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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3박4일... 우린 가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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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오전 11시반에 인천공항에서 상하이를 향해 무사히 출발한 상하이마스터스투어단 41명. 3박4일 같이 지내면서 내린 느낌은 한마디로 우리는 테니스 가족이었다. 테니스라는 인연으로 서로를 이해해주고 배려주는 대가족이었다. 결혼 15주년 기념으로 투어에 일찌감치 신청서를 낸 기아자동차 동호회 최유건 김숙찬 부부의 인천공항 미팅 시간 1시간 지각으로 시작한 투어단은 대부분 미리 알린 오전 8시반 전후로 일제히 모였다. 팩스로 여권 사본 넣고 여행경비 입금한 속도에 버금갈 정도로 정확하고 빨랐다. 최연소 투어단 멤버 14개월 박민준도 아빠 엄마따라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아장아장 잘 걸어주었다. 공항에서 골프가방은 많이 보았어도 테니스 가방이 이렇게 모여 출발하는 것은 잘 보질 못했다. 접수를 보던 중국남방항공 지상 승무원들도 무슨 가방인지 물어볼 정도였다. 기내식의 부실을 예상해 브런치를 벽제갈비탕으로 요기했다. 식사동안 눈에 띈 것은 비너스 윌리엄스와 벽제갈비 사장님의 기념촬영과 동아일보 김종석 기자의 기사가 액자에 넣어 있었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테니스 광인 사장님의 이름을 팔아 30% 할인한 직원가로 아침식사를 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했나 기내에서 간단한 식사가 나오기까지 10시간만에 식사를 하게된 부산 멤버(홍성욱 경륜관리공단 테니스소장, 이동환 남산고 감독,임원규 파마스포츠 사장) 등 인천공항에서 멀리서 온 일행들은 허기에 지치고 장시간 탑승 대기에 약간 지쳐보였다. 깨끗이 비운 그들의 기내식 그릇을 보면서 인천-상해 짧은 거리임에도 빙둘러가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선 이번 투어에 중점을 둔 것은 마스터스컵 테니스 관람, 상하이 관광 그리고 오전 테니스 운동이었다. 도착하는 날 상하이 명물 동방명주탑 올라가 전세계 건축가들의 작품 전시장인 상하이 빌딩 숲을 둘러보았다. 뉴욕의 맨하탄은 상하이에 비하면 작은 섬에 불과했다. 역동적인 그리고 다양한 모습의 건물들이 왜 상하이가 세계적인 도시인가를 보여주었다. 또 뭐눈엔 뭐만 보인다고 동방명주탑에 올라 보라는 건물도 보지만 아래에 이쁘게 위치한 하드코트 2면을 보면서 '참 잘 꾸며 놓았다. 바로 내려가 한게임하자'는 희망도 표시했다. 곳곳에 호텔에 딸린 코트가 보였다. 동방명주탑 출구근처에 펼쳐진 왔다갔다볼 판매자들을 보면서 어디가나 테니스와 관련된 것만 보게 되었다. 스쿼시 라켓같은 것으로 고무줄 달린 공을 쳐댔다. 우리나라 롯데호텔앞에서 고무줄 맨 테니스공 치는 사람을 연상시켰다. 내려오는 곳이 여럿임에도 복잡한 도시에서 낙오안하려고 전원이 잘 제시간에 버스에 탑승해 이동했다. 저녁 식사 직전 상하이 서커스를 관람했다. 머리가 엉덩이에 붙을 정도로 허리를 꺾어대는 여자 아이들을 보면서 입에는 팝콘을 연신 넣었다. 상하이 서커스의 압권은 둥근 철망안에서 펼쳐지는 폭주족 5명의 오토바이 질주. 한대 두대 들어가더니 급기야 다섯대까지 들어가 폭주족 노릇을 했다. 오토바이의 간격은 불과 30여센치로 꼬리르 물고 철망안을 돌았다. 마지막 다섯번째 들어간 오토바이 주자는 겁에 질리지나 않았을까 싶다. 예전에는 9명이 들어가 사고가 나서 법으로 5명으로 규제했다고 한다. 오토바이 쇼를 펼치는 곡마단 단원을 보면서 일행 중 누군가 '테니스 더 열심히 쳐서 경지에 올라야 오토바이 단원 정도에 이르는 것 아니겠는가'하는 이야기를 던졌다. 서커스 뒤 식사를 하고 이동하던 중 상하이 외탄에서 낮에 본 동방명주탑을 차창가로 스쳐보았다. 외탄 강둑에서 파는 3개 만원인 로렉스, 오메가, 한무더기 만원인 몽블랑을 뒤로 하고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모닝콜은 5시반입니다 테니스 라켓 지참하라는 말에 대부분 한두자루씩 라켓을 짊어지고 온 투어단은 난방 부실한 상하이 호텔의 첫날 밤을 보낸 뒤 새벽 6시반에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아침 5시반 모닝콜, 6시 아메리칸식 아침식사, 6시반 출발. 버스 인원은 21명. 어린이 포함 총 41명 가운데 절반을 넘겼다. 15분 뒤 도착한 테니스 클럽은 서부운동중심(west sports center)로 가이드도 처음 간다고 한다. 도착해 일제히 터트린 소리는 '골프클럽하우스 같다'였다. 제일먼저 발견한 것은 이형택 사진이었다. 반가웠다. 중국테니스클럽하우스에서 헤드라켓을 든 이형택의 사진이 류비치치옆에 나란히 있었다. 역시 이형택은 아시안프라이드였다. 잘 차려진 실내외 하드코트와 부대시설이 투어단 행사를 캄플라치하고도 남았다. 7시반에 여는 것을 30분 댕겨 7시에 열게하고 신나게 들어가 삼삼오오 나뉘어 공을 쳤다. 20년간 매일아침 운동을 했다는 베테랑부 우승자 김명기 님은 하얀 옷으로 아래위를 갖춰입고 한번 들어간 코트에서 나오질 않을 정도로 게임을 즐겼다. 다들 만면에 미소가 그득해 보여 일단 안심을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았나. 관동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는 서미란 님의 백핸드 포핸드 발리 등 멋진 플레이에 신인청년부 상위랭커 김성훈도 혀를 내둘렀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선수라고 했다. 그 정도로 폼도 우아하고 힘이 있었다. 한마디로 포스가 느껴졌다. 한국의 국화 송성심 윤기숙 조는 한국에서만 국화부 인줄 알았는데 늦가을 상하이에서도 역시 국화로 활짝 피었다. 까불까불한 남자조들을 잇따라 물리치며 짭짤한 개가를 올렸다. 필자와 기아 최유건 차장의 짝은 첫 상대 서비스게임만 브레이크 하고 내리 6개를 내줘 '역피박'을 썼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배추잎 두장을 '국화'에 헌납했다. 아침 7시 직전에 시작한 게임은 9시를 기점으로 정확히 마쳤다. 다음날 한시간 연장된 10시까지 예약을 했고 귀국일 아침인 수요일 오전도 거푸 예약에 들어갔다. 즉석에서 개인전, 단체전 구상도 했다. 연변에서 온지 한달 된 상하이 초짜 가이드 장호권씨는 이건 여행이 아님네다. 관광하러 오신게지 테니스치러 왔슴네까하면서 어이없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공 숙박에 사실 말도 안되는 가격에 시행되는 중국관광에 관광지 다녀야 하는데 오전 내내 자기들 돈도 안되는 테니스를 친다는 것에 계산이 되지 않은 것이다. 점심먹자마자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마스터스컵 복식 경기를 봐야겠다는 는 최혜랑씨등이 나오고 일부 분당 청년들이 동조했다. 입장권 쥐어 그들을 먼저 보낸 뒤 남은 일행도 뭐 다른거 할거 있나 그냥 경기장 가자는 재촉에 버스 머리를 경기장으로 돌렸다. 대략 도착 시간은 오후 4시. 암표상으로 입구는 정신이 없었다. 상해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이지만 대회 분위기가 제법났다. 현수막에 암표상에 웅장한 개폐식 경기장 그리고 인산인해 모든 것이 마스터스컵 분위기를 냈다. 경기장 입구에서 기념촬영하다 나눠준 입장권을 잃어버린 멤버들로 인해 후에 배꼽을 잡았다.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남은 티켓으로 가이드 보라고 준 것은 잃어버린 멤버들 차지가 됐다. 가이드가 싸움 불을 진화하고 눈치껏 전달한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사건은 있었다. 점심 직전 지덕체 겸비하라고 들른 상해박물관에서 그림에 빠져 투어단 버스 출발을 한시간 가까이 지체시키기도 했다. 사람 찾느라고 박물관에서 방송해달라고 조르고 1층부터 5층까지 방을 샅샅이 뒤졌고 박물관 주위 광장을 뱅뱅뱅뱅 돌았다. 물론 이런 행동의 주역은 미아의 파트너였다. 슬그머니 1층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고 열방망이 치밀 뻔도 하지만 다시 찾았다는 안도의 한숨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상하이마스터스컵의 첫 단식과 두번째 페더러 경기를 관람했다. 비교적 코트에서 먼 자리였고 너무 높은 자리를 샀다는 불만이 나왔다. 코트 바닥은 아니더라도 좀 코트에서 가까운 자리를 샀어야 하는 것 아니었냐는 의견이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현지 희한한 암표는 정가의 3분의 1가격이었다. 배가 아팠다.) 어떻게 그 가격에 파는 지 정말 이해가 안갔다. 내년에는 브아이이피석 암표를 사야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그것이 더 싸게 먹힐 듯 싶었다. 일각에선 내년에 입장권 예매하지 말고 현장에서 사자는 의견도 나왔다. 아무튼 테니스 전문기자도 1년에 몇번 못보는 페더러 패배 경기와 경기 막판 페더러의 심정과 흙빛 얼굴을 보면서 상하이 둘째날 밤을 마쳤다. |
첫댓글 아~이 부러버라...내년을 기약 해 봐야지!!