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장은 어디일까? 2014. 12월 12일 전남일보

[박 용수]

내 장례식장은 어디일까?

입력시간 : 2014. 12.12. 00:00

장례식장 가는 길이다.

예식장 가는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최근 장례식 출입이 잦다. 장례식장 가는 길은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하늘 장례식장이란다. 어떤 상호가 좋지 않을까마는 장례식장 명칭은 이면의 어둠을 감추려는지 한껏 밝고 푸르다.

꼭 한 달 전에, 지금 가는 장례식장을 갔었다. 혼자 가기처럼 머쓱하고 뜨악한 일도 없어서 그 친구와 동행했다.

사인은 트랙터 사고였다. 허망하게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친구, 사진 속의 녀석은 아직도 들판에서 일하면서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바빠 홀연 도술을 부린 듯 사라졌단 말인가. 친구와 나는 그녀석이 누리지 못한 시간까지 우리가 나눠 가지자며 잔을 부딪쳤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지마는 그렇게 하면 영정사진 속에 질투심 많은 녀석이 불쑥 되돌아와 합석하자고 할 것 같았다.

근데, 그런데 그때 그 녀석이 이번엔 사자가 되어 그 장례식장에 누워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렸을 적엔 그토록 벗어나고파 했던 집이건만 무엇이 그리 좋다고 가속 페달을 밟은 모양이다. 퇴직하면 차부터 바꾸겠다고 했는데, 그 차 속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지상낙원이 되고 말았다. 적어도 녀석은 한 달 뒤에 이곳에서 자기 장례식이 치러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동행 없이 혼자 간다. 혹여 사자가 나타나 나와 함께 한 친구를 또 데려간다면 그 고통을 더는 견딜 수 없을 것이기도 하고, 저승사자에게 선택의 여지마저 주고 싶지 않다.

혼자 가는 조문 길은 역시 쉽지 않다. 스쳐가는 지붕마다 배냇저고리가 휘날리고, 녀석의 혼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대문마다에는 새하얀 사자밥이 첫사랑을 찾아가겠다는 녀석의 혈색만큼이나 창백하다. 냉동실 안은 또 얼마나 추울까. 아마 그가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문득, 나도 그렇게 냉동실에 들어있을 것이다. 며칠간 꽁꽁 얼어 있다가 다시 이글이글거리는 뜨거운 불속에서 몸을 녹일 때까지 그 고통과 답답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산고(産苦)보다 이승을 하직하는 길은 더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주인이 되어 손을 부르는 곳, 내 장례식장은 어디일까. 누군가를 위해 그 언제 들른 그 한곳이 내 식장이 될지도 모른다. 아직 짓지 않고 터를 닦고 있다면 그나마 안심이다. 하지만 이왕 누울 곳이라면 친구가 뜨겁게 덥혀둔 냉동실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글거리는 불속에 죽어가면서나마 끝까지 나를 깨어있는 주검으로 단련하고 싶다. 그 어느 화장터 쪼다가 내 남은 뼈마저 빻더라도 나는 그의 손길에 남김없이 산산이 부서지고 싶다.

매일매일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죽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둠이 빛을 더 찬란하게 만든 것처럼 죽음 또한 삶을 더욱 굳건히 세우지 않겠는가. 장례식장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더 두근두근 뛴다. 그 녀석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녀석이 찾아온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너 왜 갑자기 왔느냐고 나는 너를 맞이하기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통사정을 하면 그도 그럴 것이다. 너에게 수차례 예고를 하지 않았느냐고, 네가 사고가 나고 감기에 걸리는 등, 병원에 갈 때는 내가 찾아왔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는 증거라고 말이다.

갑자기란 없을 것이다. 내가 미혹해서 예측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했을 뿐, 이제 그가 오는 날을 아는 것, 그것이 깨치고 깨어있는 시간일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 잘 죽었다는 것은 잘 살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을 택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 주사바늘 따위에 벌벌 떨지 않으리라. 감기약도 잘 먹어야겠다. 어떤 경우도 호상(好喪)은 없다고 한다. 내가 헌옷을 벗고 새옷을 입는 그날만은 호상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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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용 수

광주동신여고 교사

[민금순]

박용수 선생님! 날씨가 추워지는 환절기라서 그런지 지인들의 장례식장을 가게 되는 일이 생기곤 합니다. 조금은 독특한 소재를 다룬 작품입니다만, 공감이 많이 갑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스스로 몸을 혹사하는 일도 없어야 하겠고, 가까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수필입니다. 좋은글 감사드리고, 또한 축하의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