면 시비를 걸고 싸우려고 대드는 사람을 이르는 말. 혹은 취미나 기호가 비슷한 사람끼리는 만나기만 하면 이내 그 일로 함께 어울림을 이르는 말.
장비더러 풀벌레를 그리라 한다: 세상에서 큰일을 하는 사람에게 자질구레한 일을 부탁하는 것은 합당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장비야 내 배 다칠라: 아니꼽게 잘난 체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비꼬아 이르는 말.
장비하고 쌈 안 하면 그만이지: 상대편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이쪽에서 상대하지 아니하면 싸움은 일어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제갈공명 칠성단에 동남풍 기다리듯: 제갈공명이 무엇을 잔뜩 기다리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같은 속담으로 ‘제갈량이 칠성단에서 동남풍 기다리듯’도 있다.
제갈량이 왔다가 울고 가겠다: 지혜와 지략이 매우 뛰어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구두장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 여러 사람의 지혜가 어떤 뛰어난 한 사람의 지혜보다 나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돈이 제갈량이다: 돈만 있으면 못난 사람도 제갈량같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조자룡이 헌 창(칼) 쓰듯: 돈이나 물건을 헤프게 쓰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이 칼을 잘 쓴다는 데서 비유.
조조는 웃다 망한다: 자신만만하며 웃다가 언제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는 말.
조조의 살이 조조를 쏜다: 지나치게 재주를 피우면 결국 그 재주로 말미암아 자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항우는 고집으로 망하고 조조는 꾀로 망한다: 고집 세우는 사람과 꾀부리는 사람을 경계하는 말.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중달을 도망치게 한다는 뜻. 뛰어난 인재는 죽어서도 제 몫을 다 한다거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미리 도망치는 겁쟁이를 지칭할 때 쓰는 말.
범강-장달이(范彊-張達이) 같다: 키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을 이르는 말. ‘범강’과 ‘장달(張達)’은 그들의 대장인 장비를 죽인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속담은 아니지만 <삼국지>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로서 속담 못지않게 실생활에 쓰이는 것이 적지 않다. 물론 이것은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통속연의>가 아닌, 진수의 <삼국지>에 본래부터 있던 것도, 또 중국에서 흔히 쓰던 용어도 있다. 그러한 고사성어 몇을 찾아 적자면 이렇다.
가도멸괵(假途滅Ϗ) : 길을 빌려서 괵을 멸한다는 뜻. 이는 옛날 고사에서 비롯 되었다. 주유가 길을 빌려 익주를 치는 척하면서 실로는 형주를 치려는 계획을 세우자, 제갈량이 이미 이를 간파하고 주유를 농락하였다.
간뇌도지(肝腦塗地) : 간과 뇌장을 쏟아낸다는 뜻. 사지에서 아두를 구해온 조운에게 유비가 도리어 아두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명장을 잃을 뻔 했구나!”라고 탄식하자 조운이 감복하여 “간과 뇌장을 쏟아내도 주공의 은공을 갚을 수 없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강노지말(强弩之末) : 강하게 날아간 화살도 멀리 날아가 끝에 이르러서는 비단결 한 장 뚫지 못한다는 뜻. 제갈량이 적벽전에 앞서 손권을 만나면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서는 강노가 조조의 병력을 뜻한다.
개문읍도(開門揖盜) : 문을 열어두고 도둑을 맞이한다는 뜻. 손책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손권이 자칫 슬픔에 젖어 국정을 그르칠까 두려워 장소가 충고하였다.
괄목상대(刮目相對) : 눈을 씻고 다시 서로를 상대한다는 뜻. 한낱 무장에 불과했던 오의 여몽이, 노숙의 권유에 책을 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식을 갖춘 지장으로 모습이 바뀌자, 노숙이 여몽을 칭찬하며 이 말을 하였다.
낙불사촉(樂不思蜀) : 즐기느라 촉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 어리석은 유비의 아들 유선이 촉 멸망 후 사마소를 뵙는 자리에서 “너무 즐거워서 촉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
난공불락(難攻不落) : 학소가 지키는 진창성이 쉽사리 빼앗기지 않자, 제갈량이 감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낭중취물(囊中取物): 주머니 속의 물건을 얻듯 쉬운 일을 일컫는 말. 관우가 안량의 목을 베어 오니 조조와 수하 장수들은 그의 무용을 치하한다. 그러나 관우는 오히려 겸손함을 표시하면서, “내 아우 장비는 그 용맹이 대단하여 100만 대군 속에서 적장의 목을 베어오길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을 취하듯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단기천리(單騎千里) :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을 묘사한 고사. 말 하나를 타고 혼자 몸으로 천리를 내달린다는 뜻이다.
단도부회(單刀赴會) : 칼 한 자루를 들고 모임에 나간다는 뜻으로, 여기서 모임이란 위험한 자리를 뜻한다. 관우를 초청하여 죽이겠다는 노숙의 궁벽한 꾀에 대해 관우는 청룡도 한 자루만 들고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도리상영(倒履相迎) : 신을 거꾸로 신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왕찬에 대한 설명 중, 그의 스승 격인 채옹이 왕찬의 방문에 신마저 거꾸로 신고 나가서 환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도원결의(桃園結義) : 복숭아나무 정원에서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이 의형제 결의를 맺고 황건적 토벌에 나선 것을 말한다.
득롱망촉(得籠望蜀) : 조조가 한중을 얻고 허창으로 되돌아가려 할 때, 사마의가 조조에게 권하길, “이 기회를 틈타 유비가 있는 촉을 얻으십시오”라고 하였으나, 조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옛말에 농지방을 얻고 촉을 바란다더니, 욕심이 과하군”이라 답변하였다.
돈견(豚犬) : 조조가 천하통일에 나서서 25만 대병력으로 장강 연안에 포진하고 주유와 제갈량은 이에 맞서 결전한 것이 유명한 '적벽대전' 이다. 이때 수전에 익숙치 못한 조조는 화공작전이라는 기략에 휘말려 대패했다. 조조는 그 후에도 자주 손권을 치려고 했으나 끝내 무찌르지 못했다. 조조는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가지려면 손중모와 같은 자를 갖고 싶다. 앞서 항복한 형주의 유표 아들 따위는 돈견과 같다 (生子當如孫仲謨, 劉景升兒子, 苦豚犬耳)." <삼국지> 주해에 '돈견'은 '돈아견자(豚兒犬子)'로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자기 아들을 낮추어 말할 때 '돈아'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돈견'이라는 악담을 뒤집어보면 쉽게 무찌를 줄 알았다가 의의로 적벽에서 패한 것을 원통해 하는 심정도 숨겨져 있을 것이다.
망매해갈(望梅解渴) : 조조가 전쟁 중에서 물을 구하지 못하여 그 병사들이 갈증을 이기지 못해 사기를 잃자, 조조는 “조금만 가면 매실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견뎌라”라고 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백리지재(百里之才) :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 노숙이 방통을 유비에게 추천하면서 방통을 이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구절을 “방통은 백리를 다스릴 인물이 아니다”라고 풀이한다.
복소지란(復巢之卵) : 공융의 두 아들이 한 말. 둥지가 부서지면 알이 성할 리가 없다는 뜻. 공융이 조조의 노여움을 사 끌려가자, 그의 비복들이 그 두 자제에게 몸을 피하라고 권했지만, 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비육지탄(悲肉之歎) : 유표의 부름을 받은 유비가 문득 눈물을 흘리며 “그 동안 말을 타지 않았더니 허벅지살이 붙었습니다.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이룬게 없으니 한심하군요.”라고 말하며 한탄한데에서 비롯되었다.
삼고초려(三顧草廬) : 유비가 융중 와룡 언덕의 작은 초가에 은거하던 제갈량을 얻기 위해 세 번이나 방문하였다.
세한지송백(歲寒之松柏) :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기상은 겨울이 되어야 안다. 조조에게 투항한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관우와의 전투에 참여한 방덕이, 패한 뒤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린 것을 일컫는 말이다.
소향무적(所向無敵) : 이르는 곳마다 맞설 싸울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막강한 세력을 뜻한다. 조조가 형주를 얻고는 기고만장해져서 손권에게 투항하라는 뜻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주유가 이에 반대하면서, “우리 군은 가는 곳마다 이기고 대등하게 대적한 자들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수어지교(水魚之交) : 유비는 제갈공명을 책사로 삼은 후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그러자 관우나 장비는 불만을 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제갈공명(이 때 공명의 나이는 28세)만 중하게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 등은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계륵(鷄肋) : 닭 가슴뼈. 계륵은 본디 먹자니 먹을 게 없고 그렇다고 버리긴 아까운 것이다. 조조와 유비의 한중 전투에서 조조가 유비를 도모하고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자 무심코 이 말을 하였는데, 당시 주부였던 양수가 이를 해석하길, “유비를 취하고자 하나 번번이 실패하고, 그렇다고 무작정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두렵다”며 조조가 은밀히 퇴각할 것을 명하였다고 판단한 나머지, 미리 행장을 챙기다가 조조의 오해를 사 죽음을 당하였다.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 :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사이를 뜻한다. 촉의 명장 위연은 국내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어서 누구든 두렵게 여겼는데, 오직 장사 양의만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고 그와 자주 맞서곤 했다.
식소사번(食少事煩) : 적게 먹고 일은 많이 한다. 사마의가 제갈량의 사신에게 이 말을 하면서, 제갈량은 얼마 안가 죽으리라고 예언하였다. 이를 들은 주부 양옹이 제갈량에게 담당하는 군무의 양을 줄이라고 건의했으나, 제갈량은 선주의 은총을 떠올리며 거절한다.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도리어 근심을 사게 된다는 말. 서서가 조조의 꾀에 빠져 모친을 만나러 허창으로 올라오자, 서서의 모친이 그에게 이렇게 말하며 목을 매달아 자결했다고 한다.
신은구의(新恩久義) : 새로운 은혜, 오래된 의리라는 뜻으로, 은혜는 조조에 대한 것이요, 의리는 유비에 대한 것이다. 관우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조조의 호의에 감사히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비를 잊지 않았다.
언과기실(言過其實) : 실제보다 말이 더 앞선다는 뜻. 제갈량이 마속을 높이 평가하자, 이에 대해 유비가 “그는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나 실제로는 대단한 게 없으므로 그를 높이 기용하지 말아라”라고 충고하였다. 제갈량은 마속을 죽일 때 이 글귀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언출위론 하필성문(言出爲論 下筆成文) : 말을 하면 경론이고 붓만 들면 명문이라는 뜻. 건안문단의 일인자로 꼽히는 조식에 대한 평이다.
오관육참(五關六斬) : 다섯 관문에서 여섯 명을 벤다는 뜻. 관우가 원소 밑에 있던 유비를 만나기 위해 그를 가로막는 다섯 관문의 장수 여섯을 베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는 고사성어. 목이 관우의 청룡도 위에 올라앉은 오관은, 동령관의 공수 ․ 낙양관의 한복과 맹탄 ․ 사수관의 변희 ․ 형양관의 왕식 ․ 황화관의 진기이다.
우도할계(牛刀割鷄) :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 동탁이 사수관을 지킬 장수를 뽑을 때 여포를 보내려 하자, 화웅이 여포를 소 잡는 칼, 손견을 닭에 비유하며 자신의 출전을 요청하였다.
원문사극(轅門射戟) : 여포가 원문에서 150보 거리에 놓아둔 화극의 곁가지를 화살로 쏘아 맞춘 일. 이로써 교전을 앞두던 원술의 부장 기령과 유비는 화해를 하게 되었다.
육출기산, 구벌중원(六出祁山,九伐中源) : 기산에 여섯 번 나가고, 중원을 아홉 번 어우른다는 뜻. 각각 제갈량과 강유가 북벌을 여섯 번, 아홉 번 시도한 것을 뜻한다.
읍참마속(揖斬馬謖) :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다. 가정 전투에서 패한 마속을, 군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참형에 처하면서 제갈량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일룡분이호(一龍分二虎) : 한 마리의 용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갈라놓다. 관우와 장비의 싸움을 말린 유비에 대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절영지회(折纓之會) : 갓끈을 끊는 연회라는 뜻. 옛 고사에서 비롯됨. 이유가 이 고사를 예로 들어 동탁에게 간언하길 초선을 여포에게 내리면 여포의 충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진복론천(秦宓論天) : 촉의 진복이 오의 사신 장온과 하늘에 대해 논한 일. 여기서 장온은 진복의 논리정연한 말과 해박한 지식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창서칭상(倉舒秤象) : 조조의 아들 창서가 오에서 보내온 코끼리의 무게를 잰 고사를 말한다. 조창서는 이름이 충이고 창서는 그의 자이다. 조조가 그의 아들 중 가장 총애할 만큼 재주가 남달랐지만,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빛을 보지 못하였다.
청경우독(淸耕雨讀) : 맑을 땐 밭을 갈고 비가 올 땐 책을 읽는다. 제갈량은 병영에서도 이런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천계일봉(千鷄一鳳) : 닭 천 마리 중에 봉황이 한 마리가 있다는 뜻. 황건적 장수인 절천야차 하만이 조조 군영을 농락하며 등장하자, 조홍이 이렇게 외치며 그와 맞섰다.
칠종칠금(七縱七擒) :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 제갈량이 남정을 떠나 남만왕 맹획과 싸워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풀어준 후에 그의 진정한 항복을 얻어냈다.
침불안석, 식불감미(寢不安席,食不感味) : 누워도 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말로, 위로 강대한 적을 둔 그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탄금주적(彈琴走賊) :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낸다는 뜻. 제갈량이 가정전에서 패한 후 서성에서 사마의의 10만 대군과 맞설 때, 단 3천 병력으로 적을 막아내지 못함을 알고 거문고 울림으로 손쉽게 적을 쫓아냈다. 이때 사용된 계책이 공성지계이다.
투서기기(投鼠忌器) : 쥐를 잡다가 독을 깬다는 뜻. 허전의 사냥에서 조조의 방자한 행동을 목격한 관우가 칼을 들어 그를 베려 할 때, 유비가 가만히 그를 만류하며 이 말을 하였다.
할수기포(割鬚棄袍) :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린다는 뜻. 동관에서 마초와 맞닥뜨린 조조가 그에게 패하여 도망갈 때, “비단 도포를 입은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도포를 버리고, “수염이 긴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수염을 잘랐다고 한다.
호부견자(虎父犬子) : 호랑이 아들에 개 아들이라는 말로, 촉을 차지하여 나라를 세운 유비에 비하여 그 나라를 주색으로 망쳐버린 우매한 아들 유선을 비교한 말이다.
회귤고사(懷橘故事) : 오의 육적이 원술의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가하였을 때, 모친을 생각하여 귤을 품어 달아났다는 고사.
<소대성전>
소대성이 모양으로 잠만 자나: 잠이 많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소대성이 이마빡 쳤나’도 유사한 속담이다. <소대성전>에서, 자신을 알아주던 이 승상이 세상을 뜨자, 실의에 잠긴 소대성이 과거 공부도 그만두고 누워서 잠만 자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파생된 속담이라 하겠다. <낙성비룡>의 주인공인 경모도 게으르고 잠자기를 좋아했지만 후일 정승이 되었으니, 독자들도 이제 그만 책을 놓고 잠을 청하는 것이 어떠실지.
소대성이 점지를 했나: 소대성이 모양으로 잠만 자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수호전>
배장사: 남의 비밀을 탐지해서 말을 만들어 말썽을 피우는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호전>에 나오는 인물인 배장사에 유래한 말이다.
장도감(張都監):큰 말썽이나 풍파를 이르는 말. <수호지>에 나오는 장도감의 집이 풍파를 만나서 큰 피해를 입고 뒤죽박죽이 되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장도감(을) 만나다: 큰 말썽이나 화를 당하다.
(야단) 장도감(張都監)을 치다 : 함부로 야단을 치며 크게 말썽을 일으키다.
<수호지>에 나오는 이야기로 장도감이라는 사람이 무대의 아내인 반금련(潘金蓮)과 연회를 벌이고 있는데 무송이 쳐들어와서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이로부터 함부로 야단을 치며 말썽이나 풍파를 일으키는 일을 ‘장도감’이라고 하고 그렇게 난리를 치는 것을 일러 ‘장도감을 친다’, 혹은 ‘야단 장도감(張都監)을 친다’라고 하게 되었다.
<수호전>을 통하여 알려진 고사성어도 여럿인데 그 중, 몇 개만 보자.
타초경사(打艸驚巳) : 본래 이 용어는 병법 ‘삼십육계(兵法 三十六計)’중 제13계이고, 단성식이 쓴 『유양잡조』라는 글에도 보이지만 <수호전>을 통해 더욱 널리 쓰였다. 뜻은 ‘풀을 두들겨서 뱀을 놀라게 한다’는 말로, 생각 없이 한 일이 뜻밖의 결과를 낳게 하거나 주도면밀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 하여 상대의 경계심을 불러 일으켰을 때, 또 이 사람을 훈계하여 저 사람을 깨우친다는 의미 등으로 사용한다.
<수호전>에서 이 말은 송강(宋江)이라는 자가 양산박(梁山泊)에 근거지를 두고 동평부(東平府)를 공략하려고 할 때 나온다.
송강을 따르던 사진이 계책을 하나 제시했는데, 자신이 다니던 가기의 집을 거점으로 삼아 성안에 불을 질러 아군이 공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송강은 이 계책을 받아들였다. 사진은 먼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변장을 하고 가기의 집을 찾았다. 그 가기는 사진이 산채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노파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사진의 신분을 말하게 되었고, 노파는 놀라 빨리 관가에 고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노파의 남편이 노파를 만류하지만 듣지 않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풀을 두들겨서 뱀을 놀라게 하다(打草驚巳)’라는 속담처럼 되면 안 되잖소. 소란을 피워 그가 도망치도록 하면 일을 그르치게 되오. 그러니 그를 체포할 수 있도록 한 연후에 관가에 고발합시다.”
사해형제: 세상 사람들은 모두 형제와 같다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친밀하게 이르는 말.
복마지전(伏魔之殿):악마가 숨어있는 전당. 또는 나쁜 일이나 음모 등이 끊임없이 꾸며지고 있는 곳을 말함.
<숙향전>
숙향전이 고담(古談)이라: <숙향전>을 ‘고담’이라한다. 고담은 ‘옛 이야기’라는 뜻으로 일찍이 소설류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1754년(영조 30년)에 이루어진 <만화본춘향가 晩華本春香歌> 에 이 <숙향전>이 언급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그 이전에 창작되어서 당시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배비장전> 같은 다른 소설에서는 남녀 주인공 이선과 숙향의 행적이 고사처럼 인용되기도 하였으니 <숙향전>의 인기를 엿 볼 수 있다.
이 속담은 소설 <숙향전>이 옛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여자의 운명이 평탄치 못하여 고생만 하다가 끝내 좋은 때를 만나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였다.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항다반사로 벌어진다. 이 시절도 그러한데, 저 시절, 더욱이 여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참 만만찮은 생일거리였으리라. 저시절 여인들의 삶이야, 양반가이든 상민가이든 아롱이다롱이가 아니었을까. 저 시절 여인들 일생의 10할 중, ‘9할의 고통에 희망을 1할’로 치면 셈이 잘못된 것일까? 더욱이 ‘희망(希望)’이란 놈은 태생이 ‘바랄희(希), 바랄망(望)’이라는 동사니, 그나마 1할조차의 희망도 그래 ‘바람’으로 끝났는지 모르겠다. 그저 목숨 부지하고 사는 것만도 황송한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니, ‘숙향전은 옛날이야기 속에나 있다’는 저러한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각설하고 <숙향전>의 말미를 보자. 천애 고아였던 숙향이 저리도 잘되었다.
숙향부인이 초왕으로 봉해진 남편 이 선에게,
길을 떠나신 후에 북창 앞의 동백나무 가지가 날로 쇠진하므로 돌아오시지 못하실까 주야 로 염려되기로 대신 박명한 목숨을 끊기로 천지신명께 기약하옵더니, 하루는 꿈에 마고할미가 와서 말하기를 이상서를 보려거든 따라 오라기에 한 산골로 들어가 보니 큰 궁전에서 상공을 보고 왔사옵니다. 상공이 아무리 양왕의 딸과 혼사를 사양하셔도 이미 하늘이 정한 배필이니 아니치 못하리다.
숙향의 그 말을 듣고 이 선이 천태산 선녀의 집에 갔던 일을 말하고, 양왕의 딸이 알고 보니 전생에 자기의 아내였던 것을 말한즉, 숙향부인이 더욱 혼인을 권하더라.
이때에 양왕이 초왕의 부친 위왕에게 권하였으므로, 마침내 설중매(梅香를 제 二부인으로 맞아들이기로 설정하였으니, 택일 성례하게 되어서 황제가 그 소문을 들으시고 크게 기뻐하셔서 숙향을 정렬왕비(貞烈王妃)를 봉하시고, 매향을 정숙왕비(貞淑王妃)를 봉하시었다. 그리하여 매향공주는 김승상 부부를 부모같이 섬기고, 숙향부인은 양왕 부부를 친부모같이 대접하였다. 그리하여 삼위(三位)의 부부가 화락하여 숙향부인은 이자 일녀(二子一女)를 두고 매향부인은 삼자 이녀(三子二女)를 두어서, 한결같이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벼슬이 높고 자손이 번성하니라.
<온달전>
바보온달(-溫達): 출세하기 전의 ‘온달’을 이르던 말로 흔히들 바보 같다는 의미로 사용.
반달 같은 딸 있으면 온달 같은 사위 삼겠다: 고운 딸이 있어야 잘난 사위를 맞을 수 있다는 뜻으로, 내가 가진 것이 좋아야 맞먹는 좋은 것을 요구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혹은 자기 것이 허물이 없어야 남에게도 허물이 없을 것을 요구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온달전>의 ‘온달(溫達)’ 또한 성과 이름이 아닌 점으로 미루어 ‘온달’, 즉 ‘꽉 찬 한 달’ 혹은 ‘음력 보름날의 가장 둥근 달’이란 뜻의 온달과 동음이다.
<임진록>
사명당(의) 사첫방 (같다): 매우 추운 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명당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갔었는데 사명당을 죽이려고 쇠로 만든 방에 가두고 불로 달구었으나 오히려 얼어 있었다는 <임진록>에서 유래하였다.
사명당이 월참하겠다: 추위에 잘 견디던 사명당조차 쉬어 가지 않고 지나쳐 버릴 것이라는 뜻으로, 방이 몹시 추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래 속담 역시 위와 동일한 경우를 이른다.
<장인걸전>
강남 연쇄(쇠)와 같다: 영리하고 민첩한 사람을 지칭한다. 이 속담은 현재의 국어사전에는 찾아 볼 수 없는데 <장인걸전(張人傑傳)>에서 유래한 듯하다.
‘강남 연쇄(쇠)와 같다’라는 속담을 이해하려면 <장인걸전>의 대략이나마 알아야 한다.
고려 충숙왕 때 사람인 장익은 재산은 많으나 자식이 없어 재산을 흩어 선행을 쌓은 결과 아들을 얻는다. 아들 인걸은 장성하여 독서와 무예를 익히던 중 13세에 부모를 잃는다.
15세에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하지만 조정에서는 인걸에게 벼슬을 주지 않는다. 3년이 지나도록 벼슬을 하지 못한 인걸은 한량ㆍ창부와 더불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친구인 우직이 절세미인 정소저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에 혹하여 매화동에 가서 정소저와 가약을 맺는다.
밤에 정소저의 아버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인걸은 벌거벗은 채로 궤 속에 들어가 숨는다. 아버지가 그것을 알고 궤를 도끼로 치라고 하다가, 바다에 갖다버리라고 한다. 인걸은 하인들에게 애원하여 겨우 살아난다. 그러나 그것은 친구 우직이 인걸의 돈을 후려내기 위한 술책이었음이 밝혀진다.
재산을 모두 탕진한 인걸은 실의 끝에 자살하려고 송악산에 올라갔다가 청파역의 역리(驛吏)를 만나 그의 권고로 재변(災變)으로 폐읍이 된 인주목사를 자원한다. 인걸은 부임하여 이방의 집 대문의 자물쇠에 접신(接神)한 강남인 이연쇄(李連鎖)의 지시를 받아 밤만 되면 처녀들을 괴롭히는 수백 년 묵은 원숭이를 퇴치한다. 또 수천 년 묵은 여우를 퇴치함으로써 인주의 재변을 없앤다. 이에 국왕은 인걸에게 병부상서를 제수한다.
이때 인걸이 퇴치한 암여우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여진(女眞)으로 들어가 여진의 장군이 되어 고려를 침공하려고 한다. 이에 장상서는 대원수가 되어 출정한다. 장원수는 호주머니에 간직하던 자물쇠를 내어놓고 이연쇄에게 적을 물리칠 계교를 물어 적장을 죽이자, 적장이 구미호로 변한다. 장원수가 여진의 항복을 받고 돌아오니 국왕은 그를 승상으로 삼는다.
한편, 암여우 중 나머지 한 마리가 중국으로 들어가 황제의 계후(繼后)가 되어 장인걸을 중국으로 불러들인다. 장승장은 또 이연쇄의 지시를 받아 천신만고 끝에 선계로 신선을 찾아가서 보라매를 얻어 중국으로 간다. 황제 앞에 나아간 장승상이 보라매를 내어놓는다. 보라매가 내전으로 날아가서 황후의 두 눈동자를 빼니 구미호가 되어 죽는다. 황제는 연유를 듣고 기뻐하며 장승상을 천하병마대도독으로 삼는다.
단간ㆍ가달ㆍ월지의 삼국이 연합하여 중원을 침공하니 장도독이 출전하여 이들을 격퇴시킨다. 고려왕이 장인걸이 보고 싶어 중국에 들어가 데리고 나오려하였으나 황제는 장인걸을 아껴 보내려 하지 않는다. 장인걸은 다시 이연쇄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꾀를 청하니 한 번 더 전공을 세우면 된다고 한다. 장인걸은 이연쇄의 청을 들어 그의 아내와 아들을 찾아온다. 강남인 이연쇄는 아내와 아들에게 자기가 죽은 내력을 이야기하고 장인걸에게도 이별을 고한다. 장인걸은 자물쇠를 이연쇄의 아내와 아들에게 건네준다. 황제는 대신들의 상소로 할 수없이 장인걸을 환국시킨다. 고국으로 돌아온 장인걸은 다시 승상이 되어 선정을 베풀다가 나이 70세가 되어 관직에서 물러나 방장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된다.
<장인걸전>의 주인공인 장인걸은 이렇듯 ‘자물쇠에 접신(接神)한 강남인 이연쇄(李連鎖)’의 혼령에 의하여 난관을 헤쳐 나간다. <장인걸전>은 아마도<배비장전(裴裨將傳)〉과 <이화전(李華傳)〉을 모방하고, 여기에 두 작품의 줄거리를 확장하고 독창적인 내용을 첨가시킨 소설이 아닌가한다. 영리하고 민첩한 사람을 지칭할 때, ‘강남 연쇄(쇠)와 같다’라는 속담을 비유했다는 것에서 <장인걸전>이 적지 않게 읽혀졌음을 알 수 있다.
<조웅전>과 <이대봉전>
1조웅(一趙雄) 2대봉(二大鳳): 첫째는 <조웅전>이요, 둘째는 <이대봉전>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군담 소설로 으뜸자리를 차지하는 <조웅전>과 <이대봉전>의 인기도를 실감할 수 있는 속담이다. 현존하는 고소설 이본 총목록을 보아도 400여 편으로 <조웅전>이 역시 최고이다. 다만 <이대봉전>은 명실만큼 이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겨우 100여 편을 상회할 뿐이다.
<춘향전>
춘향이가 인도환생을 했나: 춘향이가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났느냐는 뜻으로, 마음씨 아름답고 정조가 굳은 여자를 이르는 말.
춘향이네 집 가는 길 같다: 이 도령이 남의 눈을 피해서 골목길로 춘향이네를 찾아가는 길과 같다는 뜻으로, 길이 꼬불꼬불하고 매우 복잡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억지 춘향(이):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이루게 하려거나 어떤 일이 억지로 겨우 이루어지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흔히들 변사또가 춘향으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고 핍박한데서 나온 말이라 이해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춘향이와 이몽룡의 혼인이 다소 억지라고. 사실 춘향이와 같은 기생이 어찌 이몽룡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겠나? 하다못해 지금도 TV연속극을 보면 사장의 딸과 평사원, 또는 그 반대인 경우, 좀 혼인으로 이어지는 것이 어려운가. <춘향전>을 읽을지언정 저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 속담에서 ‘양반과 상놈, 적서차별’이란 조선조의 신분제도가 얼마나 굳세었는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신분제가 공적으로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이나, 현재까지도 대학의 차별과 T.V 드라마 등에서는 생생히 살아있어 그 힘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춘향 어멈 같다: 말 잘하는 사람이나 넋두리 잘하는 삶을 일컫는 말.
춘향이 집 가리키기: 이 도령이 “네 집이 어디냐”는 물음에 춘향이 답하지 않고 방자가 대신 답하는데 꽤나 까다롭고 복잡한 데서 나온 말.(이본마다 다르다.) 집을 찾아가는 길이 복잡할 때 하는 말. ‘춘향이 집 가는 길 같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춘향이 집 가는 길’도 같은 속담이다.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춘향이의 집을 방자가 설명하고 있는데, 길치들은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언감생심이다. 자구마다 한자라 번역을 해 놓았으니 독자들께서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일찍이 포기하였다.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지시 들어 가리키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못은 맑고맑은 데 기르는 물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그 가운데 선경에 있다고 하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난만하여 나무나무 앉은 새는 대단한 사치를 자랑하고 바위 위의 굽은 솔은 맑은 바람이 건듯 부니 늙은 용이 몸을 구부렸다 일으켰다 하는 듯하고 문 앞의 버들은 있는 듯 없는 듯한 버들가지요, 들쭉나무 측백나무 전나무며 그 가운데 은행나무는 음양을 좇아 마주 서고 초당의 문 앞에는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덩굴 나무 넌출 휘휘친친 감겨 나지막한 담 밖에 우뚝 솟았는데 소나무 정자가 죽림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게 춘향의 집입니다.”
<홍길동전>
홍길동이 합천 해인사 털어먹듯: 무엇을 아무것도 남기지 아니하고 싹싹 쓸어가거나 음식을 조금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먹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임진왜란 때도 화를 입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그만큼 재앙이 없었다는 소리니 재물이 적잖이 모였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 해인사에는 중도 많았다. “합천 해인사 밥이냐”는 여기서 연유된 속담이다. 이 속담은 밥이 늦었을 때 이르는 말로 해인사 스님들이 하도 많아 밥 짓는 것이 따르지 못하는데서 연유한 말이다. 완판본 <홍길동전>을 보면 중이 ‘수천 명’이요, 재물을 탈취한 것이 ‘수 만금’이라하였다.
제 각기 홍길동이지: 단합하는 세력이 제 각각일 때 쓰는 말.
홍길동이 같은 놈: 비상한 재주와 힘을 지니고 있는 자를 이르는 말.
홍길동이 재주: 비상한 재주를 이르는 말.
<흥보전>
놀부 부인: 얌치없는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놀부 심사(심보)라 : 인색하고 심술궂은 마음씨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놀부환생’도 같은 의미이다. 도대체 놀부의 심술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 참고로 이본마다 심술보가 다르다. 오늘날 껌 좀 씹고 침 좀 뱉는 고약한 불량배 정도가 아니다. 저 정도면 심각하게 민폐를 끼치는 버르장머리 고약한 심술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놀부 심사를 볼작시면 초상난 데 춤추기, 불붙는 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 잡기, 장에 가면 억지로 흥정하기, 집에서 몹쓸 노릇하기, 우는 아이 볼기 치기, 갓난 아이 똥 먹이기, 무죄한 놈 뺨 치기, 빚값에 계집 빼앗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아이 밴 계집 배 차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일찍 익는 벼 심은 논에 물 터놓기, 잦힌 밥에 돌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 자르기, 논두렁에 구멍 뚫기, 호박에 말뚝 박기, 곱사장이 엎어 놓고 발꿈치로 탕탕치기, 심사가 모과나무의 아들이라. 이놈의 심술은 이러하되, 집은 부자라 호의호식하는구나.
놀부: 심술궂고 욕심 많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박(을) 타다: 기대하던 일이 틀어져 낭패를 보았다는 말. 놀부가 흥보처럼 금은보화를 기대하고 박을 탔으나 기대와는 다르게 혼쭐만 난데서 나온 속담이다.
반대로 소설 속에 들어 있는 속담을 통해서도 고소설 속에 투영된 대중적인 호흡을 읽을 수도 있다. 그 몇을 찾으면 이렇다. 표기는 모두 현대어로 옮기었다.
내 목숨이 함정에 든 범이요, 독에 든 쥐라: <장익성전>․<김학공전>
닭의 입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아라: <장백전>
하룻강아지 맹호를 모르는 격이라: <권익중전>
속담에 이르기를 탐화봉접(探花蜂蝶)이라 하였으니: <김학공전>
범이 바람을 만나고 용이 구름을 얻음: <최고운전>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격: <두껍전>
그림 가운데 격: <양산백전>
그물에 벗어난 새요, 함정에 뛰어 든 범이라 : <별주부전>
까마귀 암컷 수컷을 분별키 어려움 같을 뿐: <제마무전>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하나니: <유문성전>
우물에 앉아 하늘을 봄: <명사십리>
개밥에 도토리요, 꿩 잃은 매가되니: <심청전>
얼크러진 그물이 되고 쏟아 놓은 쌀이로다: <심청전>
오뉴월 까마귀 곤수박 파먹는 듯 밤낮없이 파먹는데 : <심청전>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못 한다하니: <흥부전>
칠 년 대한(大旱)에 대우(大雨)를 기다리듯: <흥부전>
구년지수(九年之水)에 볕발을 기다리 듯: <흥부전>
초상난데 춤추기, 불붙는데 부채질하기 : <흥부전>
동냥은 아니준들 쪽박까지 깨치릿가 : <흥부전>
손잰 중이 비질하듯, 상좌 중이 법고치듯: <흥부전>
장사나면 용마나고, 문장나면 명필난다: <장끼전>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며, 물 본 고기 어항을 두려워할까: <장끼전>
우물 밑에 개구리요, 학철에 노는 고기라: <장끼전>
염불법사 염주메듯: <춘향전>
물각유주(物各有主)를 모르는도다: <춘향전>
종다리새 열씨 까듯 다 외워 바치라더냐? : <춘향전>
지신(知臣)은 막여주(莫如主)요, 지자(知子)는 막여부(莫如父)라: <춘향전>․<별주부전>
계집의 꼭한 마음 오뉴월 서리 내리듯: <춘향전>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 구멍 생쥐 눈 뜨듯: <춘향전>
속담이 이르기를 이향즉천(離鄕卽賤)이라: <별주부전>
정주동, 고대소설론, 형설출판사, 1966, 229-230에서 옮김.
(2) 그림이 된 고소설
그림이 된 고소설, 이를 ‘고소설도(古小說圖)’라 부른다. 고소설을 그림으로 그린 최초의 것은 완산이씨의 중국소설회모본(中國小說繪模本)이다. 그림은 화원 김덕성(金德成, 1729~1797)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판각은 누가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서문은 둘이다. “임오년(1762년) 윤(閏) 5월 9일 완산 이씨가 장춘각(長春閣)에서 쓰다.”와 “임오년(1762년) 윤(閏) 5월 9일 완산 이씨가 여휘각(麗暉閣)에서 쓰다.”
임오년이 영조38년 1762년은 틀림없는데 ‘완산(完山;전주) 이씨’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 어머니인 영빈 이씨(1696~1764)로 추정(박재연 편, 중국소설회모본, 강원대학교출판부, 1993 참조.)하였는데, 최근에 영빈 이씨의 아들인 비운의 왕세자 장조(莊祖, 사도세자, 1735 ~ 1762)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유는 ‘장춘각’과 ‘여휘각’이 모두 사도세자가 거처하던 곳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중국소설회모본은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27세(1762년·영조 38년)에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가 옳고, 그가 죽기 나흘 전인 윤 5월 9일에 쓴 최후의 친필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11쪽에 이르는 서문에 보이는 <금병매>․<육포단>․<옥루춘> 등 같은 연정소설보다 더한 음사(淫詞)소설, 천주교 서적 등의 위상이 흥미로워진다. 당시 대리청정 중이었던 왕세자가 드러내 놓고 절대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이기에 말이다.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에겐 안 된 일이지만, 우리 고소설의 영역은 왕세자로까지 확장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 책은 중국 소설의 삽화를 모사한 화첩을 다시 판각한 것인데, 93종의 서명과 128폭의 그림(판각)을 실었다. 우리가 잘 아는 <서유기> 한 편만 보자.
<서유기>에서 손오공(孫悟空)의 고향인 화과산(花果山)을 "일년 사계절 꽃이 피고 일년내내 과일이 가득한" 선인들이 산이라고 묘사했다. 중국 동부의 강소(江蘇)성 연운항(連云港)시에 화과산이 있는데, 바로 <서유기>에 묘사된 그 선인의 산이라고 한다.
여기에 언급된 소설명 가운데 오기가 상당수 보인다. 박재연 편, 완산이씨작, 『중국소설회모본』, 강원대출판부, 1993년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開闢演義』: 原名은 『開闢演繹』이다.
『三國志』: 『三國志通俗演義』를 축약하였다.
『殘唐演義』: 『殘唐五代史演義傳』을 가리킨다.
『焦史演義』: 『樵史通俗演義』를 가리킨다.
『玉巧利』: 『玉嬌梨』의 誤記이다.
『弁以釵』: 『弁而釵』의 誤記이다.
『鳳嘯梅』: 『鳳簫媒』의 誤記이다.
『盛唐演義』: 『說唐演義』의 오기로 보여 진다.
『西洋記』: 『三寶太監西洋記通俗演義』를 축약하였다.
『金屛梅』: 『金甁梅』의 誤記이다.
『玉樓春』: 『覺世姻緣玉樓春』을 축약한 것이다.
『鬧花叢』: 『新鐫批評繡像鬧花叢快史』를 축약한 것이다.
『何澗傳』: 『河間傳』의 誤記이다.
이외에 고소설을 그림으로 그린 대표적인 것은 구활자본 표지와 그 속에 있는 삽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그림은 모두 소설의 시각화를 꾀한 것으로 작품의 판매에 꽤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민화로 그려진 고소설도를 찾아보자.
1) <구운몽>
민화로 그려진 <구운몽도>.
성진과 팔선녀가 인간세상으로 태어나기 전의 천상계 모습이다.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던 중, 위부인의 명으로 육관대사에게 가던 팔선녀를 석교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구운몽’의 주인공들이 여기 다 모여 있다. ‘구운몽(九雲夢)’이란, 성진과 8선녀를 합하여 아홉 구(九)요, ‘뜬구름처럼 덧없음이 구름 운(雲), 꿈, 몽(夢이다. 그 아홉 주인공을 다 그려 놓았다. 저 아홉 선녀는 후일 성진과 2처 6첩이라는 인연을 맺는다.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성진은 ‘공공의 적’인 셈이다. 어찌 남성에게 여성은 제한 없이 모든 것을 줄 숙명적인 존재로 머물러야한다는 말인가. 조선시대 여성에게 ‘여성’은 평생 지고 갈 ‘업’이었다.
이 그림은 19세기의 그림으로 시즈오카 시립 세리자와케이스케 미술관 소장되어 있다. <구운몽>이라는 소설이 명성을 짐작케 한다.
정병설, 「구운몽도 연구」, 『한국고전문학연구』30집, 2006.
2) <삼국지>
① 전쟁도
서울 동묘에 있던 <삼국지도>
윤열수 <민화이야기> 304~307까지 그림 넣을 것
② <담채삼국지설화도>
이 그림은 위와 같이 <삼국지>의 내용 중 인상적인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의복의 양식은 우리 식으로 표현되었으며 과장적인 표현이 많다. 삽화적 수준의 그림이지만 <삼국지>의 대중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경기대 박물관 소장 가로 : 36 cm / 세로 : 91.5 cm 민화
3) 춘향전
① <춘향도>
명성황후가 소장했다고 전해지는 <춘향도>이다. 독립기념관이 마련한 명성황후 특별전에 전시되었다. 고소설이 궁궐에 들어 간 것은 이미 꽤 오래된 일이지만 구체적으로 명성왕후까지 <춘향전>이란 고소설을 그린 그림을 소장하였다는 사실이 새롭다.
② <춘향도>
8폭으로 된 <춘향도> 병풍이다. <춘향도> 병풍은 6폭짜리도 있다. 남원에서는 지금도 이 병풍을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다.
<춘향전>에 아예 삽화를 넣어 시각적 효과까지 노린 소설책으로 1937년 세창서관에서 간행하였다. <춘향전>의 서사를 따라 39화의 그림을 배치하였다.
4) 심청전
그림을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조선민화(CONTES COREENS)』, 1925년 Paris초판.
참조:
김진영, 『고전소설과 예술』, 박이정,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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